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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익희 백두산 여행기 2] 하늘호수 백두산 ‘天池愛’ 빠지다
 
박익희 기자 기사입력  2019/09/21 [14:40]

 첫날을 거의 뜬눈으로 보낸 우리 일행은 이구동성으로 자동차 크랙슨 소리 때문에 잠을 못잤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천지에서 필자 박익희, 경기데일리(www.ggdaily.kr) 발행인     © 박익희 기자

 

정말 소음공해는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이런 사회문제를 일으키는 부류는 무언가 욕구불만이 가득 쌓여 "나는 일하는데 너희들은 자느냐? '썅' "이라며 거리에서 침을 뱉듯 크랙슨을 누르며 사이코패스(psychopath) 짓을 한다.

 

아무튼 중국은 14억 인구에 용광로 처럼 펄펄 끓고 있는 느낌으로 인구 60만 통화시도 고층빌딩이 즐비하고 도심에는 송하강의 지류인 비류수가 흐른다.  요란한 LED조명과 천연색 전광판과 도심의 조명이 휘황찬란하여 대도시 같았다.

 

▲ 송화강 지류 비류수     © 박익희 기자

 

어제 저녁에 차돌백이 샤브샤브와 알콜도수가 높은 백주로 취한 상태로 나는 인터넷으로 몇건의 기사를 점검하고 포털로 송고를 했다. 간밤의 요절복통할  빅뉴스는 이글 끝부분으로 미룬다.

 

누구나 쾌식 쾌면 쾌변을 해야하는데 낯선 곳에 오면 긴장해서  몸이 이상을 일으킨다. 그래서 속이 불편하고 머리가 띵해진다. 어쩌면 낯선 곳에서 느끼는 불안감이 원인이 아닐까 싶다.

 

거봉포도와 청포도, 무화과처럼 생긴 맛있는 과일 ​ 다시 짐을 꾸리고 버스에 승차하려는데 농부인 듯한 분이 과일을 사란다. 바구니에는 거봉포도 청포도와 처음보는 과일로 먹음직스러웠다. 농부가 맛을 보여주었다. 붉은 과일 속에 하얀 속살을 드러낸 과일은 맛 있었다. 맛이나 보자며 12위안을 주고 내가 6개를 사고, 친구도 구입하여 차에 올랐다.

 

▲ 농부가 관광객에게 팔기 위해 가져온 과일들     © 박익희 기자

 

박경숙이가 중국어로 과일 이름을 물었고 가격을 흥정했다. 알고보니 남인화도 중국어로 대화를 할 수 있는 수준이다. 나는 구글로 외국어를 통역하는 앱을 깔아왔는데 구글이 안되니 꽝이다. 대화는 소통의 시작인데 난감했지만 두 여성이나 있으니 여행은 걱정이 없겠다.

 

차에 올라 과일을 반으로 나누어먹고 바로 백두산을 향해 출발했다. 차창밖에 보이는 중국의 농촌 풍경이 푸근했고 낯설지 않았다. 모내기를 한 논에는 벼들이 땅심을 받아 무럭무럭 크고 있었고 옥수수밭이 끝없이 펼쳐졌다.

 

▲ 만주벌판에 벼농사 풍경     © 박익희 기자

 

이영걸 가이드는 만주벌판에 '벼가 자란다'는 시를 멋지게 낭송했다.

 

벼가 자란다

 

벼가 있네

벼가 자라네

 

만주벌 벌판에 벼가 자라네

우리에게 무엇이 있더뇨

호미와 바가지 뿐이네

 

호미로 파고 바가지로 퍼서

벼를 키워보세

만주벌을 옥토로 만들어 보세

 

아둔한 내머리로 도저히 정확하게 기억을 못하겠다.  대신에 벼에 관한  좋은 시 한편을 소개한다.

 

 

벼는 서로 어우러져 기대고 산다.

햇살 따가워질수록 깊이 익어

스스로를 아끼고 이웃들에게 저를 맡긴다

 

서로가 서로의 몸을 묶어

더 튼튼해진 백성들을 보아라

죄도 없이 죄지어서 더욱 불타는 마음들을 보아라

벼가 춤출때 벼는 소리없이 떠나간다

 

벼는 가을하늘에도 서러운 눈 씻어

맑게 다스릴 알고

바람 한 점에도 제 몸의 노여움을 덮는다

저의 가슴도 더운 줄을 안다

 

벼가 떠나가며 바치는

이 넓디 넓은 사랑 쓰러지고 쓰러지고

다시 일어서서 드리는

이 피 묻은 그리움 이 넉넉한 힘......

