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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육계로 들어가는 문(2)
 
서상욱 역사가 기사입력  2007/01/19 [11:00]

 

묵계 서상욱 ⓒ 데일리안

윤리적 도덕적 압력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은, 감히 정치적 권술을 공개적으로 거론하지 못했다. 그들은 오히려 위궤僞詭를 음험하다고 비난하면서 사회적 질책을 피했다. 그러나 병가의 권모는 횡액橫厄을 당할 염려나 도덕적 구속과도 관련성이 적었기 때문에, 사회적 비난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다. 그러므로 병가의 권모는 정치적 권술에 비해 많은 연구가 뒤따랐다. 정치투쟁에서는 이러한 병가의 권모가 이용되었다.

관료정치와 전제정치가 결합되어 행정권력이 집중되자, 인치적(人治的) 통치작용이 등장했다. 인치적 통치의 특징은 사람의 의지에 따라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이 때 비로소 사람들은 사회적 제약(制約)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있게 되었다. 사람들은 공개적으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사람을 복종하도록 하는 동력과 사람들로 하여금 명령에 따르도록 하는 동력은 같은 것이다. 그것은 두렵게 만드는 것이다."

인치가 이루어지면 사람들은 도덕이나 규범 보다는 자신을 지배하는 개별적 권력을 따르며, 개별적 권력이 있는 사람을 두려워한다. 마찬가지로 권력을 잃을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자신에게 권력을 제공한 사람을 두려워한다. 이러한 정황에서는 무슨 비난을 받더라도 권술을 익히려고 하며, 자신의 위신을 지키기 위하여 숱한 계책을 세운다. 당시의 사회적 조건이 변화되자, 사람들은 더 이상개인의 위신을 지키는 방법으로 도덕을 지키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정치적 권술은 통치자의 구미를 맞추기 위한 것이었으므로 공개되지 않았다. 따라서 체계적인 이론이 나타나기 어려웠으므로, 병가의 권모처럼 일정한 계통을 갖추지 못했다.

관료정치는 전제정치와 결합된 정치형태이다. 관리들은 보편적으로 봉급을 받는 고정직업을 가진 사람들로서 군주와 상급책임자를 위하여 일을 했고, 사회적 이익과 백성들의 질고(疾苦)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정해진 규칙을 지키면서 규칙과 상황이 다를 때 적절히 대처하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어떤 일을 만나면 애매하게 양쪽을 모두 옳다고 하거나, 신속하게 대처하기보다는 책임을 서로 미루었다. 심지어는 뇌물을 받기도 하고 사사로이 이권사업을 경영하기도 하면서 구차하게 자리를 지키고자 했다.

전제적 통치가 극치를 이루던 상황에서는, 군주와 상급자들의 의지에 따라 관료들의 생사와 영욕, 길흉화복이 결정되기 때문에, 관료들은 오로지 명령에 따르기만 할 뿐이다. 어떤 일을 만나면, 관료들은 모두가 조정과 상관이 시키는 대로 솔선수범(?)하여 움직였다. 때로는 다투어 권력자에게 영합했고, 공적을 세운다거나 과오를 저지르지 않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치적 권술은 광범위한 시장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자리를 지키기에 연연하는 기존의 관리들은 정치적 권술을 공개하지 못했다.

고대 그리이스와 로마는 국가를 형성한 후, 신속하게 입법, 사법, 행정으로 권력을 나눈 정치체제를 구축했고, 다른 측면에서는 전통적 신권정치(神權政治)를 유지하기도 했다. 중국은 국가를 형성한 날부터 독제적(獨制的)인 전제왕권(專制王權)을 확립했고, 시종일관 신권(神權)이 형성되는 것을 막았다. 따라서 삼권분립(三權分立)과 같은 정치체제를 갖춘 적이 없었다.

중국의 권력자들은 전제적 왕권으로 통일된 제도하에서 각급 통치조직을 기능적으로 나누기만 했다. 오랫동안 이러한 상황이 계속되자 통치자는 "以內馭外(이내어외-측근으로 바깥을 다스림)", "以小馭大(이소어대-작은 것으로 큰 것을 다스림)", "內外相維(내유상유-안과 밖을 서로 묶음)", "犬牙交錯(견아교착-국면을 복잡하게 만들어서 서로를 견제함)"이라는 비상조치를 강구하여, 사다리 위에 누각을 층층이 올리는 방식으로 견제를 하였다.

