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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학하듯 마시는 술에 자신이 먹힌 ´석연년(石延年)´
<강경범의 음주고사> 술이 지기(知己)를 만나면 천 잔도 모자란다
 
강경범 기자 기사입력  2011/02/14 [02:32]
북송시기 구양수는 문단의 영수로 일컬어진다. 그는 북송초기 만당(晩唐)의 감상적이고 유미적인 시풍을 계승한 서곤체(西崑體)의 시풍을 일소하고 새로운 송시의 세계를 열었다. 이에 동조한 이로 매요신(梅堯臣)․소순흠(蘇舜欽)을 일컫는데, 또 한 사람 주의할 인물이 바로 석연년(石延年)이다.

소순흠과 목수(穆修) 등은 당시 수도인 변경(汴京: 지금의 開封市)에서, 구양수와 매요신 등은 서경인 낙양(洛陽)에서, 석연년과 유잠(劉潛) 등은 동주(東州)에서 활약했다 한다.

그런데 석연년은 술을 좋아하여 일찍 죽었는데, 구양수는 그의 죽음을 안타깝게 여겨 <석연년의 제문(祭石曼卿文)>이란 문장을, 소순흠은 <석연년의 죽음에 곡함(哭曼卿)>이란 시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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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연년(994년~1041년)은 용모가 준수하고, 성격이 호방하여 예법에 얽매이지 않고 명리도 구하지 않았다고 한다. 전하기를 석연년 시, 구양수의 문장, 두묵(杜黙)의 가곡을 ‘삼호(三豪)’라고 했다고 하니, 그의 성격이 호방했다는 것은 사실인 듯 하다. 그런데 그의 호방함은 아마도 그의 주량과 교묘하게 어울려서 더욱 상승효과를 냈을 것이라 사료된다. 그가 얼마나 술을 잘 마셨고, 많이 마셨는지 잠시 일화를 소개한다.

북송 인종(仁宗)연간에 수도인 변경(汴京: 지금의 開封)에 왕(王)씨가 술집을 열었다. 하루는 두 사람이 들어와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술을 마시는데 서로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저녁이 되어서야 아무렇지도 않은 듯 서로 헤어졌다. 그 다음날 변경엔 소문이 왁자지끌하게 퍼졌는데, 두 분의 주선(酒仙)이 왕씨네 술집에 와서 술을 마시는데, 하루종일 술을 마셔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더란 것이다. 나중에 이 두 사람이 곧 석연년과 친구 유잠(劉潛)이란 사실을 알았다.

친구 유잠과의 음주고사가 또 전한다. 석연년이 해주(海州)에서 통판(通判)을 지낼 때, 유잠이 두 번이나 그를 찾아왔다. 두 술친구가 만났으니 얼마나 반가웠겠는가? 두 사람은 곧 술을 배에 싣고 한가롭게 술을 마시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술통이 동이 났다. “酒逢知己千杯少(술이 知己를 만나면 천 잔도 모자란다)”는 말이 아마도 이럴 때 쓰는 말일 것이다. 배는 이미 강 한가운데 있었기에 강기슭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찾아보니 선창에 식초 한 통이 있기에 이를 술병에 넣어서 밤새도록 술을 마셨다고 한다.

그는 왜 술을 자신의 목숨처럼 좋아했을까? 보통의 경우 선천적인 대주가는 적고, 대부분 자신이 처한 환경이나 심경의 변화로 인해 술을 지나치게 마시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석연년의 경우를 보면, 그가 합격한 과거시험에서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한다. 그는 과거시험에 여러 번 낙방하고 난 뒤 겨우 진사시험에 합격한다. 그러나 뜻밖에 본과시험에 어떤 사람이 부정했다는 고소장이 접수된다. 조정에서는 재시험에 들어갔고, 당시 진사에 합격한 사람들은 합격증과 관복 등을 이미 받고서 조정에서 마련한 흥국사(興國寺) 경축잔치에 모여서 즐겼다.

그런데 갑자기 조정에서는 낙제한 사람들의 합격증과 관복을 거둬갔다. 그때 낙제한 사람들은 울고불고 난리를 폈지만 석연년은 태연히 관복을 벗고 내복과 두건만을 걸치고, 다시 자리로 와서 아무런 일이 없다는 듯이 좌중과 담소하며 즐겁게 술을 마셨다고 한다.

