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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악하고 음란한 문선제(상)
<강경범의 음주고사>북제 문선제(文宣帝) 고양(高洋)
 
강경범 문화칼럼니스트 기사입력  2010/05/17 [07:57]
쾌도난마(快刀亂麻)는 사전에서 “날랜 칼로 복잡하게 헝클어진 삼을 베다. 곧 어지럽게 뒤얽힌 일이나 정황(情況)을 재빠르고 명쾌하게 처리하는 것.”이라고 풀이한다. 이 고사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북제(北齊)의 개국황제 고양(高洋)의 부친 고환(高歡)이 동위(東魏)의 승상이 되었을 때, 자식들을 시험하고 싶었다. 그래서 아들에게 각각 삼실 한 뭉치씩을 나눠주고 이를 깔끔히 풀도록 했다.

큰아들은 한 올 한 올 천천히 뽑아내는데 실을 뽑아낼수록 더욱 헝클어졌다. 작은 아들은 삼실을 반으로 나누고, 다시 반으로 나누면서 실을 풀었다. 둘째 고양(高洋)은 쾌도를 가지고 싹둑 자르고 이를 다시 한 올 한 올 짧게 잘라서 정리를 하고서, ‘어지러운 것은 베어버려야 합니다(亂者須斬)’라고 하였다.[북제서(北齊書)]

이 고사의 주인공인 문선제(文宣帝) 고양(高洋)은 포악하고 음란한 임금 중 하나로 인식되기에, ‘쾌도난마’조차도 그 쓰임에 대해 약간 오해의 여지를 지니는 듯 하다. 이 쾌도난마의 사용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혹은 그 결과가 좋든 나쁘든 간에, 이 성어의 의미는 그야말로 ‘재빠르고 명쾌하게 처리하는 것’이다.

혹 이 ‘쾌도난마’가 곧 문선제 고양의 모든 행위와 그의 성격을 단적으로 표현한 것은 아닐까?

그래서 사서에서 언급한 포악하고 음란하기 그지없다는 그의 행위를 살펴보고, 그가 왜 ‘알콜중독자’, ‘정신분열증환자’, ‘형수를 자신의 부인으로 취하는 가족병력(病歷)’을 가진 것으로 인식되는지 살펴보겠다. 필자는 이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기에 지식의 얕음으로 인해 오류가 있을 수가 있고, 나아가 균형적인 시각을 유지하려고 했지만 그에게 동정심이 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독자여러분은 ‘쾌도난마’의 고사를 상기하면서 다음의 사례를 읽어보시기를 바란다.

먼저 그의 이력을 살펴보자.
고양(529년~559년)은 남북조시기 북제(北齊)의 개국황제로 재위기간은 10년간이다. 그는 동위(東魏)의 권신인 고환(高歡)의 둘째 아들이자, 고징(高澄)의 동복동생이다.

그는 진양(晋陽: 지금의 太原市)에서 태어났기에 진양락(晋陽樂)이라 불렀다. 증조 고밀(高謐) 이후 삼대 째 선비족 땅에서 살았기에 거의 선비족과 다름이 없었다. 여섯 살에 부친이 북위의 대권을 쥐고 있었기에 산기상시(散騎常侍).표기대장군(驃騎大將軍).의동삼사(儀同三司).좌광록대부(左光祿大夫).태원군개국공(太原郡開國公)을 제수받았다.

무정(武定)원년(543년) 14살 때는 부친을 따라 전장에 나가 수많은 죽을 고비를 넘겼으며, 시중(侍中)직을 더하고, 뒤에는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영군장군(領軍將軍)이 되었다. 어려서부터 이러한 경험은 그를 대범하고, 과단성이 있고, 외유내강하며, 엄준하고 냉혹하고 잔혹하게 죽이기를 좋아하는 성격이 되게 하였다.

어렸을 적 그의 성격 중 눈에 띄는 것은 ‘농담하기를 좋아하지 않았다(不好戱弄)’는 것이다. 그는 “검은색 피부에 큰 얼굴이 길쭉하고, 물고기같은 몸에 복사뼈가 갈라졌다.(黑色, 大頰兌下, 鱗身重踝.)”(물론 이것은 대개 역사서에서 황제를 낳았을 때를 신비롭게 묘사한 것인데, 고양을 잉태했을 때는 붉은 빛이 황실을 비췄다거나, 즉위할 때는 경사에서 붉은 참새를 잡았다는 등의 묘사가 있음)고 묘사했는데, 그는 아마도 피부가 약간 검고 얼굴이 못생겼던 모양이다.

또한 그는 코까지 흘려서 셋째 동생 고준(高浚: 고양의 이복형제)은 항상 고양의 시종을 빗대어 “왜 둘째 형의 콧물을 닦아주지 않느냐!”라고 나무랐고, 첫째 형 고징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 사람(고양을 가리킴) 역시 부귀를 얻었으니, 관상쟁이가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라고 모욕하였다.

