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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운스님의 '오늘의 법문(法門)' [130]
동지 섣달에(冬之臘月)
 
제운스님 객원칼럼니스트 기사입력  2019/12/26 [10:04]

 

▲     © 제운스님 객원칼럼니스트

 


동지섣달에(冬之臘月) 
  
무심위납연 無心爲臘年
전국동승선 全國動僧禪
실고휴류읍 失庫鵂鶹泣
원도객불면 遠途客不眠
 
무심히도 해는 섣달이라
온 나라가 요동쳐도 스님은 참선만 하네
곳간 잃은 부엉이 슬피 울고
길 먼 나그네 잠 못 이뤄 하노라.
 
세월을 흐르는 물에 비유한다. 흐르는 물은 끊임이 없기 때문이다. 예부터 그렇게 비유를 해왔다. 여기서 무심이란 글은 글대로 하면 생각 없음이다. 생각이 없다 함은 생각을 초월한다는 의미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생각할 여유가 없다는 말이 된다.


지금의 한국은 대혼란으로 요동친다. 마치 거대한 쓰나미가 밀려오는 것 같아서 무엇을 집어삼킬지 짐작하기 어렵다. 지난 여름부터 공수처(공직자수사처)법과 연동형선거제도의 국회상정을 두고 지금 그 끝을 달리고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반환점을 돌아선 현 정부가 야당과 국민들이 반대하는 가운데 그토록 그것을 관철해야 하는지 진실로 안타까운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현 정부의 권력형 비리수사가 수개월을 넘기며 연일 언론에 오르내리는데 진실로 개혁을 위해 이런 법을 만든다고 다수의 국민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덧붙이자면 자신들의 권력을 지키고 또한 그러기위해서는 야당을 무력화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공수처법은 12체제인 홍콩에서 시행하는데 그곳에서도 우리처럼 기소권과 수사권 모두를 가지지 않는다. 즉 수사권만 있지 기소권한은 없다. 이런 유래가 없는 법을 만들려는 문 정부가 큰 오판을 하고 있다.

 

불교에서는 한번 생성된 것은 그냥 사라지지 않는다 해서 정업불멸(定業不滅)이라 한다. 시간은 돌고 있고 역사도 돌고 있다. 그 무엇이라도 그냥 없어지지 않는다. 에너지 불변의 원칙처럼 말이다.

 

권력이란 길지 않다. 길 수가 없다. 앞으로 2년 몇 개월 후 권력이 바뀌면 현 정부에서 권력을 농단한 자들은 적폐청산에 오르게 된다. 그때 가서 후회할 것을 알면서도 지금처럼 행동할 일인가?

 

중국 청대의 소설가 조설근(曹雪芹)이라는 사람의 이야기다. 그는 좋은 집안에서 살았지만 선대의 잘못이 있어 늘 가난하게 살면서 지조를 지키려 애를 썼다. 그가 남긴 글귀가 오늘 우리사회에 귀감이 되겠기에 옮겨본다.


부를 멀리하고 가난을 가까이 하여 예로써 서로 벗하는 자도 천하에 있지만 친척을 멀리하고 벗을 속이며 재물 때문에 의를 져버리는 자가 세간에는 많구나.” (遠富芹貧 以來相交天下有 疎親謾友 因財絶義世間多)
 
오늘의 시국은 의와 지조보다는 재물이 우선이고 권력에 목맨다. 내일은 오지 않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오늘 취하고 보고 범법하고 보자는 심리가 우리사회 만연하다.

 

이러한 난국에 자신을 돌보고 인간의 심성을 밝힌다.”(上求菩提 下化衆生)는 높은 도덕적 가치를 지닌 종교인이 그 몫을 다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불교승려들이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절간에 앉아 참선을 한다는 것은 개인의 수행이다. 그것이 잘못이라 말하진 않는다.

 

다만 시대가 이토록 엄중한데 다수는 아니래도 사회에 영향이 미칠 수 있는 고승들이라면 이런 시국에 권력자들을 향하든 국민들을 향하든 법문(法門) 한마디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불교는 늘 호국을 해왔다. 자신의 수행보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오늘에 이르렀다.


부엉이는 늘 곳간에 식량을 준비하는 새다. 그런 새가 곳간을 잃었을 때 그 심정이 어떨까? 또한 길 먼 나그네가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다면 어찌 먼 길을 제대로 갈 수 있겠는가?

 

이 두 구(二句)는 비유다. 지금의 서민생활이 곳간을 잃을 정도로 어렵다는 뜻이고, 먼 길 나그네는 우리가 설계하면서 살아가는 앞날에 대한 불안감에 대한 뜻이다.


세상사에는 정답은 없다. 아무리 소중한 삿갓을 귀하게 써도 태풍이 불면 삿갓을 고쳐야 하고 발가벗은 상태에서 불을 맞으면 수치심을 걷어차고 뛰쳐나가야 하는 것처럼 우리사회가 그 무엇을 정답이다 아니다 할 것인가?
 
현금의 시국을 보면 의혹이 뻔하고 잘못이 백일하에 들어나도 그것을 외면하려고만 하는가 하면 오히려 그런 사람들을 부축이고 환대하며 보호하려고까지 하는 세상이다. 가령 어떤 잘못이 있어도 반은 찬성하고 반은 반대를 하니 이런 현상을 어떻게 판단할 수 있겠는가?

 

속담에 눈 둘 가진 사람이 눈 한 개 가진 사람들 마을에 가면 병신소리 듣는다.
이 대목에서 공자 같은 성인은 역시 성인다운 판단을 했다. 자신의 공부나 덕망이 살면서 터득한 면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타고난 면이 있다는 생각에서 그는 생이지지(生而知之 나면서 안다는 말)를 말했다가 어느 날 바닷가 어부와 대담 중 생이지지가 아님을 판단해 그는 제자 안연 등을 모아놓고 자신이 말한 생이지지는 틀렸다고 말했다.

 

우리 모두가 공자의 시대도 아니고 공자 같은 성인의 품성을 지닌 건 더욱 아니다. 하지만 세상의 안목이 축출한 성인들의 가르침을 늘 새겨보아야 할 시점이 지금의 우리시대가 아닌가 한다.

 


제운스님/시인 선화가

해인사 출가, 동화 법주 범어 통도사 등 수행
문인화가, 평론가 석도륜 선생 사사
개인전 : 서울경인미술관, 양평친환경박물관 등 4회

저서 : 너는 금생에 사람노릇 하지 마라, 달마산책, 오가밥상,
그대 안에 수미산도 다 놓아버려라, 채근담, 산사의 주련,
내 마음의 이야기, 그대 마음을 가져오라, 나를 찾아 떠나는 선시여행,
산문의 향기, 당신은 나에게 무엇입니까, 시선일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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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12/26 [10:04]  최종편집: ⓒ gg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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