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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서´를 안주삼아 술을 마신 소순흠(蘇舜欽)
<강경범의 음주고사>기백 넘치던 호탕한 선비…말술로 생을 마감
 
강경범 문화칼럼니스트 기사입력  2010/12/13 [03:24]
최근 음식문화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날로 높아가는 듯 하다. “뭘 먹을까?”, “어디서 뭘 잘하지?” 밥을 먹거나 술을 마실 때면 늘상 고민하게 된다. 그런데 고민할게 뭐 있는가? 입에 땡기는 대로 먹으면 되는 것 아닌가?

술을 마실 때는 어떤 안주가 적당할까? 이러한 질문엔 참으로 대답하기가 녹록치 않다. 술마시는 이유가 어디 한두 가지여야 말이지. 다만 그 나라 술에는 그 나라 안주가 어울린다는 것이 필자의 경험이다.

꽃피는 날, 눈오는 날, 바람이 옷깃 사이로 스며들어 찬기를 느끼는 날이면 일기로는 적당할 것 같다. 나아가 나를 제일 이해하는 친구, 나를 사랑하는 연인이 함께 한다면 제격일 것 같다.

그런데 이것 또한 호사일 수가 있다. 술안주에 신경쓰는 이유가 혹 술마시는 상대가 마음에 쏘옥 드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인 것은 아닐까? 진정 속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어디 안주가 문제던가?


ⓒ baidu@lmage.

여기에 ≪한서(漢書)≫를 안주로 삼아 술을 마셨던 소순흠(蘇舜欽: 1008년~1048년)을 소개할까 한다.

소순흠은 북송의 명사로써 명문집안 출신이다. 조부 소이간(蘇易簡)은 참지정사(參知政事: 副宰相)를 지냈고, 부친 소기(蘇耆)는 공부랑중(工部郞中)이 되었으며 글로 유명했다.

소순흠은 성격이 호쾌하였기에 자연히 술을 좋아하였고 술도 많이 마셨다. 결혼한 뒤 그는 처가에서 살았는데, 그의 장인은 유명한 인물인 두연(杜衍)으로, 관직은 재상겸추밀사(宰相兼樞密使)를 지냈다. 두연은 사위를 매우 좋아하였지만 한 가지 비밀을 알게 되었다.

사위 소순흠이 매일 저녁에 술 한 말(斗)을 마시는데도 부엌에서 안주를 가져오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사람을 보내 사위의 행동을 살펴보게 했다. 그 책임감이 많은 정탐꾼이 소순흠의 서재로 가서 살펴보니, 소순흠은 혼자 술을 마시며 ≪한서≫를 읽고 있었다.

≪한서․유후열전(留侯列傳≫에서 장량(張良)이 킬러를 고용하여 박랑사(博浪沙)에서 진시황(秦始皇)을 찔러 죽이게 했지만 여벌로 끌고 간 수레만 맞히고 실패한 부분을 읽을 때, 소순흠은 격분하여 책상을 치며 일어나 탄식하여 큰소리로 말했다. “정말 아깝군. 뜻밖에 명중하지 않았어!” 말을 하고나서 큰 잔에 술을 가득 따르고 단숨에 마셨다.

또한 장량이 한고조 유방(劉邦)에게 자신은 유지(留地)에서 고조를 만나 서로 알게 된 것은 하늘이 정해준 것이라고 말한 대목에서, 소순흠은 또 책상을 치고 감탄하여 “임금과 신하가 서로 만나는 것은 결국 이처럼 매우 어려워!”라고 말한 뒤 또 한 잔을 마셨다.
정탐꾼의 보고를 듣고 두연은 껄껄 웃었다. “원래 그가 안주로 삼는 물건이 이와 같다면 술 한 말도 부족하지!”


ⓒ baidu@lmage.

술을 좋아하여 많이 마시는 술꾼은 아무래도 실수할 확률이 그만큼 높은 것인가? 송대 매요신과 명성을 나란히 한 소순흠도 술로 인해 억울한 일을 당하게 된다. 바로 송 경력(慶曆)4년(1040년)에 뜻밖에 체포당해 감옥에 갇혔는데 그 사건의 요지는 대략 이러하다.

경력3년(1039넌) 소순흠은 범중엄(范仲淹)의 추천을 받아 집현교리(集賢校理)․겸진주원(兼進奏院)이 되었다. 경력4년 11월에 진주원(進奏院)에서 연말 신령에게 드리는 제사를 거행하였다. 소순흠은 관례대로 진주원에 쌓였던 폐지를 팔아서 술자리의 비용에 충당했지만 돈이 부족하여, 술자리에 참석한 사람에게 각자 천 원씩 찬조를 내도록 하였다.

