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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러시아 연해주 답사기 9] 슬라뱐카의 피라미드는 왕의 무덤인가?
연해주 한인들의 얼을 찾아서
 
김성윤 기자 기사입력  2019/01/04 [12:46]

슬라뱐카는 연해주 하산군의 군청이 있는 프리모르스키 남부지방의 행정중심지이자 러시아와 북한 그리고 러시아와 중국 국경과 가까운 연해주 최남단 항구도시이다. 인근 마을을 뺀 슬라뱐카 중심지 인구는 1만7천명쯤 된다고 하였다.

 

주도인 블라디보스톡에서 직선거리로는 52km이나 육로는 199km나 떨어져 있다. 육로가 이렇게 먼 이유는 해안선의 굴곡과 군데군데 있는 계곡을 돌아가거나 넘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슬라뱐카에 인접한 자루비노 항구에서 중국 국경선까지는 38km에 불과하다.

 

▲ 5층 콘크리트로 지어진 연해주 최남단의 하산군의 군청, 오후 5시인데 우리일행 이외에는 오가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 김성윤 기자


이 항구를 개방하고 개발한다고 요란스러운 때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시 고요한 시골 항구로 남아있다. 그 이유는 러시아가 예전과는 달리 많이 개방하고 외국인 기업에 친화적이라는 말에 너도나도 투자를 서둘렀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도 사회주의 잔재가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러시아 극동에서 사업하는 것은 마치 ‘얼음이 녹는 빙하’에 비유하여 기업인들 사이에서 크레바스에 빠질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오간다고 한다.

 

이 말은 예전보다 규제가 풀리고 법이 정비 되면서 수많은 외국기업과 투자자들이 몰려들고 있지만, 한순간의 방심만으로도 '빙하가 갈라져서 생긴 좁고 깊은 틈' 속으로 빠질 수 있다는 경고와도 같다.

 

이러한 혹독한 환경 속에서도 롯데나 포스코, 현대상선 등 한국의 대기업들은 이곳에 투자하여 수익을 내고 있다고 하였다. 참으로 우리 민족은 야생초 같은 민족이다. 쳐내고 뽑히고 짓밟혀도 야생초의 강인한 생명력으로 버텨낸다. 마치 박인걸 시인의 “잡초의 꿈”처럼 우리민 족은 어떤 상황에서도 절망은 없다.


잡초의 꿈

-박인걸-


짐승에 밟히고
때론 인간에게 밟혀도
잡초는 다시 일어선다.


조상 적부터 잡초로 살아와
밟히는 일에 이골이 났다.


자신들의 신분을 알기에
화초를 부러워하거나
인간들이 북돋아 주는
채소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맨몸으로 태어나
비바람에 휘청거리며
까만 밤이면 두려움에 떨지만
아침 햇살을 기다리며
기나긴 시간을 견딘다.


농부가 휘두르는 낫날에
사정없이 몸이 잘려나가도
운명 앞에 굴복하지 않고
새 순으로 돋아나 저항한다.


잡초의 시들지 않는 꿈은
황무지에 꽃을 피우고
사막을 풀밭으로 바꾸며
삭막한 도시에 풀 냄새가 풍기는
자기들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전봇대와 콘크리트 담벼락까지
인간들에게 빼앗긴 영토를
되찾아 오고 싶어
오늘도 안간힘을 다해
울타리를 기어오르고 있다. 

그러나 불과 82년 전 여기에 정착하여 살았던 우리 한인들은 스탈린에게 왜 당하는지도 모르고 당하였다. 우리는 그 우(愚)를 더 이상 반복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려면 상대의 전략을 파악하고 알아내야 하며 그들의 심리 상태를 꿰뚫어 보아야 한다. 극동의 여러 시내 중심가 쇼핑몰에 가보면 롯데칠성음료 제품인 탄산음료 밀키스와 캔커피 레쓰비를 구매하는 러시아인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그 이유는 이곳 현지인의 입맛에 맞추어 제품을 출시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롯데는 극동에서 소비자 친화적인 제품을 수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내륙에서는 롯데호텔 모스크바점 개설 이후 블라디보스톡에 있는 현대호텔을 인수하여 롯데호텔 블라디보스톡점도 개설하였다. 롯데는 극동과 모스크바를 거점으로 삼아 카자흐스탄의 1위 제과업체인 라하트마저 인수하였다.

