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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삿갓 방랑詩 -나그네 가는 길에 詩가 있어] (14) 별리(離別2)
인생에는 이별도 참 많구나
 
이상호 칼럼니스트 기사입력  2024/02/13 [21:54]
▲ 이상호 칼럼니스트, 소소감리더십연구소 소장, 전) 천안월봉고등학교 교장 

 가련(可憐)과 이별하고 걷는 김삿갓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가던 길을 멈추었다 다시 걷기를 반복하였다. 그래도 가련이 당부한 함흥 부윤 홍치준(洪致俊)은 만나고 떠나야 한다.

 

김삿갓은 꼭 그리하리라 마음먹었다. 홍치준이 아무리 자기 자식을 가르치는 스승으로 들어앉으라 해도 결코 그렇게 하지는 않을 것이라 마음먹었다. 그것은 거듭하여 다짐하는 초심의 연장이었다.

 

김삿갓이 가고 있는 곳은 고을 사또 함흥 부윤 홍치준(洪致俊)이 있는 관아였다. 그래서일까? 발길은 더욱 무거웠다. 추운 겨울날 이별하여 걷는 걸음걸이에다 내끼지 않는 곳에 가는 마음이 중복되었기 때문이리라. 걷다가 멈추기를 반복한다. 김삿갓은 허탈한 발길을 옮기다가 혼잣말처럼 시 한 구절을 중얼거렸다. 

 

花發多風雨(화발다풍우)

人生足別離(인생족별리)

 

꽃이 피면 비바람이 많아지듯

인생에는 이별도 참 많구나

 

그렇다 자연의 이치는 꽃이 피면 날씨가 조용하였으면 좋으련만 시기하듯 비바람이 몰아친다. 그러니 꽃은 이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른 봄날 목련이 탐스럽게 피었다. 그 꽃을 감상하려니 했더니 하룻밤 자고 나니 봄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었다. 어느새 탐스러웠던 목련꽃은 추한 꼴로 땅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세월은 무심하고 인생 또한 무상하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만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그 많은 사람과 또 헤어진다. 인생은 그런 것이다. 헤어지고 또 만나고, 만나고 또 헤어지고... 걸음을 옮기는 나그네의 발길은 점점 무거워진다. 김삿갓은 이 이별시를 홀로 읊으며 인생의 무상함을 되새긴다. 그러면서 홀로 이렇게 다짐한다. “그래, 인생은 어차피 이별인걸, 이 한 생을 이렇게 나그네로 살다가 가리.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만나고 얼마나 많은 이별을 하게 되랴. 그것은 나의 업보(業報)니라” 

 

김삿갓이 이별에 대한 온갖 생각에 잠기다 보니 문득 떠오르는 이별시가 있었다. 고려 시대 시인 정지상의 대동강(大同江)이라는 시였다. 김삿갓은 혼잣말로 그 시를 중얼거렸다. 그것은 가련과 이별의 아픈 마음을 스스로 달려보려는 것이기도 했다. 

 

▲ 화조도 /심규선     ©이상호 칼럼니스트

雨歇長堤草色多(우헐장제초색다)

送君南浦動悲歌(송군남포동비가)

大同江水何時盡(대동강수하시진)

別淚年年添綠波(별누년년첨록파)

 

비 그친 긴 둑에는 풀빛 푸른데

남포로 임 보내니 슬픈 노래 솟구친다

대동강 물은 어느 때나 마를까?

이별 눈물을 해마다 더해주는구나

 

이별의 슬픔을 절절하게 읊은 시이다. 첫 구에서 歇(헐)은 ‘그치다. 쉬다’의 의미를 지니므로 雨歇(우헐)은 비가 그친 것을 말한다. 長堤(장제)는 길고 긴 대동강 둑을 지칭한다. 草色多(초색다)에서 초색(草色)은 풀 색깔이니 푸른색을 의미하고 多(다)는 많다는 것이니 푸른색이 완연하다는 것이다. 

