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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육계 만천과해 - 동료들과의 관계에서
A. 상급자가 하급자를 대할 때
 
서상욱 역사가 기사입력  2007/05/23 [06:51]

 

묵계 서상욱님은 해박한 동양의 역사와 주역, 의서에 통달한 분으로 현재 대학교 강사 및 후학을 가르치고 있다. 특히 동양 고전과 역사 및 철학에 조예가 깊다.

관료정치제도에서는 관료들 사이에 여러 가지의 이해관계가 존재한다. 명(明)의 우신행(于愼行)은 이러한 관료들끼리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사람은 살모사(殺母蛇)를 보면 싫어하지만 분노하지는 않는다. 또 호랑이를 보면 두려워하지만, 분노를 하지는 않는다. 보자마자 싫거나 두렵기 때문에 피하면 그만이다. 호랑이나 살모사를 보고, 굳이 그 굴에 손을 집어넣어 잡으려고 하는 간이 큰 사람이 있겠는가?"

그러나 관료사회에서의 인간관계는 싫거나 두렵다고 해서 피할 수가 없다. 그들은 아무리 싫거나 두려워도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거나 피해를 당하지 않기 위하여 공생(共生)을 한다. 또한 자신의 이해관계를 좀 더 오래 유지하려고, 약자에게는 호랑이나 살모사와 같은 행동도 서슴치 않는다.

관료정치는 전제정치와 서로 결합된 정치형태이다. 일반적으로는 관리들은 식록(食祿)을 받고 임관이 되면, 고정된 직업을 가지게 된다. 그 대가로 그들은 군주와 상급자에게 상당한 책임을 져야한다. 이들은 사회의 이익과 국민들의 질고(疾苦)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오로지 제정된 규칙과 기존의 사례에 따라 일을 처리할 뿐이며, 실정의 변화에 따른 주관적 판단을 하지는 않는다. 또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모르는 일이 벌어지면 꾸물꾸물 움직이거나 서로 책임을 미루다가도, 뇌물이 생기는 일이나 자기의 사욕을 채울 일이 있을 때는 신속하고 교묘한 행동을 한다.

중앙집권적 전제주의 제도하에서는, 정치권력이 새로 수립될 때마다 일체의 새로운 규범과 법령이 제정되거나 수정된다. 또한 중요부문의 관직과 제도가 새로 설치되거나 폐쇄되므로, 관료들의 명운(命運)도 이에 따라 결정된다. 그러므로 생사와 영욕이 오로지 군주의 손에 달려있다. 군주와 상사는 사랑하고 미워하는 것이 조석지변(朝夕之變)이므로, 모든 관리들이 자신의 길흉을 점칠 수가 없고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 이는 현대의 민주정치제도 아래에서도 대동소이하다. 법이나 제도가 어떻게 되었든지, 대통령이 실질적으로 인사권을 행사하는 대한민국의 관료사회는 전제주의 제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 흔히 코드인사라는 말이 횡행하는 것은 이 사실을 증명한다.

그러므로 관리들은 어떤 일이 발생하기 전에 조정과 상사의 의도를 살펴서 재빨리 영합을 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일을 잘하고 못하는 것은 그 다음의 문제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조정에서 정한 방침을 그대로 따르거나 전례(前例)를 답습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일이 상황에 맞는지, 옳고 그른지는 뒷전일 수밖에 없다.

청대(淸代)의 가경(嘉慶)과 도광(道光) 년간에, 내각대학사(內閣大學士)이면서 군기대신(軍機大臣)이었던 조진용(曹振鏞)은 자기가 관직을 맡는 것이 순리(順理)라는 점을 들어 이렇게 솔직히 말했다.
"수도 없이 머리를 땅바닥에 찧었고, 되도록 말이나 일을 적게 했다"

한 나라의 재상인 중신이 이렇게 자백을 했으니, 하물며 다른 관리들이야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가능하면 일을 적게 하는 것이 생명을 유지하는 지름길이라는 이러한 인식이 바로 관료정치의 폐단이었다.