 

 

 

▲ 달리는 차창 밖의 인삼밭 전경, 규모가 엄청 크다.    © 박익희 기자

 

나는 어제 이동 중에 가이드가 설명한 조선족이 사는 집이 어디일까? 굴뚝 있는 집을 가늠해 보았다. 이영걸 가이드는 "우리민족이 사는 집은 온돌구조로 지붕에 굴뚝이 두개 정도 있다"고 말했다.

 

이영걸 가이드는 혹시나 싶어 묻는다며 "현수막을 가져왔느냐?"며 유 국장에게 물었다. "당연하지요" 가이드 왈 "안 됩니다. 중국측은 청바이산이라 부르는 장백산이 내꺼라고 하는데... 한국 사람들이 백두산은 한국땅이라면 좋겠느냐"고 대꾸했다. 그래서 국가 간에도 역지사지(易地思之)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껍질이 하얀 자작나무는 나무를 태울때 자작자작 소리가 난다고 하여 이름을 자작나무로 불렀다고 박판수 식물학자는 가르쳐주었다.

 

다음(DAUM)이 안되어 저 꽃이름은 모르겠다고 했는데 그녀는 꽃을 좋아하나 보다. 그렇다 소소한 행복이 많으면 인생이 즐겁고 윤택하다. 요즘 소확행(小確幸)을 중시한다.

 

지금은 스마트폰에 모든 지식과 해결책이 다있다. 공부를 많이 한것이 능력이 아니라 정보의 활용력과 분석력이 능력이다.

 

모든 식물은 저마다의 빛깔과 향기를 갖고 자태를 뽐내며 번식을 한다. 지구상에 약 25만 가지의 꽃들이 핀다고 한다. 저꽃 이름이 뭐냐고 물으니 "저건 루드베키아, 이것은 원추리"라고 알려주었다.

 

그런데 이번 가이드는 역사 얘기도 별로 하지 않은 것 같다. 가족이 있는 자기집에 몇달간 못가면 지치게 마련이다. 어쩌겠는가. 그는 “아내보다 자식이 더 보고 싶다”고 고백한다. 가이드는 너무 피곤한지 잠을 자면서 에너지를 보충한다. 피곤하면 잠이 보약이다.

 

백두산이 가까워지는지 원시림 속을 버스는 달린다. 호텔에서 부터 약 1시간 왔는데 장백산 매표소에 도착하여 입장권을 사고 절차를 밟았다.

 

산불예방을 위해 라이터는 자진해서 버리고 가라고 했다. 화마는 순식간에 원시자연을 잿더미로 만든다.

 

필자에게는 이번 백두산 여행에 특별한 목적이 하나 있다.

필자가 발행하는 인터넷신문 경기데일리(www.ggdaily.kr)에 기획연재 중인 <자연과 물 & 사람들>에 백두산에 관한 글을 꼭 써야한다는 사명감과 책임감을 동시에 느낀다.

 

많은 사람들이 백두산 천지를 보고 각양각색, 천차만별의 느낌을 갖고 표현했겠지만 나는 나대로의 감상을 하고 싶었다.

 

백두산은 한민족의 시조인 단군이 고조선을 세운 곳이다. 바람.구름. 비를 갖고 신단수 아래에서 나라를 세워 생명의 물로 대지를 적시며 농경생활을 했다는 한민족이 태동한 곳이고, 문명의 발상지이기 때문이다.

 

장백산 아래에서 한국 기업인 농심은 白山水(백산수)음료를 개발하여 한국에서 판매 중이고, 중국에도 판매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장백산 매표소에는 백산수를 광고하는 홍보물이 많이 있었다.

 

천연미네랄이 풍부한 좋은 물을 마시면 건강해지고 질병을 예방할 수 있다. 이것은 필자가 약 5년간 전국의 유명 약수물과 지하수 등을 찾아서 다니며 내린 결론이다.