 

둘째 구에서 送君(송군)은 사랑하는 님을 떠나보내는 것이다. 여기서 군(君)은 낭군 혹은 사랑하는 남자를 통칭하는 것으로 보아도 좋을 것 같다. 南浦(남포)는 님이 떠나는 장소다. 님은 아마 남포에서 배를 타고 떠난 모양이다. 悲歌(비가)는 슬프고 애절한 노래다. 애가(哀歌) 곧 엘레지다. 그것이 動(동)하니 動悲歌(동비가)는 슬픈 노래가 솟구쳐 오르는 것이다. 

 

셋째 구의 大同江水何時盡(대동강수하시진) 즉 대동강 물은 어느때 가야 마를까? 라고 한 것은 이별의 슬픈 눈물이 너무 많으니 그칠 날이 없다. 하여 대동강 물이 마를 날이 없듯이 슬픈 눈물 마를 날이 없다는 것이다. 그 눈물은 넷째 구의 別淚年年添綠波(별루년년첨록파) 에서 말했듯이 해마다 더해간다. 그 이별의 슬픔이 골수에 사무치도록 크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 시의 분위기로 보아 비 온 뒤의 풀빛이 푸르니 아마 봄날이었을 것이다. 봄이 무르익을 때 화자는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고 있다. 이별한 장소는 대동강 남포다. 님은 거기서 배를 타고 떠났다. 님을 이별한 사람은 여인이고 떠난 사람은 남자다. 님이 떠난 그 자리에 서니 슬픔을 가눌 길이 없다. 대동강 물이 마르지 않듯이 슬픔의 눈물은 해가 갈수록 더해진다. 이별의 슬픔이 골수에 사무친 심정을 읊은 시이다. 

 

정지상(鄭知常 ?~ 1135/고려 인종13)은 고려 때의 문신이며 시인이었다. 그는 불교와 도학사상을 받아들였으며 풍수도참설에도 조예가 깊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라 최치원 이후 고려 전기 한시 문학을 주도했던 시인으로도 평가받는다.

 

그는 서경파로 1127년(인종 5) 척준경을 탄핵하는 상소를 올렸는데 인종이 그것을 받아들여 척준경을 유배시키는데 공을 세워 정계에서 두각을 나타내었고 인종의 총애를 받았다. 그리고 척준경을 유배시킨 날 왕명에 의해 기린각에서 〈서경〉을 강론하고 주식을 하사받았다. 1130년 선왕의 벗이자 총신이었던 곽여가 죽자 왕명에 의해 제문과 〈동산재기〉를 짓기도 했다.

 

그는 시(詩)뿐만 아니라 문(文)에도 조예가 깊어 당대에 김부식과 쌍벽을 이루었다. 당시 개경파와 서경파가 대립하여 칭제건원을 하자는 논의와 서경 천도를 하자는 주장이 강하게 대립했을 때 묘청과 함께 서경 천도를 주장k여 개경파이자 중앙문벌귀족 세력의 중심인 김부식과 강하게 대립했다. 결국 묘청의 난이 일어나고 정지상은 묘청의 난에 연좌되어 김부식에게 죽임을 당했다. 그러나 그가 고려조에서 계속 찬양되어 온 것은 시인으로 능력이 탁월했기 때문이었다. 

 

김삿갓이 이 시를 떠올린 이유는 무엇일까? 가련과 헤어지는 자신의 심정이 그와 같다는 뜻일 수도 있고 자신을 떠나보내는 가련의 마음이 그와 같다는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대동강 물이 마르지 않듯이 김삿갓과 가련 사이 이별의 슬픈 눈물 마르지 않을 것이라는 은유가 담겨 있다.

 

가련과 이별하고 홀로 추운 겨울 길을 걷는 김삿갓의 마음에도 계속 이별의 슬픈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김삿갓은 이렇게 생각하며 마음을 달래고 있었다. “만남이 있는 만큼 이별도 있다. 그러니 인생은 이별의 연속이다. 어차피 나그네는 오늘 만나 내일 헤어지는 것 아닌가? 이별을 너무 슬퍼하지 말지어다.”

 

이렇게 김삿갓은 깊은 사랑을 나눴던 가련과 이별하게 되었다. 김삿갓은 그것을 숙명으로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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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4/02/13 [21:54]  최종편집: ⓒ gg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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