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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끈을 자르고 신나게 술을 마시다: 초장왕(楚莊王)
 
강경범 기자 기사입력  2011/02/28 [17:58]
크고 작든 간에 한 조직의 장이 되려면 당연 그것에 합당한 그릇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필자가 평소 지닌 지론이다. 최근 매스컴을 통해 들어보면, 잘되면 내 탓을 부각하기에 정신이 없지만 잘못되면 부하 탓으로 돌리든 아님 책임질 사람조차 없이 흐지부지 사건자체가 없어주기만을 바라는 듯 하여 안타깝다.

조직의 장이란 어떤 자린가? 그 조직에서 일어나는 모든 잘잘못까지 책임을 지는 자리가 아니었던가? 그러려면 그만한 배포를 지녀야 할 것이다. 자신이 없어도 잘 돌아가는 조직이라면 조직의 장이 무슨 필요가 있을까? 부하직원의 자잘한 잘못이나 치명적인 과실을 적절하게 처리하여 조직의 번영을 꾀하도록 만드는 것이 조직의 장이 할 일이 아닐까?

그래서 초 장왕과 그의 아들 공왕(共王)이 술로 인한 부하의 실수에 대처한 일화를 소개할까 한다. 먼저 장왕의 ‘갓끈을 자르다(絶纓)’란 고사다.

장왕이 잔치자리를 열고 여러 신하들과 함께 술을 마셨다. 한밤중이 되어 모두들 술이 얼큰하게 되었을 때 등불이 갑자기 꺼졌다. 이때 어떤 사람이 동석한 미인(美人)의 옷자락을 잡아끌었다. 미인은 자신의 옷자락을 잡아끈 사람의 갓끈을 자르고서 왕에게 “방금 술이 꺼졌을 때 저의 옷자락을 잡아 끈 사람의 갓끈을 잘라서 손에 쥐고 있으니, 빨리 불을 켜서 갓끈이 잘린 사람을 확인하십시오!”라고 부탁했다.
 
장왕은 “내가 신하에게 술을 내려서 술에 취해 예를 범하게 만들었는데, 어찌 부인의 절조를 드러내기 위해 신하를 욕보이겠는가!”라고 하고서, “오늘 저녁에 나와 함께 술을 마시려면, 갓끈을 자르지 않고서는 술을 마시지 못할 것이야!”라고 하였다. 백여 명이나 되는 모든 신하가 갓끈을 자른 뒤 불을 켜게 하고서 마침내 실컷 술에 취하고서 술자리를 끝냈다.

3년이 지난 뒤 초나라는 진(晉)나라와 전쟁을 벌였는데, 한 신하가 앞장서서 적진을 돌파하고, 다섯 번이면 다섯 번 모두 앞장서서 적을 무찔러 마침내 승리를 거뒀다. 장왕이 이상해서 “과인은 덕이 부족하여 그대를 우대하지 못했는데, 그대는 어찌하여 이처럼 죽음을 무릅쓰고 나섰는가?”라고 물으니, 이렇게 대답했다. “신이 죽을죄를 졌습니다. 예전에 술에 취해 예를 범했지만 왕께서는 꾹 참고서 저를 목베지 않으셨습니다. 신은 대왕의 은혜를 입었으니 보답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항상 간과 뇌가 땅을 칠해지고 목의 뜨거운 피가 적에게 뿌려지기를 바란지 오래되었습니다. 신이 바로 그날밤 갓끈이 잘린 사람입니다.”(≪說苑․復恩≫)

우리들이 그날밤 장왕의 입장이라면 어떻게 처신했을까? 아마 대부분 눈이 뒤집혀 앞뒤 돌아보지 않고 당장 불을 켜는 것에만 혈안이 되었을 것이다. 평범하기 이를데 없는 필자의 입장에서도 이 고사는 혹 초장왕을 돋보이기 위해 만든 일화가 아닐까?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일반인으로서는 감내하기 힘든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초 장왕이 누구던가? 바로 춘추오패(五覇) 중 하나가 아니던가?
 
평범한 사람의 처신과 한 시대에 패권을 차지한 사람의 처신은 이처럼 당연히 다르다. 아니 달라야 한다.
큰일을 할 사람은 “인간을 우선한다”는 것이 전제가 되어야 하겠지만 자신의 의도가 얼굴에 전혀 드러나지 않아야 한다. 수싸움을 하는 경기, 특히 바둑 등을 보면 상황의 유불리가 얼굴에 드러나는 기사는 상당히 불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초장왕은 즉위한 처음부터 정사에 전력을 투구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어리석은 군주라고 할 만 했다. 그런데 눈여겨봐야 할 것은 초장왕은 자신의 잘못과 실수에 대해 간청하는 신하의 말을 또한 잘 새겨들어서 자신의 행동을 곧 바르게 고쳤다는 점이다. 이것은 혹 당시 초나라에는 군주의 불의한 행동에 자신의 목숨을 내걸고 직언하는 신하가 그의 주위에 있었다고 해야 옳을 지도 모르겠다.
다음의 상황으로 초장왕이란 인물을 파악해 보자.

초장왕은 기원전 614년에 목왕(穆王)을 이어 왕위를 계승한다. 그런데 611년이 되도록 하는 일 없이 온종일 수렵이나 하고 술을 마시며 정사를 돌보지 않았다. 조정의 일은 성가(成嘉)․두반(斗般)․두초(斗椒) 등 야오씨(若敖氏) 일족이 대신 처리하고, 궁문에 ‘간하는 자는 죽음을 면치 못하리라!’라고 써서 걸어놓았다.

