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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운스님의 '오늘의 법문'(法門)[113]
세파에 대해서
 
제운스님 객원칼럼니스트 기사입력  2019/02/10 [14:06]

 

▲     © 제운스님 객원칼럼니스트

 


세파(世波)에 대하여
    
    
세파운상상 世波云想想
하일의무위 何一意無爲
난득한단만 難得恨端萬
언무실사사 言无實事私
흔구취중고 欣求炊重苦
불소락무비 不所樂毋悲
시고망심욕 是故亡心慾
오존미만자 吾存美滿慈
    
힘든 세상일 상상 해봐요
무엇하나 뜻대로 되질 않아요
얻기는 어렵고 한은 만갈레라
이것이 세상 일 이라오
구함을 기뻐하면 괴로움 더하고
바람, 없으면 즐겁고 슬픔은 없어
그러므로 욕심내지 않으면
세상은 아름답고 자비는 충만하리라.
    
세파란, 고단하고 힘든 세상을 말한다. 아기가 세상에 태어날 때 크게 울음을 터트리는 것이 어쩌면 힘든 세상살이를 예고하는지도 모른다.

 

일찍이 공자의 아버지 숙량흘(叔梁紇)이 64세의 나이에 아들을 얻었으니 성은 공(孔)이요, 이름은 구(丘)다. 언덕 구자다. 아마 공자의 일생이 여기에 묻어나는 듯하다. 물론 그 이름은 그의 젊은 첩이 니구산(尼丘山)에서 산신께 기도를 올려 낳았다 해서 붙였다는 말도 있지만 공자는 일생을 거의 떠돌이로 살다시피 했다.

 

그에 대해 사마천(祠馬遷 BC 145~86)사기에서 사마천도 그를 “상갓집 개다”라고 기록했을 정도다. 상갓집 개라 하면 엄청 욕 같지만 실상은 현실을 말한다. “밥 주는 사람은 있어도 돌아갈 집이 없다”는 말이다. 즉 떠돌이 신세를 말한다.
    
한 시대상을 두고 사람들이 말하길 “난세 영웅난다”한다. 이 말에는 그만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배부른 세상에 무엇이 더 필요할 것이며 소요가 없는 세상에 질서가 필요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한 이유로 세계문명국을 대표하는 중국을 들여다보면  지금부터 2700여 년 전 춘추전국시대부터 인문학이 발달하고 공자(BC 551~479)에서 한비자(韓非子 BC 280~233)에 이르러 성시를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중국이 실용주의를 선택하기까지는 2000년이 훌쩍 넘는 시간이 흘렀다. 거슬러 올라가면 춘추전국시대 진왕(秦王 BC 259~210)이 중국역사 최초로 6국을 통일하게 된다. 이것이 세계 최대 문명국가로 도약을 하던 시기로 봐도 좋을 듯하다.


춘추전국시대 최초로 불을 지핀 사람은 공자(孔子 BC 551~479 중국 최초 민간 사상가(교육자)다. “목숨을 버려서라도 인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 살신성인(殺身成仁)이다. 인간의 본질적 가치인 ‘사랑’(人)이다. 사랑이란, 단순함을 넘어 요즘 말로 포용, 나아가 인간으로서의 도의가 있는 휴먼니즘이라 해야 할 수 있다.

 

그의 사상적 후계자라 할 수 있는 맹자(孟子BC 298~238)가 “목숨을 버릴지라도 의를 따른다.”(捨生取義)했다. 이 말의 의미를 보자면 인간의 가치는 정의(正義) 도의(道義) 인의(仁義)에서 나온다고 봤다.

 

그의 사상적 뒤를 이은 순자(荀子 BC 300~230)가 나왔는데 맹자의 성선설(性善說)을 반박하며 성악설(性惡說)을 주창한 사람이다. 성악설을 현대심리학자 프로이드 관으로 보면 본능(本能 id)가 죄악을 만든다고 본다. 그는 사상적으로 예(禮)를 중히 여겼다.

