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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육계로 들어가는 문(3)
 
서상욱 역사가 기사입력  2007/01/20 [10:22]

병가의 권모는 수식(修飾)으로 엄폐(掩蔽)하고 위궤(僞詭)로 속일 필요가 없다. 따라서 사람들은 "병불염사(兵不厭詐)" 즉 병사(兵事)는 반드시 감출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병가의 권모는 적을 이겨서 승리를 얻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적 권술은 수식으로 엄폐하고 위궤를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이정수국(以正守國)" 즉 바름으로 나라를 지켜야한다는 명분 때문이다. 즉 위궤적 명분을 내세워 정치적 거점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엄식(掩飾) 즉 "내방외원(內方外圓)"은, 실제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예봉(銳鋒)을 감춘 채로 사람을 해치기도 하고, 사람들을 아끼는 것처럼 가장을 하기도 한다. 간사한 사궤(詐詭)로 변하여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또 대의(大義)를 지닌 당당한 정기(正氣)로 나타난다. 이런 점이 정치투쟁을 군사투쟁에 비하여 은밀하고 심오한 면들이 많다라고 하는 이유이다.

정치적 권술은 이와 같이 내방외원적 특성이 있으므로, 옳고 그름을 따지기가 어렵다. 둥근 것이 모가 난 것으로 보이기도 하기 때문에, 예봉의 향방을 예측하여 방어하기가 어렵다. 둥글게 변하여 외부 세력의 도움을 받을 때에는, 내부의 모가 난 것을 감추어야하므로, 예봉이 바뀌어야 한다. 만약 내외가 서로 공격을 한다면, 원방은 자연히 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앞에서 말한 원소처럼, 만약 갑자기 기름에 뜨겁게 가열하면 외부의 힘도 뜨거워 질 것이며, 그렇게 되면 원소는 갑자기 터져 버려서, 사람들까지 다치게 할 수도 있다. 서서히 열을 가하여 굽게 되면, 외부의 열로 인하여 자연스럽게 내부의 속이 녹아서 방형(方形)을 잃어 버릴 것이다. 물을 천천히 부어 삶으면, 시간이 길어져 바깥의 원형(圓形)이 유지되지 않고, 안의 방형도 끓는 물 속으로 쏟아질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동한(東漢)의 명제(明帝) 유장(劉庄)은 예(禮)와 명분(名分)을 중요시했고, 인의와 도덕을 숭상하여 겉으로는 형제와 여러 왕들을 사랑하였다. 그들이 병들면 태의(太醫)를 파견하여 병세를 살피게 하고, 잠시라도 연락을 끊지 않았다. 또한 노인을 공경하여 친히 늙은 스승 환영(桓榮)의 처소를 찾아갔으며, 돈을 주고 눈물을 흘리며 위로하였다. 공신들의 그림을 그려, 누대(樓臺)에 모아 두고 사시(四時)에 맞추어 제사를 올렸다. 유학(儒學)을 숭상하여 몸소 경전을 읽고 "황태자로부터 여러 왕후와 대신의 자제들과 공신의 자제에 이르기까지 반드시 경전을 공부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런 모든 것들은 표면적으로는 원소의 둥근 모습과 같다.

그러나 그는 "성품이 찬찬하고 이목(耳目)이 밝아서, 공경대신(公卿大臣)들이 여러 차례 멸시를 당했으며, 근신(近臣)과 상서(尙書) 이하는 자주 내침을 받았다"라는 소리를 들었다. 예봉이 늘 노출되어 있고 모난 것이 분명하면 "내방"이라고 한다. 외원내방(外圓內方)의 특성을 가진 그는 밖으로는 인애(仁愛)롭지만 자기의 친형제들을 잇달아 죽였고, 초왕(楚王) 유영(劉英)의 안을 받아들여 전후로 수천명을 죽여서 "여러 관리들이 체포되어 죽은 자가 거의 반에 이른다"고 하였다.

명제의 음험한 위세를 당하여 "저정은 공포에 질려 다투어 죽음에서 벗어나고자 했다"라고 한다. 공포정치를 사용하였다 하여 죽음을 각오하고 명제의 음폭(淫暴)함을 극간(極諫)한 자는 모두 사형을 당하고 말았다. 이것은 갑자기 맹렬한 불로 원소를 태우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무런 실익도 없이 해를 입고 만 것에 해당한다.