고환의 뒤를 이어 승상에 오른 고징(高澄)이 549년 8월에 주방장 인경(藺京)에게 갑자기 살해당하는 일이 발생한다. 고양은 침착하게 진두지휘하여 그 무리들을 잡아서 참수하고, “노비의 반란으로 대장군이 목숨을 잃었지만 큰 어려움은 없다.”고 선포하니, 당시 안팎이 놀라지 않은 이가 없었는데, 이때 고양의 나이가 겨우 21세였다.

다음해 그는 북위의 효정제(孝靜帝) 원선견(元善見)을 폐위하고 선양의 방식으로 황위에 올라, 업성(鄴城: 지금의 하남성 安陽市)에 도읍을 정하고, 국호를 제(齊: 남조에도 제나라가 있기에 사가들이 이를 北齊라고 함), 연호를 천보(天保)로 정했다.

그는 재위 초기에 정무에 정력을 쏟아 법률을 간소화시키고, 주군(州郡)을 줄여 관리의 통치를 정돈하고, 군대와 병력을 강화시켜, 짧은 시간에 북제를 아주 강성하게 만들었다. 그는 친히 군대를 이끌고 유연(柔然).거란(契丹)을 공격하여 영토를 넓히고, 백성의 부세를 줄이고, 국가의 안위를 위해 장성(長城)을 축조하는 등 치적을 쌓은 젊은 황제였다.

그는 재위에 올라 5~6년이 지난 뒤에는 온종일 국정을 돌보지 않고 주색에 빠졌다. 잔혹하기가 그지없어 친족은 물론이거니와 권신을 닥치는대로 죽였다. 나아가 자신의 형수(고징의 비)와 궁녀, 신하의 부인 등을 유린하였으니, 사서에는 “잔혹하게 죽이는 것을 궁리하고 음란무도하는데 정력을 쏟았다(窮理殘虐, 盡性荒淫)”고 하였다.

또한 수도 업성에 세 개의 궁전을 세웠는데, 동원된 사람만 10만명이 될 정도로 사치스러웠고, 수많은 불사(佛事)를 지었다.

그는 천보10년(559년)에 갑자기 죽었는데(≪북제서≫에서는 말년에 밥을 먹을 수가 없고 오직 술만 마셨기에 술로 인해 화를 얻어 결국 죽음에 이르렀다고 하였음), 그의 나이 겨우 31살이었다.

다음은 고양의 비정상적이고 살인을 좋아한 행위와 음란한 행위로 나누어 살펴본다.

1. 비정상적인 행동
[사례1] 궁전을 지을 때 높이가 27장(丈)이고, 두 기둥 사이가 200여보(步)나 되었다. 장인들은 모두 두려워서 허리에 끈을 묶고 올라갔지만 고양은 아무런 장치도 없이 지붕 위를 빠르게 걸어다니며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심지어 춤까지 무며 한참을 있다가 내려왔다.

[사례2] 어떤 때는 추운 겨울이라도 아랑곳하지 않고 옷을 발가벗고 길거리를 미친 듯 내달렸는데 신변의 근위병조차 따라올 수 없을 정도였다.

[사례3] 양음(楊愔)은 천보(天保)원년(550년) 고양이 황위에 오를 때 공헌을 했기에 누이 태원장(太原長)공주를 그에게 출가시켰고, 아울러 개봉왕(開封王)에 봉했다. 고양은 양음을 총애하여 화장실에 갈 때는 항상 그에게 대나무막대를 들고서 곁에서 지키게 할 정도였다.

그런데 말채찍으로 양음의 등을 때리면 겉옷에 피가 흘러 나왔다. 또한 고양이 술에 취하여 짧은 칼로 그의 배를 찌르려고 했지만 다행히 최계서(崔季舒)가 곁에서 재미있는 말로써 살벌한 분위기를 해소했기에 죽음을 면했다. 어떤 때는 양음을 관에 집어넣고 산채로 묻으려고 하기도 했다.

[사례4] 고양이 술을 좋아하여 한번 취하면 친척조차 알아보지 못했다. 모친 누(婁)태후가 술에 완전히 취한 아들을 보고 매로 때리며, “하늘이 어떻게 이러한 아들을 주셨을까!”라고 하니, 고양은 술에 취해 “이 할망구를 오랑캐에게 시집보내 버릴껄!”이라고 하였다. 나중에 술에서 반쯤 깬 고양은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고 용서를 빌려고 모친에게 다가갔다가, 또 잘못하여 모친이 앉아있던 의자를 넘어뜨렸다. 누태후는 더욱 화가 나서 고양을 궁밖으로 끌어내게 했다.

