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강경범의 음주고사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고지식하게 솔직하면 손해인가?
<강경범의 음주고사> 순박한 황보량(皇甫亮)의 핑계“하루는 비가 왔고, 하루는 술에 취했고, 하루는 술병이 났습니다”
 
강경범 문화칼럼니스트 기사입력  2010/04/26 [22:57]

“사람이 너무 정직하면 손해본다.”는 말이 한동안 뭇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더니만, 언젠가 TV광고에서 ‘NO´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라는 의도로 한참을 또 떠들던 때가 있었다.

너무 정직하거나, 너무 고지식하게 솔직한 사람이 결국은 손해 볼까? 정직과 고지식은 일치하지 않는데, 고지식한 사람은 아마도 눈치와 융통성이 너무 없어서 주변의 상황을 전혀 감지하지 못하는 자기중심적인 인물일 것이다.

하지만 또한 다른 각도로 보면 정직과 고지식이 비슷한 일면을 지니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러한 점에서 고지식하게 솔직한 사람이 손해를 본다면 이러한 사회가 바른 사회일까?

필자가 천고의 진리처럼 생각하는 것이 “성격이 팔자다”란 말이다. 즉 자신의 성격을 쉽게 고칠 수 없다는 의미다. 자신의 타고난 성격을 어느 정도는 고칠 수 있겠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그 모습이 노출되니, 사람은 타고난 본성대로 살아갈 수 밖에 없고, 그것이 자신의 운명을 결정지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천고에 고지식하고 융통성없는 사람으로써 노(魯)나라 미생(尾生)을 예로 들곤 한다. 그런데 필자는 미생이 잘못한 점이 도대체 뭐지?라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사기(史記).소진열전(蘇秦列傳)≫에 어리석음의 대명사로 미생을 언급하고 있는데, 여기서 잠시 살펴보자.

춘추시대에 노(魯)나라에 미생이 있었는데, 그가 사랑하는 여인과 마을에 있는 다리 밑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약속한 날에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다. 미생은 다리 밑에 나가 그녀를 기다리며 불어나는 물을 피하려다가 교각을 붙잡은 채 결국 죽고 말았다.

미생의 행위는 참으로 어리석고 융통성이 없기는 어찌 그리도 없을까! 그런데 그는 융통성이 없음으로 인해 목숨을 잃은 반면에 오히려 ‘남아일언중천금(男兒一言重千金)’을 실행한 것은 아닌가?

한번 한 약속은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키라고 하면서, 한편으로 미생처럼 미련하게 약속을 지킨 이를 또한 어리석음의 극치로 여기고 있으니, 인생살이란 답이 없음을 참으로 실감하게 된다. 그러니 중용이니, 도(道)니 하는 말을 하면서 왈가왈부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잠시 여기서 미생을 인용한 소진(蘇秦)이란 인물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소진은 진(秦)의 야욕에 대항하기 위해 합종(合縱)을 이끌어내어서 6국의 인수끈을 허리에 찬 인물이다.
그러나 결국 연횡(連橫)을 주장한 장의(張儀)에 의해 합종이 깨지고 진(秦)이 전국을 통일하게 된다.

소진과 장의는 각 제후국으로 다니며 자신의 주장을 유세하여 제후들을 설득해야 했기에, 똑같은 역사적 사실과 고사도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갖다 꾸미기에 뛰어났다. 그러므로 ≪사기.장의(張儀)열전≫ 마지막에 사마천(司馬遷)이 말한 부분을 보자.


 


삼진(三晋: 즉 한(韓).위(魏).조(趙))에는 권모술수로써 기이한 변화를 부린 인물이 많다. 합종연횡을 부르짖어 진(秦)나라를 굳세게 한 자는 대개가 다 삼진 출신이다.

장의의 계책은 소진보다도 심하였으나, 세상사람이 장의보다 소진을 미워하는 것은 소진이 죽은 뒤에 장의가 소진의 단점을 선전하고 폭로하여 자신의 유세를 유리하게 만들어 연횡을 성취한 것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이 두 사람은 진실로 위험한 인물이다.

결국 소진이나 장의는 제후국을 유세하여 세상이나 왕을 기만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킨 인물이라는 것이 명백하다.

위 <소진열전>에서 언급한 것도 소진이 합종을 위해 연왕(燕王)을 설득하기 위해 유세하는 과정에서 언급한 것인데, 미생과 더불어 언급된 인물이 곧 효심이 강한 증삼(曾參)과 청렴하고 지조가 있는 백이(伯夷)였다.

그러니 당시에 미생의 고지식함을 증삼과 백이와 같이 긍정적으로 인정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후세에 와서는 완전히 ‘미련곰탱이’라는 의미로 쓰이고 있으니, 미생이 이 사실을 알면 지옥에서 벌떡 일어나 하고 싶은 말이 참으로 많을 듯 하다.

각설하고, 북제(北齊)에도 미생과 비슷한 인물로 황보량(皇甫亮)이란 인물이 있다. 그와 관련하여 ‘삼일동안 입조하여 임금을 뵙지 않다(三日不上省)’와 ‘황보량이 집을 팔다(皇甫亮賣宅)’라는 고사가 전한다. ‘三日不上省’의 고사는 이렇다.

