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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윤 수필] 왜 마음 수양이 필요한가?
 
김성윤 논설위원 기사입력  2019/03/01 [23:30]
▲ 김성윤 논설위원, 단국대 전 법정대학장    

세심정혼(洗心淨魂)이란 마음을 씻고 영혼을 깨끗이 한다는 뜻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업(業)을 씻는 것이다.


 
업(業)이란 무엇인가? 옛 미얀마 언어인 ‘산스크리트’어로는 카르마(karman)다. 카르마란 살면서 몸(身)과 입(口)과 뜻(意)으로 지은 삼업(三業)이다. 즉 선악(善惡)의 소행이나 전생의 소행으로 말미암아 현세에서 받는 응보(應報)를 의미한다.
 
성경의 잠언 4장2절에는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마음을 생명의 근원이라고 말하고 있다.
 
사서5경중의 하나인 대학에 보면 심부재언(心不在焉) 마음이 거기에 있지 않으면 시이불견(視而不見) 보아도 보이지 않고 청이불문(聽而不聞) 들어도 들리지 않고 식이부지기미(食而不知其味)먹어도 그 맛을 알지 못한다.
 
마음이란 있는 것도 같고 없는 것도 같다. 마음이 어디에 있느냐고 물어보면 어디에 있다고 가리킬 수는 없다. 그렇다고 마음이 없느냐고 물어보면 없다고 말할 수도 없다.‘마음’이라는 표현은 두 가지 이상의 뜻으로 해석될 수 있지만, 여기에서는‘생각’과 비슷한 표현으로 사용되었다고 할 수 있다.
 
사슴에게는 사슴의 세계가 있고, 사자에게는 사자의 세계가 있듯이 사람도 각자가 믿고 있는 정신의 기둥이 될 세계를 가져야한다. 그 바탕 위에 몸과 마음을 집중하면 어떤 일을 하든지 성과가 잘 나온다. 정신을 집중하지 않고 일을 하다 보면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정신이 다른 곳에 가있으면 눈은 앞을 보고 있으면서도 보이지 않고, 바로 옆에서 사람이 이야기해도 나중에는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우리는 어느 하나에 집중하기 어려운 세상을 살고 있다. 그러다보니 산만하다. 따라서 주위의 불필요한 요소를 줄이고 정리하여 아주 단순한 삶을 살면 살수록 집중하기가 쉬워질 것이다.
 
그렇지 않고 지금 상태가 지속된다면 무엇을 보더라도 건성건성 보게 되니까 제대로 보지 못한다. 무엇을 듣더라도 집중하여 듣지 못하니까 그 참된 의미를 알리가 없다.
 
무엇을 먹더라도 즐기면서 먹지 못하니까 그 참맛을 알 수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총명해 지기를 원한다면 음식을 혀로 먹을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도 먹어야 한다. 음식을 일심으로 먹어야 시고 짜고 달고 새콤한 맛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이 없이 음식을 먹을 것 같으면 먹기는 먹되 진미를 모르고 먹는 것이다.
 
총명해지기를 원한다면 귀로만 들을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바로 들어야 한다. 현명해 지기를 원한다면 마음과 정신을 가다듬고 이끌 수 있는 자기수양을 해야 바로 볼 수가 있다.
 
수기치인(修己治人)의 정신은 이기적인 자기완성이 아니다. 모두가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공동체 속에서의 자기를 실현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건강한 사회 구조와 건전한 가치관이 사회의 중심에 있고 자기 마음의 중심에 있어야 한다.
 
내 마음속의 악과 부단히 싸우는 것이 수양이다. 내 마음속의 불의를 물리치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속에는 이기심, 질투, 교만, 자랑, 허영, 악의, 사심, 나태, 방종을 비롯한 온갖 불의와 악행이 있다.
 
이를 씻어내고자 성경의 고린도전서 13장4절에서7절은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추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라고 나와 있다.
 
이는 온갖 타락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오는 혜안을 주고 있다. 심전경작(心田耕作)하는 마음으로 새겨야한다. 심전경작 (心田耕作)은  "마음의 밭을 경작한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마음의 밭을 가꾸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무지와 편견으로부터 벗어나야한다.
 
왜냐하면 무지(無知)는 편견과 선입견을 낳기 때문이다. 편견은 고집을 낳기 때문이다. 고집은 온전한 판단과 결정을 그르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양이 필요하다.
 
산중의 적은 쳐서 이기기는 쉽지만. 심중의 적은 이기기는 어렵다고 명나라의 유학자 왕양명이 한 말을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논밭에 잡초마저도 뽑아주지 않으면 하루가 다르게 무성하게 자란다. 하물며 우리 마음의 밭을 잘 경작하지 않는다면 황폐해 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농부가 밭을 경작하듯이 마음의 밭을 잘 경작하여야 수기치인(修己治人)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치 펄펄 끊는 용광로에 들어간 녹슨 쇠가 새것이 되어 나오듯이 사랑의 용광로로 녹슨 자아를 제거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사물과 인생을 새로운 혜안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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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3/01 [23:30]  최종편집: ⓒ gg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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