 

이 같은 대기업들의 투자는 성공을 거두고 있지만 대부분의 영농회사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우리 일행도 이곳에 농업투자를 하기 위한 작업의 일환으로 이곳에 왔다. 그리고 3일째 하산군의 농지를 둘러보았다. 특히 오늘은 오전부터 아지미 마을을 비롯한 자루비노 항구 인근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12시 40분이 넘어서 오찬을 하였다. 
   

▲  오찬장 앞 하산군민들이 거주하는 아파트지역, 이 아파트에는 행정공무원들이 주로 거주 한다.   © 김성윤 기자


러시아 하산군 대외교류 관광협력 코롯키흐 부장(Chief of the tourism and international cooperation division :Korotkih Oleg) 부장이 해산물을 사다가 요리를 부탁하여 놓았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한 것 보다 가격이 비싸다. 그런 이유로 "그곳에서 먹지 않겠다."고 하니 "사 온 해산물 원래 가격만 내고 다른 식당에서 먹으면 된다."고 하였다.

 

그렇게 하여 대게를 비롯한 새우와 생선을 시장에서 구입한 액수의 돈만 지불하고 가지고 나왔다. 그 해산물을 다른 식당으로 가지고 가서 다른 요리를 시켜서 함께 먹다 보니 생각 밖으로 먹을거리가 풍요로운 오찬이 되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말처럼 아주 아름다운 금강산의 경치를 구경하는 일도 배가 고프면 즐길 맛이 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무슨 일을 하든지 배를 우선 채우고 시작하라'는 말은 이때를 두고 하는 말 같아 보였다.

 

정말 오랜만에 대게와 새우를 비롯한 해산물을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14시 20분경에야 즐거운 오찬을 마칠 수 있었다. 바로 옆이  슬라뱐카 박물관이 있기에 잠시 들리기로 하였다.

 

나는 지난해 6월에 이곳에 왔을 때 십이 찬 반상기와 개다리소반 그리고 한인들이 살았던 모형 초가집을 제작하여 기증한 바 있어서 내심 반가웠다. 박물관이라야 한인들이 살았을 때 사용했던 농기구를 비롯한 오래된 생활용품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  우리 한인 선조들이 사용했던 쟁기 보습   © 김성윤 기자


박물관을 둘러보는 동안 안드레이 박물관장이 이곳으로부터 가까운 곳에 피라미드가 있다고 하여 모두를 놀라게 하였다. 안드레이 박물관장의 말대로 왕이나 왕비의 무덤인가? 아니면 천제단인가? 궁금한 나머지 서둘러 그곳으로 가기로 하였다.

 

슬라뱐카 박물관으로부터 자동차를 타고 약 5분쯤 언덕을 넘어가면 슬라뱐카 해변이 나온다. 끝없이 이어진 동해의 해변에는 하얗고 고운 모래가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  고운 모래가 넓게  깔린 해안가에  신선한 공기가 동해 바다로부터 불어와 몸과 마음을 가볍게 해주었다.   © 김성윤 기자


그 해안을 180도 돌아서면 여러 산이 보인다. 그중에서도 해안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마치 삼각형 모양의 인공구조물 같은 산이 보였다. 한눈에 보아도 자연 상태의 산과는 달라 보였다. 분명 사람의 손이 간 인공구조물이었다.

 

우리는 왕이나 왕비의 무덤인 피라미드가 아니라 천제단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러시아 사람들은 천제단 자체를 알 리가 없었다. 따라서 이런 인공구조물이 왜 만들어졌고 무엇에 사용하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이집트에 있는 왕이나 왕비의 무덤처럼 피리미드로 이해하고 있었다.

