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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야 새야 파랑새야´에 대한 재해석
 
강경범 문화칼럼니스트 기사입력  2010/09/29 [05:26]

최근 인권의 존중과 약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동학농민군의 이념과 항거에 대해서도 교육적인 가치가 제고되고 있는 듯 하다.

그런데 동학농민군의 항거를 상징하는 <새야 새야 파랑새야>라는 전래동요에 대한 해석이 구구하다. 그렇기에 전봉준의 별명인 ‘녹두’에 대해서도 확연한 답을 내놓지 못하는 듯 하여, 전봉준 연구에 전혀 문외한인 필자가 이에 도움이 될까하여 얕은 소견을 내놓을까 한다.

먼저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에서 녹두장군 전봉준에 대해, “몸이 왜소하였기 때문에 흔히 녹두(綠豆)라 불렸고, 뒷날 녹두장군의 별명이 생겼다.”라고 하였다.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럴까? 왜 하필이면 ‘녹두(綠豆)’인가? ‘팥’이라든지, 차돌이란 용어도 괜찮을 듯 한데...

의문과 문제의 해결은 여기서 출발한다.
원래 정부에 대한 반란군을 한자로 녹림당(綠林黨)이라 한다. 사전에서는 “후한(後漢) 말기 왕망(王莽)이 집권할 때 왕광(王匡)•왕봉(王鳳) 등이 주축이 되어 녹림산(綠林山)을 근거로 관군에 대항한 집단으로, 이후 반란집단의 대명사로 됨.”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잠시 필자가 북경에 있을 때의 일을 잠시 소개한다. 나지막한 언덕이 있는 북경의 공원에는 아침마다 창술을 연마하는 노인이 있었다. 필자는 가끔 그 노인의 체력단련을 멀찌감치 떨어져서 감상하곤 했었다. 어느날 방금까지 창술을 하던 노인이 또 태극권을 하는데, 방금까지 들고서 연습하던 그 창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자세히 살펴보니, 기다란 막대 앞에 창을 꽂은 막대기를 공터 옆에 서 있는 소나무에 걸쳐놓은 것이었다. 그것을 본 바로 그 순간 이 <새야 새야 파랑새야>의 노래가 만들어진 배경이 바로 이것이로구나!라고 무릎을 쳤다.

그래 그렇다. 녹림당이 관군의 눈을 피해 산속에 숨어들어서 낮엔 대나무로 된 무기를 숲속에 세워놓는다고 가정해보라. 엄청난 수의 사람이 산속에 모여 대나무와 몽둥이를 세워 놓으면 웬만한 숲을 이룰 것이고, 그 끝에 매달린 창이 햇빛에 반사되는 것을 방지하려고, 솔잎이나 댓잎(댓잎은 사시사철 푸르니 제일 용이했을 터임)을 창 위에다 위장해 놓았을 것이다.


위에서 말한 녹림당의 의미를 바탕에 깔고, <새야 새야 파랑새야>의 노랫말과 조수미씨가 노래한 <새야 새야 파랑새야>의 가사를 비교하면서 살펴보자.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전주고부 녹두새야
어서 바삐 날아가라 댓잎 솔잎 푸르다고
하절인줄 알았더니 백설이 펄펄 엄동설한 되었구나



♬ <새야 새야 파랑새야> 조수미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우리 논에 앉지 마라
새야 새야 파랑새야 우리 밭에 앉지 마라

아래 녘 새는 아래로 가고 윗 녘 새는 위로 가고
우리 논에 앉지 마라 우리 밭에 앉지 마라
우리 아버지 우리 어머니 손톱 발톱 다 닳는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우리 밭에 앉지 마라
위여 위여 위여 위여
새야 새야 파랑새야 우리 논에 앉지 마라

새야 새야 파랑새야 전주 고부 녹두새야
윗논에는 차나락 심고 아랫논엔 메나락 심어
울 오래비 장가갈 때 찰떡 치고 메떡 칠 걸
네가 왜 다 까먹느냐 네가 왜 다 까먹느냐