초왕 유영의 문하에 있었던 육속(陸續)은 이 일에 관련되어, 사지가 찢어지고 기육(肌肉)이 불태워졌다. 그는 그 지경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의지를 바꾸지 않았지만, 어머니가 음식을 가지고 오자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그의 효성을 들은 명제는 감복하여 친히 그의 죄를 면하게 하였다. 이는 따뜻한 열로 원소를 굽는 것이니 외형을 상하지 않고 그 내부를 바꾸는 것이다.


상서복야(尙書僕射) 종리의(鍾離意)와 시어사(侍御史) 한낭(寒朗)은, 명제가 귀신을 존중하고 허명(虛名)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여러 차례 천왕으로서의 밝음과 천지의 재변을 들어 간하여 효과를 거두었다. 또 황후의 행차를 수행하여, 명제가 늘 측은하게 생각하면서 깨닫도록 하고, 밤중에도 잠을 이루지 못하게 하여 처음에 바라던 것을 이루었다. 이는 물로 천천히 삶는 것과 같이 그 모양을 바꾼 것이다. 이 사례는 정치투쟁의 복잡하고 아득함이 군사투쟁보다 심하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삼십육계》는 《역경(易經))》에서 연역된 것으로, 본래 은밀히 몸을 숨긴 사람들의 정치적 의로 만들어 졌다. 경서(經書)들 중에서 으뜸인《역경》은 고대의 관리들과 사족(士族)의 자제가 나라를 다스리고 평안하게 하는 기본적인 지식을 익히고 이해하는 필수적인 글이었다.

익히 알다시피 역경은 본래 정치적인 관점에서 형성된 것이므로, 정치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러한 것을 고려하여 나는 《삼십육계》가 《역경》과 어떻게 관련성을 맺고 있는지를 대비하고, 그 다음에 각 계모(計謀)가 사용되어야 할 상황과 결과를 정치적인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자 한다. 따라서 역경에 관한 약간의 이해가 필요하다. 역경을 어느 정도 이해해야 삼십육계의 각 계모가 절묘하게 변화하는 것을 이해할 수가 있다. 또한 고대의 중요한 정치투쟁을 분석하여 삼십육계에 대한 이해를 돕는 동시에 천원지방과 외원내방이 어떻게 이러한 사건에 존재하고 전환되는지를 분석하였다. 이 작업을 하기 위하여 나는 고대중국의 방대한 정치현상을 이해해야 했다.

이 글은 학술적인 연구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일반인들이 지식과 흥미를 한꺼번에 얻을 수가 있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여, 생동감있는 것을 골라야 했다. 사례와 계모를 결합하고, 계모가 실행되었던 과정을 분석함으로써, 독자들이 쉽게 이해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이 책은 중국의 고대정치를 바탕으로 하였고, 각 계책(計策)이 서로 다른 정치적 환경과 역사적 배경에서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분석하겠다. 독자들이 중국의 특수한 정치상황을 이해하도록 하는 동시에 각 게책을 인식하고 이해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정치이론과 정치심리는 비교적 이해하기가 어려운 문제이다. 이를 위하여 나는 각 계책 중에서 전문적인 것과 정치투쟁 중에서 특징이 있는 것을 같이 묶어서 독자들이 정치이론과 정치심리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병가의 권모와 중국 고대정치의 진행과정을 연구하고 분석하는 것은 중국 고대의 정치이론과 정치심리를 이해하는 것이다. 옛 것을 비추어 지식을 얻는 것이 나날이 인기를 얻고 있는 요즈음에 있어서 이것은 중요한 작업이 아닐 수가 없다. 다채롭고 풍부한 병가의 권모와 정치적 권술을 분석하는 것은 중국의 고대정치를 엿보고 정치적 특성을 이해하는 것이며 그것이 우리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나는 이 글을 이러한 목적에 맞추어 쓸 것이고, 가능하면 근원적인 문제를 찾고자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글에는 많은 착오와 오류도 있을 것이다. 그 점은 여러분들이 아낌없이 지적해 주시기를 부탁한다. 삼십육계라는 책은 이미 몇 종이 나와있다. 그러나 대부분 간단한 설명과 몇 가지의 사례를 들어서 설명하고 있을 뿐이다. 특히《주역(周易)》과의 관련성을 밝힌 책은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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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7/01/20 [10:22]  최종편집: ⓒ gg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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