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종합뉴스 > 기획특집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속 러시아 연해주 답사기13] 여행은 인생의 새로운 지평을 열 수도 있다
연해주 한인들의 얼을 찾아서
 
김성윤 기자 기사입력  2019/02/01 [17:33]

 여행을 많이 해본 사람보다 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의 가치가 보편적이라고 더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왜냐하면 자기 세계에 매몰되어 살아왔기 때문이다. 자기가 보아왔던 것은 잘 보이는데 남의 나라를 보면 모두가 이상하거나 다르게 보인다.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여행을 아무리 많이 가도 관찰력과 공감 능력이 없으면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보지 못한다. 여행을 떠나야 자신의 가치 중 일부는 보편적이고 일부는 특수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여행은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지 않는가?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을 통해서 일상과 다른 세계를 보면 또 다른 세계를 이해하고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다.
 
나는 러시아 연해주를 8번째 다녀왔다. 특히 분단 상태가 아니라면 기차를 타고 가거나 차로 갈 수 있는 곳을 배로 가거나 아니면 비행기로 가야 했다. 그렇게 가도 러시아 쪽에서 북한을 조망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니 1990년 이전까지는 거의 불가능했다. 

 

▲ 북·중·러 3개국의 국경선과 북·러 두만강 대교 사진 아래쪽 도로까지가 중·러 국경선이다. 그 너머 황톳길에 철조망이 보인다.     © 김성윤 기자


동서냉전 시대가 지속하는 가운데 중·러의 국경 충돌이 있었고 남북한이 분단되어 한쪽은 자유 민주주의, 다른 쪽은 사회주의로 편이 갈라져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과 제정러시아가 오늘날과 같이 명확한 국경을 만든 것이 아니라, 개략적으로 국경을 합의한 것은 1689년 네르친스크조약 때다.

 
그 이후에도 국력의 신장에 따라 국경은 변했다. 아편전쟁 이후 청나라의 국운이 쇠락할 무렵 제정러시아는 그 틈을 타서 연해주를 얻었다. 불평등조약들이 맺어졌다. 1858년 아이훈조약을 통하여 러시아는 국제적인 보편적인 합의라면 하천 가운데가 국경이 되어야 하는 데도 하천의 가운데가 아닌 중국 쪽 연안을 국경으로 정했다. 하천에 있는 모든 섬이 러시아 관할 지역이 되었다.

 
그리고 1860년 베이징조약을 통하여 중국은 연해주를 러시아에 내준다. 두만강을 통해 동해로 나갈 수 있는 권리마저 잃는다. 그 후 러시아는 북한과 러시아 국경지역 뿐만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가 접하고 있는 연해주 국경지역을 군사 보호구역으로 정하였다. 
   
중․러 국경의 길이는 6681km로 지구에서 가장 길다. 중․러의 국경을 이루고 있는 아무르강과 우수리강 등 하천지역 섬이 1845개나 된다. 협정을 통해 러시아 쪽이 945개, 중국 쪽이 896개의 섬을 갖기로 했다. 1997년 11월이 되어서야 동부 국경문제의 98%가 해결되었다. 이런 관계개선이 있기 전까지 아니 그 이후로도 한동안 이 지역의 여행이 금지되어왔다.

 
러시아의 개혁 개방 정책과 더불어 완전히는 아니지만 이제 금지되어 있던 지역의 출입이 많이 완화되었다. 나는 평소 국경을 대립의 선이 아니라, 교류의 지점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였다. 특히 힘들고 어려운 시기에 우리 한인들이 이 지역으로 진출하여 황무지를 옥토로 바꾸었고 사람이 사는 지역으로 바꾸었다. 그 속에는 아직도 한민족의 문화가 녹아있고 민족의 혼이 남아 있다.

 

▲ 북·중·러 국경비(사진 왼쪽)와 러·중 국경비    © 김성윤 기자


그 땅, 연해주를 둘러보고 21차에 걸쳐 연해주 답사기를 연재하였다. 우리는 물질적 폐허와 외형의 파괴만을 두려워하면서 인류 공동체의 기억이나 역사는 파괴되고 폐허가 되어도 상관없는 것으로 망각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옛 삶의 자취가 파괴되고  추억이 부정되는 사회는 희망이 없는 것이다. 영혼이 없는 사회는 불행한 사람들이 무서운 일들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공동체의 삶을 부정하고 개인의 안일만을 찾는 사회는 물질적으로 아무리 풍요로워도 정신적 폐허 속에서 파괴되어가는 것을 인류역사 속에서 보아왔다.

