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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육계로 들어가는 문(1)
 
서상욱 역사가 기사입력  2007/01/16 [07:06]

 

묵계 서상욱 ⓒ데일리안

삼십육계는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사람들에 의해 끊임없이 정리되며 발전해 온 고대 중국인의 지혜가 응집된 책이다. 승전계(勝戰計), 적전계(敵戰計), 공전계(攻戰計), 혼전계(混戰計), 개전계(開戰計), 패전계(敗戰計) 등의 6가지 항목으로 나눠진 삼십육계는 각 계마다 또 6가지 씩의 계책이 있다.

삼십육계라는 말은 이미 잘 알려진 성어(成語)로서, 처음에는 사회의 상류층에 많은 영향을 미쳤지만, 점차 대중들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다. 三十六計는 병가(兵家)의 권모(權謀)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나, 고대 병가의 기궤간휼지모(奇詭奸譎之謀) 여기에 모두 여기에 포함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병가의 궤도 중에서 중요한 부분이 거의 포함되어 있으므로, 이것만으로도 병가의 면모 가운데 대부분을 엿볼 수 있다.

이 책의 이름을 《삼십육계전서(三十六計全書)》라 한 것은, 주요한 중국의 정치투쟁 사례와 함께 보다 쉽고 실질적으로 삼십육계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가능한 항목을 모두 망라했기 때문이다. 그것을 위하여 다음과 같은 사항을 염두에 두었다.

첫째는 정치이론(政治理論)이 심오하여 이해하기 어렵거나, 정치심리학적(政治心理學的)으로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을 고려하여, 채택하기 쉬운 계책이 어느 것인가를 선택하도록 구성했다.

둘째는 복잡한 정치투쟁(政治鬪爭) 과정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정치적 권모(權謀)와 군사적 권모의 상관관계를 고려하여, 삼십육계 중에서 몇가지의 계책을 적절하게 융합하여 응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셋째는 정치투쟁(政治鬪爭)과 군사투쟁(軍事鬪爭)이 함께 일어났을 때, 양자의 공통성을 고려하여, 상호간에 영향을 주고 융합을 시키는 전략적 착안점을 쉽게 찾을 수가 있도록 하였다.

넷째는 정치적인 면과 군사적인 면이 같지 않을 경우, 즉 정치는 피를 흘리지 않는 전쟁이고, 전쟁은 피를 흘리는 정치라는 관점을 바탕에 두고, 전쟁이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최후의 그리고 가장 유용한 방편이라는 점을 중요시했다.

다섯째, 병가의 권모는 "위궤(僞詭)를 변화무쌍하게 사용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으며, 정치는 "인(仁), 의(義), 예(禮), 지(智), 신(信)"을 강조하고 있어서, 양자가 서로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실천과정에 있어서는, 궤도(詭道)가 종도(正道)를 만들고 정도가 궤도로 바뀌는 측면이 있다는 점을 중시했다.

병가의 권모는 무장한 병력이 서로 충돌하는 것이다. 따라서 네가 죽어야 내가 사는 살벌한 전쟁의 원리를 기본으로 삼고 있으므로 도덕적이라 말할 수가 없다. 위궤를 드러낼 필요가 없으며, 그것을 비열하고 음험하다고 말할 필요도 없다. 정치적 권모는 봉건국가의 정치이론 가운데 하나이다.

정치적 권모는 나라를 바르게 다스린다는 전제하에 사람들에게 일종의 도덕적 규범을 강조하는 것을 포함하기 때문에, 모두를 위궤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수단적인 측면에서는 음험하고 혹독한 면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상당히 많은 정치적 구호에 위궤가 사용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다. 단지 그것이 공개되지 않았을 뿐, 어쩌면 선정(善政)이라는 평가를 받는 정치적 업적도 치밀한 정치적 계산에 따른 정치적 음모가 깔려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병가의 권모는 솔직하게 위궤를 높이 평가한다. 손빈은 이렇게 말한다.
"무릇 ´권(權)´이란 무리를 모으는 것이며 ´세(勢)´란 사람들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것이다. ´모(謀)´란 적(敵)으로 하여금 미처 준비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며, ´작(作)´이란 적을 곤란한 지경에 빠뜨리는 것을 말한다."

손빈은 선진시대(先秦時代)의 제자(諸子)들 가운데 정치투쟁을 가장 적절하게 표현한 사람이다. 정치가들은 ´권세(權勢)´라는 것은 오로지 王이 가지는 것이며, ´술(術)´이라는 것도 측근들도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법(法)´과 ´세(勢)´와 ´술(術)´을 서로 결합하면, 은밀하고 깊이를 알 수 없는 변화무쌍한 ´권술(權術)´이 된다. 병가의 권모는 정치적 권술에 영향을 주었고, 정치적 권술은 다시 병가의 권모를 발전시키면서,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었다. 고대의 사람들은 병가의 권모를 대단히 좋아했지만, 이러한 권모가 자신에게 나쁜 영향을 줄까봐 두려워했을 뿐이다. 즉 정치적 권술을 입에 올린다는 것을 늦가을 매미처럼 공개적으로 떠들지는 못했지만, 속으로는 모두가 이러한 권술에 밝았다. 이러한 현상은 독특한 중국의 역사와 문화가 관련되어 있다.

