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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주가 다한 자는 몸이 위태로워지고……”
<강경범의 음주고사>삼천갑자 동방삭①
 
강경범 문화칼럼니스트 기사입력  2009/12/15 [21:42]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삼천갑자동방삭……
어릴 때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고 따라 읊었던 코미디의 유행어에 등장하는 동방삭은 장수한 인물로, 또는 골계에 뛰어난 인물로 우리에게 기억된다.


그가 왜 삼천 번의 환갑이 되는 세월(1만8천년)을 살게 되었고, 골계로 뛰어난 인물이 되었는지, 이 음주고사를 통해 살펴보자.

진(晉)대 장화(張華)의 박물지(博物志)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군산(君山)에는 좋은 술 몇 말이 있었는데, 마시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았다. 무제(武帝)가 난파(欒巴)를 보내어서 결국 이 술을 얻었다. 동방삭이 ‘신이 이 술을 알아야겠으니 보여 주십시오’라고 하고서, 이 술을 단숨에 마셔버렸다.

무제가 동방삭을 죽이려 하니, 동방삭이 ‘저를 죽여서 만약 죽는다면 이것은 효험이 없는 것이고, 이것이 효험이 있다면 저를 죽인다고해도 죽지 않을 것입니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무제가 그를 용서하였다.”

위의 고사는 골계가 넘치는 그의 기지가 잘 드러나지만 오만방자하게까지 보이는 그의 이러한 행동은 도대체 뭘 믿었기 때문일까? 물론 한무제가 만년에 신선술과 장생불사에 심취하였기에 고대의 경전과 신선술,기이한 고사 등에 해박한 자신을 쉽사리 죽이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한무제의 총애를 받은 그가 왜 정사를 돌보는데 관심을 두지 않고, 낭관(郞官)․대조금마문(待詔金馬門)이라는 낮은 벼슬에 만족하며 궁전의 악사나 배우처럼 황제 곁에서 빌붙어 생활했던 것일까?


이점에 있어서는 사마천의 ≪사기,골계열전≫에서 잘 설명하고 있다.
그는 황제에게 받은 하사품을 술과 여자를 사는데 모두 써버렸다. 그래서 동료 낭관이 그에게 모두들 미치광이로 여기고 있다고 하자, 동방삭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세상을 피하여 사는 사람인데, 옛 사람은 세상을 피해 깊은 산중으로 들어갔지만 나는 세상을 피해 조정안에 있는 겁니다.”고 대답한다.

또한 그는 연회석에서 술이 거나해지면 그 자리에 널부러져서 이러한 노래를 불렀다. “속세에 은거하고, 세상을 피한 금마문(金馬門: 내시들이 있는 관청의 문), 궁전 속에서는 세상을 피해 몸을 안전해 주는데, 구태여 깊은 산중 쑥으로 이은 움막에 은거할 필요가 있는가?”

나아가 필자가 의아해하는 것처럼 ≪사기≫에서도 이러한 구절이 나온다. 들은 것이 많고 변설과 지혜가 뛰어난 동방삭이 왜 이전의 소진(蘇秦)과 장의(張儀)같은 공을 세우지 않은 지 묻자, 그는 이렇게 답한다. “……옛말에 ‘천하에 재난이 없으면 성인이 있어도 그 재주를 베풀 곳이 없고, 상하가 화목하면 어진 사람이 있어도 공을 세울 수가 없다’고 했소. 그러므로 ‘시대가 다르면 상황도 달라진다’고 했던 것이오. 이렇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몸을 닦는 것에 힘쓰지 않을 수 있겠소?……몸을 닦게만 된다면 영달을 얻지 못할까 걱정할 필요가 없다오.……”

그런데 몸을 닦아 세상의 이치를 통달해야 한다고 한 그가 술과 여자를 사는데 재산을 탕진했다는 사실은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다. 혹시 동방삭이 자식을 권계하는 시(誡子詩: 여러 판본이 남아 있는데 싯구가 조금씩 다름)를 읽으면 이러한 그의 행동이 조금은 이해될까 싶어서 소개한다.

