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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서 깊은 우물 '모례가정(毛禮家井)'과 신라 최초의 절 '도리사(桃李寺)'
<자연과 물 & 사람들>
 
박익희 기자 기사입력  2017/07/17 [14:25]

신라에 최초로 불교를 전한 스님은 묵호자 아도화상이다. 묵호자가 신라에 불교를 전파하기 위해 선산군 도개리 모례가에 머슴살이를  하며 머물렀던 집이 모례가(毛禮家)이다.  이 집에는 유서 깊은 우물이 지금도 그대로 남아있다.  

 

▲ 경북 구미시 선산읍 도개리에 있는 유서 깊은 우물 '모례가정' 모습,  깊이는 약 3m로 수초가 싱그럽다     © 박익희 기자

 

지난 7월 15일  대구를 방문했는데 친구가  모례가정과 도리사 취재를 권했다. 필자 친구의 고향이라 모례가정과 도리사, 일선리 고분유적, 해평읍 연꽃 등을 잘알고 있었다.
 
필자의 취재 본능이 발동하여  이른 아침에 선산지역을 잘 아는 다른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필자는 친구에게 전화로  "대구 온 김에  이곳을 취재하고 싶은데...  나를 그곳에 좀 데려다 줄 수 있겠느냐?"고  부탁을 했다
 
내 친구는 "당연히 해야지"하며  "첫마디에 OK" 이다. 칠곡 3호선 지하철 종점에서 만나  취재에 나섰다
 
소탈한 친구와 나는 25번 도로가 생기기 전의 옛 도로를  따라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적멸보궁 도리사를 찾았다. 돌기둥으로  만든 '해동최초 가람성지 태조산도리사'라고 써 있는 일주문을 지나자 도리사  입구는 느티나무 터널로 환상적인 길이 이어졌다. 친구는 이후락 씨가  심은 느티나무라고 전했다.
 
▲ 도리사 일주문 모습, '해동 최초 가람 성지 태조산 도리사'라고 편액이 걸려있다     © 박익희 기자
 
도리사는  겨울에 눈속에 복숭아꽃이  핀 길지(吉地)라고  한다
냉산(冷山)이라고 불렸던 태조산(691m) 중턱에 자리잡은 절은  많은 사연을 담은 곳인데 무엇보다 역사책에서 배운 그대로 고구려 승려 묵호자가 이곳에서 절을 지은 곳으로 산 중턱  사찰에는 오랜 연륜을 말해주듯 아름드리 소나무가  멋을 더했고  가람 설선당(說禪堂)에는  주지스님의 낭랑한 독경소리가 들린다.
 
▲ 도리사 설선당 옆에 있는 수조 음용수대 모습     © 박익희 기자
 
▲ 이규보의 시 한천(寒泉)    © 박익희 기자
 
도리사 샘터에는 멋스런 수조에서 음용수가 쉼 없이  흘러나왔다.  목마른 길손은  목을 축였다.   
 때마침 사찰에서는 천도제를 올리는지  한참을 기다려도 스님은 만날 수 없었다.  보살님이 오래 걸릴 것 같다는 귀띔에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寂滅寶宮)과 팔정도(八正道)로 해탈에 이른다는 기념물과 천년의 미소를 조각한 범종루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모례가정을  찾아나섰다.
 
 
▲ 적멸보궁 뒤편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사리탑 전경     © 박익희 기자

▲ 스님의 독경 축원문은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 박익희 기자
▲도리사 주변의 아름드리 소나무     © 박익희 기자
 
 
아도화상은 냉산에 도리사를 짓고 난 후에  손가락으로 아스라이 보이는 황악산을 똑 바로 가르키며 저곳이 길지이니 절을 지으라고 하여 오늘날 김천 직지사(直指寺)가 창건되었다.    
 
하산길에  낙동강의 유유한 흐름을 조망할 수 있는  곳에서 사진을 찍었다.  구름 속에 점점이 떠 있는 산하의 모습이 아름다웠다.  태조산을 벗어나 구미보를 경유해  낙동강에 가득 담은  물을 보고 괜히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둑방을 따라서 자전거 도로가 잘 나있었다.
 