그 결과 관리를 하는 관리는 많았지만, 일을 하는 관리는 적은 광대한 행정망을 형성하게 되었다. 이러한 조직 내부에는 당연히 인치가 중요한 작용을 하게 되었다. 따라서 정치적 권술이 커다란 효과를 발휘하게 되었다. 분쟁이 생기면 부득불 권술을 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정치적 권술이 병가의 권모와는 다른 형태라고 하지만, 나름대로의 체계적인 방법을 갖춘 생존수단이 되었다.

정치적 권술이 공개적으로 체계화되지 못한 탓으로, 비교적 공개적으로 체계화된 병가의 권모가 정치적 권술의 표현방법으로 변했다. 우리가 알고자 하는 《삼십육계》는 이러한 수많은 정치투쟁 과정에서 탄생되었고, 정치투쟁에서 수시로 응용되었다. 이 글에서는 그 수 많은 사례를 소개할 것이다.

정치적 권술이 병가의 권모라는 형식으로 나타난 원인은 중국적인 "천원지방(天圓地方)"이라는 관념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옛날부터 사람들은 천지와 사람의 일은 서로 관련이 있으며, 천지의 허무하고 가물가물한 모습을 인격화하여 당시의 정치적 의무로 삼았다. 한대(漢代)에 출간된《백호통의(白虎通義)》에는 이러한 말이 있다.
"하늘은 사람의 몸과 같다. 하늘이라는 말은 "진(鎭)"이라는 의미가 있어서 높은 곳에 거처하면서 사람을 지배한다. 남녀를 합하여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천지를 합하여 부르는 말은 무엇인가? 천원지방(天圓地方)이라고 한다. 그러나 하늘과 땅은 서로 다르다. 하늘은 왼쪽으로 돌고, 땅은 오른쪽으로 돈다. 이 말은 군주와 신하의 관계와 같다"


천지를 군신에 비유하는 또 다른 말이 있다.
"군주는 백성의 하늘이다."


이러한 상호 전환적(轉換的)인 하늘에 대한 개념을 통하여 우리는 당시의 정치적 정황을 알 수 있다. 하늘은 높고 두터워서 중천(中天), 선천(羨天), 중천(衆天), 경천(更天), 수천(燧天), 곽천(廓天), 함천(咸天), 심천(沈天), 성천(成天)이라고 하는 아홉 겹이 있다. 이것을 ´구천(九天)´이라 한다. 그 각각은 다시 아홉 개 분야로 나누어진다. 즉 중앙은 균천(鈞天), 동쪽은 창천(蒼天), 동북쪽은 변천(變天), 북쪽은 현천(玄天), 서북쪽은 유천(幽天), 서쪽은 호천(皓天), 서남쪽은 주천(朱天), 남쪽은 염천(炎天), 동남쪽은 양천(陽天)이라고 한다. 아홉 겹의 하늘은 군주를 지칭하는 말이므로 천자의 궁을 ´구중궁궐´ 또는 ´구중심처(重深處)´라고 한다. 이 아홉 가지의 분야는 인사(人事)를 가리킨다. 국가조직은 천자는 중앙에서 두고 나머지 여덟 방향을 백성들이 둘러싸고 살아가는 형태로 되어 있다. "술수(術數)가 천지(天地)에 이르러 조화(造化)를 마음대로 부린다"라는 말이 오늘날에는 웃기는 말로 들리지만, 옛날 사람들은 그 말을 믿었고, 현실생활의 인식이 반영된 것이기도 하다.

천자가 거처하는 구중심처는 외부에서 쉽게 볼 수가 없어서 신비롭고 위엄이 있었다. 천자가 중앙에 거처하고 만민이 둘러싸고 있는 것은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이는 방향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외형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실재로도 그렇다"라고 하는 말은 전제주의 정치체제에도 적용되는 학설이다.

진(秦)의 환관 조고(趙高)는 이세황제에게 이런 말을 했다.
"천자의 거처는 존귀한 곳이므로 소리를 들을 수는 있지만, 여러 신하들의 얼굴을 마주하는 곳은 아닙니다. 폐하께서는 춘추(春秋)를 익히셔야 하지만, 반드시 여러 가지 일들을 모두 꿰뚫고 계실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 조정에 앉아서 부당한 말씀을 하시면, 대신들이 그 단점을 알아보고, 폐하의 궁궐은 천하의 신명(神明)이 있는 곳이 아니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당태종(唐太宗) 이세민(李世民)은 이렇게 말했다.
"천자에게 도(道)가 있으면 사람들이 주인으로 밀어 올리지만, 도가 없으면 사람들이 쓸모가 없다고 버린다. 실로 두렵기만 하다"

천원지방설(天圓地方說)과 대응하는 말은 내방외원설(內方外圓說)이다. 천원지방설은 천문지리적(天文地理的) 개념과 정치현실을 결합하여 생겨난 개념이며, 상당히 깊은 의미를 포함하고 있어서,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 내방외원설은 사람들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인간관계를 중심으로 만든 가장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처세술이다. 그러나 내방외원설이라는 말도 비교적 복잡한 말로서 두세마디로 정황을 이해하기가 어려우므로 먼저 쉬운 예를 들어 설명하고자 한다.

