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강경범의 음주고사 > 교육/문화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손님이 타고 온 수레바퀴의 축을 우물 속에 버린 ´진준(陳遵)´
<강경범의 음주고사>
 
강경범 문화칼럼니스트 기사입력  2010/10/24 [21:29]
단풍이 차츰 북으로부터 찬 기운을 품고서 스물스물 강산을 물들이며 남으로 내려온다. 저 먼 남쪽바다 어딘가에서 따뜻한 기운을 머금고 북쪽을 향해 찾아 올라갔던 때가 엊그제인 것 같은데... 우리도 이젠 한해를 서서해 정리해야 할 때인가?

자연이 보여주는 모습은 참 경이롭다.
봄날의 양기는 어디서 와서, 어디까지 갔다가, 가을이면 어김없이 왔던 곳을 찾아 남으로 가는 걸까?

이럴 때면 따뜻한 국물에 소주 한잔이 그립다. 나아가 두서없이 주절주절 토해내는 내 말을 끝까지 차분하게 들어주던 친구들이 그립다.


ⓒ baidu\imeage
“맹공이 수레바퀴의 축을 버리다(孟公投轄)”란 말이 있다. 이 고사는 서진에서 동진에 이르는 시기에 진준(陳遵)이라는 사람은 술을 좋아하여 항상 빈객이 집안에 가득 모이면 갑자기 문을 닫아버린다. 그리고 손님이 타고 온 수레의 차축을 우물 속으로 던져버리고 손님이 떠나지 못하게 하고서 함께 즐겼다는 이야기다.

이 고사는 주인이 손님을 좋아하여 머물도록 한 것인데, 그 의미는 손님을 맞이한 주인의 마음이 신실한 것을 말한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네 현실은 그런가? 결혼식, 애기 돌, 환갑잔치 등을 할 때 모두들 바쁘다는 핑계로 잔치를 주관하는 주인과 얼굴을 맞대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차분하게 이야기를 나눌 시간조차 없다. 혹 여유롭게 이야기를 나누기라도 하노라면 곧 주인과 손님 두 사람 모두 이상한 사람이 되고 만다. 그러하니 손님으로 간 사람이 손님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것이 요즘 현실이다.

차라리 돈을 부치고 말껄!?...
이 고사가 더욱 그리워지는 것이 이 때문이다.

그런데 진준은 술로 인해 고초를 치렀으니, 이 또한 당연했을 것이다.
그는 처음 경조사(京兆史)가 되었는데 관청의 관리들이 모두 초라한 수레와 말을 탔지만 진준만은 유독 수레와 말 의복이 화려하였고, 문앞에는 수레와 말이 어지럽게 널렸다. 또 낮에 나가면 술에 취해 저녁에 돌아왔는데 며칠이나 공무를 돌보지 않았다. 그리하여 형부로부터 면책을 권하는 상서가 올라가게 된다. 그런데 대사마(大司馬) 마궁(馬宮)의 도움으로 겨우 위기를 모면한다.

이후 진준이 교위로 있을 때 조붕(趙朋)과 곽홍(霍鴻)의 난을 진압한 공로로 가위후(嘉威侯)에 봉해졌다. 바로 이 시기에 “손님이 타고 온 수레바퀴의 축을 버리다(陳遵投轄)”의 고사가 이뤄졌다. 그때의 상황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 한번은 어느 지역의 자사가 공무를 아뢰려고 진준을 찾아왔는데 진준은 마침 술을 마시고 있었다.

자사는 너무 초조하여 진준이 술에 취할 때를 기다려 갑자기 진준의 모친을 뵈러 들어갔다. 머리를 조아리고 당시 상서(尙書)의 모임이 약속되어 있는 상황을 아뢰자 모친은 후원을 통해 나가도록 명령했다. 그는 이처럼 술과 친구들과의 모임을 즐겼던 것이다.

왕망의 정권 때 진준은 하남태수(河南太守)가 되고 동생 급(級)은 형주목(荊州牧)이 되었다. 그런데 두 사람은 장안의 회양왕(淮陽王)의 외가인 좌(左)씨 집을 찾아가 먹고 마시며 즐거워했다. 그 결과 사직(司直) 진숭(陳崇)이 그 말을 듣고 상주하여 탄핵하였다.

“진준의 형제는 요행히 성은을 입어 아주 높은 직위를 역임하여, 진준은 열후(列侯)의 작위를 받고 군수가 되었고, 급은 주목이 되어 사신으로 나갔는데, 모두 곧은 사람을 임용하고 굽은 사람을 살펴서 성군의 교화를 선양하는 것으로 직업으로 삼아야 하지만 자신의 몸을 바르게 하거나 스스로 신중하지 않았습니다.

처음 진준이 막 관직을 제수받았을 때 수레를 숨기고 마을로 들어와, 과부 좌아군(左阿君)이 술자리를 마련하고 노래하는 곳으로 찾아갔습니다. 진준은 춤을 추며 날뛰다가 그 자리에 쓰러졌는데, 저녁이 되었기에 그곳에서 잠을 자서 시비(侍婢)가 그를 부축하여 눕혔습니다.