고양은 술기운을 빌어 또 황후 이조아(李祖娥)의 친정으로 들어갔다. 황후의 모친이자 장모인 최(崔)씨가 마중을 나왔는데, 피할 틈도 없이 최씨의 얼굴에 활을 쏘았다. 최씨가 놀라서 이유를 묻자, 고양이 화를 내며 “나는 술에 취하여 태후를 알아보지도 못했는데, 늙은 할망구를 어떻게 하지 못하겠어?”라고 하면서 채찍으로 후려쳤다. 100여대를 때려서 얼굴에 푸른 멍이 들자 그제야 말을 몰고 돌아갔다.

2. 살인을 일삼은 행동
그는 술에 중독되어 매일 대취했고, 대취하면 사람을 죽였는데, 사지를 찢어 죽이거나 불태워 죽였다.

[사례1] 길에서 우연히 한 부인을 만나서 “당신은 지금의 천자가 어떻다고 생각하시오?”라고 물었다. 부인은 아무런 생각없이 “미치광이 같은데, 천자는 무슨……”이라고 하자,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단칼에 목을 베어 버렸다.

[사례2] 고양은 사람을 죽이는 형구인 큰 솥․긴 톱․줄칼․마치 등을 궁전에 진열해놓고, 술에 취한 뒤에는 사람을 죽이며 즐겼다. 승상 양음(楊愔)은 업하(鄴下)의 사형수를 선발하였는데 이들을 ‘황제에게 바치는 죄수(供御囚)’라고 불렀다. 죄수가 3개월 동안 죽지 않으면 사면하여 풀어주었다.

[사례3] 동위의 황족인 원소(元韶)는 고양의 큰누이 모공주(某公主: 즉 북위의 永熙皇后)와 결혼하여 팽성공(彭城公)에 봉해졌다. 559년 고양이 그에게 “서한말 왕망(王莽)이 유씨의 정권을 찬탈했지만 동한 광무제 유수(劉秀)에게 나라를 잃게 되었소?”라고 물었다. 그는 아무런 생각없이 왕망이 한조의 유씨성의 황족을 말살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그리하여 고양은 이전 황족 44개 집안을 몰살하고 시체를 장수(漳水)에 버렸는데, 당시 생선을 잡아서 배를 가르면 종종 사람의 손톱이 나왔다고 한다.

[사례4] 고양은 연을 만들게 하고서 이전 왕조의 종실 721명을 잡아서 27장(丈)이나 되는 금봉대(金鳳臺) 위로 끌고 오게 하여 한 사람씩 연에 태워서 날려 보냈다. 대부분 죽었지만 노랑머리(黃頭)라고 불리는 사람이 있었는데, 5리를 날아서 조금도 다치지 않고 안착했다. 황두는 죽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겼지만 고양은 곧장 감옥으로 끌고가서 굶겨죽였다.

[사례5] 상서우복야(尙書右僕射) 최섬(崔暹)은 고양의 신임을 받은 신하였다. 최섬이 세상을 떠나자 친히 문상하러 가서, 최섬의 처 이(李)씨에게 “남편이 그립소?”라고 물었다. 이씨가 그립다고 대답하니, 고양이 웃으며 “그립다면 왜 가서 즐겁게 만나지 않소?”라고 말하고 당장 칼로 목을 내리쳐서 두 동강을 냈고, 피가 흐르는 이씨의 머리를 담장 밖으로 던졌다.

[사례6] 두필(杜弼)은 이전에 고환(高歡)에게 신임을 얻었고, 한족출신의 대신에게 위엄과 명망이 높았기에 그의 말에는 힘이 있었다. 고양이 황위를 선양받을 때 그는 반대했고, 고양이 칭제한 뒤에도 두필은 말을 삼가지 않고 직간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한번은 고양이 대시에게 나라를 다스리는 책략에 대해 자문을 구하니, 두필은 아무런 생각없이 “선비인은 수레와 말을 잘 타지만 나라를 다스리는데는 역시 중원의 한족을 등용해야 합니다.”라고 대답했다. 고양은 그 자리에서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지만, 뒤에 술에 취해서는 곧 죄명을 만들고, 두필의 임지인 교주(膠州)로 사람을 보내 그를 죽였다.

[사례7] 평원왕(平原王) 고륭지(高隆之)는 고양이 선양하는 것을 반대하였기에 이를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었다. 고륭지가 동위의 종실인 원창(元昶)과 술을 마셨는데, 술이 거나하게 되자 “나는 왕과 친하니 내가 살아있을 동안에는 당신을 내치는 일은 없을거요!”라고 말했다. 어떤 사람이 이를 고양에게 밀고하였고, 고양은 이를 빌미로 곤장 100여대를 치도록 하였다. 고륭지는 이를 맞고 돌아오는 길에 죽었다.

