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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소설 Mr. Nobody [92회]
 
이상철 소설가 기사입력  2015/05/04 [20:24]

 

92. 힘의 논리

 

모두들 인정하듯 일본의 공업력은 대단해서 세계시장을 석권할 정도인데, 그 중에서도 초미세 가공기술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조금 심하게 말하면 미국의 첨단무기들도, 일제 부품이 들어가지 않으면 깡통이나 다름없다는 평을 듣기도 한다.

 

그래서 세계시장에서 상당히 기술력을 인정받는 우리나라의 제조업체들뿐 아니라, 세계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거대 기업들마저도, 제조설비나 일부 부품을 일본에서 수입하는 경우가 많으며, 그 중에는 일제 부품을 사용하지 않고는 공장가동이 거의 불가능한 업체들도 상당히 많다.

 

하지만 그렇듯 뛰어난 기술을 가진 회사들도, 재무적인 어려움에 처하게 되면 살아남기가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다.

자금이 돌지 않는다면 피가 순환하지 않는 사람의 신세나 다를 바 없으니, 아무리 뛰어난 기술을 가져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IMF 관리시절에 우리나라의 수많은 멀쩡한 기업들이, 우선 자기들부터 살고 봐야 하는 은행들의 자금회수 때문에, 일시적인 자금사정 악화가 초래되어 부도상황에 까지 몰렸고, 결국 헐값에 외국계 회사로 넘어간 것을 다들 생생히 기억할 것이다.

 

지금 일본의 수많은 기업들이 그런 상황에 몰렸다. 그래서 루블랑 펀드가 투자한 G은행의 M사모펀드는 마대에 쓸어 담듯이 기술주들과 금융주들을 사들였다.

 

기술주들이야 일본 제조업체들의 기술력이 워낙 뛰어나니, 재무상황만 개선된다면 순식간에 제자리를 찾아갈 것으로 판단되므로, 투자수익 제고 차원에서 그것들을 선호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갔다.

하지만 별다른 특징이 없고 부실위험이 큰 금융주들까지, M펀드가 집중적으로 사들이는 것은 언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드 사장님! 현재 일본의 금융기관들은, 부실화된 건설회사들에 대한 대출금 회수가 어려워지자 같이 부실해져 버렸습니다.

아시다시피 일본의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는 재정지출에 따른 경기진작을 극대화하기 위한 방편으로, 고용창출효과가 큰 공공공사발주가 많고 그 공사만으로도 수많은 건설회사들이 먹고 삽니다.

 

그런데 재정적자가 극심해지고 국채까지 제대로 소화가 안되니, 공공공사 발주물량이 큰 폭으로 감소했고, 그 때문에 많은 건설회사들이 부실화의 늪에 빠져서, 거기에 자금을 대출해준 금융기관들도 공동운명체가 되고 말았습니다.

 

현재 일본 은행들의 BIS(국제결제은행)자기자본비율은, 국제권고기준인 8%를 넘긴 곳이 불과 2개 은행에 불과하고 3개가 5%대에 턱걸이를 하고 있는 실정인데다, 몇몇 은행은 아예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대부분의 은행들에 공적 자금을 투입해야 할 상황인데, BIS비율 상위 5개은행들이라면 모를까 나머지 은행들까지 인수할 필요가 있을까요?

자칫하다가 우리가 덤터기를 쓰게 되는 것은 아닐지……”

 

“당연히 조심은 해야 하겠지요. 하지만 여기에는 우리가 그 은행들을 인수해야 할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소수의 지분을 가지고도 그룹내의 모든 기업들에 대해 주인행세를 하는 우리나라 기업들과는 달리, 일본 기업들은 지분분산이 비교적 잘 되어있고, 주로 금융기관들이 대주주인 경우가 많다.

지드(상민)는 일본 금융기관과 기업의 종속관계에 대해서 잘 알기에, 루블랑에게 거기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주었다.

 

“일본의 금융기관을 완전히 소유하거나 지배주주가 되면, 그 금융기관이 대주주로 있는 기업에 대한 의결권행사에서 당연히 유리한 입장에 서게 될 것입니다.”

 

이는 펀드 단독으로는 어떤 기업 A의 지배주주가 될 수 없더라도, 펀드가 지배주주가 된 금융기관이 가진 지분과 합해서 과반수가 되면, 그 기업에 대한 완전한 경영권을 행사할 수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A가 정상화된 후 경영권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누군가에게 주식을 매도하더라도, 주가상승 분에 경영권 프리미엄까지 얹어서 매각을 할 수가 있다는 이점이 있다.

 

A의 지분을 보유한 은행 또한 보유주식을 펀드가 지분을 넘기는 시점에서 같이 매각할 경우, 역시 프리미엄이 더해진 가격으로 매각할 수가 있어서 크게 이득이 된다.

 

“이처럼 은행이 보유한 주식과 패키지로 묶어서 그 기업을 인수하고자 하는 측에 팔 경우, 그냥 매도할 때보다 훨씬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뿐만 아니라 주식을 대량 매도할 경우에는 주가하락의 위험성이 크지만, 이런 방법을 사용하면 그런 위험도 방지하고…… 아무튼 여러 가지로 이익이 될 것이라는 점을 생각해서 금융기관 주식들까지 같이 매수한 것입니다.”