진준은 음주와 잔치자리에는 절도가 있어야 하고, 예법에는 과부의 집에 들어가서는 안되는데, 술에 취해 뒤섞이다보면 남녀간의 구별이 어지럽게 되니 작위를 쉽게 욕보이고 인수끈을 더럽힌다는 것을 알 터인데, 그 잘못된 일은 차마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신은 이 둘 모두 면책하기를 청합니다”

그리하여 진준은 관직을 그만두게 되었다. 그러나 고향으로 돌아온 뒤에 빈객은 더욱 많아져서 그들과 함께 술을 마시고 음식을 먹으며 태연하게 즐겼다. 또한 얼마 지나지 않아 구강(九江)과 도위(都尉)가 되었는데, 무릇 3번이나 이천석(二千石: 태수가 받는 봉록)을 받는 지위를 누리게 되었던 것이다.


ⓒ baidu\imeage
진준을 보고 있노라면 인생처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필자는 자식이나 후생들에게는 항상 이르기를 “바르고 성실하게 살아야 한다.”고 말하곤 한다. 그런데 정말 그렇게 살면 모두 잘되는 걸까?

혹 우리는 어쩌면 바르고 성실하게 살면 잘 살 수 있는 확률이 많다고 느끼거나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인 줄 모르겠다. 예를 들어 술에 취해 흐릿한 상태에서 부동산이나 주식을 샀는데 대박이 났다거나, 몇 번을 반복하며 나름대로 검증하여 사업을 벌였지만 실패한 경우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혹 우리는 한 개인인 자신의 지각능력으로써는 세상의 모든 일을 알 수가 없는데도 자신이 보고들어서 아는 것이 전부인양 그 결과까지 믿어버리기 때문은 아닌가?

하여튼 평범한 우리네는 인간의 이치를 꿰뚫고 있는 성인이나 현인이 아니기에 우리의 눈으로 판단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 하지 않았던가?

진준의 고사는 특이하게도 ≪한서(漢書)≫권92 ≪유협전(游俠傳)․진준전(陳遵傳)≫에 나오는데, 그만큼 진준이 보여주는 행동은 ‘유협’의 성격을 띤다고 하겠다. 그런데 진준의 광방한 행동과는 달리 장송(張竦)은 박학다식하고 청렴함을 지켰지만 외롭게 생활하다가 진준보다 먼저 살해당해 죽었으니 인생이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잠시 장송과 진준을 비교해 보자.

장송은 진준과 함께 경조사(京兆史)가 되었는데, 박학다식하였으며 청렴함을 지켰다. 그는 단양(丹陽)태수에 오르고 숙덕후(淑德侯)에 봉해졌다.

그 뒤 장송과 진준 둘 다 모두 면직되어 장안(長安)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장송은 가난하게 살았기에 빈객이 없었고, 때때로 호사자가 그를 찾아와 의문나는 일에 대해 질문하고 경서를 담론할 뿐이었다.

그런데 진준은 밤낮으로 시끌벅적하고 수레와 말이 항상 문 앞에 가득한데, 술과 안주를 서로 권했다.

한번은 진준이 양웅(揚雄)의 <주잠(酒箴)>을 좋아하여 장송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와 당신이 바로 이와 같소. 그대는 경서를 암송하고 자신의 몸을 힘들게 하는 것으로 스스로를 단속하기에 잘못으로 인해 넘어지지 않는다오. 그런데 나는 광방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스스로 방자하여, 세속에 빠져서 노닐지만 관작과 공명이 자네보다 적지 않는데, 그 차이는 오직 즐기는데 있지 뛰어난 것에 있지 않은 것 같소!”

장송이 말했다. “사람은 각각 본성을 지니고 있는데, 장점과 단점은 스스로 만든 것이라오. 그대가 나처럼 되려고 해도 될 수가 없고, 나 역시 그대를 본받고자 해도 그렇게 안된다오. 그러나 나를 배우는 자는 자신을 지키기 쉽고, 그대를 본받는 자는 미래를 장담하기 어려운데, 이것이 내가 항상 말하는 것이오.”

여기서 잠깐 양웅의 <주잠>을 소개한다.


ⓒ baidu\imeage
그대는 항아리(甁)와 같다. 항아리가 있는 곳을 살펴보면, 우물의 눈썹부분에 자리잡는데, 높은 곳에 처하고 깊은 곳에 임하기에 움직임은 항상 위험하다. 술을 입으로 넣지 않고 물을 가득 가슴 속에 담는다. 좌우의 도움을 얻지 못하면 줄에 매달 수 밖에 없다. 일단 줄이 방해를 받게 되어 부딪치는 항아리 신세가 되면 몸은 황천행이 되고 뼈와 살은 곤죽이 된다. 자연히 이처럼 이용된다면 술을 담는 술부대 신세만 못하다.