위여 위여 위여 위여 위여 위여
새야 새야 파랑새야 우리 논에 앉지 마라



파랑새에 대해 사전에서는 “1. 반가운 사자(使者)나 편지를 이르는 말. 푸른 새가 온 것을 보고 동방삭이 서왕모의 사자라고 한 한무(漢武)의 고사에서 유래한다. 2. あおい-とり(青い鳥): 파랑새. 가까이 있는데도 깨닫지 못하는 행복. 또는 희망.”이라고 설명한다.
여기서 파랑새는 중의적인 뜻을 지니고 있는데, 표면적으로는 희망이나 반가운 일을 알려주는 사물로써 언급한 것이지만 희망을 주는 파랑새라고 하더라도 잘못 하여 ‘녹두꽃’을 떨어뜨리면 결국 열매를 맺지 못하는 참담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이쯤해서 동학농민군을 둘러싼 당시 상황을 잠시 살펴보자.
1894년 4월 4일 동학농민군은 부안을 점령하고, 4월 27일에는 전주성을 점령한다. 이에 앞서 양호초토사(兩湖招討使) 홍계훈(洪啓薰)은 정부에 외병차입(外兵借入)을 요청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정부의 원병요청으로 청국군이 인천에 상륙하니, 일본군도 톈진조약을 빙자하여 조선에 진출해왔다.

국가운명이 위태로워지자 동학농민군은 홍계훈의 폐정개혁안(弊政改革案)을 받아들이고 5월 7일 이른바 전주화약이 성립된다.

이후 전라도 지방에 집강소(執綱所)를 설치하여 동학의 조직강화에 힘쓰고 도정(道政)에 참여하여 감시하였다. 그러나 근본적 시정개혁이 실현되지 않아 재궐기를 계획하던 중 청일전쟁의 우세를 이용하여 침략행위를 노골화하는 일본의 행태에 격분하여 다시 봉기한다.

그러나 근대적 무기와 화력을 앞세운 일본군과 관군의 반격에 패배를 거듭하다가 11월초 공주(公州) 우금치전투에서 대패한 뒤, 동학농민군은 결국 실패하게 된다.

이로써 보면, 파랑새는 조정에서 국가를 안정시킨다는 명목으로 불러들인 청군과 일본군을 의미한다. 그래서 조수미의 노랫말에서 “아래 녘 새는 아래로 가고 윗 녘 새는 위로 가고 우리 논에 앉지 마라 우리 밭에 앉지 마라 우리 아버지 우리 어머니 손톱 발톱 다 닳는다.”고 했던 것이다. 또한 정부가 고부를 안정시키기 위해 내려 보낸 고부군수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래서 “새야 새야 파랑새야 전주고부 녹두새야 어서 바삐 날아가라 댓잎 푸르다고 하절인줄 알았더니 백설이 펄펄 엄동설한 되었구나” 또 조수미의 노랫말에서는 “새야 새야 파랑새야 전주고부 녹두새야 ……네가 왜 다 까먹느냐 네가 왜 다 까먹느냐”․“위여 위여 위여 위여 위여 위여 새야 새야 파랑새야 우리 논에 앉지 마라”라고 했던 것이다. 백성의 행복과 희망을 준다는 구실을 가져다 붙인 이들이 결국 희망보다는 오히려 동학농민군을 방해한다고 생각했기에 파랑새를 ‘위여 위여’ 내쫓고 있는 것이다.

다시 전래동요의 첫구절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를 보자.

왜 녹두밭에 앉지 마라고 했겠는가? 바로 녹림당이 위장해놓은 그곳으로 가지마라(탄압하지 마라)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전래동요의 2절에서 이를 구체적으로 말해준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전주고부 녹두새야. 어서 바삐 날아가라. 댓잎 솔잎 푸르다고 하절인줄 알았더니, 백설이 펄펄 엄동설한 되었구나.”

이 구절은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겠다. 첫째, 녹두새가 위장한 숲을 보고 여름철 녹두가 푸르게 자라는 계절인 줄 알고 왔더니, 계절이 그게 아니었다는 것이다. 둘째, 여름인줄 알고 댓잎과 솔잎으로 위장해놓은 것을 결국 헤집어 동학농민군이 된서리를 맞게 된다는 의미다.

녹두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곧바로 녹림당의 우두머리, 즉 녹두(綠頭)를 의미한 것이다. 綠豆는 바로 이 綠頭를 상징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청포장수는 녹두로 만든 청포묵으로 생계를 꾸리는 사람으로써 전봉준에 의지하는 농민과 백성을 말한다. 그러므로 녹두꽃이 떨어지면(전봉준이 죽으면) 청포묵을 쑤지 못하기에(삶을 제대로 영위하지 못하기에) 울고 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필자는 동학농민군에 대해 완전 문외한이고 위의 견해가 완전 엉뚱할 수도 있다. 그러나 ‘녹두장군’을 바르게 이해하자는 의도로 ‘아는 만큼의 눈으로 해석한 것’이니 다른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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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0/09/29 [05:26]  최종편집: ⓒ gg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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