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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육계, 제1계 만천과해의 적용사례(1)
『만천과해(瞞天過海)』를 사용하는 정치투쟁상의 상용수법
 
서상욱 역사가 기사입력  2007/02/21 [15:56]

 

묵계 서상욱님은 해박한 동양의 역사와 주역, 의서에 통달한 분으로 현재 대학교 강사 및 후학을 가르치고 있다. 특히 동양 고전과 역사 및 철학에 조예가 깊다. ⓒ 데일리안

《노자(老子)》 56장은 이렇게 말한다.

“지자불언(知者不言)이요 언자부지(言者不知)라, 색기열(塞其兌)하고 폐기문(閉其門)하고 좌기예(挫其銳)하고 해기분(解其紛)하며, 화기광(和其光)하고 동기진(同其塵)하니, 시위현동(是謂玄同)이라. 고불가득이친(故不可得而親)하며 불가득이소(不可得而疏)하고, 불가득이리(不可得而利)하며 불가득이해(不可得而害)하고, 불가득이귀(不可得而貴)하며 불가득이천(不可得而賤)이니 고위천하귀(故謂天下貴)러라.”

노자를 해설한 수많은 주석가(注釋家)들의 견해 가운데 진고응(陳鼓應)의 해석을 빌리면 다음과 같다.

“지혜로운 사람은 백성들을 향하여 정치적인 명령을 내리지 않고, 정치적인 명령을 내리는 사람을 지혜롭지 못한 사람이라고 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구멍을 메우고 문을 닫는 것을 즐겨서, 예봉(銳鋒)을 드러내지 않고 분쟁과 근심을 해결한다. 찬란한 빛을 속으로 머금고, 속세에 묻혀 함께 어울리니, 이를 ‘현묘(玄妙)하게 아우르는 경지(境地)’라고 한다. 그들은 이렇게 하여 친소(親疎)를 가리지 않고, 이해(利害)를 따지지 않으며, 귀천을 구분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러한 사람을 존귀한 천하인(天下人)이라고 한다.”

진고응(陳鼓應)의 정치적인 해석과 달리 천재적인 철학적인 주석가 왕필(王弼)은 이렇게 설명한다.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일의 실마리를 찾는다. 질박한 태도를 견지하면서 다툼의 근원을 없앤다. 특별히 드러내지 않으니 만물들이 서로 다툴 일이 없고, 특별히 무시하는 일이 없어서 만물들이 서로 창피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를 현동(玄同)이라 하는데 가까이 할 수 있는 것은 멀리 할 수도 있고, 이롭게 할 수가 있으면 해롭게 할 수도 있고, 귀하게 할 수가 있으면 천하게 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만물은 그냥 두면 되는 것이지 덧붙일 것이 없다”

현대를 정보사회라고 한다. 그 특징을 간략하면 정보의 질과 량, 소통시스템, 해석과 활용이라는 면에서 고도의 ‘드러냄’이라는 작용이 아닐까한다. Mass communication과 Personal communication이 혼재(混在)되어 정보의 전달자는 자신의 전략적 목적에 따라 가공된 정보를 흘리고, 받아들이는 쪽은 사실을 파악하여 자신에게 유리한 전략적 목적을 달성하고자 한다. 그러나 수천년전 노자의 견해는 이러한 가공된 정보가 주는 사회적 폐해를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었다.

진고응(陳鼓應)은 친소(親疎), 이해(利害), 귀천(貴賤)을 따지지 않고 공평하게 일을 처리하는 지도자를 존귀한 천하인(天下人)이라고 한다. 대선(大選)을 앞둔 우리는 이상적인 지도자를 ‘좌예(挫銳)’, ‘해분(解紛)’, ‘화광(和光)’, ‘동진(同塵)’이라는 키워드로 찾아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현동(玄同)’의 참모습이고 어지럽던 지역할거주의(地域割居主義)를 강력한 정치권력과 법으로 강제적 통합을 이루고자 하였던 진(秦)의 멸망을 딛고 건국한 한(漢)이 초기에 황로사상(黃老思想)으로 중국사회를 안정시킬 수 있었던 방법이었다.