 

조만간 으뜸수(일명 쌍무지개수 또는 으뜸수)를 새롭게 시장에 내놓을 계획임을 밝힌다. 경기도  양평 강상면 신화리 577번지에서 나오는 지하수 으뜸수는 Ph7.9~8.2의 알칼리수에 천연미네랄이 다른 생수보다 많이 함유되어 있고, 할성산소를 없애는 세레늄 성분이 많아 입소문으로 소리 소문없이 음용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백두산에 집중한다. 필자는 지난해 11월 초순 러시아 연해주로 취재를 가면서 비행기 안에서 눈 덮힌 백두산을 보면서 가슴 뭉클한 감동을 느꼈었다. 인천공항을 이륙한 비행기는 중국땅  요동반도 상공을 지나 단동을 지나며 백두산 근처를 날고 있었는데 한눈에 바로 백두산임을 알았다. 비행 항로를 보니 백두산이 분명했다. 눈 덮힌 백두산은 함부로 접근을 허락하지 않을 것 같았다. 하늘 호수인 천지는 온통 하얀 눈을 품고 있었는데 한참 동안 눈을 떼지 못했었다.

 

▲ 백두산 천지 모습     © 박익희 기자

 

천지 수면 높이가 해발 2200m이다. 분화구에 생긴 하늘 호수로 둘레가 14.4km로 면적은 약 9.81㎢ 여의도 면적보다 약간 크다.

 

 

▲ 1983년 여름에 등소평이 방문하여 쓴 천지(天池)글씨    © 박익희 기자

 

이런 靈山 백두산을 이번에 지연과 학연이 있는 초딩 동창들과 함께 오다니 꿈 같은 일이다.

꿈을 꾸면 이루어지고, 꿈을 쓰면 더욱 구체화되어 달성된다. 꿈을 꾸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알리바바를 창업한 중국의 마윈은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고 말했다.

 북파(北坡)코스인 마지막 정류장에서 내려 백두산을 정상을 바라보니 코스는 예상보다 쉬워 보였고 날씨는 쾌청했다. 많은 사람들이 성지 순례를 하듯이 줄지어 오르고 있었다.

 

▲ 백두산 천지 하산길에 부는 회오리 바람      ©박익희 기자

 

그런데 하산 코스에서 갑자기 회오리 바람이 심하게 불었다. 왜 그럴까? 저 일행이 무엇을 잘못 했을까? 나는 경건한 마음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천지를 향해 다가갔다.

 

높은 산에 오를 때에는 경건한 마음으로 하늘과 땅에 감사하며 아니 온듯 다녀가야 한다. 그래야 대자연이 보존된다. 무슨 공명심에서 바위에 글씨를 새기고, 자연에 큰 상처를 낸단 말인가? 크게 보면 하나 뿐인 지구가 생명체인데 누구 마음대로 바위를 깨고 길을 내며 자연의 본래 모습을 훼손 하는가. 훼손된 생명체인 자연은 얼마나 아플까?

 

우리 인간은  하늘과 땅과 인간이 조화롭게 평화스럽게 사는 길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해야 할 것이다. 自然(자연, 스스로 自, 그러할 然)은 세상에 스스로 존재하거나 우주에 저절로 이루어지는 모든 존재나 상태를 말한다.

 

▲ 한민족의 영산 백두산 천지 모습     © 박익희 기자

 

드디어 천지가 보였다.  하늘의 문인 장백산 천문봉(天文峰)에 도착했다. 한반도 최고봉 백두산이다.  

 

그 속에 품은 하늘 호수 천지! 물빛은 그랑블루! 너무나 푸르고 푸른 하늘 호수에 탄성이 저절로 일어났다. 천지는 고요했고 하늘의 구름을 투영시키고 있었다. 

 

2500m가 넘는 16개 봉우리가 천지를 호위하듯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굳건하게 서있었다. 건너편 봉우리가 북한령인 최고 높이의 장군봉(2750m)이다. 건너편에는 천지로 내려오는 길이 보였다.

 

 동영상 https://youtu.be/OEe4-MZPtV8

 

나도 모르게 두손을 모으고 간절한 기도를 했다.

 

백두산 天池에서

 -박익희-

 

한민족의 성산(聖山)!

마침내 왔나이다.