 
여행하는 동안 중국에서 사업을 하다가 들었다는 L 사업가의 아래와 같은 이야기는 슬픔을 넘어 저주스러운 생각까지 들었다.

 
“하루는 연변에서 북한을 떠나온 임산부를 만났는데 배 속에 있는 태아가 아파 이에 필요한 약을 구하려고 하였다. 그래서 필요한 약을 구해 주었더니 엉엉 울더란다. 그 우는 모습을 보고 태아에게 필요한 약을 고생 끝에 구해서 감격한 나머지 모성애로 우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 임산부가 우는 이유는 놀랍게도 수령님을 배신하고 태아의 약을 구하러온 것이 죄송스러워서 울었다고 하였다.” 또 이런 제보도 왔다

 
“1957년에 사할린에서 조선사범학교를 최우등으로 졸업한 후 모스크바 종합국립대학에 입학할 목적으로 사할린에서 여객선으로 블라디보스토크 여객 항구로 도착한 후 철도역에서 모스크바행 승차권을 구입하려고 했으나 그 당시 모스크바에서 국제 청년 및 대학생 축제 때문에 객차 탑승권이 제한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소련 국적 취득 신청 증명서로는 더욱 안 된다고 거절받아 헤매고 있는 동안 우연히 철도역에 극동국립종합대학 개교에 대한 광고를 집중하여 읽는 동안 뒤에 놔둔 트렁크를 도둑맞아 불가피하게 극동대학에 입학하여 블라디보스토크에서 5년간 수업을 마친 후  준박사 과정 때문에 3년간 거기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교수님이 보내주신 기고에는 저 보다 블라디보스토크에 대하여 더욱 상세하게 묘사되었습니다. 아주 훌륭합니다. 감사합니다.”전학문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원로 및 명예교수가 보내온 내용이다.

 
또 이런 내용도 보내 왔다. “고려인들과 관련된 글을 쓰기에 좋은 곳에 가야할 것으로 생각 됩니다. 우수리스크 주위만 해도 추풍사사라고 하는 코르사코브까, 크라우 노브까, 뿌칠로브까, 시넬리꼬바 그리고 고려인 마을 순앗센 등이 우수리스크 주위에 있습니다. 이곳 내륙에 관한 글도 써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우수리스크 이한우-

 
그러나 이런 일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희망과 큰 뜻을 품고 이곳으로 왔는데 어느 날 빈손으로 돌아가는 사람이나 기업인도 있었다. 그 이유를 하나하나 물어보니 러시아 정부의 규제와 간섭이 상상을 넘어서고 있었다.

 

▲  파종 전 밭갈이를 하고 있다. 구 현대농장 현 롯데농장의 대형 트랙터는 12시간 기준 70~80ha를 작업할 수 있다. ©월간조선 재인용 


농지를 임대하여 놓고 농사지을 사람의 입국을 제한해 버린다. 입국 비자를 연해주 전체 00명으로 규제하다 보니 입국이 어렵고 영농하기가 힘들다. 살 집이나 창고를 지으려고 해도 소방 설비가 규정에 미달할 경우 과대한 과태료를 부과한다. 농지를 영농하겠다고 임대하여 놓고 3년간 영농을 하지 않는다면 법적으로 회수할 수 있게 되어있다. 영농하겠다는 땅에서 잡초가 많이 나 있는 경우 이 또한 과태료 대상이다.

 
항만설비가 현대화되지 않아 선적과 하역 비용이 엄청나게 비싸다. 한국에서라면 7시간이면 될 선적이나 하역일이 7일 이상 걸린단다. 그것도 화물이 없어서 왕복 선적을 하기는 하늘에 별 따기란다. 그러다 보니 운송료가 턱없이 비쌀 수밖에 없다. 더불어 생산한 농산물의 수출 길이 막히는 일도 있다.

 
축산을 하는 경우 웬일인지 성장 속도가 늦단다. 그것도 근대적인 도축 설비가 되어 있지 않아 이 또한 애로 사항이란다. 연해주는 춥고 비가 많이 오는 데다 사계절이 일정하지 않다. 현지인은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보리·귀리·밀 등 7~8가지를 나눠 심는‘작물 포트폴리오’를 짜는데, 우리는 한두 가지만 심었다가 서리가 일찍 내려 냉해 피해를 입은 적도 있다.