황보량이 삼일동안이나 입조하여 황제에게 문안을 드려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다. 북제의 문선제(文宣帝)는 친히 그 까닭을 따져 물으니 황보량이 이렇게 대답했다. “하루는 비가 왔고, 하루는 술에 취했고, 하루는 술병이 났습니다.” 문선제는 이러한 사실을 너그럽게 이해하고 그를 관대하게 대하여, 종아리 30대를 때리는 것으로 끝났다.(<북제사(北齊史)>)

3일동안 등정을 하지 않아서 따져묻는 황제에게 “하루는 비가 왔고, 하루는 술에 취했고, 하루는 술병이 났습니다.”는 그의 답변이 당치도 않지만, 왕 또한 너그러이 몽둥이 30대로 용서해줬다는 사실이 이해되지 않는다.

물론 북제 문선제는 쾌도난마(快刀亂麻)란 고사성어에 나오는 주인공이지만 10년간의 재위기간 동안 전기와 후기에 보인 행동이 완전히 다른데, 위의 인용문은 그가 정치에 정력을 쏟아 강성대국을 이룰 전기 때를 가정한 것이고, 그가 술과 여자에 취해 정치를 완전히 등졌을 후기라고 한다면 황보량은 마땅히 자신의 몸을 보전할 구실을 만들어놓았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임금 앞에서 하는 말이 비가 왔으니 등정하지 않았다? 이건 무슨 황당한 시추에이션인가? 이러한 사실은 그의 이력을 전혀 알지 못하기에 제기되는 의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북제사>의 기록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가 거주하는 집은 웅덩이 아래에 있어서 집을 팔려고 내놓았다. 집을 사려고 찾아온 사람이 집을 파는 까닭을 물으면 그는 늘 “집이 물에 잠기면 물이 잘 빠지지도 않고, 비가 오면 침상 밑으로 흘러들어서요.”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집은 끝내 팔리지 않았다. 그는 이처럼 순박했다.(<북제사(北齊史)>)

결국 황보량은 비가 오면 감성에 젖어서 술을 마신 것이 아니라, 집이 비에 침수당하고 이런저런 고민으로 술에 취했을 것이다. 아니면 혹 비가 오면 감성에 젖어 술을 마시고서, 집이 움푹 꺼진 곳에 위치한 것을 빌미로 항상 그렇게 핑계댔을 지 모른다. 혹은 상식에 어긋나는 문선제의 잔혹한 행위를 보고 아예 등정하지 않으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추측들이 문선제가 극악무도한 모습을 보인 후기라고 가정한다면 이러한 핑계가 충분히 이해되고도 남는다. 하여간 모두들 그가 순박한 사람이라고 인정한 것은 그간의 행동이 그렇게 믿도록 한 것에 있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그의 이력을 살펴보자.

그는 북제의 고조인 신무제(神武帝: 高歡)가 봉기할 때 대행대랑중(大行臺郞中)이 되었다. 그는 본성에 따라 참되게 행하였지만 번거로운 직책을 좋아하지 않아서 사도동각제주(司徒東閣祭酒)에 제수되었다.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서 양주(梁州: 지금의 섬서성 勉縣 동쪽) 포현(褒縣)에 자리를 잡았다가 뒤에 양(梁)나라에 항복하였다.

그의 모친과 형이 북쪽에 있어서 돌아가기를 청하니, 양(梁)무제가 잡지 않았다. 북제의 수도인 鄴城(업성: 지금의 하북성 臨漳縣 서쪽과 하남성 安阳市 북쪽)에 이르러, 다시는 관직에 대한 마음이 없어서 백록산(白鹿山)에 들어가, 산수자연을 마음껏 즐기며, 마음껏 술마시며 시를 짓으며, 초연하게 즐겼다.

다시 상서전중랑(尙書殿中郞)이 되어 관직의 의례를 대신하여 거행했다. 대대로 황제의 선위하는 의식과 제도를 찬술하는데 참가하여 유중남(楡中男)에 봉해졌다. 황보량은 소탈하고 게으른 것으로써 자처하여 업무에 재능을 발휘하지 않는데, 늘 의식을 거행하는 대사가 있으면 항상 여러 관리에게 명하여 이를 대신처리하게 하였다.(<북제사(北齊史)>)

밑줄친 부분에 집중하여 읽어보면 그의 품성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는데, 그는 아마도 솔직한 본성에 충실한 인물이었던 듯 하다. 말하자면 말과 언행이 일치되는 그런 사람인 듯 하다. 그렇기에 왕도 그의 말을 신용했던 것이 아닐까? 고지식한 듯한 그의 언행이 혹 죽임을 당할 상황에서 그를 살린 것은 아닐까?

황보량의 경우는 ‘왕과의 소통’이라는 전제가 되어야 하겠지만 황보량의 경우만 그렇겠는가?

인간사 모든 부분에서 자신의 언행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덧붙인다면 오해로 인해 싸우거나 해를 가하는 경우가 그렇게 많이 생기겠는가? 하지만 인간의 삶은 어쩌면 (옳든지 옳지 않든지간에)순간순간의 판단에 의해 행한 것들이 모인 것이 아닐까? 그렇기에 잘못하고 나서 때를 놓치면 결국 용서를 구하지 못하고 오해로써 굳어지고 말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미련한 미생도 그가 홍수 속에 교각을 껴안고 죽음을 택할 만한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다음 편엔 음주를 즐긴 북제의 문선제가 어떠한 극악무도한 행동을 보였는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밴드
기사입력: 2010/04/26 [22:57]  최종편집: ⓒ ggdaily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 용
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