저를 받아들여 주시고

저를 유용하게 쓸 수 있도록

지혜와 용기를 주시고

홍익인간(弘益人間)이 되게 하소서!

 

한민족의 영산(靈山)!

저 파란 물로

대지를 적시고

수많은 생명체가 기대여 살 수 있도록 은혜를 주소서

청정한 자연을 훼손하지 않도록 지켜주시고

 

대한민국이

자유와 평화, 번영과 풍요를 누리게 하소서

그 누구도 함부로 넘보지 못하도록 힘을 주소서

 

언제나 정의와 지혜로써 화합하도록 도와주소서

우리나라가 우뚝 설 수 있게 도와주소서

 

이 신비한 하늘 호수가

영원히 남아있기를 빕니다.

 

이 땅에 고조선을 세우신 단군이시여

건강한 정신으로 생명을 귀하게 여기고

상식과 원칙이 통하는 공정한 나라로

 

자유민주주의로 평화통일을 이루도록 도와주시고

인간의 존엄과 행복을 누리는 금수강산으로

재세이화(在世理化)하게 하소서

 

 

▲백두산을 오르는 북쪽 언덕길(북파) 코스와 백두산을 중심으로 광활한 원시림이 보였다.     © 박익희 기자

 

▲ 북파 정류장 전경,  뫼 山모양의 건물과 북쪽 언덕길 마지막 건물 모습, 봉고형의 셔틀차량이 수없이 오간다.     © 박익희 기자

 

나는 백두산의 경계비(境界碑)가 어디쯤 있는지를 살펴보았으나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사전에 망원경을 지참했으면 하고 후회했다. 그것은 때늦은 깨달음이었다. 날씨는 선선했고 하늘은 맑았고 백두산에서 바라보니 정말 장쾌한 원시림이 펼쳐져있었다. 이런 대자연이 영원히 지켜질 수 있기를 소망했다.

 

천지의 풍광을 지켜보는 시간을 한 시간 가량 허락했는데 욕심많은 사람들은 사진을 찍고 또 찍어 전망 좋은 포토존에는 사람들이 서로 차지하기 위해 난리였다. 아! 인간의 욕망은 어디까지 적당할까? 불교에서 말하는 탐진치(貪瞋痴)는 스스로 제어가 되지 않을 것 같았다.

 

내려 오면서 보니 山자 모양의 관리소는 나름대로 생각하면서 지은 건물로 손색이 없었다. 건물은 장백산의 위용을 거스러지 않으려는 최소한의 건물로 보였다. 인공의 건축물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거추장스러운 흉물이 된다.

 

조선의 건축물이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다는 뜻)의 철학으로 지어졌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 백두산 천지에서 내려와 백두산 단체 사진     © 박익희 기자

 

가이드가 기다리는 곳으로 내려와 우리 일행은 미리 준비한 현수막도 없이 단체 사진을 찍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중국측이 정한 규정에 따를 수 밖에 없는 억지 규정이라 볼 수밖에....

 

나는 천지에서 내려와서 나는 기념품 가게에서 백두산에서 나는 광물로 만든 기념품을 보았다. 녹색과 검은색의 광채가 나는 희귀한 광물이었다. 오색빛이 도는 계란 크기의 보석도 보았다. 나는 장백산 안내표지판을 촬영했는데 유복환이가 버스에서 얘기해준 것과는 사뭇 달랐다.

 

▲ 장백산 천지 안내판 설명     © 박익희 기자

 

 장백산의 하늘 호수 즉 天池는 중국과 북한의 경계에 있는 칼데라 호수이다. 송화강과 두만강, 압록강의 발원지이다. 천지는 타원형으로 해발 2,189.1m, 면적은 9.82㎢ , 최고 깊이는 373m, 평균 깊이는 204m, 저수량은 20억 400만톤, 연평균 증발은 45cm, 연평균 강수량 1,333mm,  천지평균 기온 영하 7.3도인데 이것은 거대한 자연저수량으로 2000년 기준이다. 이것은 기네스 세계기록으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화산이 폭발한 호수이다.

