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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소설 Mr. Nobody [97회]
97. 신 무림시대의 도래
 
이상철 소설가 기사입력  2015/05/16 [21:27]

 

97. 신 무림시대의 도래

 

한편 사천성 성도시 외곽에는, 어릴 때 고아로 살았지만 영특하다고 주위에 소문이 나서, 당 씨 성을 쓰는 집 양자로 들어간 당가기(唐柯基)라는 사람이 살고 있다.

 

그는 가업인 철공소를 물려받아서 운영하고 있었는데, 중국의 전통무술들에 유독 관심이 많아서, 자기가 관장을 하면서 따로 사범을 두고 우슈 도장도 같이 운영을 하고 있었다.

그런 그가 준수의 동영상을 보고는 기발한 생각이 떠오른다.

 

그는 생각이 떠오르면 곧바로 행동에 옮기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한약재 취급을 겸하고 있는 이웃의 중의원(한국의 한의원과 비슷함)을 찾아가서, 친한 중의사와 함께 한 가지 일을 꾸미기 시작한다.

 

그들은 여러 가지 무술서와 도인체조 그리고 경혈도 등을 적당히 짜깁기한 다음, 무협소설의 내용들을 추가해서 당문비록(唐門祕錄)이라고 이름 짓고는, 고문서 위조전문가를 거기에 가담시켜서 오래된 책자인 것처럼 꾸민다.

그리고는 도장 관원들 중에 남의 말을 잘 믿고 순수한 열정을 가진 사람들을 따로 불러들여서, 그 책자를 보여주며 이런 말을 한다.

 

“너희들에게 아직 말을 안 했지만, 실은 나는 우리 성도에서 옛날에 큰 성세를 누려왔던 당문의 진정한 후계자다.

 

이 말을 듣고 너희들 중에는, 관장이 갑자기 정신이 이상해졌나……무슨 생각으로 뜬금없이, 무협소설에나 나올법한 정신 나간 소리를 지껄이고 있는가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혹시 우리에게 사기 치려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사실이다. 각 왕조들은 자기들의 통치에 위협이 될만한 세력인 무가들을 완전히 말살시켜 버렸고, 그 사실들을 철저히 비밀에 부쳐왔다. 그래서 역사서에도 무가나 강호의 무인들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한국에 하늘을 나는 무인이 등장했지 않으냐?

 

우리가문만 해도 청 왕조 때는 물론이고, 지난 문화혁명기간 동안에는 홍위병들의 난동을 피해야 했기에, 가문이름을 내세울 수가 없었고…… 더구나 그 와중에 가문의 무공을 잃어버려서 도장에서는 어쩔 수 없이 태극권을 가르쳐 왔지만, 이번에 끈질긴 노력 끝에 가문의 비록 일부를 찾았다.  

 

그렇지만 이 사실을 함부로 공표할 수는 없었다. 우리의 힘이 갖춰지기도 전에 이 일이 세상에 알려지면, 힘있는 자에게 비록을 뺏길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우리 당문은 원래 당씨 성의 혈족들만이 비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세상이 변해서 같은 성의 혈족이라는 게 큰 의미가 없다. 또한 나는 혈족들 보다는 너희들이야말로 진정한 우리 가문의 사람들로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오직 너희에게만 이 사실을 밝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번에 찾아낸 우리가문의 비록이다. 나는 너희 모두가 진실한 사람들이니 내 말을 진정으로 믿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만…… 그래도 너희들에게 이게 진실이라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시켜주고 싶어서 보여주는 것이다. ”

 

그렇게 말한 다음 그는 제자들에게 표지가 양피지로 되어있지만, 다 낡아서 ‘唐門祕錄’이라는 글자가 희미하게 보이고, 내용은 누렇게 빛이 바랜데다 일부는 삭아있는 책자를 보여주었다.

 

거의 대부분의 사기꾼들이 그러하듯이 몇 가지 사실을 끌어들여서 스토리를 만들었기 때문에, 그의 이야기는 너무나 교묘하고 그럴듯해서 의심이 많고 똑똑한 사람들도 긴가민가할 정도였다.

 

하물며 남의 말 잘 믿고 순수한 열정을 가진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사기 행각이니, 당씨의 세치 혀는 그야말로 예술처럼 제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그들의 진지한 반응을 보고 자아도취에 빠진 그는, 자기의 말이 진실이라는 믿음이 자기자신에게도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어떤 심리학자가 말하기를, 사기꾼들이 만든 광신도 집단이 처음부터 그렇게 대단하게 된 것이 아니라, 처음에는 순수하게(?) 사기를 칠 목적으로 일을 꾸몄는데, 거기에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세력이 형성되자, 그 사기꾼은 차츰 자기자신에 대해 대단하다는 자아도취에 빠지기 시작하고, 나중에는 진짜로 자신이 신적인 존재라고 믿어버리는 현상이 생긴다고 한다.