술부대와 술독은 배가 커서 볼록한 단지 같지만, 온종일 술이 가득하여 사람들이 계속해서 술을 산다. 항상 國器(국가에 공헌할 만한 재능을 가진 인재)가 되어 잇닿은 수레에 부탁하여 두 곳의 궁전으로 출입하며 관공서를 운영한다. 이로써 말하면 술이 어찌 잘못된 것인가!
(子猶瓶矣. 觀甁之居, 居井之眉. 處高臨深, 動而近危. 酒醪不入口, 臧水滿懷. 不得左右, 牵於纆徽. 一旦叀礙, 爲瓽所轠. 身提黄泉, 骨肉爲泥. 自用如此, 不如鸱夷.
鸱夷滑稽, 腹大如壺. 盡日盛酒, 人復借酤. 常爲國器, 託於屬車. 出入兩宮, 經營公家. 由是言之, 酒何過乎?)

그런데 이들의 종말은 어떻게 되었는가?
왕망이 패하자 두 사람은 모두 지양(池陽)의 나그네 신세가 되었는데, 장송은 이때 왕망의 군대에게 살해당했다. 진준은 왕망의 난이 평정된 뒤 경시제(更始帝) 때 장안으로 돌아와 다시 대사마호군(大司馬護軍)이 되어 흉노(匈奴)로 사신을 갔다가 그곳에서 죽었다.

일반적인 시각이나 진준과 장송의 말을 보더라도 진준의 광방한 행동은 미래를 장담하기가 어려웠을 테지만 오히려 일찍 죽은 자는 장송이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결과로 나타난 상황에 대해서 함부로 추측할 수 없겠지만 평범한 우리네의 눈엔 드러나지 않을지라도 모든 일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지 않겠는가?
이 둘의 차이는 아마도 진준과 장송의 처세방식 때문이 아닌가 여겨진다.

장송의 이력은 전하는 것이 많지 않은데, ≪前漢書≫에서 조부 장창을 언급한 <장창전(張敞傳)>에서, “장창의 손자 장송은 왕망 때 군수에 올라 후(侯)에 봉해졌는데, 박학문아한 점은 장창보다 뛰어나지만 정치는 그에게 미치지 못한다.”라고 하였다.

그런데 진준은 술을 좋아했지만 글씨도 뛰어나 중국 서체의 하나인 ‘지영(芝英)’은 진준이 시조라고 하는데, 다른 사람에게 편지를 보내면 그들은 이것을 소장하는 것을 영예로 알았다고 한다. 나아가 그가 하남태수로 나갔을 때 아전을 보내어 글씨 잘 쓰는 사람 10명을 데려오게 하여 경사의 옛 친구들에게 모두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여기서 우리는 친구를 진심으로 대하는 진준의 태도와 “맑은 물에는 물고기가 살지 못한다”는 말을 연상하게 하는 장송의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문득 변고를 당했을 때 자신의 몸을 온전히 지킬 수 있는 자가 누구이겠는가? 진준은 일찍이 인생처세를 잘 터득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는 장송과 함께 왕망의 총애를 받았지만 장송과는 달리 왕망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은 것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적절한 그의 처세가 있었을 것이다.

양웅이 <주잠>에서 “높은 곳에 처하고 깊은 곳에 임하기에 움직임은 항상 위험하다(處高臨深, 動而近危.)”라고 한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곧 옛말의 “임금을 짝하는 것은 호랑이를 짝하는 것과 같다.(伴君如伴虎)”라고 의미와 같지 않은가?

‘진준이 수레의 차축을 버리다(陳遵投轄)’의 고사는 그 속에 담겨있는 진정한 마음 때문에 훗날 시인묵객의 시속에 등장하는데, 끝으로 이 고사를 인용한 싯구절을 소개한다.
낙빈왕(駱賓王)의 <제경편(帝京篇)>: “육가는 사신 갈 돈을 아껴서 돈을 나눠 훗날을 편안히 즐기려 했고, 진준은 수레의 차축을 우물에 던져버리고 손님을 머물게 했다네(陸賈分金將晏喜, 陳遵投轄正留賓.)”

소식(蘇軾)의 <조사승을 송별하고 진해주에게 편지를 띄우며(送趙寺丞寄陳海州)>: “맹공이 수레의 차축을 우물에 버리고 술을 마시던 일을 본다면, 그대를 떠날 때 눈이 세차게 뿌리던 때를 잊지 말게나(若見孟公投轄飮, 莫忘沖雪送君時.)”

조익(趙翼)의 <민땅의 유람을 기록한 뒤에(題閩游草後>: “스스로 호사가인 진준이 차축을 버린 일을 따르지, 어찌 고상한 명사인 곽태와 같은 유생을 그리워할 것인가?(自緣好事陳遵轄, 豈慕高名郭泰巾.)”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밴드
기사입력: 2010/10/24 [21:29]  최종편집: ⓒ ggdaily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 용
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