좀 더 전략적이고 테크니컬한 쪽으로 해석한 차재(車載)는 《논노자(論老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날카로움(銳), 분쟁(紛), 고고함(光), 세속적임(塵)이라는 대립적인 말과 좌예(挫銳), 해분(解紛), 화광(和光), 동진(同塵)이라는 통일적인 말로 설명한다. 첨예(尖銳)한 물건은 쉽게 단절되어 오랫동안 보전되지 못하니 날카로움이 마모되어야 단절되는 위험을 피할 수가 있다.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편견을 가지고 있어서 자기의 의견을 고집하고 다름 사람의 의견을 배척하기 때문에 시비(是非)와 분쟁(紛爭)이 생긴다.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은 자신의 편견을 버리고 문제를 대국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 햇빛이 비추지 않는 곳은 반드시 어두운 면이 있으므로, 햇빛이 비추는 곳만을 바라보고 비춰지지 않는 곳을 바라보지 않으면 진정으로 찬란한 햇빛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부음(負陰)’ 즉 음(陰)을 덜어내고 ‘포양(抱陽)’ 즉 양(陽)을 더하는 양쪽 측면을 모두 동원하여 상황을 타개한 후에야 비로소 ‘빛을 이용하여 밝아졌다’라는 것이 이루어졌다 라고 말 할 수 있다.

우주에 가득 찬 먼지는 인간세상의 복잡한 모습과 같으므로 세속적인 생각과 방법에서 초탈한다는 것은 비현실적이며, 많은 사람들이 자기 혼자만 맑은 생각과 방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통하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대립적인 면을 알고 있는 것뿐이지 통일적인 면을 아는 것은 아니다.
이런 생각을 바꾸고 사심을 버린 사람이야말로 모든 것을 사랑할 수가 있으며 장애가 없어져 자신의 기량을 제대로 발휘할 수가 있어서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유리한 형세를 말들어 낸다. 그러므로 ‘동기진(同其塵)’은 대립적인 것들을 통일하는 차원 높은 원리가 된다.”

이상 여러 주석가(注釋家)들의 견해를 살펴보면 노자의 이런 생각을 가장 빨리 실행할 수 있는 것이 『만천과해(瞞天過海)』일 것이다. 그것은 재능을 감추고 어리숙한 척하라는 것뿐만 아니라 대립과 통일의 원리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천과해(瞞天過海)』를 사용한다는 것에는 여러 가지의 풍부한 내용들이 포함된다. 더구나 격렬하고 복잡한 정치투쟁 중에는 사람들의 진면목과 목적이 엄폐된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들은 이러한 모든 것을 인정하지 않고 감추어진 자신의 진면목이 다른 사람에게 폭로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어떤 계책을 사용함으로써 결국은 실패를 하고 만다. 계책을 제대로 사용하는 자는 왕후가 되고 실패를 하는 자는 역적으로 몰린다. 동일한 계책을 사용하여 어떻게 다른 결과가 나타날까? 그것은 각자가 가진 뜻, 재능, 명망, 감정, 생리, 권세 등 여러 가지 요인들을 작용하는 기교와 방법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이다.

이러한 도리를 말하면, 독자들은 모두 안개 속을 헤매는 듯한 기분을 느낄 것이고 별 재미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실재로 이러한 계책이 사용된 사례를 들어 이해를 돕는 것이 좋을 것이다.

『만천과해(瞞天過海)』가 사용된 첫 번째 사례는 기원전 613년에 즉위하여 3년동안이나 정사(政事)를 돌보지 않고 밤낮으로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며 즐기기만 했던 춘추시대 초(楚)의 장왕(莊王)과 관련된 것이다. 그는 신하가 자신의 잘못을 간(諫)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고 ‘감히 간하는 자가 있으면 절대 용서하지 않고 죽일 것이다’라는 명령을 미리 내려두었다. 당시에 오거(伍擧)라는 대신이 있었는데 그 명령을 어기고 궁전으로 찾아가 간쟁(諫諍)을 하고자 하였다. 초장왕(楚莊王)은 오른손으로는 정(鄭)나라의 미인을 안고 왼손으로는 월(越)나라의 미인을 어루만지면서 가무(歌舞)를 즐기고 있었다. 이런 모습을 본 오거(伍擧)는 전혀 싫어하는 표시를 하지 않고 태연하게 말했다.