 

과거 히틀러가 괴벨스, 괴링 등과 함께 만든 나치당에는 독일의 수많은 엘리트들이 모여들었다. 1차대전 패전으로 희망이 보이지 않는 독일의 현실에 암담해하던 그들은, 자꾸 누군가를 탓하려는 마음이 생겼으며 그 대상이 주로 유태인을 비롯한 이민족들이었던 모양이다.

 

그것은 1923년 일본의 관동대지진 때 조선인들이 저주해서 지진이 일어났다며, 우리 민족들을 학살하던 일본인들의 만행이나, 2011년 일본대지진으로 일본 국민들이 무기력에 빠지자,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들에 막연한 적대감을 조성해서, 무언가를 도모하고자 하는 일본 지도층의 움직임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하여튼 그렇게 결성된 나치당이 처음에는 그야말로 미미한 존재에 불과했다고 하는데, 그들은 독일 국민들의 좌절감을 누군가에 대한 적대감으로 돌리는 작전에 성공함으로써 세를 불릴 수 있었고, 세력이 형성되니 자연스럽게 거기에 엘리트들이 모여들었다.

 

엘리트들은 나치당에 대한 이론적 기반을 정립해서 일반 국민들을 혹하게 만들었으며, 그로 인해 나중에는 집권에 필요한 의석을 확보해서 나치당은 결국 국가권력을 거머쥐게 되었고, 나중에 전세계를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끌고 들어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당가기는 은밀히 따로 불려 들었던 제자들에게, 비전의 내공심법을 전수한다며 경혈도와 함께 도인체조를 익히게 하고, 호흡과 체조동작을 일치시키면서 잠잘 때 빼고는 항상 정성을 다해서 익히라고 진지하게 당부한다.

 

그로부터 얼마 후 ‘당문’이라는 현판이 철공소와 도장의 출입문에 내걸린다. 그리고 도장 인근 동네나 학교에는 당문에 가면 제대로 된 무술을 배울 수 있다는 소문이, 무술을 동경하거나 호기심이 많은 청소년들 사이에서 퍼져나간다.

 

물론 무술 전문가들이라면 당문이라는 곳에서 가르치는 무술들이 다른 도장의 것과 비교해서 특별한 것이 없고, 내공심법이란 것도 표현만 그럴듯한 눈속임에 불과하다는 것을 금방 알아차릴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알고도 속는 일이 모르고 속는 것 못지않게 많다.

 

요즘은 웬만한 일에는 사람들이 감격을 하지 않으며, 또한 사람들의 교육수준이 높아지고 영악해져서 사기꾼들의 어설픈 사기수법에 넘어가는 사람들이 드물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또 어떤 사람들은 자기는 대부분의 사기수법에 정통하다고 장담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도 사기꾼들이 주도하는 모임에서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럴듯한 분위기를 연출해주면 사람들이 집단최면상태에 빠지게 되어, 최고의 지성을 가진 똑똑한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별것 아닌 일에 감동을 하고, 그 일을 가장 앞장서서 주도해나가기도 한다.

 

집단최면이라는 것은 거기에 걸려있는 상태일 때는 거의 자각을 하지 못한다. 그것은 어쩌면 그 장소에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토네이도 같은 거대한 기운의 그물이 생겨나서, 자기도 모르게 거기에 갇혀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당가기는 자신을 신처럼 받드는 충직한 제자들이 생기자, 그들의 열정을 이용해서 새로운 제자들을 모집했고, 새 제자들에게 수련 비는 따로 받으면서도 그들을 다시 세뇌시켜서, 자발적인 근로봉사라는 명목으로 돈을 주지 않고 일을 시킨다.

그는 이런 방법으로 인건비 지출이 거의 없는 신규사업을 벌리면서, 성도 일대의 상권을 상당부분 거머쥐게 된다.

 

이 소식을 성도에 사는 지인을 통해 접하게 된 안휘성에 사는 남궁 씨 성을 가진 사람은, 그 일과 관련된 허실을 금방 알아본다.

그래서 자신이 운영하는 무술도장 간판을 ‘남궁세가’라고 고쳐 달고 당가기가 사용한 방법을 참고해서 자기 나름의 사업구상을 한다.

그 방법이 대박을 치자 인근 도장들을 차례로 집어 삼킨 후, 나중에는 큰 보안업체를 설립해서 주식회사로 법인화한다.