전제정치하에서는 기본적으로 인치(人治)가 행해지기 때문에 건전한 법과 제도가 마련되기 어렵다. 어떤 사람이 권력을 잡으면 그 사람의 정치가 있고, 그 사람이 망하면 그 사람의 정치도 따라서 망한다. 이런 상황에서 관리들이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서 움직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므로 "이해관계를 잘 알아서 시비(是非)를 따지지 않는 것이 관리이다." "시비는 도리지만 이해(利害)는 현실적이기 때문이다"라는 말처럼, 그들은 일을 처리하기 전에 자기의 이해관계를 계산하고, 거기에 따른 관리들끼리의 복잡다기한 인간관계에 대응하는 일에 주력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들끼리 벌어졌던 권모(權謀)를 살펴보자.

A. 상급자가 하급자를 대할 때

전제주의 정치체제에서는, 상급자가 하급자의 관운(官運)을 결정하기 때문에, 하급자는 상급자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한다. 그러므로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권모를 사용할 이유가 없는 것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사실은 전혀 다르다. 관료는 세습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늘 유동적이다. 오늘날의 관료사회도 전제주의 정치제도와 그 정도는 다르지만, 여전히 하급자에 대한 인사는 상급자가 결정된 이후에 이루어진다. 상급자는 하급자를 선택할 때는 자기의 지위를 위협하지 않는 정도의 인물을 고른다. 상급자는 하급자가 자기를 대신하여 일을 처리하기를 바라지만, 여전히 하급자가 자기의 지위를 노리지 않을까 염려한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상급자는 하급자에게 경계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나름대로 일정한 계모(計謀)를 사용하고 있다.

상급자가 하급자를 대하는 방법은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하급자가 자기의 자리를 노리지 않게 하면서 원수를 맺지 않는 방법이다. 하급자가 승진을 하려면 자기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도록 하는 방법이 가장 좋다.

둘째는 하급자를 선택한 사람이 자기라는 것을 알게 하여 연맹을 결성하고, 자기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다.

셋째는 도저히 자기의 사람이 되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이 서면, 승진을 하지 못하게 하거나 궁지로 몰아 넣는다.
그러나 이상의 어떤 방법을 사용하든, 상급자는 하급자에게 만천과해를 사용하여, 자기의 본심을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

서한(西漢)의 장군 한안국(韓安國)은 죄를 범하여 감옥에 갇혔다. 한안국을 구속하고 관리하던 감옥관(監獄官) 전갑(田甲)은 한안국에게 심한 모욕을 느끼게 하였다. 한안국은 분노를 느꼈지만, 죄인이기 때문에 차마 말을 하지 못하고 이렇게 말했다.
"꺼진 불도 다시 살아나지 않겠느냐? 장차 내가 다시 고관이 되면 어떻게 할 것이냐?"
그러나 전갑은 자기가 감옥을 주관하고 있어서 범인의 생사가 자기에게 달렸다는 것을 믿고 이렇게 되받았다.
"다시 피면 다시 끄면 되지. 꺼진 불이 다시 피면, 내가 거기에 오줌을 누면 된다"

그러나 하늘도 무심하지 않아서 한안국은 황은을 입고 사면되어 다시 이천석(二千石)으로 승진되었다. 그러자 전갑은 놀라서 도망을 하였다. 한안국은 전갑이 돌아오지 않으면 종족을 모두 죽이겠다는 명령을 내렸다. 뾰족한 대책이 없어진 전갑은 육단(肉袒)을 한 째로 한안국을 찾아와 사죄를 하였다. 그러나 한안국은 그의 죄를 묻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
"너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내 부하가 될 만하다"

한안국은 전갑의 죄를 묻지 않고 오히려 잘 대접하였다. 점갑은 깊이 감사를 하고 한안국의 심복이 되었다. 한안국은 종친들을 모두 죽이겠다고 위협하여 전갑의 사죄를 받아들이고 그를 중용했다. 전갑은 나중에 전쟁터에서 위기에 처한 한안국을 죽음을 무릅쓰고 구해주었다..

