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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은 처음 연 것 차는 나중에 끓인 것(酒頭茶脚)’
<강경범의 음주고사>수원식단(隨園食單)의 원매(袁枚)
 
강경범 기자 기사입력  2011/01/24 [11:48]
어리석고 엉뚱한 생각이지만, 미식가는 밥을 많이 먹는 사람이 적합할까? 적게 먹는 사람이 적합할까? 술감별사는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이 적합할까? 적게 마시는 사람이 적합할까?

잠시 뜸을 두고 조금만 생각해보면, 미련하기 그지없는 의문이었음을 금방 알게 된다. 옛 사람이 “한 국자의 물로도 장강의 물맛을 알 수 있다.”고 했듯이, 밥배와 술배의 크기와는 관계없이 요리와 술의 진수를 꿰뚫어보는 식견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선승이 화두에 대해 참구(參究)하듯 자신의 관심분야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계속 연구조사하면서 깨쳐야 대가의 반열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 baike.baicu.com/cn
고대 중국엔 술을 잘 마시지 못하지만 술로 인한 운치를 제법 깨달은 시인묵객이 있는데, 구양수, 소식, 원굉도(袁宏道), 원매(袁枚) 등이 그들이다. 이중 원매를 소개하려고 한다.

중국의 거리를 지나다보면 ‘수원식부(隨園食府)’란 간판을 단 음식점을 종종 보게 된다. 중국문화나 문학에 약간의 지식을 갖춘 분이라면 ‘수원(隨園)’이란 단어를 보고 금방 원매를 떠올릴 것이다.

원매는 원래 절강성 전당(錢塘) 사람인데, 나이 40에 관직에서 물러나 강녕(江寧: 지금의 南京) 소창산(小倉山) 아래 수원을 짓고 살면서 만년의 호를 수원노인(隨園老人)이라 했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원매에 관한 이미지는 그는 분명 술을 잘 했을 거란 착각을 한다. 그는 ‘성령설’을 주장했을 뿐만 아니라 수원 부근에 여제자(女弟子)를 두고서 이들과 시문으로 화답하고, ≪수원여제자시선(隨園女弟子詩選)≫이란 시집까지 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당연히 주색을 겸비한 인물일 거라고 단정하기 십상이다.

이때 하필이면 왜 음식점에 그의 이름을 갖다 붙였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바로 여기까지가 필자에게 있어서도 한계다. 그가 ≪수원식단(隨園食單)≫을 썼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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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食單’이란 바로 ‘식당의 메뉴판’을 말하는데, 원매가 77살에 절강성 일대의 음식과 요리방법에 대해 14항목(須知單, 戒單, 海鮮單, 江鮮單, 特牲單, 雜牲單, 羽族單, 水族有鱗單, 水族無鱗單, 雜素單, 小菜單, 點心單, 飯粥單, 茶酒單)으로 나눠 언급했는데, 14번째가 차주단(茶酒單)이다. 말하자면 지금의 후식에 대해 언급한 셈이다.

사실 원매는 술마다 차를 더 즐겼다고 한다. 茶酒單에서 차(茶)를 빼고나면 술(酒)인데, 차주단의 전체 小引에서 “일곱 잔에 바람이 이는데, 한 잔에 세상을 잊으니, 여섯 가지 깨끗함을 마시지 않으면 안된다. 그래서 ≪차주단≫을 지었다.(七碗生風, 一杯忘世, 非飮用六淸不可. 作≪茶酒單≫.)”라고 하였다.

알쏭달쏭, 무슨 말인지 자세하지는 않지만 차나 술을 마시면 근심을 잊을 수 있다는 점만은 인식했던 것 같다. 나아가 억측을 하면, 세상을 잊는 깨끗한 음료 중 여섯 가지는 차(茶)고 나머지 하나를 술로 여긴 듯 하다.

여기서 차에 대해서는 일단 접어두고 술에 대해 언급한 소인(小引)을 통해 음주에 관한 그의 식견을 살펴보고자 한다.