 
땅이 예상보다 기름지지가 않다. 그런데 비료나 유기질 거름 값이 턱없이 비싸다. 자영분이 부족한 땅에서 품질이 고른 농작물이 생산될 리도 없고 자양분이 부족하니 수확량도 적다. 자연스럽게 경쟁력이 떨어진다.

 
토지 역시 배수가 잘되지 않아 재배 일정 자체가 지연되어 적기 출하가 어렵다. 한국산 농기계가 러시아 땅에 맞지 않아 고장 나기 일쑤였다. 그 기계를 수리할 공장은 물론 부품 조달이나 인력마저 부족하다. 더구나 창고를 비롯한 농기계 등 농업에 필요한 인프라를 갖출 자금도 턱없이 부족하며 투자환수 제도도 미흡하다.

 
러시아 농지법 하나를 번역하려 해도 현지에 진출한 농민들이 돈을 걷어 번역사를 구해서 스스로 번역을 해야 되기에 대응이 늦을 수밖에 없다. 이러다 보니 현지 진출한 회사가 50개라면 생존 확률은 1개사에 지나지 않는단다.

 

▲ 롯데상사는 연해주 지역에서 서울시 면적 6분의 1에 해당하는 3000만평 규모의 토지경작권과 영농법인 인수 계약을 체결하여 2018년 2월 인수 완료 예정에 있다.    ©김성윤 기자



이렇기 때문에 이곳으로 진출하려면 충분하고 치밀한 준비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 같은 치밀함을 생략한 채 서둘다 보니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금보다 백배 천배 어려운 시기에 우리 한인 선조들이 이곳으로 진출하여 그 많은 땅을 옥토로 바꾸었다. 지금 상황은 그때보다 좋은 편이고 그때보다 여유로운 편이다. 다만 그 때보다 부족한 것이 있다면 열악한 환경을 극복해 내려는 절박함과 간절함 그리고 지혜와 불굴의 정신이다. 이러한 부족한 정신의 극복 사례를 마음의 내면에 오래 간직하여 세대와 세대로 전달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김소엽 시인의 인생의 찬가를 마무리로 대신한다.
 
인생의 찬가
-김소엽-


지혜있는 자는 인생의 풍랑을 만났을 때
정면으로 파도를 맞지 않으니
설령 평생 걸려 만든 배가 파산되었어도
신에게 도전하여 항변하기 보다는
파도가 남긴 말을 들으려고 애쓰느니
모래 한 알 한 알이 시간의 파편이요
선현들이 남기어 놓은 침묵의 언어리니


멀죽이 앉아서 새겨들으면 풍랑의 말도 뜻이 있거늘
바람이 분다고 서러워 말라
꽃이 진다고 슬퍼하지 말라
파산되었다고 절망하지 말라


풍랑이 이는 것은 바다를 청소하기 위함이요
바람이 부는 것은 꽃씨를 퍼뜨리기 위함이요
비가 내리는 것은 땅위의 모든 더러움을 씻기 위한
하늘의 방법이라면
인생의 풍랑에도 반드시 선한 뜻이 숨어 있으리니
생의 중반이나 혹은 노년에 이르러
무서운 폭풍을 만난다 해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끝까지 믿노라면 무슨 걱정 있으리오.


파도가 나에게 이르는 말
이제 사 조금 헤아린 듯 인생을 음미하며 살다 보면
삶의 기쁨과 보람 있으리니 살아 있는 날에
하루하루를 감격과 설렘으로 최선을 살자 


 형제여! 우리 모두 머지않아 흙으로 돌아갈지니
그날이 오기 전에 이 넓고 넓은 세상에 인간으로 태어나서
가나긴 시간의 영원 속에서
바로 이 순간 이 자리에 너와 내가
오늘 이렇게 살아 있음을
기쁨으로 노래하자. 나의 형제여!
 
끝으로 연재를 하는 동안 수많은 격려와 정감 어린 글을 보내 준 독자 제위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지난해 6월부터 연해주 답사기가 <경기데일리>에 연재된 이후 구글의 검색란에 “연해주 답사기”라고 입력하면 가장 많이 뜨고 있다.

 
아울러 기회가 되면 독자들께 보답하기 위하여 아직도 가보지 못한 독립운동가들이 머물던 곳과 활동 무대를 재조명해 보겠다. 아울러 우리민족의 개척정신과 주거문화와 생활문화를 더 많이 발굴하여 보도해 드리겠다.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밴드
기사입력: 2019/02/01 [17:33]  최종편집: ⓒ ggdaily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 용
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