 

예란, 분(分)으로써 귀천과 높낮이 지식인과 어리석은 사람(貴賤之等 長幼之差 知愚能不能之分)과 나누거나 구분하지 않고 인간의 도리를 주창했다. 그것이 ‘분’이다. 그는 전국시대 말기에 왕도에 대해 예치국가를 외쳤다.


그의 사상적 토대 위에 한비자(한비자 BC 290~233)가 인간은 삶에 있어서 사랑도 중요하고 의로움도 중요하고, 예의와 분(分)도 중요하지만, 인간은 사회적동물이기에 규칙(法)이 있어야 한다. 주창한다. 이것이 2000년을 훌쩍 넘도록 중국을 지배한 인의예법(仁義禮法) 사상이다. 그것이 오늘의 중국 실용주의로 발전하게 되었다.
    
다소 무거운 중국고대 사상을 들고 나온 데는 오늘 우리의 삶과 과거의 삶이 결코 다르지 않으며 또한 오늘처럼 세상이 각박해서 젊은이들이 돈 30만원을 구하려고 사채를 써서 그것이 두고두고 족쇄가 되어 살아야 하는 오늘 우리들 삶에 다소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보라, 우리는 잘산다고 말한다. 그러나 현실은 무엇이 잘사는지 구분하기 어렵다. 예전에는 돈이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갈 수 있지만 오늘 우리의 삶은 그렇지 못하다.


과거 같으면 생각지 못할 매월 내어야 하는 준조세가 그것이다. 왜 준조세라 하면 우리가 쓰는 폰이 거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신상과 소통이 모두 이것을 통해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건 쓰지 않으려 한다 해서 안 쓸 수 없는 도구이기에 준조세라 말을 한다. 우리는 이런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다만 한 시대는 그냥 물 흐르듯 흘러가지만 그 물 흐름을 잘 파악하고 산다면 인생은 살만한 가치가 있고 그렇지 못하면 인생의 낙오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좋은 환경에서는 좋은 인재가 나오기 어려운 것과 같다. 극복하는 데서 가능할 뿐이다.

 

공자가 그의 이름대로 언덕을 넘어섰기에 그는 역사에서 성인으로 지칭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나의 글에 ‘역사의 피드백’이라는 말을 자주 옮긴다. 역사는 거울이다. 역사를 보면서 현재를 사는 사람은 성공한 삶을 살아가지만, 역사를 모르고 산다면 그는 시대의 낙오자가 된다.
    
세상은 극복하는 곳이다. 극복하지 않는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석가모니가 왕도를 극복했고 자신마저 극복했기 때문에 오늘날 그는 성인으로 추앙되었으며, 예수도 자신을 민중을 위해 던졌기 때문이다.

 

근대 인도가 낳은 ‘위대한 영혼’으로 불리는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도 좋은 환경에서 영국 유학생, 나아가 변호사의 위치였지만, 그는 나라와 국민을 위해 자신을 버렸기에 오늘날 위대한 혁명의 아버지로 남게 되었다.


오늘 우리의 환경도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무엇이기에 목숨을 잃고 목숨을 걸고 저항해야 하는지, 이것이 오늘 우리들의 삶이다. 환경이 주어지기를 바라기 보다는 환경을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할 것이다. 그렇게 될 때 세상은 아름답고 살만하다고 여긴다. 
  
    


제운스님/시인 선화가

해인사 출가, 동화 법주 범어 통도사 등 수행
문인화가, 평론가 석도륜 선생 사사
개인전 : 서울경인미술관, 양평친환경박물관 등 4회

저서 : 너는 금생에 사람노릇 하지 마라, 달마산책, 오가밥상,
그대 안에 수미산도 다 놓아버려라, 채근담, 산사의 주련,
내 마음의 이야기, 그대 마음을 가져오라, 나를 찾아 떠나는 선시여행,
산문의 향기, 당신은 나에게 무엇입니까, 시선일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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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2/10 [14:06]  최종편집: ⓒ gg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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