 

이런 소식을 접하자 수많은 머리 좋고 과감한 행동력을 가진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맨 먼저 하북성에서 살고 있는 개백정(介伯丁)이라는 사람은, 담당 공무원을 구워삶아서 가짜 증명서를 이용 팽무달(彭武達) 이란 이름으로 개명을 한다.

 

그는 인기가 없어서 운영이 힘든 무술 도장들을 헐값에 인수하여, 역시 당가기가 사용한 방법을 응용해서 ‘팽씨세가’ 간판을 달고 무술에 능한 사람들을 모집 한 후, 간판에 혹하여 찾아온 그들을 적전제자란 명목으로 거의 무임수준에 경비용역 직원으로 고용하여 부를 쌓는다.

 

또 그 도장을 담보로 대출을 일으켜서 재무적 어려움에 처한 회사들을, 거저나 다름없이 인수해서 알맹이만 쏙 빼먹은 후 매각하고, 나머지 부분은 부도처리 하는 방법으로 부를 늘려 나간다.

 

이와 비슷한 과정을 거쳐서 산동성에서는 황보세가가 문을 열고, 산서성에서는 제갈세가가 탄생한다.

이 밖에도 요녕성의 모용세가, 진주 언가, 산동 악가 등이 차례로 등장하고, 전국을 떠돌던 거지들도 개방이란 이름으로 세를 결집하고 방주라고 부르는 대표거지를 선출한다.

 

뒷골목 건달들도 놀고만 있지는 않는다. 항주 시내에서 불법 도박장을 운영하는 주 사위(周斯僞)라는 사기 도박 전과자는, 인근의 불량배들을 모아서 공갈 협박 갈취를 목적으로 하지만, 겉으로는 선한 친구들 모임인 척하는 선우회(善友會)를 결성하고 회주로 취임한다.

 

또한 전국의 각 도시에서 이와 비슷한 조직이 우후죽순 격으로 생겨난다. 그들은 기존의 삼합회와 이권이 겹치고 힘에 크게 부치자, 전국적인 사파 연합을 결성해서 거기에 맞서기로 하고 주 사위가 초대맹주로 추대된다. 하지만 약삭빠른 그는 세 불리를 인정하고 일정 지분을 얻는 조건으로 삼합회의 산하로 들어간다.

 

그리고 신강성 우루무치에서는, 겨우 명맥을 잇고 있던 배화교의 교도 중에서 힘이 장사인 천마자(千麻子)라는 자가 나타나는데, 그는 자기를 따르는 교도들과 함께 도시내의 깡패들을 복속시키고 암흑가를 장악한다. 그들은 나중에 ‘천마신교(天魔神敎)’로 교명을 바꾸고 신강성 전체로 교세를 넓혀 나간다.

 

이처럼 9파1방과 5대 세가가 모양을 갖추게 되고, 현재는 가장 막강한 세력인 삼합회와 더불어서 천마신교가 정족지세(鼎足之勢)를 이루니, 바야흐로 중국에서는 21세기 들어서 신 무림(新 武林) 시대가 도래하게 된다.

 

위에서 언급한 내용들은 당장 일어난 일도 있지만, 앞으로 일어나게 되는 일들을 앞당겨서 나열한 것이다.

덧붙여서 무림세계가 원래 존재했는지, 아니면 상상에 의한 허구의 세계인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도 밝혀둔다.

 

이렇게 신 무림 시대는 우스꽝스럽게 출발하지만…… 혹시 아는가? 그들이 진짜로 무엇을 해내게 될지를!

준수가 그랬던 것처럼 처음에는 전혀 불가능해 보이던 일도, 계속해서 연구하고 방법을 찾다 보면 어느 순간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고, 그것을 하나하나 풀어내면 결국에는 해낼 수도 있지 않겠는가?

 

믿을 때와 의심할 때의 뇌의 작용은 상당히 다르다. 준수가 세상에 특별한 모습으로 등장하면서부터, 적어도 무술을 배우려는 자들은 누구도 기의 실체를 의심하지 않게 되었다.

이는 사회, 과학, 문화의 패러다임(paradigm)이 근본적으로 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패러다임이란 과학자이자 철학자인 토마스 쿤이 그의 저서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처음 사용한 개념으로, 어떤 시대를 규정짓는 사람들의 견해나 사고를 일컫는다.

 

바야흐로 세상은 물질만능의 시대에서, 일부는 정신문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세상은 조화로워야 하기에 어쩌면 이것이 옳은 방향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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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5/05/16 [21:27]  최종편집: ⓒ gg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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