제사가 끝난 뒤에 연회가 시작되었고, 술이 거나하게 되어 귓불이 벌게질 무렵 참석한 사람들은 또 가기를 불러 술자리를 돕게 하였다. 남녀가 어울려 술을 마시니 피곤하지도 않아, 모두들 마음껏 웃고 즐겼다.

이때 왕익유(王益柔)라는 관원은 이미 술에 대취하였고, 술기운이 끓어올라 그 자리에서 <오가(傲歌)> 한 수를 지었다. 이 <오가>는 정말로 오만하여 그속에 이러한 구절이 있다. “취하여 북극에 누워 천제와 부처를 쫓아내고, 주공과 공자를 노예로 삼는다.(醉臥北極遣帝佛, 周公孔子驅爲奴.)” 성인을 모함하였을 뿐 아니라 천제와 부처를 쫓아냈으니, 정말로 술 취한 뒤의 망발로 세상에 하늘이 높고 땅이 두꺼운 줄을 몰랐던 것이다.

사실 이것은 유희적으로 술에 취한 뒤 장난스럽게 쓴 것이니 참말이 아니다. 그런데 태자사인(太子舍人) 이정(李定)은 애초 이 고상한 모임에 참석하고 싶어 매요신에게 부탁하여 모임에 참가할 것을 표시했지만 소순흠은 그를 소인으로 여겨서 엄중히 거절했다.

이정은 연회의 상황을 듣고 어사중승(御史中丞) 왕공진(王拱辰)에게 달려가 일러바쳤다. 소순흠이 진주원(進奏院)의 패물을 몰래 팔아 공금을 헤프게 낭비하고, 또 윤락녀를 불렀고, 더 심한 것은 천제․부처․주공(周公)․공자를 능멸한 것은 간이 정말로 하늘까지 닿은 것이니, 어찌 참을 수 있습니까!라고 하였던 것이다.

왕공진은 재상 여이간(呂夷簡)과 같은 당이고, 여이간은 범중엄의 정치적인 적수로서 줄곧 범중엄의 혁신을 반대했던 인물이다. 여이간은 이러한 무고를 듣고 왕공진과 아무도 몰래 모의하여 소순흠을 탄핵하도록 사주하였다. 왕공진은 부하 어주순(魚周詢)․유원유(劉元瑜)에게 소순음을 탄핵하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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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순흠 이 때문에 체포당해 감옥에 갇혔으니 일시에 조야가 놀랐다. 다행히 추밀부사(樞密副使) 한기(韓琦)가 이 사건을 공정하게 변호하여 소순흠은 비로소 석방되었지만, 여전히 자신이 관리한 공공재물을 훔쳤다는 죄명으로 관직을 박탈당하여 평민이 되었다.

‘진주원사건’의 배후엔 복잡한 정치투쟁이 감춰져 있다. 소순흠의 장인 두연(杜衍)․범중엄․부필(富弼) 등은 출충한 인물을 추천하여 정치를 개혁하려던 개혁파였다. 이에 반하여 재상 여이간과 왕공진은 보수세력의 대표인물로써, 이들의 공격목표는 범중엄이었다. 이렇게 소순흠을 탄핵한 것은 바로 범중엄을 무너뜨리는 전주곡이자 첫 번째 연습인 셈이었다. 얼마 뒤 범중엄 등은 계속해서 폄적을 당했고 경력신정(慶曆新政)은 이렇게 실패했다.

당시 정치적인 상황이 이처럼 첨예하였다면 소순흠은 조금 더 신중했어야 하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이 든다. 물론 진주원의 관례에 따라서 일을 처리했다고는 하지만, 친구를 부르고, 기생을 부른 점은 정치적인 음모로만 말하기엔 관직에 있는 자로써 공사가 분명하지 못한 일면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이후 소순흠은 이때부터 강호를 떠돌다가 소주(蘇州)에 와서 창랑정(滄浪亭)을 지었는데, 이 창랑정은 소주의 4대원림으로써 지금까지 그 명성이 자자하다. 경력8년 소순흠은 글을 상주하여 억울한 누명을 호소하였고, 조정에서는 그를 위해 잘못을 바로잡고 억울함을 해소시켰고, 호주(湖州)장사(長史)로 복직되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임지에 가지 못하고 그해 12월 억울하고 답답한 마음으로 살던 소순흠이 병으로 창랑정에서 세상을 떠났다.