▲ 백두산에서 나는 광물들, 사진 위쪽 시계 방향으로 취채석, 탄계석, 보석류의 돌과 자운석과 계란보다 큰 옥돌, 자색돌     © 박익희 기자

 

교통사고로 다리를 다친 도재철이가 천지를 감상한 감격을 품은 채 하산했다. 어느 누가 감격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다리가 정상적이지 않은 친구들 모두 안전하게 내려왔다. 그 중에 양손에 등산용 지팡이를 짚은 도재철의 의지가 놀랍다.

 우리 일행은 백두산 천지의 기운을 가득 품고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날씨가 너무 좋았다." "삼대가 공덕을 쌓아야 천지를 볼가말까" 한다던데... "우리 도 회장 기도 덕분이다" 등 서로는 감격과 찬탄을 쏟아냈다. 백두산은 백번 오면 두번 천지를 볼다는 우스개 말도 전해진다.

 

그런데 어느 여자 동기생이 “백두산 하늘에 낮달도 있네”라며 저길 보라며 낮달을 가르켰다. 말간 하늘에는 상현달인듯 낮달이 우리를 지켜보았고, 햇살은 만주벌판과 세상 천지(天地)를 고르게 비추고 있었다. 이곳에는 미세먼지도 황사도 없었다.

 

▲ 백두산에서 하산하는 동기생들 단체사진     © 박익희 기자

 

해발 약 1700m부터는 나무가 자라지 않고 풀과 꽃들만 피어있었는데 제대로 사진은 찍지 못해 아쉬웠다.

 

그런데 내 시야에 원시림 한복판에 거대하게 갈색으로 변한 부분이 보였다. 아마도 전나무 종류인 것 같았는데 그 원인은 모르겠고 중국땅에도 소나무 재선충 같은 치명적인 병충해로 피해가 없기를 바랄 뿐이다.

 

하산 할때 차량은 올라올 때 차량보다 상태도 좋았고, 운전도 차분하게 하여 안심이 되었다. 중국 사람들은 인명재차(人命在車, 사람의 목숨은 차에 달렸다는 뜻)를 모르나 보다. 자동차는 편한 운송수단이지만 때로는 난폭한 살인자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다시 버스를 타고 백두산 천지에서 떨어지는 장백폭포를 보러 갔다. 그곳에서 내려 약 20분 가량 오르니 약 60m가량 되는 폭포수가 두 줄기로 쏟아내고 있었다. 장백폭포는 보기만해도 시원하고 주변의 산세와 어울려 한폭의 그림같았다.

 

▲  장백폭포의 위용과 단체사진   © 박익희 기자

 

▲ 백두산 천지 능선에 어르렁거리는 모습의 바위 형상     © 박익희 기자

 

산이 높으면 골짜기도 깊듯이 거대한 바위가 인간의 쉬운 접근을 막고 있었다. 어느 쪽에는 화산이 폭발하면서 생긴 주상절리도 보였고, 산등성이에는 두 마리 용이 서로 마주보며 으르렁 거리는 바위 형상도 보였다.

 

▲ 장백폭포 아래 온천수가 용출하고 있었다.     © 박익희 기자

 

나무 데크로 조성된 하산 길에는 온천수가 펄펄 끓는 수증기를 내뿜는 신기한 모습도 보였다. 아마도 유황성분이 많이 있는 것 같았다.  그곳을 지키는 청소부에게 수고가 많다며 고마움을 표시했더니 씩 웃는 모습에서 나는 다시 감사의 표시로 미소로 응답했다. 중국은 장백산을 보존하기 위해 철저하게 통제를 하고 있었는데 나는 아주 잘한다고 평가하고 싶다.

 

가이드가 기다리는 곳으로 내려와 우리는 온천수로 삶은 뼈없는 통닭인 계란을 먹었다. 그곳에서 나는 이번 백두산여행을 기념하기 위해 자석이 부착된 꽃이 핀 천지모습과 장백폭포를 담은 기념품을 흥정하여 구입했다.

 

우리집에 도착하여 세계를 다녀온 기념품을 모은 벽면 최상단에 부착했다. 그 어느 곳보다 소중한 추억이기에...

 

한국도 세계유산 '남한산성'에  이런 좋은 점을 벤치마킹하여 도입할 필요가 있겠다. 예를 들면 남한산성은 하루종일 주차비가 너무 저렴하여 모든 사람이 자가용을 몰고온다. 그러면 자동차로 인하여 좁은 길에 위험할 뿐더러 정체현상이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장백산 처럼 남한산성 아래 대규모 주차장을 마련하여 주차비를 조금 저렴하게 하고, 셔틀버스로 운행하면 좋을 것 같았다.

