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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석 기고]실크로드 문화유적 답사기(1) - 하서회랑과 둔황
찬란한 문명의 흔적을 더듬으며
 
데스크 기사입력  2015/09/04 [00:11]

경기데일리는  이동석씨가 보내온 영남불교문화원(원장 김재원)이 주관한 실크로드 문화유적 답사기 - 하서회랑과 둔황를 3회에 걸쳐 연재를 한다. 실크로드는 동양과 서양을 잇는 문명의 교류길로써 경제적인 의미 뿐만 아니라 종교적, 사회적으로도 중요하다.<편집자 주>
  

▲ 명사산 낙타체험     © 경기데일리



1 장도에 오르며
 
금년 여름 삼국유사문화유적 답사회의 실크로드 답사코스가 난주에서 둔황에 이르는 하서회랑(河西回廊)으로 결정되었을 때, 평소 가보고 싶었던 지역이라 설레는 기대를 하면서도 그 역사적 중요성에 막연한 중압감이 나를 감쌌다. 이 지역을 모르면 중국 역사의 절반이 사라지고, 우리나라 고대사의 반을 눈감고 보는 것과 같다는 김재원 불교문화연구원장님의 말씀도 말씀이려니와, 몇 년전 TV에서 일본 NHK가 제작한 실크로드 다큐멘터리를 감명깊게 보아온 터라 문명교류의 현장에 다가간다는 점이 나를 숙연하게 했다. 잘 보고 잘 느끼고 와야지..... 각오를 새롭게 하고 장도에 올랐다.
 
8월 13일 오전, 출국을 위하여 대구공항에 도착하니 벌써 함께 갈 낯익은 얼굴들이 보인다. 대부분 작년 실크로드 5차 답사때의 면면에다 몇 분은 금년에 새로 합류한 것 같다. 반갑게 서로 인사하고 배부된 자료집을 펼쳐보니 답사 일정이 만만치 않게 빡빡하다.
 
첫날부터 북경을 경유하여 난주공항에 도착, 그리고 바로 무위로 이동! 다음 날부터 무위, 장액, 주천, 가욕관, 둔황으로 쉴세없이 강행군을 해야 할 듯 하다. 하나의 문화유적이라도 더 답사하게 하려는 인솔 대장님(?)의 애살이 느껴진다.
 
유라시아를 관통하는 실크로드는 고래로부터 군사적, 상업적, 종교적 교류의 길이었다. 짧게는 장안(지금의 서안)에서 호탄까지, 길게는 천산산맥이나 파미르 고원을 넘어 이스탄불 내지 로마까지 수많은 군인, 상인, 승려들이 나름의 목적으로 내왕하였던 길이다. 그 중에서도 타클라마칸 사막의 테두리를 따라 동서로 난 오아시스길은 예로부터 문명교류의 주요 통로였다.
 

▲ 사막의 오아시스 월아천의 야경     © 경기데일리


세계지도를 놓고 보면, 실크로드 오아시스길에 있어서 중국 본토와 서방세계를 연결하는 길목에 해당하는 하서회랑이 보인다. 황하의 서쪽 복도라는 뜻의 하서회랑(중국에서는 하서주랑이라고도 한다)은 북으로는 고비사막, 남으로는 기련산맥을 끼고 옛날부터 중국 한족과 흉노, 돌궐, 몽골 등 이민족들의 각축장이었다. 흔히들 오랑캐라 불리는 이민족들은 호시탐탐 물자가 풍부한 본토를 노렸고, 중국의 역대 왕조들은 이 골칫거리 이민족들을 격퇴하는 것이 국가적 중대사였다.
 
흉노족이 횡행하던 기원전 2세기말, 한무제는 마침내 하서회랑을 점령하고 이 곳에 무위, 장액, 주천, 둔황이라는 하서사군을 두게 된다. 이로써 서역과의 더욱 안정적인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많은 문화유산들이 축적되고 세계불교예술의 보고로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되었다.
 

▲ 기련산맥     © 경기데일리


이러한 서역의 안정을 바탕으로 한무제는 눈을 동쪽으로 돌려 동이족 정벌을 위해 고조선을 침공하여 기원전 108년 낙랑, 진번, 임둔, 현도의 한사군을 설치하게 된다. 우리로서는 쓰라린 역사를 경험한 셈이다. 최근 중국에서 도모하고 있는 일련의 동북공정이 이러한 과거의 역사에 기초해서 옛 고구려를 중국역사화하고 있음을 볼 때, 씁슬함을 금할 수 없다. 이번 여정은 석굴암의 원류를 찾는 본래의 목적과 함께 고조선 멸망의 원인에 해당하는 중국의 서역경영 현장을 둘러 보고, 이에 수반된 동서문물교류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는데도 그 의의가 있을 것이다. 
  
 
2 둘째 날, 무위(武威)에서 장액(张掖)까지
 
본래 하서회랑은 감숙성 난주 서북방 180km에 있는 해발 3,000m의 오초령 고개밑 고량협(古浪峽)에서 신장위구르 자치주와의 경계에 있는 성성협(星星峡)까지 1,200km 이상의 복도형 구간을 일컫는다. 폭이 좁은 곳은 13km, 넓은 곳은 무려 200km가 넘는 광활한 지역이다. 전날 대구에서 북경을 경유 난주공항에 도착 즉시 버스로 야간에 무위로 이동했기 때문에 자세한 주변 풍광을 보긴 힘들었으나, 차창사이로 꽤나 많은 터널을 통하여 오초령을 지나온 것 같다.
 