창랑정(滄浪亭)은 소순흠의 <창랑정기(滄浪亭記)>에 의하면, 오월국(吳越國) 전(錢)씨 왕조 때 왕족의 가까운 친척인 손승우(孫承右)의 연못과 집터를 4만원에 사서 지은 것이라고 한다.

‘창랑’이라는 말은 굴원(屈原)이 <어부사(漁父詞)>에서 “창랑의 물이 맑거든 나의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거든 나의 발을 씻는다.(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滄浪之水濯兮, 可以濯吾足.)”라고 하였다. 여기서는 말하는 창랑은 한수(漢水: 섬서성 寧羌縣에서 발원하여 호북성을 관통하여 흐르는 揚子江의 지류)의 하류를 일컫는다. 그리고 이 문구의 의미는 곧 나라에 도가 행해지면 갓끈을 씻고 벼슬길에 나아가고, 나라에 도가 행해지지 않으면 발을 씻고 떠나가면 된다는 것이다.

소순흠이 이 ‘창랑정’에 이름을 붙일 때, <어부사>에서 말하는 의미를 염두에 뒀는지는 모르겠으나 <창랑정기>에서는 단지 이렇게 언급하고 있다.

“…삼면이 모두 물로 둘러 싸였다.…나는 그곳이 좋아 배회하다가 마침내 4만원으로 그곳을 얻어, 북쪽 물가에 정자를 세우고 ‘창랑(滄浪)’이라고 불렀다. 앞에는 대나무가 있고 뒤에는 물이고, 물의 남쪽에는 또 대나무가 끝없이 펼쳐졌다. 맑은 시내와 푸른 대나무의 빛과 그림자가 창문 사이에서 모이는데, 특히 풍월(風月)과 잘 어울린다.”

‘창랑’의 사전적 의미엔 ‘푸른 물빛’이란 뜻이 있는데, 소순흠도 그곳이 곧 대나무와 물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 점에 주안점을 두었던 것 같다. 그런데 ‘창랑’에는 또한 ‘창랑주(滄浪洲: 동해에 있으며 신선이 산다는 곳)’의 의미도 있는데, 위에서 인용한 ‘삼면이 모두 물로 둘러 싸였다’란 묘사를 참고로 하면, 작자는 아마도 이곳을 속세와 분리된 자신만의 낙원으로 삼고자하는 생각이 있는 듯 하다.

그래서 작자는 <창랑정기>에서 또한“……몸이 이미 편안하니 정신도 번거롭지 않고, 보고 듣는 것이 삿되지 않으니 말하는 것도 밝다. 돌이켜 생각하면 이전 영욕의 마당에서 정신없이 흘러가며 매일 아주 사소한 이익을 다투었는데, 이곳의 진취(眞趣)와는 거리가 있으니 비루한 것이 아니던가!…

…옛날 재주있고 총명한 군자라도 한번의 실수로 죽음에 이른 자가 많은데, 스스로 이기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이다. 나는 이미 폄적되었지만 이러한 경지를 얻었으니 공허한 것에서 편안하고 무리와 각축을 벌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다시 내외와 득실의 들판에서 실컷 얻는다면 만고에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오히려 (이곳은)눈을 뗄 수가 없으니 이것으로 뛰어난 것으로 삼을까 한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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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순흠은 이곳에서 세상을 잊고 시문창작에 전력을 쏟아 매요신과 이름을 나란히 하는 성과를 올리게 되었으니, 이 창랑정이 곧 그의 문학적 산실이 된 셈이다. 그의 <여름날 두서없이 읊다(暑中雜咏)>를 보면 창랑정의 생활은 한가롭기 그지없다.

嘉果浮沉酒半醺(가과부침주반훈), 맛있는 과일이 물에 떴다 가라앉았다 할 때 술에 반쯤 취해,
床頭書冊亂紛紛(상두서책란분분). 침상머리의 서책은 어지럽게 널렸다.
北軒凉吹開疏竹(북헌량취개소죽),북쪽 창에 서늘한 바람이 불어 드문드문한 대나무 숲을 헤집고,
卧看青天行白雲(와간청천행백운). 누워서 푸른 하늘을 보면 하얀 구름이 떠간다.

그러나 이곳의 생활이 어찌 즐겁기만 하겠는가? 속세와 단절된 상태로 하루이틀 지내다보니 당시 정치적으로 몰락을 함께 한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이 새록새록 솟아났을 것이다. <창랑정의 마음으로 깨닫고(滄浪亭懷貫之)>에서는 속세와 완전히 단절하지 못하는 작가의 마음이 잘 드러난다.