우선 전제군주정치제도 아래에서는, 어떤 사람이 집권을 하면 종법(宗法)과 혈연(血緣)으로 연관된 중국의 고대 정치제도하에서 전제적 통치의 음험한 위세에 겁을 먹고 누구도 정치 자체를 일체 거론하지 않았으며, 군주와 집권자에 대한 언급을 하는 것도 피했다. 예측할 수 없는 위험을 당하지 않으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것이 정치적 권모가 군사적 권모에 비해서 제대로 발전하지 못한 첫 번째 이유이다.

중국은 대륙국가로서 서부지방은 높은 산이 연이어 있고, 동남지방은 광대한 바다가 있으며, 북쪽지방은 끝없는 사막과 초원이 있어서 천연적인 장벽을 이루고 있다. 폐쇄적인 지리적 환경은 이러한 하나의 지역사회의 역사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그러므로, 중국에서 초기의 국가가 형성되는 과정은 그리이스와 같은 작은 도시국가의 모습이 아니다. 로마가 지중해 연안에서 개방적인 지리적 환경으로 상업을 활성화 시켰던 것과 달리, 중국은 사회적 분업이 크게 발달하지 않았으며, 시종일관 농업을 가장 중요한 ´본업(本業)´으로 여기게 되었다.

농업과 목축업이 수공업과 결합되어, 상당히 오랜 세월을 사람들의 중요한 생활방식이 되었으며, 그것이 사회적 조직의 발전기준이 되었다. 이러한 사회적 경제적 기반을 바탕으로 상층부가 형성이 되었고, 가부장적 가족제도가 자연적으로 오랫동안 보존되었다.

이러한 정황에 따라서, 중국의 고대국가는 가부장적 가정이 오랫동안 해체되지 않았으며, 각 가정은 사유재산을 충분히 축적할 수가 있었다. 가부장적 가정은 내부적인 혈연관계를 중심으로 토지를 공유하면서 서로 보완적인 결합을 이룬다. 이러한 현상은 중국의 고대사회에서 그리이스 시대의 성곽과 로마인들의 공화정에서 나타나는 특징을 찾지 못하는 원인이다. 중국은 직접적인 전제적 군주의 통치를 제외한 다른 정치적 실험을 하지 못했다.

중국에서 초기 국가가 형성된 후, 부계(父系)의 씨족공동체 시기의 가부장과 군사적 지도자는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고 전제군주로 변했다. 공동체 내부의 각급 家長은 국가 기구의 각급 권력자로 바뀌어 각각 다른 부문의 권력을 나누었다. 이로서 혈연관계가 연계된 가부장적 국가가 나타났다. 이런 체제는 필연적으로 종법성(宗法性)과 원시성(原始性)을 가지게 되고, 일찍부터 전제주의 정치체제가 구축되는 필연적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춘추시대(春秋時代) 이후, 사회적 경제적 발전형태가 변화되면서, 종래의 사회적 계급이 해체되었고, 전국시대(戰國時代)에는 중앙집권적 전제국가가 나타나, 전제주의 정치의 새로운 형태로 발전하였다. 이러한 발전에도 불구하고 종법적 혈연관계는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고, 새로 출현한 중앙집권적 제도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작용을 하면서 정치와 긴밀하게 결합했다.

이러한 전통적 관념에서 전제적 군주는 통치의 핵심이 되었고, 군주는 국가적인 전쟁과 법을 제정하는 권력의 주체였으며, 군주와 백성은 군주이자 가부장과 백성이자 자식인 관계를 맺게 되었다. 일부의 사람들은 "천자는 백성의 부모로서 천하의 왕이다" 라는 관념에 반대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당시의 대부분 사람들은 모든 예악(禮樂)과 전쟁은 당연히 군주의 결정과 명령에 따라서 이루어지며, 군주가 없으면, 수뇌(首腦)와 주재자(主宰者)가 없다고 생각하여, 천하에는 단 하루도 주인이 없어서는 아니 된다는 생각을 하였다.

이제 군주의 권력은 무한한 힘을 가지게 되었다. 통상적인 상황에서 일체의 군사(軍事), 입법(立法), 사법(司法), 문교(文敎)의 대권은 군주가 장악하여 운용하였다. 즉 일체의 문무관료들과 귀족들을 임명하고, 상벌을 내리며, 생사여탈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감히 누구도 군주의 결정에 반대하지 못했다. 천하의 모든 일은 대소를 막론하고 군주가 결정하지 않는 것이 없었던 것이다.