3. 음란한 행위

[사례1] 동위(東魏) 안락왕(安樂王) 원앙(元昻)의 집으로 갔는데, 원앙의 처 이(李)씨는 황후의 언니(즉 그의 처형으로 이름은 李祖猗)로써 제법 미모를 갖고 있었는데, 마침 원앙은 외출하여 아직 돌아오지 않았기에 이씨가 마중을 나왔다. 고양이 방에 들어온 뒤에 이씨를 안으려고 하니, 이씨는 그의 음란한 위협을 꺼렸지만 감히 거절할 수가 없어서 그의 욕정을 받아들였다.

이로부터 고양은 누차 원앙의 집으로 이씨를 찾았고, 아울러 이씨를 소의(昭儀: 한말 원제 때 만든 女官. 지위는 승상과 비슷함)로 삼으려 했다. 그는 원앙을 편전(便殿: 임금이 휴식하는 궁전)으로 불러서 바닥을 기도록 하고 활을 백여 발이나 쏘니, 원앙은 바닥에 피를 흘리고 그 자리에서 죽었다. 원앙을 잔혹하게 죽인 뒤에 고양은 일부러 슬퍼하는 척 앞으로 나가 곡을 하며 상을 치르고, 영전 앞에서 이씨를 강제로 안았다.

[사례2] 고징의 처 풍익공주(馮翊公主) 원씨(元氏)는 동위 효정제(孝靜帝)의 누이동생이자 고양의 형수다. 고징이 죽은 뒤에 그녀를 문양황후(文襄皇后)로 추존하고 정덕궁(靜德宮)에 살게 했다. 고양은 갑자기 옛일을 떠올리며, “나의 형이 일찍이 나의 처를 희롱했으니, 나는 오늘 그에게 보답하겠다.”고 하고서 원씨의 침실로 들어가 칼을 빼어 그녀를 협박하였다. 원씨는 감히 뜻을 거스르지 못하고 그의 명령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사례3] 고양은 부하에게 가시를 단 가죽말과 넝쿨로 노새를 만들게 하여, 업성에서 풍기를 문란하게 한 여자를 모두 궁으로 불러들여서 옷을 벗기고 강제로 말로 노새를 타게 하고서 이를 즐겼다. 이들 부녀가 온몸에 피를 흥건히 적신 뒤에는 사지를 잘라 죽이고, 혹 불에 태워 죽이거나, 혹 강물에 내다 버렸다.

[사례4] 고악(高岳: 고양의 당숙임)은 본성이 주색을 좋아하여 업하의 가기(歌妓) 설(薛)씨 자매를 불러서 술맛을 돋구어 즐겼다. 뒤에 설씨 자매가 후궁으로 들어와 고양의 총애를 받았다. 설씨 자매 중 언니가 자신의 부친에게 사도(司徒)자리를 내어달라고 청하자, 고양은 “사도라는 높은 자리를 어찌 얻으려고 해?”라고 발끈 화를 내었다.

언니는 총애를 믿고 불손하게 말을 한 결과 고양의 톱에 잘려 죽임을 당했다. 설씨자매의 동생은 예전에 고악의 술자리를 도왔고, 또한 고악과 간통했다고 의심하여 고악에게 독주를 내렸다. 고악이 독주를 마시고 죽었지만 여전히 한이 풀리지 않았다.

그는 설씨의 목을 짤라서 품속에 넣고 궁전의 잔치자리로 갔다.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었을 때 그는 설씨의 머리를 접시 위로 던지자 좌중은 모두 놀라 흩어졌다. 그는 태연하게 설씨의 다리를 잘라오게 하여 술을 마시며 이를 비파로 삼아서 연주하며 “미인의 혼은 하늘 밖을 떠돌고, 이와같은 미인은 다시 얻기가 어렵다.”고 노래했다.

그리고 나서 시체를 싣고 돌아와서 장사지내는데, 고양은 머리를 산발하고 곡을 하며 묘지까지 따라와서 융숭하게 상례를 갖추었다.

[사례5] 팽성왕(彭城王) 고유(高浟)의 집에 갔는데, 고유의 모친 이주씨(爾朱氏: 고유는 고환의 다섯 번째 아들이고, 고양의 이복동생임. 이주씨는 李朱英娥로 고환의 姬妾임)는 나이가 중년으로써 여전히 고아한 멋이 남아있었다. 고양은 자신도 모르게 성욕이 일어서 이주씨를 끌어안으려고 했다. 이주씨가 난색을 표하고 거부하자 고양은 화를 내며 즉각 칼로 목을 쳐서 죽였다.

*본문이 길어서 편의상 상하로 나눴다. 여기서는 고양의 포악무도한 행위들만 나열하였고, 하편에서는 이 사례에 대해 새롭게 해석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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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0/05/17 [07:57]  최종편집: ⓒ gg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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