간단한 아침을 먹고 무위시 답사에 나섰다. 옛 이름은 양주(凉州)로 기원전 121년 한무제가 가장 먼저 하서사군을 설치하였으며 현재에도 인구 270만의 이 지역 중 가장 큰 오아시스 도시이다. 먼저 들른 곳은 해장사(海藏寺)라는 정토종 사찰인데, 원나라때 티벳 라마교 사찰로 변환된 탓인지 그 영향의 흔적이 곳곳에 나타나 있다.

 

▲ 해장사 패루와 포대화상     © 경기데일리

 

정면에 4주 3간 3층의 나무로 구성된 패루(牌樓)와 그 안쪽의 불뚝한 배를 다진 포대화상(布袋和尚)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 뱃속에 모든 복이 들어있단다. 하하! 마침 음력 칠월 초하루날이라 소원성취를 비는 지역 주민들의 내방에 꽤나 복잡했다. 이 지역은 과거 중국에 불교가 전래된 길목이어서 그런지 불교신자가 많다고 한다. 옛날 5호16국 시대 천산부근의 쿠차왕국에서 후량왕조의 인질로 잡혀와 불경을 번역했던 고승 구마라습(鳩摩羅什)도 1년간 머물렀던 지역이다. 한족이 대부분이나 소수민족으로 티벳계 장족도 많이 보인다.
 
발길을 돌려 무위시의 자랑인 동분마를 보러 뇌대한묘(雷臺漢墓)를 찾았다. 1969년 낙뢰의 신인 뇌신을 모신 뇌대아래 동한시대의 장군의 벽돌무덤에서 현재 중국여행 뇌대한묘 공원의 마답비연상의 상징물인 동으로 주조된 99점의 마차의장대가 발굴되었다.

 

▲ 뇌대한묘 공원의 마답비연상     © 경기데일리


 그 중에서도 예술적 가치가 가장 높은 것이 맨 앞에 있는 한 필의 동분마(銅奔馬)인데, 중국의 우수한 고대문화를 대표한다는 평가와 함께 1971년 문학가이자 역사가인 곽말약(郭沫若; 1892~1978)에 의해 마답비연(馬踏飛燕)으로 칭해지게 되었다. 높이 34.5cm, 길이 45cm, 무게 7.15kg의 조그만한 마상이다. 그 형태가 우리나라 경주에서 출토된 천마와 비슷하게 보인다.


예로부터 흉노 등 이민족의 침입에 시달리던 중국으로서는 말에 대한 애착이 유별났음을 느낄 수 있다. 오죽하면 서역에 파견된 장건이 가져온 천마를 보며 한무제가 안도와 기쁨의 눈물을 흘렸겠는가? 
 
이어서 당나라시대 측전무후와 안사의 난에 얽힌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는 대운사(大雲寺)에서 북방종을 대표하는 파구형의 종(종의 끝부분이 가지런하지 않고 파도모양의 외양을 가진 종)을 감상하고 하서회랑의 두 번째 도시인 장액으로 향했다. 지나가는 차창사이로 군데군데 마른 풀이 듬성듬성한 불모의 사막이 이어진다.

 

▲ 마답비연상 - 뇌대한묘내     © 경기데일리

 

그래도 차도 연변에 방풍 방사용 나무들이 꽤나 심겨져 있었다. 황량한 악조건을 극복하려는 인간들의 노력이 눈물겹게 느껴진다. 무위에서 3시간 정도 걸려 장액에 도착해서 약간 늦은 점심을 위해 현지식 식당에 들어갔다. 그런데 중국의 현지 음식들은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밥, 야채, 육류, 탕국 등이 가지런히 나오지만, 기름기가 많고 특유의 향료를 가미하기 때문에 좀 느끼한 편이다. 그래서인지 종종 차나 술이 곁들여지는 것 같다. 벌써 우리의 고추장 맛이 그리워진다. 
   

▲ 대불사 와불     ©경기데일리

 

식사후 찾아간 대불사(大佛寺)는 시내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장액은 본래 감주(甘州)로 불리던 곳으로 몽골에 의해 멸망한 서하왕조(1028~1228)시대 적극적인 한화정책을 펼쳐 도시에 사원, 불상, 탑 등 불교유적이 많이 남아있다. 9칸 너비에 7칸 길이의 2층 건물의 대불전에는 길이 34.5m, 어깨 넓이가 8m에 달하는 중국 최대의 와불상이 누워있다.

 

중심에 나무를 기초로 그 위에 점토를 붙여 만든 목심소조상으로서 4m 너비의 불상 귀위에는 8사람이 나란히 앉을 수 있다 하니, 그 어마어마한 크기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이 사찰은 원나라 쿠빌라이 칸의 출생지로서 그의 모친의 시신을 안치한 장소로 전해지고 있다.

 

▲ 대불사 에서 필자 이동석    ©경기데일리


오늘 일정의 마지막으로 장액의 단하지모(丹霞地貌) 지질공원 칠채산(七彩山)에 도착하니 석양의 해가 조금씩 저물고 있었다. 붉은 사암이 주종인 이 퇴적층 산자락은 햇빛이 비치는 뱡향에 따라 여러 가지 색으로 단장하고 있었다.

 

일명 무지개산! 해발 2,180m에 동서로 약 45km, 남북으로 약 10km에 이르는 층층이 교착되는 기이한 형상이 이채롭다. 많은 관광객들 틈새에서 몇 커트 사진을 찍고 산을 내려와 다음 여정인 주천으로의 이동을 준비했다. 주천까지 다시 3시간여의 야간 이동이 기다리고 있었다.

 

▲ 장액 칠채산     ©경기데일리

 

 

차안에서 꾸벅꾸벅 졸면서 주천의 숙소에 도착하니 거의 자정을 가리키고 있었다. 빡빡한 일정이었지만 배움의 보람에 즐거웠다면 자기 위안의 소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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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5/09/04 [00:11]  최종편집: ⓒ gg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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