 

이런 무지한 상태에서 그나마 다행인 것은 훼손을 막기 위하여 출입을 통제하면서 현재는 천문관측소로 이용하고 있었다. 우리는 강화도 마니산 참성단이 있고 강원도 태백산 천제단이 있다. 천부경(天符經)의 원리로 만든 중국 북경의 천단공원이 있다.

 

천부경은 환인이 환웅에게 전하였고, 다시 단군에게 전하여진 경전이다. 러시아의 연해주에는 우리와 같은 역사나 문화가 없다. 다시 말해 이 지역에는 러시아의 고유한 문화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1860년 이전까지만 하여도 러시아가 이 땅의 주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안드레이 박물관장마저도 삼각형처럼 생긴 이 산이 무슨 용도로 쓰였는지도 모르면서 막연히 왕의 무덤인 피리미드로 알고 있었다. 
   

▲ 안드레이 슬라뱐카 박물관장이 피라미드라고 소개한 인공구조물의 모습, 3단으로 되어 있다고 하였는데 멀리서 조망 하였을 뿐 가보지는 못하였다.    © 김성윤 기자


물필유주 (物必有主)란 말이 있다. 그 뜻은 모든 물건은 옛날부터 주인이 있었다는 의미이다. 이 천제단의 주인은 아마도 강화도 마니산의 참성단이나 강원도 태백산 천제단의 주인인 우리 한인들일 수도 있다. 그 이유는 이곳에도 사람이 살았으므로 사직이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옛날 중국에서는 새로 나라를 세웠을 때 천자나 제후가 단을 쌓아 토지신이나 곡식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제도가 있었다. 이곳에 한인들이 가장 많이 살았었기에 한인들의 고유 제단이거나 중국의 영향권에 있었던 시기에 사직을 모셨던 곳으로 보였다.

 

문제는 멀리서 조망하였으므로 이 산이 인공 구조물인가? 아니면 자연 상태의 산이 그렇게 보이는지는 알 수가 없다. 이를 규명하려면 시간을 두고 더 연구해야 할 것 같다.

 

▲  산 위쪽에서 내려다본 안드레이 슬라뱐카 박물관장이 피라미드라고 소개한 인공구조물   © 김성윤 기자


그러나 생각지도 못한 피라미드 덕택에 슬라뱐카 군 소재지 넘어 아름다운 바크만 해변과 보이스만 해변을 구경할 수 있었다. 또한 그들이 자칭 이름 붙여준 피라미드를 돌아 한눈에 아지미의 포구와 동해의 푸른 물을 눈으로 보고 바람에 실려 오는 동해바다의 상쾌하고 신선한 바다 냄새도 맡을 수 있었다.

 

여기까지 올라오는 길은 차로 시속 6km 정도의 속도로 왔다. 비포장도로에 경사가 심할 뿐만 아니라 도로가 많이 훼손되어 있었다. 마치 어른들의 속보처럼 느린 속도로 우리를 태운 노후버스가 40여 분 동안 온 힘을 다하여 달려왔기에 이 높은 곳에 올라 설 수 있었다.

 

사람으로 치면 80세 넘은 낡은 버스를 타고 와서 다시 정상 근처서 25분쯤 도보로 올라가야 아지미를 조망할 수 있는 정상에 도달할 수 있었다. 정상에는 아파트 공사를 위한 채석장으로 바위를 잘라낸 굴곡진 평지가 나온다.

 

그곳을 지나 정상에 서면 동해가 한눈에 들어온다. 왼쪽의 바크만 해변과 오른 쪽의 보이스만 해변이 동해와 어우러진 모습은 인간 세계가 아닌 이상세계 같아 보였다.

 

맑고 푸른 해수가 바크만 해변에서 보이스만 해변으로 보이스만 해변에서 다시 바크만 해변으로 살짝살짝 어루만져주고 있기에 파도소리마저 잠재워버렸다.

 

마치 박인걸 시인이 표현한 “바다”란 시처럼 그 아름다운 주변이 한 눈에 들어 왔다. 그 광경은 오래도록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 같다.
 