①나는 본성이 술과 친하지 않아 술을 단속한 것이 너무 엄격하지만 술맛을 잘 알 수 있다. ②지금 세상 중 소흥(紹興)지방을 다녔지만 滄酒의 깨끗함, 潯酒의 맑음, 川酒의 신선함이 어찌 소흥의 술보다 뒤지겠는가! ③대개 술이란 나이가 많아 노련한 大儒처럼 오래될수록 뛰어나고, 처음 단지를 개봉한 것이 훌륭하기에, 속담에 ‘술은 처음 연 것 차는 나중에 끓인 것(酒頭茶脚)’라고 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술을 데우는 방법은 적당한 온도에 이르지 않으면 차고, 너무 심하면 시어버린 듯 하고, 불을 가까이 하면 맛이 변한다. 반드시 물로 틈을 둬서 데워야 하지만 술기운이 나가는 곳을 잘 차단해야 비로소 뛰어나다. 마실 만한 술은 아래에 열거한다.
(余性不近酒, 故律酒過嚴, 轉能深知酒味. 今海内動行紹興, 然滄酒之清,潯酒之洌, 川酒之鮮, 豈在紹興下哉! 大槪酒似耆老宿儒, 越陳越貴, 以初開罈者爲佳, 諺所謂‘酒頭茶脚’是也. 炖法不及則凉, 太過則老, 近火則味變. 须隔水炖, 而謹塞其出氣處才佳. 取可飮者, 開列於後.)

이 소인을 살펴보면, 다음의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을 듯 하다.
첫째, 그는 술도 약하지만 음주에 대한 규제 또한 아주 심한 듯 하다. 위에서 인용한 ①을 부연하자면, 원매는 술을 잘하지 못하여 주도(酒道)에 대해서 엄격했기에 다행히 술맛을 잘 알게 되었다는 말이다. 바꾸어 말하면 술에 취해버리면 오히려 술맛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원매의 관점은 음주에 대한 기존의 시각과는 달랐다. 일반적으로 음주에 대해 말하면, 호쾌하게 술마시고 실수하거나 기이한 행동을 하더라도 우호적인 시선으로 바라봤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원매는 점잖게 술을 마시지 않고 술만을 탐하는 것을 아주 싫어했다.

≪수원시화(隨園詩話)≫권9에 의하면, 어느날 그는 이 지역의 태수를 수원의 별장으로 초청하여 술자리를 벌였다. 이 태수는 한편으로 우쭐거리며 정원의 해당화를 감상하면서 한편으로 또 취기로 인해 아랫도리를 풀고 정원에서 소변을 보았는데, 정말로 거칠고 속되기가 이를 데 없었다. 원매는 다음날 시 한 수를 보내어 가만히 이를 조롱했다고 한다.

둘째, 각 지역의 술맛을 아는 듯 하다. ≪수원식단≫서문에서 “≪설부(說郛)≫엔 음식에 관한 책 30여종을 실었는데, 진계유(陳繼儒)와 이어(李漁)의 말도 있다. 그런데 내가 직접 이 말들을 시험해봤더니 모두 코와 입을 닫고서 맛본 것처럼 대부분이 식견이 좁은 사람이 견강부회한 듯 해서 내가 이를 취할 수가 없다.”고 했다. 물론 여기서는 음식 전체를 통틀어서 말한 것이긴 하지만, 술에 있어서도 의심나는 부분은 자신이 직접 맛을 봐야 직성이 풀린 듯 하다.

원매는 이 지역 사람들이 소흥주 소흥주 하면서 최고로 꼽는데, 자신이 직접 맛을 보니 소홍주보다 더 뛰어난 듯 한 술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소홍주 앞에 금담우주(金罈于酒),덕주로주(德州盧酒),사천비통주(四川郫筒酒)를 언급했고, 소흥주 아래로는 호주남심주(湖州南潯酒),상주란릉주(常州蘭陵酒),율양오반주(溧陽烏飯酒),소주진삼백(蘇州陳三白),금화주(金華酒),산서분주(山西汾酒)를 언급했다.