“신이 대왕께 은밀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초장왕(楚莊王)은 은밀한 보고라고 하니 할 수없이 가무를 중단하게 하고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오거(伍擧)를 바라보았다. 오고는 침착하게 천천히 말했다.

“대왕! 고산에 새 한 마리가 살고 있는데 3년 동안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는다고 합니다. 언제 그 새가 울겠습니까?”

초장왕(楚莊王)은 아주 총명한 사람이라서 그 말을 듣고 오거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 지를 알았다. 그리고 이렇게 대답을 하였다.

“3년 동안 날지 않았던 것은 하늘 높이 날기 위해서였고, 3년 동안 울지 않았던 것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 위해서였다. 오거(伍擧)는 돌아가라. 내가 당신이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를 알았다.”

오거(伍擧)는 초장왕(楚莊王)의 말을 듣고 기쁜 마음으로 돌아가 조용히 초장왕(楚莊王)이 어떻게 하는지를 지켜보았다. 그러나 1개월이 지도록 초장왕(楚莊王)은 아무런 변화도 없었고 황음(荒淫)은 더욱 지나쳤다. 조정안의 바른 신하들은 불만이 높아갔다. 이 때 소종(蘇從)이라는 대부(大夫)가 도저히 참지 못하여 죽음을 각오하고 다시 간언(諫言)을 하였다. 초장왕은 그를 보자마자 벌컥 화를 내며 꾸짖었다.

“너는 ‘감히 간하는 자가 있으면 절대 용서하지 않고 죽일 것이다’라는 명령을 듣지 못했는가?”

소종(蘇從)은 기가 죽지 않고 오히려 당당하게 말했다.

“제가 죽어서 대왕을 명군(明君)이 되게 하는 것이 저의 바램입니다”

초장왕(楚莊王)은 그 말을 듣고 즉시 음락(淫樂)을 멈추고 정사(政事)를 돌보기 시작했다. 초장왕(楚莊王)은 곧바로 자기에게 아첨을 했던 사람들 수백명을 사형에 처하고, 오거(伍擧)와 소종(蘇從)을 대신(大臣)으로 삼는 등의 수백명을 중용(重用)하는 인사조치를 단행하였다. 이로서 온 나라의 사람들이 기뻐하였고 초(楚)나라는 크게 흥성하였다. 그 해에 이웃의 용(庸)나라가 재난에 빠지자 이듬해 정벌하였다. 연이어 송(宋)나라를 쳐서 병거(兵車) 오백승(五百乘)을 빼앗고, 혼융족(混戎族)을 공격하여 정벌한 후에 낙문정(洛問鼎)에서 주(周)나라의 천자(天子)와 관병식(觀兵式)을 거행하였다. 또 그후에도 서(舒)나라를 핍박(逼迫)하고 진(陳)나라를 깨뜨려 현을 설치하였으며 정(鄭)나라와 송(宋)나라를 포위하였다가 도움으로 주러 온 진(晉)나라의 원군을 크게 패퇴시켜 중원(中原)을 호시탐탐 노리게 되니 초(楚)나라는 패권을 다툴 만큼의 강대국이 되었다.

이상의 사례는, 초장왕(楚莊王)은 단지 음락(淫樂)을 즐기는 용렬(庸劣)한 군주의 모습이었으나 오거(伍擧)와 소종(蘇從)의 간언(諫言)을 받아들여 나라를 크게 일으키게 되었다. 그러나 실제로 초장왕(楚莊王)은 가슴속에 깊은 계책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으로 『만천과해(瞞天過海)』의 계책을 사용했던 것이다.
초장왕(楚莊王)은 여러 정치세력이 복잡하게 얽힌 상황에서 왕위에 올랐다. 당시에 초(楚)나라의 정계(政界)는 공훈귀족(功勳貴族)들이 인척(姻戚)을 이루어 서로 호응하여 정치세력을 형성하고 있었고 피차간의 결탁을 통해 즉위한지 얼마 되지 않은 초장왕(楚莊王)을 사지(死地)로 몰아낼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런 말이 놀라운 것이 아님은 장왕(莊王)의 할아버지 성왕(成王)이 장왕(莊王)의 아버지였던 목왕(木王)을 태자로 삼자, 농신(弄臣)인 강미(江羋)와 반숭(潘崇)이 결탁하여 위병(衛兵)을 거느리고 궁궐을 포위하고 성왕을 죽이려 했다. 이 때 성왕(成王)은 어찌할 도리가 없어 다음과 같은 하나의 요구를 내어놓았다.