 

“하지만 사들인 금융기관의 부실화에 따른 위험은 여전하지 않습니까? 혹시 거기에 대한 대책은 있으신지……

만약 금융기관들의 부실화 위험을 줄일 수만 있다면 현재의 주가하락은 지나친 것이니, 금융주의 주가 차익도 크게 기대해볼 수가 있어서…… 그야말로 잘만하면, 지난번 저에게 알려주신 한국의 속담대로 ‘꿩 먹고 알 먹고’가 아니겠습니까?”

 

“이번에도 지난번처럼…… 힘의 논리라는 것은 말도 안되게 억지스럽고 더러운 것이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국제사회도 힘보다는 도덕과 규범이 앞서야만 진정으로 평화로운 세상이 된다는 것을…… 미국이나 중국처럼 힘을 가진 나라 국민들도 보다 분명히 알게 되지 않겠습니까?”

 

“아! 그렇군요! 역시…… 사장님은 저희 보통사람과는 생각하는 차원이 크게 다르다는 것을 이번에도 실감했습니다.”

 

“나중에 자세히 말씀 드리겠습니다만…… 사실 저도 진정한 스승으로 모시는 분이 있어서, 그분에게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요즘도 계속 배우는 중이고요……”

지드는 잠시 눈이 아련해지면서 누군가를 생각하는 듯 했다.

 

“예? 지드 사장님 같은 분에게도 스승이 계시다고요?”

루블랑의 생각에는 지드만 해도 혹시 신이 모습을 바꾸고 인간세상에서 생활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는데, 지드가 스승으로 모시는 사람이 있다고 하니, 그 사람이야말로 진전한 신이 분명하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M펀드는 기술력이 뛰어난 일본의 Hi- Tech기업 20개와 부품업체 200여개, 그리고 그 기업들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금융기관 10여개를 아주 헐값에 사들여서 주인이 되었다.

그것들을 최종적으로 인수할 때 사용한 방법은, 우리가 과거에 한번 당한바 있었던 방법이었다.

 

97년말 우리나라가 국가부도위기에 몰렸을 때, 당시 IMF 총재였던 깡드쉬라는 프랑스인은 오만하고 뻣뻣한 자세로, 현직 대통령뿐만 아니라 유력대권후보 세 사람에게도 협정문서에 서명할 것을 요구했던 것을, 우리국민들은 이가 갈리도록 기억할 것이다.

루블랑은 그 방법을 많이 참고 했다.

 

지드와 밀담을 마친 루블랑은, 펀드 자회사인 G투자은행의 케인 행장(전직 미국재무장관)과 함께 전세기 편으로 일본을 찾아서, 신임 총리인 다나까와 회담을 갖고 일본의 경제위기 해소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그는 일본경제의 정상화를 돕는 조건으로 앞에서 기술한 것들을 요구했고, 아울러 일본 경제위기를 불렀던 전임 총리와 공동으로, M펀드의 구상에 전폭적으로 협조하겠다는 서명을 할 것을 요구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펄쩍 뛰던 신임 총리는, 루블랑의 이 한마디에 마음을 돌렸다.

 

“전임 총리가 싸지른 똥을 왜 총리님께서만 모든 책임을 지려 하십니까? 일본 국민들에게도 경제위기의 원인이 어디에서 비롯되었고,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가를 분명히 보여주시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이번에 물러난 자들은 틈만 있으면 총리님을 물어뜯으려 달려들 것입니다. 그러니 모든 잘못은 전임자에게서 비롯되었고, 총리님께서는 다만 그의 잘못을 수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이 기회에 국민들에게 각인시키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결국 루블랑의 조언을 따르기로 한 신임 다나까 총리는, 전임 총리를 총리관저로 불러서 그의 뜻을 전했고, 둘 사이에는 잠시 동안 고성이 오갔지만 그들은 결국 루블랑의 요구조건을 수용하기로 했다.

 

루블랑의 약속은 지켜졌다. 어떤 방법을 사용했는지는 모르지만, 회담을 마치고 루블랑이 스위스로 돌아간 며칠 후, 3대 국제신용평가사들이 일본의 국가신용등급을 일제히 BBB로 올리고 긍정적 관찰대상으로 두어서, 향후에 추가적인 등급상향이 있을 것임을 시사했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다. M펀드가 인수한 모든 금융기관에 대해서도, 일본의 국가신용등급과 같은 등급을 부여했고, 같이 인수한 기업들에 대해서는 바로 아래 등급을 부여한다고 발표했다.

 

M펀드의 산하기업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엄청난 시너지효과를 기대할 수 있으므로, 그 기업들에게 보다 높은 등급을 부여해도 되지만, 일본의 국가신용등급을 감안했다고 발표한 것이다.

 

M펀드의 산하 금융기관들에는 다시금 거액의 뭉칫돈들이 몰려들기 시작했고, 같이 인수한 기술력 있는 기업들도 자금 경색이 완전히 풀리고, 각국으로부터의 제품발주가 크게 증가하기 시작했다.

루블랑이 그 기업들의 기술력을 인정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이유에서다.

 

아무튼 M펀드가 인수한 모든 기업들의 주가는 전혀 매물이 나오지 않는 가운데, 천정부지로 올라서 경제위기 전 주가수준을 크게 상회해버렸다.

 

M펀드는 이번 인수과정에서 금융기관들은 지분을 모두소유하기로 했으며, 나머지 기업들은 평균적으로 1/10로 감자를 한 후 추가 출자해서 자본금을 전과 동일하게 만들었는데, 이 과정에서 피해를 봤던 소액주주들도 그 덕분에 손실을 거의 만회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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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5/05/04 [20:24]  최종편집: ⓒ gg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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