▲ 태조산 하산길에서 바라 본 낙동강과 인근의 저수지     © 박익희 기자
▲ 일선리 고분군 모습, 길 건너편에도 고분군이 있었다     © 박익희 기자
 
바다같이 평평한 해평 들판에는 큰 저수지도 있었고 강물이 있는 곳이니 물 걱정은 없는 곳이기에 선사시대부터 이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씨족부락으로 농경생활로 고단한 삶을 영위했으리라. 일선리 고분군이 이런 역사를 증명하고 있었다.  
 
예로부터  인간은 농경생활을 시작하면서 물을 끌어오는 관개수로를  만들어  분배하면서 이로움을 더해가며  풍년을 만들고  제천의식으로 자연과 신에 감사했다.
 
낙동강의 발원지는 3곳  문경새재 초점과 강원도 태백 황지연못,  소백산으로  알려져있다.
낙동강은 영주 안동 예천 문경 점촌 상주을  거치며  구미 칠곡 성주 달성 밀양 삼천포를 거처 남해 바다로  흘러간다.
 
 강물은 매마른 땅을 비옥하게 하고 민중의 애환을 달래왔다. 지난  6월까지 전국은 심한 가뭄으로 하늘을 원망했다.  농민들은  타들어가는 목마름에  비를 간절히 기원하는 기우제를  올리며  애타는 마음을 달랬다. 마침내 농민의 간절한 기도에 응답이라도 하듯 하늘은 눈물을 뿌려 대지를 해갈시켰다.
 
▲ 모례정과 향나무     © 박익희 기자
 
모례가정을 기념하는 상석과 안내문  우물터옆에는  수령 약 300년된  향나무가 서있었다.  우물에는 정방형의 나무 창살 덮게를  덮었는데  속을 들여다 보니 그 속에는 맑은 샘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우물 깊이는 약 3m 정도 였다. 돌로 쌓은 우물 둘레에는 초록식물이 싱싱하게 자라고 있었다.  두레박만 있다면 물을 퍼올려  당장 물맛을 보고 싶었다.
 
우물가 근처에는 이런 방문객의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수도꼭지 2개를 대리석  물받이로 만들어 놓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수도꼭지 손잡이를 돌려보니 샘물이 콸콸 쏟아졌다. 음용가능 한 물이란  표식은 없기에 손만 씻고  물의 시원한 촉감을  느꼈다. 
 
모례가정 담장 너머엔 무슨 박물관을 만드는지 인부들이 보이고 초가와 한옥 여러 채가 보였다  인근에는 상주에서 영천으로 이어지는 고가 고속도로에는  큰차들이 쌩쌩 지나고 있었다.
 
▲신라불교초전기념관     © 박익희 기자
 
신라불교초전지기념관을 짓는데  감독인 듯한 사람이 7월말 완공  예정이라고 알려주었다. 개관이 되면 각종 체험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적한 옛길에는  배롱나무가  가로수로 심어져 붉은 꽃을 흐드러지게 피워내고 운치를 더하고 있었다.  비가 살짝 와서  몽환적인 날씨에 모내기를 한 들판에는 벼들은 땅심이 올라 싱싱하게 자라고 있었고  평화로운 목가적  풍경이 펼쳐졌다.
 
 
▲ 낙동강 구미보 모습     © 박익희 기자
 
구미와 선산이 배출한 인물로는 길재·하위지·이맹전·유응부·이우가 명현이고, 장택상 전 국무총리, 박정희 전 대통령, 김재규 전 중정부장, 허주 김윤환, 김관용 경북도지사 등이 있다.
 
한편 독립기념서 33인의 한 분인 용성스님은 1886년 경북 구미 아도 모례원에서 오도했다고 전해진다. 도개(道開)라는 지명은 불도(佛道)가 열린다는 뜻이라고 한다.
 
박정희 대통령이 놓았다는 일선교 다리는  가난했던 시절에는 해평 사람들은 큰 고마움을  느끼고  감사를 했다고 친구는 전했다.
 
다리는 낙동강 이쪽과 저쪽을 쉽게  오갈 수 있는  수송의 통로이고  문화를 연결하는  수단이었으리라. 지금은 이곳 선산군은 구미시로 편입되어 행정구역이 변했다.
 
이번 취재에 정보를 준 친구와 동행 해준 친구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며  졸고를 마친다.
 
▲신라불교초전지가념관  내부   © 박익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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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7/17 [14:25]  최종편집: ⓒ gg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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