“나를 곰에게 던져주어 다시 죽게 하지는 말아주겠나?”

그러나 이 요구도 과분하다하여 거절당하고 말았다. 이들 권신(權臣)들이 옹립(擁立)의 공을 핑계로 국사를 장악하니 그 위세가 군주도 떨게 할만큼 강력했다. 장왕(莊王)은 물론 그의 아버지도 그들의 권세를 막을 수가 없어서 그들을 소왕(小王)으로 삼았고 마음대로 다스리지를 못했다. 이러한 정황에서 장왕(莊王)은 음악과 미녀에 빠진 척하여 황당한 짓을 하면서 그들이 경계심을 풀게 할 수밖에 없었다. 정적(政敵)들이 속고 있던 동안 장왕(莊王)은 끊임없이 자신의 세력을 키울 수 있는 인물들을 암중모색(暗中摸索)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의 초(楚)나라 정계(政界)는 공훈귀족 가운데 수령격이었던 약오씨(若敖氏)가 장악하고 장왕(莊王)과 힘을 다투고 있었다. 이들 집단이 장왕(莊王)을 왕위에서 끌어내리려 하였으므로 장왕(莊王)은 조정에서 누가 자기에게 힘이 될 사람인지를 알 수가 없었다. 이 때 오거(伍擧)가 먼저 제일 먼저 장왕(莊王)의 테스트에 합격을 했고 오거(伍擧)도 마음이 통하여 기쁜 마음으로 돌아갔다. 오거(伍擧)가 돌아가자 자기의 생각을 전해줄 루트가 생겼다고 판단한 장왕(莊王)은 결정적인 승부수를 던질 수 있는 사람을 찾기 시작했다.
그 후에도 장왕(莊王)은 몇 개월을 음락(淫樂)에 빠진 채로 지냈다. 그것은 장왕(莊王)에게 충성을 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원망을 하도록 하여, 정적들에게 경계심을 풀게 하기 위해서였다. 소종(蘇從)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간언(諫言)을 하러 오자 장왕(莊王)은 드디어 자기 사람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번개처럼 신속하게 수백명의 정적을 제거하는 동시에 평소에 사람들에게 존경받던 인물들을 등용하여 국정(國政)을 장악하게 되었다. 이러한 조치는 사람들의 마음을 통쾌하게 하였고 당연히 많은 국민들에게 지지를 받게 되어 대권(大權)은 장왕(莊王)의 수중으로 돌아왔다. 이것이 곧 승전(勝戰)의 묘계(妙計)로서 ‘체(體)’를 얻어 운용하는 것이니 이기지 않을 도리가 있겠는가?

이로서 장왕(莊王)은 자기의 위성(威聲)을 높였을 뿐만 아니라 계속적인 자기 세력의 확대를 통하여 약오씨(若敖氏) 일족을 성공적으로 몰아내고 통치기반을 확고하게 다질 수가 있었다.

‘상견불의(常見不疑)’는 『만천과해(瞞天過海)』의 전제조건인 동시에 『만천과해(瞞天過海)』의 참된 목적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계책을 쓰고자하는 사람은 일단은 일정한 기간동안 잠복을 하고 정적들이 경계심을 떨어뜨리거나 완전히 풀도록 기다리면서 시기와 조건을 성숙시켜야한다. 그 후에 갑작스럽게 일어나 신속하게 정적을 공격하는 것이 승전의 방법이다. 이러한 ‘삼년불비(三年不飛), 비장충천(飛將沖天), 삼년불명(三年不鳴), 명장량인(鳴將惊人)’이라는 기법(機法)이 정치투쟁에서 정적(政敵)을 제거하는 수단으로 자주 활용되는 것은 만천과해(瞞天過海)의 위력과 실효를 크게 높여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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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7/02/21 [15:56]  최종편집: ⓒ gg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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