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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석 기고]실크로드 문화유적 답사기(2) - 하서회랑과 둔황
주천(酒泉)에서 둔황 명사산(敦煌 鳴沙山)까지
 
데스크 기사입력  2015/09/04 [00:14]

 3 셋째 날, 주천(酒泉)에서 둔황 명사산(敦煌 鳴沙山)까지
 
답사 3일째, 주천호텔에서 가욕관(嘉峪關)으로 가기 위해 버스에 오르니 차창밖으로 멀리 눈덮인 기련산맥이 보인다. 학창시절 즐겨 읽던 무협지에서 종종 인용되었던 기련산은 많은 설화와 전설을 담고 있는 성산이다. 기련산의 맑은 물이 이 곳 하천을 적시면서 과거 한무제가 흉노 토벌의 공으로 하사한 술과 섞여 주천이란 지명이 생겨났다 한다.

 

▲ 가련산     © 경기데일리

 

▲ 기련산맥     ©경기데일리

 

주천의 옛 지명은 숙주(肅州), 감숙성의 숙에 해당한다. 주천은 기원전 107년 하서사군이 설치된 이래, 5호16국시대, 남북조시대와 수, 당시대를 거치면서 티벳, 투르크, 탕구트 등 다양한 민족들이 섞여 상업, 종교, 예술면에서 화려한 문화를 꽃피웠다. 그 후 1226년 징기스칸의 군대가 당시 탕구트의 서하왕국을 함락하고 자치군으로 운영하면서 번영이 다시 찾아왔고 실크로드의 핵심 길목으로서의 기능을 유지할 수 있었다.
 
가욕관으로 가는 길에 잠깐 위진남북조 시대의 벽화묘에 들렀다. 벽돌로 쌓여진 지하묘에 내려가니 사방의 벽돌에다 그 당시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주인공의 출행, 연회, 목축, 양잠 등 다양한 그림들을 비교적 보존이 잘 된 상태로 그려져 있었다. 일명 프레스코 화법으로 그려진 이 벽화들은 천연염료를 사용하여 그렸기 때문에 그다지 변색되지 않았다 한다.

 

▲ 위진벽화묘 그림카드     © 경기데일리

 

이러한 벽화는 그대로 우리나라 삼국시대의 고분에 영향을 끼쳤다 하는데, 자세히 보니 옷모양새가 우리나라 고구려시대의 옷과 비슷하다. 특히 눈에 띄는게 고구려 벽화에도 등장하는 파르티안 활쏘기 자세이다. 말을 타고 가면서 뒤돌아 서며 활을 쏘는 그림인데, 이는 등자(말 발걸이)를 이용하지 않고는 어려운 유목 기마민족 특유의 문화라 한다.
 
정오 무렵에서야 만리장성 서단의 가욕관에 도착했다. 남쪽에 기련산맥의 봉우리가 있고 북쪽에 용수산맥과 마종산맥의 여러 봉우리에 둘러싸인 험준한 곳이다. 1372년 명나라 홍무제는 여기에 성을 쌓아 최서단의 관문으로 삼았다 한다. 말로만 듣던 서쪽 변방에 서니 감회가 남다르다.

 

▲ 만리장성 서단 가욕관에서 필자 이동석     © 경기데일리

 

영토의 끝자락에서 그 당시 병사들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이 성을 지켜냈을까? 사방이 황량하다. 가욕관에 이어진 성벽은 겨우 2~3미터 높이의 흙벽으로 되어 있다. 이 것을 보던 일행 중 몇 분이 설왕설래한다.


“과연 만리장성이 이민족 방어용이었을까? 아니면 그냥 상징적인 구조물일까요?”
“글세, 둘 다 해당되지 않겠습니까?”
“이민족의 선발대가 넘어 오더라도 후속대가 가축들을 몰고 넘어오지 못할 정도로만 쌓은 것 같은데요”
“그래요, 이런 변방에선 꼭 방어 목적뿐 아니라 서로간의 교역도 필요했겠지요. 아마도 그리 높이 쌓을 필요는 없었을 겁니다. 허허”
 

▲ 토성으로 이루어진 만리장성     © 경기데일리


가욕관을 뒤로 하고 우리 일행은 이제 대망의 둔황으로 향했다. 가욕관에서 둔황까지는 5시간 정도 걸린단다. 몰려오는 피곤에 잠시 눈을 붙였다가 다시 창밖을 보면 계속되는 사막뿐이다. 
  
이런 황량한 사막에 무엇이 살 수 있을까? 그런데 의외로 살고 있는 생명이 꽤나 있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고비3보라 해서 낙타풀, 홍류, 쇄양풀이 있는데, 낙타풀은 낙타의 먹이로, 홍류는 건축물 벽재로, 또 쇄양풀은 한약재로 나름대로 요긴하게 쓰인다고 한다. 이러한 사막에도 쓰임새가 있는 생명이 자라다니 대자연의 조화에 고개가 숙여진다.

 

▲ 지역특산물 - 하밀과외     © 경기데일리


일행들의 요청에 따라 버스가 고속도로변에 잠시 섰다. 목도 마르고 출출한 김에 이 지역 특산물인 하밀과와 수박을 사서 한 조각 베어 무니 꿀맛이다. 비가 거의 오지 않고 일조량이 많으니 과일만큼은 달고 싱싱하다.
 
둔황 명사산에 도착하니 날이 어둑해지고 있었다. 더군데나 바람도 불고 약간 흐린 날씨라 시야가 그리 좋지 못하였지만 낙타체험을 하기로 했다. 낙타는 의외로 온순했다.


명사산 기슭을 터벅터벅 낙타를 타고 가면서 옛날 실크로드의 대상들의 모습을 가만히 그려봤다. 온갖 고난을 무릅쓰고 상업적 목적으로 내왕했겠지만 결과적으로 인류의 문명교류에 이바지했지 않는가?

 

▲ 명사산 낙타체험     © 경기데일리

 

▲ 사막의 오아시스 월아천     © 경기데일리


낙타에서 내려 감칠맛 나는 고운 모래를 만끽하며, 오아시스의 진면목인 월아천을 둘러보고 완전히 어두워져서야 명사산을 빠져 나왔다. 돌아보니 어둠에 쌓인 월아천의 불빛은 환상적이었다.
 
숙소에 짐을 끌르고 일행 몇 분과 함께 둔황시내로 나갔다. 시내는 별로 둘러볼 데도 없을 정도로 조그만했지만, 야시장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 회족이 운영하는 노천 테이블에 앉아서 양고치구이, 과일, 생맥주를 시켜 먹으면서 둔황의 밤을 즐겼다. 푸짐한 음식에 비해 입맛은 그다지 땡기지 않았지만 이국의 향기에 취해 늦도록 떠들었다.

 

둔황! 얼마나 오고 싶었던 곳이던가? 비록 옛날의 영화는 다시 오기 어렵더라도 둔황이 가진 문화적 매력은 앞으로도 계속되리라. 
 

▲ 둔황 야시장     © 경기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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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5/09/04 [00:14]  최종편집: ⓒ gg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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