진(晉)나라는 문공(文公)이 패권을 차지한 이후, 이 무렵에 다시 조순(趙盾)을 중심으로 하여 강력한 힘을 형성하고 있었기에 초나라 신하들은 급박하기 이를 데 없었다. 어느날 대부 오거(伍擧)가 장왕을 알현하니, 장왕은 손에 술잔을 들고 입에는 사슴고기를 씹고서, 술에 취해 가무를 감상하고 있었다. 그는 몽롱한 눈으로 “대부가 이곳에 술마시러 왔소? 가무를 감상하러 왔소?”라고 물었다.
 
오거는 “어떤 사람이 저에게 수수께끼를 냈는데, 제가 도대체 알 수가 없어서 일부러 황제께 가르침을 받으러 왔습니다.”고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장왕은 한편으로 술을 마시고, 한편으로 “무슨 수수께낀데 그렇게 어려워? 말해봐!”라고 하니, 오거가 “수수께끼는 이렇습니다. 초나라 서울에 커다란 새가 있는데 조정에 깃들어 있는데, 3년이 지나도 울지도 않고 날지도 않습니다.
 
사람들은 알 수가 없는데 도대체 무슨 새일까요?”라고 말했다. 장왕이 듣고서 오거의 의도를 알아채고 웃으며 말했다. “내가 알겠다. 그것은 보통 새가 아니다. 그 새는 3년간 날지 않았지만 한번 날면 하늘을 찌르고, 삼년간 울지 않았지만 한번 울면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하니, 기다려 봐라.” 오거는 초장왕의 뜻을 알아채고 기뻐하며 물러났다.

그런데 몇 개월이 흘러도 초 장왕은 여전히 수렵하고 술을 마시며 미녀들과 노닥거렸다. 대부 소종(蘇從)이 참지 못하고 장왕을 알현했다. 그는 궁문에 들어서자마자 크게 목놓아 울었다. “선생, 무슨 일로 그렇게 상심하시오?”라고 묻자 소종이 “저는 제가 죽을까봐 상심하고, 또 초나라가 멸망할까봐 상심해서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초장왕이 놀라서 “네가 어찌 죽겠는가? 초나라가 어찌 멸망하겠는가?”라고 물었다. 소종은 “제가 권고하고 싶지만 황제께선 제 말을 듣지 않고 분명히 저를 죽이려고 할 것입니다. 당신은 온종일 가무를 감상하고 수렵하고 놀면서 정사를 돌보지 않으니, 초나라의 멸망이 눈앞에 있지 않겠소?”라고 말했다. 장왕이 듣고서 크게 화를 내며 소종을 꾸짖었다. “네가 죽고 싶은 게로다. 내가 이미 말했다.
 
누구든 간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 거라고. 오늘 네가 그 죄를 범했으니 정말로 어리석구나!” 소종은 매우 침통하게 말한다. “네가 어리석지만 당신은 저보다 더 어리석습니다. 만일 당신이 저를 죽인다면 저는 죽은 뒤에 충신이란 명성을 얻겠지만, 당신이 다시 이렇게 행동한다면 초나라는 반드시 망할 것이니 나라를 망한 군주가 될 것입니다.
 
 그러니 당신이 제보다 더 어리석은 것이 아닙니까? 이미 이렇게 말했으니 죽이려면 죽이십시오.” 장앙은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감동하여 “대부의 말은 모두 충언이니 내가 반드시 당신의 말대로 하리다.”라고 말하고, 즉시 악대와 무녀에게 돌아가라고 명하고 나라를 부흥시키기로 결심한다.

장왕은 이로부터 정사에 치중하여 내란을 평정하고 친히 나서서 전쟁을 감독하였고, 결국 패권을 차지하기에 이른다.

이 고사를 읽으면서 이러한 의문이 든다. 그가 정말로 어리석어서 3년 동안 주색에 빠졌던 것일까? 초 장왕에 관한 역사를 두루 읽지는 못했지만 필자가 본 바로는 장왕은 신하의 목을 쉽게 베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해본다. 그가 주색과 수렵에 빠진 3년은 먼저 초나라를 안정시키고, 천하의 패권을 차지할 커다란 밑그림을 그린 기간이었을 것이다. 당시 초나라는 몇몇 씨족을 중심으로 대를 이어서 서로 영윤(令尹: 즉 재상)과 대부 등을 맡았기에 친정을 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3년간 방탕한 듯한 시간을 보내고 첫 일성이 내란을 집안하고 친정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이를 반증한다.

또한 신하가 목숨을 걸고 장왕에게 간한 고사가 제법 전한다. 예를 들면 장왕이 애마를 후하게 장사지낸 고사(莊王葬馬), 우맹의관(優孟衣冠: 장왕을 도와 패권을 이루게 한 손숙오가 죽은 뒤 그의 아들이 빈궁한 것을 우맹이 손숙오의 의관을 입고 그의 모습을 하고서 장왕에게 그의 아들을 돕도록 한 일) 고사 등등이다. 그러나 장왕은 결코 이들을 목베지 않고 이들의 간청을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다음에는 술을 좋아했던 사마(司馬)직을 맡았던 자반(子反: 즉 司馬子反)을 통하여, 장왕과 그의 아들 공왕(共王)이 신하에게 보였던 차이를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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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1/02/28 [17:58]  최종편집: ⓒ gg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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