은혜를 베푸는 것과 위협을 하는 것을 함께 조화롭게 사용하는 것은 상급자가 하급자를 다루는 가장 적절한 방법이다. 그러나 그것을 그르치면 오히려 원수가 되기도 한다. 서한의 유명한 비장군(飛將軍) 이광(李廣)은 흉노와의 전쟁에서 패전하여 병마(兵馬)를 잃고 평민으로 내려가 섬서성(陝西省)의 남전(藍田)에 있는 남산(南山)에서 살았다. 어느날 사냥을 하다가 너무 늦어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할 지경이 되었다. 잠자리를 구하던 그는 마침 주변에 패릉정(覇陵亭)이 있어서 그곳에서 하룻밤을 지내려 했다. 그는 패릉의 치안을 담당하던 패릉위(覇陵尉)를 찾아갔다. 패릉위는 이광을 보고도 아는 척도 하지 않았다.

이광의 수행원이 패릉위에게 말했다.
"이분은 이장군이시다"
이 때 술에 취한 패릉위가 국법을 들먹이며 대들었다.
"지금은 밤에 통행을 하지 못하는데 도대체 장군이 무슨 일이오?"

이광은 정자에서 유숙을 하지 못하고 황야에서 노숙을 할 수밖에 없었다. 얼마 후 흉노가 침입하자 한무제는 다시 이광을 불러서 흉노를 물리치게 하였다. 이광은 패릉위를 잡아와서 죽여버렸다. 애초에 패릉위는 이광이 다시 복직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하고 오만하게 굴었던 것이다.
그런 것을 용서하지 못하고 하루아침에 다시 관직이 높아지자, 보복하는 마음이 생겨 치기를 부리던 하급관리를 죽였으니 이광은 기량이 협소하다는 평가를 받고 말았다. 이런 일로 이광은 크고 작은 70여차례의 전쟁에서 여러 차례 전공을 세웠지만 제후가 되지 못했다. 그는 나이가 들자 더이상 군사적인 일에 종사하지 못한다는 판단을 하고 "다시 칼과 붓을 들고 관리가 되지 못하겠다."라는 탄식을 하며 목을 찔러 자결을 했다.

관직은 뜬구름과 같아서, 고관대작이라도 하루아침에 생각지도 못하던 변방으로 쫓겨난다. 그 때가 되면 비로소 안중에도 없었던 하급자가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를 안다.

서한의 유명한 공신 주발(周勃)은 한고조 유방을 따라서 수많은 격전을 치렀고, 여씨를 평정하여 한문제를 옹립함으로써 위세를 천하에 떨쳤다. 그러나 무고를 당하여 정위에게 심문을 받게 되었다. 그렇게 당당당하던 강후(絳侯) 주발도 무슨 말을 할지 모르고 그대로 욕을 당했다. 어쩔 수가 없었던 그가 옥리(獄吏)에게 천금의 뇌물을 주자, 옥리의 말 한마디로 출옥하게 되었다. 그는 이렇게 한탄했다.
"나는 일찍이 백만대군을 거느린 적이 있었지만, 옥리가 이렇게 귀한 줄은 몰랐다"