지금도 중국의 명주로써 유명한 산서분주(山西汾酒)를 제일 마지막에 둔 것은 앞의 술과는 다른 소주이기에 마지막에 언급한 듯 하다. 그는 산서분주 항목에서 “기왕에 소주를 마시려면 독해야 뛰어나다(旣吃燒酒, 以狠爲佳)”고 하였고, 소주로는 이 분주가 가장 독하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 술 다음으로는 산동고량주(山東膏粱燒)를 두었다.

그런데 그가 어떻게 그 먼 사천의 술, 사천비통주(四川郫筒酒)를 맛볼 수 있었는지 의문이 든다. 그래서 그는 사천비통주 항목에서 “나는 일곱 차례나 비통주를 마셨는데, 오직 자사 양립호(楊笠湖)가 나무뗏목에 싣고 온 것이 가장 뛰어나다.”고 밝히고 있다.
이로써 보면 그가 각 지역의 명주를 대략 맛보았거라고 추측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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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술에 대한 상식이 풍부한 듯 하다. 앞에서 언급한 각 종류의 술은 사실 원대(元代) 송백인(宋伯仁)의 ≪주소사(酒小史)≫와 명대 고기원(顧起元)의 ≪객좌췌어(客座贅語)≫ 등에서 언급하였다. 원매는 적어도 교류하던 친구를 통해서든지, 아니면 이들 책을 읽고, 여기서 언급된 술들을 확인해 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술에 관한 지식이 상당히 넓고 깊었을 터이다.

앞에서 인용한 ③을 보면, 술에 대한 그의 견식에 탄복할 만 하다. 첫째, 술은 오래될수록 좋다는 것, 둘째, ‘술은 처음 연 것 차는 나중에 끓인 것(酒頭茶脚)’라는 것, 셋째, 술을 데우는 방법의 치밀함 등이 바로 술에 대한 그의 조예를 반증한다.

그가 술을 잘마시지 못했다고 술에 대해서조차 무지했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았다. 나아가 그는 운치를 중시하여 자신의 관심분야를 즐겼는데, 이렇게 쓰고 나니 그의 감성이 약간 삭막한 듯 하여, 아래에 그의 <음주시>를 두 편을 소개한다.

<술집 깃발(酒旗)>
客中誰勸醉如泥(객중수권취여니), 손님 중 어떤 이는 술이 떡이 되도록 권하여,
赖有旗懸野店西(뢰유기현야점서). 노점 서쪽에 깃발이 걸렸다고 야단이다.
望見一竿村便好(망견일간촌편호), 장대를 바라보니 그 마을이 아름다와.
未停雙轡馬先嘶(미정쌍비마선시). 아직 고삐를 멈추지도 않는데 말이 먼저 운다.
風狂似欲招人急(풍광사욕초인급), 광풍이 불어오듯 사람을 급히 부르는데
花落遙知取價低(화락요지취가저). 꽃이 지니 술값도 싸게 해 주겠단다.
我是天涯倦游者(아시천애권유자), 나는 하늘가에서 놀음에 싫증난 사람,
也曾小住唤偏提(야증소주환편제). 그런데도 잠시 앉아 술을 요청하누나.

<수헌주인이 불러 달 아래에서 술마시며 짓다(水軒主人招飮月下作)>
江城秋在酒人家(강성추재주인가), 가을철 江城에 있는 술집에서,
酒對秋光興倍加(주대추광여배가). 술마시며 가을 풍광을 대하니 흥이 배가 된다.
風定竹呈千個字(풍정죽정천개자), 바람이 멈추니 대나무는 천여 개의 글자로 보인다.
霜高梅孕一身花(상고매잉일신화). 서리가 높고 매화나무는 꽃송이를 잉태했다.
紅鞭携出天山雪(홍편휴출천산설), 붉은 채찍은 천산의 눈을 끌어내고,
紫菊排成錦帳霞(자국배성금장하). 자색의 국화는 비단 장막의 놀처럼 늘어섰다.
半夜風燈送行客(반야풍등송행객), 야밤에 바람 속에 등불을 밝히고 나그네를 전송하고,
滿墻醉影尚欹斜(만장취영상의사). 담장에 가득 비친 취한 모습이 비스듬히 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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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1/01/24 [11:48]  최종편집: ⓒ gg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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