중국에서 매년 정월 15일에는 요원소(搖元宵), 두원소(頭元宵), 흘원소(吃元宵)라고 하는 것을 먹는다. 원소(元宵)는 정월 대보름에 먹는 소가 들어 있는 새알모양의 식품이다. 원소절에는 아이들이 걸식을 하는 풍습이 있다. 이것과 내방외원설이 무슨 관계가 있을까? 원소절이 다가오면 사람들은 모두 원소에 쓸 산사, 은행, 설탕, 팥과 같은 여러 가지 소를 준비한다. 우선 소를 똑 같이 나누고 문을 열어 아이들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그리고 칼로 작고 모가 난 모양으로 떡을 자른다. 속을 잘 버무린 후, 굴림통이나 소쿠리에 넣어 두고 찹살가루와 잘 섞어서 서로 붙지 않도록 하고 끄집어냈다가 물을 바른 후에 다시 잘 흔드는 것을 반복한다. 오리알 만한 크기가 되면 원소가 완성된다. 모가 난 속이 동그란 경단 모양으로 변하는 것은 여러 차례 흔들고 굴렸기 때문에 둥근 모양이 생긴 것이다. 이것을 내방외원이라고 한다.

전제주의 정치체제 아래에서 모가 난 사람은 정치권에서 입지를 굳히기가 어렵다. 어떻게든 모가 난 부분을 둥글게 갈아서 원활하고 노련하게 상황에 대처해야 한다. 이러한 웃기는이야기가 있다. 모 어사(御史)의 가인(家人)이 옷을 재단하려고 하다가, 신장(身長)이나 비만(肥滿) 정도를 물어서 옷을 재단하지는 않고, 관직에 몇 년 동안 있을지 물었다. 어사는가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화가 나서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인지 물었다. 재단사는 침착하게 이렇게 말했다.
"마님이 1년 동안 어사로 계시면 나는 앞은 크게 뒤는 작게 옷의 길이를 재단하겠습니다. 마님이 관직에 2년간 계실 것이면 똑 같이 만들겠습니다. 만약에 마님께서 3년간 관직에 계시면 앞은 작게 뒤는 크게 만들겠습니다."

어사는 가인이 말하는 뜻을 몰라서 다시 물었다. 재봉사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어사라는 직분이 강직한 자리라는 것을 모르고 계실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처음에 관계(官界)에 나가면 젊고 기(氣)가 왕성하며, 또 탄핵권(彈劾權)을 손에 쥐고 대권(大權)을 행사하느라고 가슴을 펴고 머리를 높이 들어 거만하게 걷게 됩니다. 따라서 앞을 크게 뒤를 작게 옷을 만들어야 몸에 맞습니다. 어사로 2년간 계시면, 좌절을 겪게 되지만 오기는 아직도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권계의 험난함을 만날 것이 분명하고, 일을 소심하게 처리하느라고 자연히 가슴을 펴고 머리를 높이 들지 못할 것입니다. 따라서 옷의 앞과 뒤를 같이 만들어야 몸에 맞을 것입니다. 어사로서 3년차가 되면, 차츰 자리에 만족하여, 밖의 일을 등한시하게 될 것이니, 그 때 당신이 과연 관리들이나 귀인들의 죄를 물을 수가 있겠습니까? 장차 그들의 수하로 떨어지게 될 지도 모르는데 쓴소리를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러니 머리를 숙이고 가슴은 작아지겠지요. 그러면 옷은 앞이 작고 뒤가 커야 몸에 맞지 않겠습니까?"
이 웃기는 이야기는 전제주의 정치체제하에서 모가 난 사람들이 어떻게 마모되어 가는가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병가의 권모를 모가 난 방형(方形), 즉 봉망화로(鋒芒華露-자신의 예기와 재능을 뽐내는 것)에 비유한다. 정치적 권술은 내방외원적으로 겉으로는 원만하고 부드럽지만 예리함을 속에 감춘다. 이것이 병가의 권모와 정치가의 권술을 비교하는 기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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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7/01/19 [11:00]  최종편집: ⓒ gg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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