현명한 사람이 일을 처리하는 것은 치우치지 않는 중도를 가장 숭상하여 마음대로 노닐어도 도(道)와 서로 부합한다. 수양산에 은거한 백이숙제는 처세가 졸렬한 것이고, 내침을 받아도 원망하지 않은 유하혜(柳下蕙)의 처세는 뛰어난 것이다. 밥을 배불리 먹고 편안하게 생활하는 것은 관직에 있는 것으로써 농사짓는 것을 대신한다.

조정에 은거하여 세상을 놀리게 되면 시류와 어그러져서도 화를 당하지 않게 된다. 이런 까닭으로 재주가 다한 자는 몸이 위태로워지고, 명성을 좋아한 자는 영화를 얻게 되고, 무리를 가진 자는 허물이 생겨나고, 고귀한 자는 조화를 잃게 되고, 남음이 있는 자는 다하지 않고, 저절로 다하는 자는 남음이 없게 된다. 성인의 도는 용처럼 나타나기도 하고 뱀처럼 숨기도 하여 모습을 드러내지만 정신을 숨겨서, 사물과 때에 따라 항상 적절하게 변화하니 정해된 틀이 없다.

(明者處事, 莫尚於中, 優哉游哉, 與道相從. 首陽爲拙; 柳惠爲工. 飽食安步, 在仕代農. 依隱玩世, 詭時不逢. 是故才盡者身危, 好名者得華; 有群者累生, 孤貴者失和; 遺餘者不匮, 自盡者無多. 聖人之道, 一龍一蛇, 形見神藏, 與物變化, 隨時之宜, 無有常家.)



이를 통해 봐도 그가 왜 술과 여자를 위해 재물을 탕진했는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다만 “재주가 다한 자는 몸이 위태로워지고……”라고 인식한 점이 바로 그가 박학다식에 기초하여 한무제를 끊임없이 웃게 만들고 환심을 사게 된 원천인 듯 하다.

어쨌든 사람의 행동은 복잡다단한 사상의 결과로써 빚어지기에 하나의 사상이나 원인에 한정하여 귀납시킨다면 이 또한 오류를 범할 여지가 크다고 본다. 여기서는 그가 다만 조정에 은거하여 화를 당하지 않으면서도 개인적인 기호를 즐긴 것이라 생각해볼 뿐이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쇼를 하자’는 광고의 대사를 즐긴다. 이는 여러 방면에 다각도로 적용될 수 있는 멋진 처세방법일 수가 있는데, 가만히 따져보면 정치가,학자,은사,종교방면의 종사자,상인 등 적용되지 않은 분야가 있겠는가? 동방삭의 ‘조은(朝隱)’도 바로 일종의 쇼가 아니겠는가?

≪사기≫에 의하면, 그가 황제에게 자신을 추천할 때, 자신의 장점을 3천여개의 죽간에 적어서 상주했기에, 무제가 방점을 찍어가면서 두 달이 걸려서야 다 읽었다고 한다. 이는 그의 변설이 뛰어남을 말해주는 것이지만 그는 자신의 장점을 최대한도로 살려내어 황제의 마음을 사로잡는 방법으로 삼았음을 알 수가 있다. 각설하고 동방삭은 평소 배우처럼 황제를 모시고 신선술에 심취하도록 도우며 일신의 편안을 도모했지만 늙어죽을 때가 되어서는 황제에게 이렇게 간한다.

“≪시경≫에 「앵앵거리는 쇠파리 울타리에 모이면 어진 임금이라도 참언을 어찌 믿지 않겠는가? 참언하는 사람이 한없이 많으면 온 나라를 어지럽한다.(營營靑蠅止於樊, 豈弟君子, 無信讒言, 讒人罔極, 交亂四國.)」(<소아(小雅),청승(靑蠅)>)고 했습니다. 바라옵건대 폐하께서는 교활하고 아첨하는 무리들을 멀리하시고 참소하는 말을 물리치십시오.”
이를 들은 황제가 “이상하게도 요즘 동방삭이 하는 말에 착한 데가 많도다.”라고 괴이하게 여겼다.

이쯤되면 그의 삶은 조정에 은거하여 ‘때와 사물과 따라 항상 적절하게 변화하는’ 쇼를 한 것이 아니겠는가?

(문장이 길어서 뒷부분 그의 음주고사와 그의 신화전설은 동방삭②에 연재할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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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12/15 [21:42]  최종편집: ⓒ gg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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