군주의 절대적 권위가 수립되고 난 후에는 군주와 관련된 사람과 일을 논의하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정치적 권술은 이렇게 하여 은밀한 것이 되었고, 정치권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일반인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러므로 군주가 천왕(天王)으로서 국가를 밝게 경영한다는 이론을 비판하지 못했고, 전제적 통치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도 없었다. 정치적 권술이 한군데로 집결되어 통치자가 거부하면 시행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전제적 통치의 음험한 권위가 두려워 병풍 뒤로 숨어서 안일함을 지켰다. 극히 소수의 사람들이 모험을 펼치다가 자신이 지닌 통치계급의 이익을 잃어버리는 위험을 감수해야 했지만, 대부분은 공개적 비밀로 간직하고 말았다. 횡액(橫厄)과 재난(災難)을 피하기 위하여, 사람들은 우회적인 수법으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고자 하였고, 또 권세가(權勢家)의 분노를 사지 않기 위하여 고대 문인들과 재사(才士)들이 펼쳤던 좋은 방법을 모으기 시작했다. 감출 수가 없었던 병가의 권모와 감추어야 했던 정치적 권술이 이러한 방법으로 결합되어 군주를 설득하기시작했다.

또한 군신부자관계에서 등급상 상하의 예법사상(禮法思想)이 지배했고, 삼강오륜 등의 윤리학설이 뿌리깊은 정황에서 사람들은 정치적 권술을 마음대로 말하기를 꺼리며 두려워했기 때문에 정치적 권술은 병가의 권모적 형식으로 정치무대에 존재하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윤리도덕과 정치제도를 다른 영역이라고 말하지만, 양자는 분리될 수 없는 것으로, 사회와 정치의 발전에 근본적인 과정일 뿐이다. 중국의 고대사회에서는 실제로 처음부터 끝까지 양자가 분리된 적이 없다. 중국의 전통적 정치관념 중에는 사회적 정치적 관계가 가정윤리와 관련된 형식으로 표현되는 것이 많다. 예를 들어서 "자애로운 어버이, 효성스러운 자식, 좋은 형, 공손한 아우, 인자한 군주, 충성스러운 신하, 유순한 어린이, 말을 잘 듣는 부인, 은혜로운 어른"을 사람들이 갖추어야 할 "십의(十義)"라고 하며 부자의 관계를 군신의 관계로 유추한다.

중국의 고대사회에서 오랫동안 통치자의 정치사상이 되어 온 것은 우가사상(儒家思想)이다. 유가사상과 정치가 결합된 특징은 근본적으로 정치적 통치가 윤리도덕을 기반으로 구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치국(治國)의 원칙은 ´도덕치국(道德治國)´이어야 하며, 통치자는 우선 수신(修身)과 제가(齊家)를 한 후에 치국(治國)과 평천하(平天下)를 이룩해야 했다. 이러한 사상은 통치자에게 사회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지우고, 사회적 정치적 권력을 소유하게 하는 동시에, 도덕적 책임과 윤리적 통솔을 요구하기도 했다.

전체 사회의 구성원들은 필수적으로 자기 자신의 신분을 살펴서 존비(尊卑), 친소(親疎), 상하(上下), 귀천(貴賤), 남녀(男女)를 구분하여 분수에 맞는 생활을 하고, 함부로 정도를 넘어서지 말아야 하며, 윗사람을 거스르는 일이 없어야 했다. 즉 예(禮)로서 정사(正邪)와 시비(是非)를 판단하는 것이 유일한 준칙이었던 것이다.

소위, "크고 작은 것을 판단하지 못하면, 예(禮)를 구분하지 못한다.", "도덕(道德)과 인의(仁義)는 예가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고, 올바른 풍속을 가르치지 않으면 예를 갖출 수가 없으며, 송사(訟事)를 판단할 때 예가 없으면 판결을 내리지 못하고, 군신상하(君臣上下) 관계와 부자형제(父子兄弟) 관계에서 예가 없으면 사회가 안정되지 못하며, 스승과 제자 사이에 예가 없으면 친숙하지 못하고, 조정(朝廷)에서와 군사를 다스리는 것은 물론 관리를 임명하고 법을 시행할 때에도 예가 없으면 권위가 엄정하게 지켜지지 않으며, 제사를 지내고 귀신을 받들 때 예가 없으면 정성스럽지 못하다."라는 것이다.

이러한 말들은 곧 일체의 사회규범과 도덕규범은 물론, 사람들 사이의 각종 복잡한 관계에서 군국대정(軍國大政)에 이르기까지 모두 예로서 기준을 삼는다는 의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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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7/01/16 [07:06]  최종편집: ⓒ gg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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