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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삿갓 방랑詩 -나그네 가는 길에 詩가 있어] (12) 慰勞(위로)
시로 가련의 서운한 마음을 달래주다
 
이상호 칼럼니스트 기사입력  2024/01/23 [13:48]
▲ 이상호 칼럼니스트, 소소감리더십연구소 소장, 전) 천안월봉고등학교 교장

 시로 가련의 서운한 마음을 달래주다.

 

눈이 내리고 며칠이 지났다. 아직 곳곳에 눈이 쌓여 있었다. 가련은 며칠을 두고 김삿갓을 더 붙잡아 둘 궁리를 하였다. 그러던 중 갑자기 떠오른 것이 함흥 부윤 홍치준(洪致俊)이 자식을 가르쳐 줄 훈장을 구한다는 소문이었다. 가련은 그 소문을 곱씹다가 채비를 차렸다. 사또를 찾아간 것이었다.

 

사또를 찾아간 가련은 김삿갓이란 가객이 자기의 집에 머물고 있으며 천하의 문객이고 학식이 뛰어남을 고했다. 그래서 훈장으로 잡아두면 좋을 것이라 했다. 홍치준은 김삿갓이란 이름을 이미 들어본 적이 있는지라 흡족해 하였다.

 

특히 가련이 김삿갓을 잡아두려고 안달하는 것을 보고 함흥에서도 비범한 재주를 가진 기녀인 가련이 김삿갓에게 마음이 단단히 홀린 모양이라고 여겼다. 그러면서 가련의 말대로 김삿갓을 자식을 가르치는 훈장으로 삼아 보려고 마음먹었다. 

 

집에 돌아온 가련은 사또가 김삿갓을 보자고 한다는 말을 전했다. 김삿갓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은근히 거절하는 눈치였지만 그래도 고을 사또가 보자고 하니 가볼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 김삿갓은 채비를 차렸다. 그런데 가련이 본 김삿갓의 차림은 사또를 만나고 올 차림이 아니었다. 아예 떠날 채비를 한 것이 아닌가? 그 모습을 본 가련이 만류하여도 소용이 없었다. 김삿갓은 가련에게 “어차피 떠나야 할 사람은 미련을 더 남기지 말고 깨끗이 떠나야 하는 것이 좋다”면서 발길을 재촉하려 하였다. 

 

김삿갓은 사또를 만나보고 난 후 그길로 다시 유랑의 길을 떠난 마음이었다. 눈 내리는 날 새벽 스스로 다짐하며 자기를 채찍질 한 것이 아닌가? 절대로 흔들리면 안 된다고 여겼다. 그러기에 가련의 만류에도 마음은 변함이 없었다. 혹한이지만 어디 몸 부칠 곳이 없겠는가? 김삿갓은 단단히 채비를 차리고 나선 것이었다.

 

가련은 몇 번이고 만류하다가 더는 잡을 수 없음을 눈치채고 떠나보내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면서 눈물을 훔쳤다. 그것을 본 김삿갓의 마음이 좋지 않아 가려던 발길을 멈추고 돌아서서 가련을 위로한다. 몇 마디 위로의 말을 전하고 가련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 혜원 신윤복의 월하정인     © 경기데일리

 

“내가 자네를 떠나면서 시를 좋아하는 자네에게 옛날 시 한 수를 읊어 주겠네. 이 시를 듣고 나면 좀 위안이 될 것일세.”

 

김삿갓은 거침없이 시를 읊었다. 

 

衆鳥同技宿(중조동기숙)

天明各自飛(천명각자비)

人生亦如此(인생역여차)

何必㴃沾衣(하필루첨의)

 

새들은 같은 나뭇가지에서 잠을 자도

날이 밝으면 각자의 길로 날아가네

인생의 만남과 헤어짐도 이와 같으니

어찌하여 눈물을 흘려 옷을 적시나

 

衆鳥(중조)는 무리 지어 날아다니는 새들이다. 이들은 한 나뭇가지에서 잠을 잘 때가 많지만, 날이 밝으면 각자의 길로 날아가는 것처럼 사람들의 인생도 같은 곳에 머물며 정을 나누었으나 만남과 헤어짐은 자연 이치이거늘, 어찌하여 눈물을 흘려(㴃沾) 옷깃을 적시려 하는가? 가련 그대와 나의 만남도 이와 같으니 내가 떠난다고 너무 슬퍼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가련은 김삿갓이 읊어 주는 시를 듣고 마음의 서운함을 가라앉혔다. 그리고 김삿갓을 더는 붙잡아 둘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체념하는 모습이었다. 그것은 이미 알고 있었던 일이나 김삿갓에 대한 가련의 애틋한 마음이 솟구친 결과였다. 마음을 다잡은 가련은 눈물을 보인 자기의 모습이 혹여 떠나려는 김삿갓의 마음에 짐이 되지나 않을까 걱정되어 한마디 하였다. 

 

“어른 말씀 잘 알겠습니다. 어른의 말씀 마음에 새기겠습니다. 가시는 길 평안 하시고 혹여 또 오실 길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다시 오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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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4/01/23 [13:48]  최종편집: ⓒ gg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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