滄浪獨步亦无悰(창랑독보역무종), 창랑정을 홀로 걸어도 즐거운 마음 없어,
聊上危臺四望中(요상위대사망중). 가만히 높은 누대에 올라 사방을 바라본다.
秋色入林红黯淡(추색입림홍암담), 가을빛이 숲으로 들어오니 붉은 빛이 어두컴컴하고,
日光穿竹翠玲瓏(일광천죽취영롱). 햇살이 대숲에 뚫고 들어오니 푸르름이 영롱하다.
酒徒飄落風前燕(주도표락풍전연), 술친구들은 바람 앞의 제비처럼 쇠락하고,
詩社凋零霜後桐(시사조령상후동). 시단은 서리내린 뒤의 오동나무처럼 영락하다.
君又暫來还徑往(군우잠래환경왕), 그대는 또 잠시 왔다가 곧장 가버리니,
醉吟誰復伴衰翁(취음수복반쇠옹). 술에 취해 읊으면 누가 다시 쇠락한 늙은이와 짝할까?

창랑의 주변을 홀로 산보하더라도 <창랑정기>에서 언급한 그러한 즐거움도 느끼지 못한다. 오히려 옛날 함께 했던 술친구와 시단의 쇠락한 모습만이 자신을 엄습한다. 그리고 어쩌다 찾아오는 친구조차 서둘러 가버리니, 그 외로움을 어찌 할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인생사 참으로 모르겠다. 젊은 시절 ≪한서≫를 안주삼아 한 말의 술을 마시던 호쾌한 면은 어디로 가버리고, 불과 30대 후반에 기백이 다 빠져나간 늙은이의 넋두리만이 남은 듯 하여 안타깝기 그지없다.

위 <滄浪亭懷貫之>의 마지막 구절 “술에 취해 읊으면 누가 다시 쇠락한 늙은이와 짝할 까?”라는 물음에 호응하는 듯한 <술을 대하고서(對酒)>라는 시를 보자.

丈夫少也不富貴(장부소야불부귀), 대장부는 젊어서 부귀하지 못하고,
鬍顔奔走乎塵世(호안분주호진세)! 수염을 기른 얼굴로 속세를 부지런히 뛰어다녔다!
予年已壯志未行(여년이장지미행), 내 나이 이미 장년인데 뜻은 아직 행하지도 못했지만,
案上敦敦考文字(안상돈돈고문자). 책상에서는 성실하게 문장을 살핀다.
有時愁思不可掇(유시수사불가철), 어떤 땐 근심으로 마음을 추스릴 수 없어,
崢嶸腹中失和氣(쟁영복중실화기). 재기가 넘쳐 가슴속에선 온화함을 잃었다.
侍官得來太行顚(시관득래태행전), 시관이 태행산 꼭대기에서 얻어 왔는데,
太行美酒淸如天(태행미주청여천). 태행산의 아름다운 술은 하늘처럼 맑다.
長歌忽發淚迸落(장가홀발루병락), 크게 노래부르다 갑자기 눈물이 흐르는데,
一飮一斗心浩然(일음일두심호연). 한 번에 술 한 말을 마시니 마음이 호쾌해진다.
嗟乎吾道不如酒(차호오도불여주), 아! 나의 도는 술만도 못하다.
平褫哀樂如摧朽(평치애락여최후). (술은)슬픔과 즐거움을 꺾어서 완전히 없애는데.
讀書百車人不知(독서백거인불지), 백대의 수레 가득 책을 읽지만 사람이 알아주지 않고,
地下劉伶吾與歸(地下劉伶吾與歸)! 지하의 유령만이 내가 돌아가 함께 할 사람이구나!

작가에게 있어 창랑정은 갈수록 신선이 사는 낙원이 아니라 속세와 격리된 감옥처럼 견디기 어려운 장소로 변해가는 듯 하다. 그래서 “노래하다가 울컥 눈물이 난다. 그럴 때면 또한 한 말의 술로 마음을 다스린다. 그러니 자신의 수양이라도 해도 슬픔과 즐거움을 완전히 없애주는 술만도 못하다”고 표현하였다.

그의 말술이 죽음을 재촉한 것인가?
그의 <對酒>라는 시를 보면 결과적으로 그가 혹 창랑정에서 41살로 생을 마감하는 운명을 예감이라도 했던 것 같기도 하고, 혹 후세 유령(劉伶)처럼 술로써 명성이 날 것이라는 것을 예감이라도 했던 것 같기도 하다.

아! 기백 넘치던 소순흠의 젊은 시절이 갑자기 오버랩되니, 그냥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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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0/12/13 [03:24]  최종편집: ⓒ gg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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