상급자는 어떠한 경우라도 이런 경우를 당하지 말아야 한다. 설령 그러한 경우를 당하더라도, 적어도 하급자가 자기를 해치지 않도록 평소에 적절한 조치를 취해두어야 한다. 아무리 약자라도 강자를 도와줄 수는 없지만, 기회가 오면 해칠 수는 있다. 남이 성공도록 도와주는 힘이 없는 사람이라도, 최소한 해치는 능력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러나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이 공개되면, 오히려 하급자에게 농락을 당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상급자의 신분을 망각하고, 상대에게 칼자루를 넘겨주는 일이 없도록, 철저하게 기밀을 유지해야 한다. 상급자는 은밀하고 교묘하게 은혜를 베풀기 위하여, 만천과해를 사용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당현종(唐玄宗)은 좌천당했던 강주자사(絳州刺史) 엄정지(嚴挺之)를 다시 중용하고 싶었다. 재상(宰相) 이림보(李林甫)는 엄정지를 자기의 잠재적 정적으로 여겼다. 이림보는 그가 서울로 돌아오면 자기가 불리해질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공개적으로 반대하는 것은 좋지 않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는 엄정지의 동생 엄손지(嚴損之)를 불러서 엄정지가 서울로 오려면 관심을 끌어야 하는데, 그것은 먼저 자신은 외지에 좀 더 있고 싶다고 상소를 올리는 것이라고 속였다. 엄정지는 회경(回京)을 사양했으며 결국 돌아오지 못했다.

엄손지는 이 계책을 잘 알지 못하고, 자기의 형에게 "풍질(風疾)에 걸렸으니, 서울에 가서 치료를 해야 하겠다"고 하도록 하였다. 당현종은 엄정지가 건강이 좋지 않아서 관직을 맡기가 힘들 것이라고 판단하여 생각을 둘렸다. 이림보는 엄정지에게 죄를 덮어씌우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황제의 뜻을 그르치지 않으면서도 정적의 대두를 막을 수가 있었다. 그는 양쪽 모두로부터 신뢰를 받았다.

이림보는 "입으로는 달콤한 말을 늘어놓으면서 뱃속에는 칼을 품은" 이중인격자로서, 자기와 이익을 달리하는 사람들을 배척하고 친한 사람만 등용한 인물이었다. 이런 사람은 원래 권력을 오랫동안 유지하기가 어렵지만, 이림보는 계책을 잘 이용하여 죽을 때까지 재상직을 유지했던 중국의 역사상 보기 드문 존재였다. 그러나 계책을 잘 이용하는 사람도 결국은 사리(私利)를 위한 목적이기 때문에 오래 가지 못한다. 이림보도 죽어서 그가 저지른 일들이 만천하에 공개되었고, 자손들이 피해를 당했다. 사실 이림보는 아주 명석했던 사람이었다. 그의 아들 이유(李岫)는 아버지를 이렇게 평가하였다.
"아버지는 오랫동안 균축(鈞軸-大臣을 저울추와 굴대에 비유하는 말)을 자처했기 때문에, 원한이 천하에 가득 차서 하루아침에 화를 당했다. 누가 그렇게 하고 싶어서 그런 짓을 하였겠는가?"

아들의 아버지에 대한 평가라서, 일견 지나친 비호같기도 한 이 말은 사실은 이림보라는 인물을 비교적 적절하게 평가한 말이기도 하다. 이림보는 재상으로서 탁월한 치적을 남기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세력균형이라는 키워드를 해결하기 위하여 전력투구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는 당과 이민족의 갈등이 고조되면서, 군사적 영향력이 높아진 절도사를 문벌들이 차지하는 것을 위험하게 생각하여, 이민족이나 서민 출신으로 대치하는 나름대로의 개혁적 조치를 단행하였다. 그러나 그 결과는 "안록산(安綠山)의 난"이라는 정치적 비극을 낳았으므로 결과적으로는 실패한 정책이 되었다. 이림보는 비록 고고한 인물은 아니었지만 누구나 쉽게 할 수 없는 말을 남겼다.
"세력이 이미 이와 같이 커졌는데, 이것을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비록 상급자가 하급자를 마음대로 부릴 수 있다고 해도, 하급자도 역시 상급자의 자리를 노리고 있으므로, 상급자의 몸은 마치 분화구 앞에 놓인 꼴이라서 자칫하면 불구덩이 속으로 빠진다. 이림보는 "자기가 죽을 줄 알면서도 앉아서 기다릴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라는 변명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다음 기회에 B. 동료들끼리 C. 하급자가 상급자에게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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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7/05/23 [06:51]  최종편집: ⓒ gg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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