나중에 진종(眞宗)은 그의 재주가 아까와, 삼반봉직(三班奉職)이라는 9品下에 속하는 무관(武官)의 최하급관직을 내렸다. 이와 같은 일이 그의 호방한 성격과 더불어 그를 더욱 술에 빠지게 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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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사 뿐만 아니라 역사에 있어서도 늘 햇빛만 있는 것도 아니요, 늘 그늘만 있는 것이 아니라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공존하는 것 같다. 송대는 당대와는 달리 영토확장에 신경을 쓰기보다는 문치에 치중하였기에 문화와 문물의 발달은 전에 없이 번영하고 호사스러웠다. 술문화에 있어서도 주기(酒器)와 주문화가 상당히 발달하였지만, 당시 사치와 향락이 곧 송의 멸망을 가져왔다고 하는 관점이 있다.

현대인은 술을 마실 때 술마시는 분위기를 어떻게 띄우는지 한번 생각해보시라. 약간 저급하지는 않는지...

옛 사람들도 여러 가지 방식으로 술자리의 분위기를 띄우는 놀이를 했다. 투병놀이나 주사위놀이 외에, 문인들은 약간 고상하게 꽃가지 꺾어놓고 술을 마시는데, 여기에는 주제나 운을 띄우고 시를 짓거나, 돌아가면서 옛 시구절을 한 구절씩 읊는다거나, 연구(聯句)를 지었다.

이런 면은 중국의 과거시험이나 시작과 어울려 발달하게 되는데, 석연년은 엉뚱하게 다음과 같은 기괴한 방식을 만들어 술을 마셨다고 한다.

수음(囚飮): 머리칼을 산발하고 발에는 족쇄를 찬 뒤 술을 마시는 방법.
소음(巢飮): 다른 사람과 함께 나무 위에 올라가 술을 마시는 방법.
별음(鼈飮): 새끼로 온몸을 묶고 머리를 쭉 내밀고 다른 사람과 함께 술을 마시는 방법.
귀음(鬼飮): 한밤중에 등불을 켜지 않고 손님과 어둠 속에서 술을 마시는 방법.
학음(鶴飮): 술을 마실 때 잠시 나무에 올라갔다가 바닥에 내려와서 술을 마시는 방법.

이런 음주 방법은 당시 다른 문인에게서는 들어보지 못했으니, 아마도 자신이 홀로 자학하면서 술을 마신 것은 아닌가 추측해본다. 이점도 당시 과거시험에서 생긴 불미스러운 일과 혹 관련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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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그는 <합격한 뒤 퇴출된 것을 장난삼아 짓다(登第後被黜戱作)>에서,

無才且作三班借(무재차작삼반차), 재주가 없지만 다시 삼반차직이 되어,
請俸爭如錄事參(청봉쟁여록사참), 관직을 청하여 참군의 일을 기록한다.
從此罷稱鄕貢進(종차파칭향공진), 이로부터 향공진이라 불러도 괜찮다.
直須走馬東西南(직수주마동서남). 곧 동서남북으로 열심히 말을 달려야 하니.

라고 과거시험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였다.

그러나 이런다고 그의 인생이 달라지진 않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오히려 자신만 망치는 결과를 초래한다. 시작은 불미스럽고 미약했지만 끝은 창대하리라는 마음으로, 더욱 자신을 삼가고 용맹정진해야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지 않을까!

송 진종을 이은 인종(仁宗) 때 그는 중앙의 비서성의 관원으로 들어온다. 어느날 인종이 황궁의 대경전(大慶殿)을 지나다가 궁전의 돌계단 옆 풀밭에 어떤 사람이 누워있는 것을 보았다. 호위무사에게 가서 살펴보라고 하니, 석연년이란 학사가 술에 취해 누어있다고 아뢴다. 인종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그럼 우리가 그가 깨지 않도록 조용히 하자’고 말하며 길을 돌아서 갔다고 한다.

이 고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가 선천적으로 술을 좋아했든, 과거시험 등으로 인해 술을 좋아했든, 인종은 그의 재주를 인정하고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그러면 그에게도 천재일우의 기회가 왔던 것이다. 그런데 그는 결국 이 기회를 잡지 못하고 불귀의 객이 되고 만다.

인종은 그의 재주를 아껴서 여러 차례 재상에게 석연년에게 술을 끊도록 권하도록 했다. 결국 석연년은 술을 끊었고, 술을 마시고픈 마음이 병이 되어 세상을 떴다고 한다.
전국의 주당들이여!

자학하듯 마시는 술에 자신이 먹힌다는 점을 명심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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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1/02/14 [02:32]  최종편집: ⓒ gg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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