바다

-박인걸-

세상의 눈물은 흘러 바다로 간다.
구름이 떠돌다 외로워 울고
나무들이 한 여름 지쳐서 울고
풀들이 한 낮에 더워 울고
별들은 한 밤에 두려워 울고
산속을 헤매는 사슴이 서러워 울었다.


산이 울 때면 눈물이 폭포수가 되고
들판이 울 때는 눈물이 강을 이룬다.
억울한 사람의 눈물과
슬픈 이들이 쏟은 눈물이
강을 이루고 대양(大洋)이 된다.


바다가 짠 이유는 눈물이기 때문이며
바다가 맑은 이유도 눈물이기 때문이다.


바닷가에서 파도 소리를 들으면
슬픈 이들의 사연이 들리고
영혼의 고운 노래가 들린다.


바람이 불면 아주 사납게
맑은 날에는 정겹게 들려온다.


바다는 모든 눈물을 받아 주는
어머니의 넓은 가슴이다.
어떤 눈물도 모두 닦아준다.


그래서 사람들은 바다를 그리워하며
그곳에 가면 가슴이 확 트이는 것이다.


이 같은 고요와 비경 때문인지 여름이면 관광객이 수없이 모여든다고 하였다. 오염원이 없는 이곳의 자연의 세계에 머물다 슬라뱐카에 있는 하산군청으로 돌아온 시간은 4시 59분이었다. 군청을 상징하는 큰 조각품이 콘크리트 건물 정면에 서 있다. 

 

▲하산군청 정면에 서있는 상징물인데 아마도 배의 닻을 의미한 것 같다. 1861년에 배가 들어와 이곳을 개척 하였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다.     © 김성윤 기자


시간이 오후 5시가 지났는데도 군청 공무원들은 뭔가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남자들보다 여자 공직자가 훨씬 많아 보였다. 그러나 얼굴엔 미소는커녕 무뚝뚝해 보였다.

 

거의 1시간 40분 동안 하산 군청에서 농업 투자를 위한 의향서를 만든다며 일부는 복도에서 일부는 사무실을 기웃거리며 보내야 했다. 내 일생에 이렇게 무료하고 지루한 시간을 보낸 적은 없었다. 일도 이렇게 처리한 적이 없었기에 아주 큰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일이란 급히 서두른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 행위는 목마른 사람이 짐독으로 갈증을 푸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차분하게 따져보고, 설득하고, 부딪쳐 본 뒤에 시간을 가지고 대안을 마련해야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다.

 

거안사위(居安思危)란 말처럼 안전할 때 위태로움을 대비하여야 실수를 줄일 수 있다. 날아오르는 화살은 추락을 예고한다지 않는가? 이때의 우리의 행위는 마치 굶어 죽기를 앞둔 사람이 독초로 허기를 채우는 것과 같고, 목마른 자가 짐독으로 갈증을 푸는 것과 같으니 입술에 적시기만 해도 위에 이르기도 전에 죽고 말 것이다.

 

▲ 러시아 하산군 대외교류 관광협력 코롯키흐 부장과 농업 투자의향서를 상의하고 있는 우리 일행    © 김성윤 기자


아무튼 코롯 키흐 부장 방에는 여직원 3명이 함께 근무하고 있었다. 그 여성 공직자들 표정 역시 무슨 일로 이 많은 사람이 왔는지 놀라워하는 눈치였다. 참으로 인간은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존재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너무 거창하게 계획을 세워 놓고 삶을 살아간다. 내일 일을 걱정하느라 분주하다. 이런 경우를 생각해서 야고보서 4장 14절엔 이렇게 나왔나 보다.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 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이렇게 하산군청에서 준비되지 않은 투자의향각서를 서둘러 가 체결하다 보니 6시 40분이 되어서야 블라디보스톡으로 출발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루했던 오후가 지나갔다.

 

▲ 1861년에 슬라뱐카 마을이 만들어 졌다는 상징물을 우리가 오찬을 하였던 바로 앞에서도 볼 수 있었다.    © 김성윤 기자
▲지난 6월에 필자가 기증했던 개다리소반과 백자도 박물관에 전시 되어 있었다.     © 김성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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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1/04 [12:46]  최종편집: ⓒ gg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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