 

필자가 남한산성이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자 칼럼으로 제안을 했는데 반영은 되지 않았다. 아울러 산성 안에서 살고있는 주민과 상인들에 대한 합리적인 대안으로 세계유산으로 관광객과 등산객에게 동시에 만족할 대안을 찾기를 바란다.

 

▲ 통나무 의자     © 박익희 기자

 

우리 일행은 온천욕 대신에 중국 조선족의 문화와 기예를 볼 수 있는 쇼 공연장으로 갔다. 그곳에는 대형 천막안에서 여러 종류의 공연을 했느데 그중에 ‘마상기예’가 가장 출중했다.

 

달리는 말 위에서 줄넘기 하기, 거꾸로 매달리기, 말 두필이 달리며 인간탑 쌓기 등 수원화성 문화제 때에 마지막 날 하는 야조(夜操)공연보다 한수 위의 공연으로 돋보였다. 저만큼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연습과 수련을 했을까  박수를 보냈다.

 

우리는 둘째 날의 일정을 마감하고 호텔로 입실했다. 내가 배정받은 호텔 방은 개수대에 연결한 호스가  자꾸만 빠져버려 물바다가 되어버렸다. 행여 미끄러질까봐 샤워타월로 물을 훔쳐내었다.

 

인터넷도 잘 연결되지 않아서 애를 먹었다. 그것은 준비해간 도시락이 백두산 오지에서 작동되지 않아 통신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랬다. 나중에 재부팅하여 겨우 세상과 소통하고 급한 업무를 처리했다.

 

▲ 장백폭포를 관광하고 내려와 주상절리가 보이는  곳에서 기념촬영    © 박익희 기자

 

술꾼들이 호텔에서 먹겠다며 식당에서 담아온 먹거리를 차에 두고 내렸다. 그래서 우린 깡소주로 주님의 은총을 주고 받았으며, 어제밤 있었던 빅 뉴스를 마침내 공개했다.

 

어젯밤 자동차의 크랙슨 소리로 잠못들어 뒤척이고 있었는데 코를 골며 자던 친구가 일어나더니 열어놓은 내 여행가방으로 소변을 보는 게 아닌가? 불을 켜지 않은 상태라 어두컴컴한 실내에서 술이 취했기에 소변은 마렵고 어디가 어딘지 모르고 한 짓이다. 

 

내가 일어나 “너 어디 오줌을 누고 있니?” 그때사 정신이 번쩍 드는지 친구는 화들짝 놀라 거시기를 욺겨쥐고 화장실로 들어가는 모습이 가관이었다.

 

술꾼들이 냉장고에 오줌을 쌌다는 이야기와 장롱문을 열고 이불에 오줌을 쌌다는 이야기는 들어 봤어도 여행용 가방 속에 오줌을 싼 이야기는 처음 일 것이라며 모두가 포복절도(抱腹絕倒). 박장대소(拍掌大笑)로 난리가 났다. 요절복통(腰折腹痛)에 뒤집어졌다.

 

화장실에서 나온 친구가 “시골집 황토방 앞 같았다”며 “나도 모르게 그만 오줌을 쌌다”며 미안해 어쩔 줄 몰라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을 담을 수 없듯 나는 "고의가 아니니 이해한다"고 말했다. 가방 안의 옷은 심하게 젖지 않았다. 아마도 그 친구와 영원한 추억이 될 것이다.

 

우리가 머물렀던 곳에는 호텔 본체와 떨어져 있어 다른 사람에게 소음피해가 가지 않았다. 이 또한 다른 사람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아 다행이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고향 마을 장산(長山)은 장백산(長白山)과 이름부터 연관이 있고, 天池의 못 지(池)자는 지방(池方)초등학교와 관련이 있었다.

 

우리는 모두 단군의 후손으로 화목하게 살면서 행복지수를 높혀야겠다. 오늘 하루를 무사히 보낼수 있게 해준 하느님과 우리 모두에게 감사를 드린다.

백두산 여행기(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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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9/21 [14:40]  최종편집: ⓒ gg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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