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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윤 칼럼] 으뜸 대한민국을 위한 제언
 
김성윤 논설위원 기사입력  2019/03/12 [23:23]
▲ 김성윤 논설위원, 단국대 전 법정대학장    

행동하라. 오늘보다 높은 내일을 위해서 행동하라. 세계의 넓은 들판에서, 인생의 싸움터에서, 목 매인 송아지처럼 쫓기지 말고 투쟁하는 용사가 되라. 위인의 생애를 돌아보고 인생을 숭고히 하라.

 

그리고 그대의 생이 끝나는 날, 시간의 모래 위에 영원한 발자국을 남겨라. 19세기 미국의 시인 헨리 위즈위스 롱펠로우(Henry Wadsworth Longfellow)가 한 말이다.

 

그의 시는 우리 인생살이에 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 우리에게 “인생찬가” ( A Psalm of Life)란 시는 너무도 잘 알려져 있다. 
나는 이 시를 우리 국민들이 매일 읽고 행동으로 옮겨보면 어떨까? 그리고 대한민국호의 새길을 닦아보는 것은 어떨까란 생각을 하여본다.
 
“인생찬가” ( A Psalm of Life)
-헨리 위즈위스 롱펠로우(Henry Wadsworth Longfellow)-
 
슬픈 사연으로 내게 말하지 말아라./  인생은 한갓 헛된 꿈에 불과하다고!
잠자는 영혼은 죽은 것이어니/  만물의 외양의 모습 그대로가 아니다.
 
인생은 진실이다! 인생은 진지하다!/  무덤이 그 종말이 될 수는 없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  이 말은 영혼에 대해 한 말은 아니다.
 
우리가 가야 할 곳, 또한 가는 길은/  향락도 아니요 슬픔도 아니다.
저마다 내일이 오늘보다 낫도록/  행동하는 그것이 목적이요 길이다.
 
예술은 길고 세월은 빨리 간다./  우리의 심정은 튼튼하고 용감하나
싸맨 북소리처럼 둔탁하게/  무덤 향한 장송곡으로 치고 있으니.
 
이 세상 넓고 넓은 싸움터에서/  인생의 노영 안에서
발 없이 쫓기는 짐승처럼 되지 말고/  싸움에 이기는 영웅이 되라.
 
아무리 즐거워도 ‘미래’를 믿지 말라!/  죽은 ‘과거’는 죽은 채 매장하라!
활동하라, 살아있는 ‘현재’에 활동하라!/  안에는 마음이, 위에는 하느님이 있다!
 
위인들의 생애는 우리를 깨우치느니,/  우리도 장엄한 삶을 이룰 수 있고,
우리가 떠나간 시간의 모래 위에/  발자취를 남길 수가 있느니라.
 
그 발자취는 뒷날에 다른 사람이,/  장엄한 인생의 바다를 건너가다가
파선되어 버려진 형제가 보고/  다시금 용기를 얻게 될지니.
 
우리 모두 일어나 일하지 않으려나./  어떤 운명인들 이겨낼 용기를 지니고,
끊임없이 성취하고 계속 추구하면서/  일하며 기다림을 배우지 않으려나.
 
우리 조상들은 발 없이 쫓기는 짐승처럼 역사의 무대에서 목맨 송아지처럼 살아왔다. 그 어느 민족보다도 험한 가시밭길을 걸어왔다. 우리 민족은 인생의 싸움터에서 씩씩하게 싸웠는가? 라고 나에게 묻는다면 나는 대답할 것이다.

 

불과 반세기 전까지만 해도 그러하지 못했다고. 오히려 굴종의 채찍을 맞으며 살아온 생의 약자였다고. 드넓은 만주벌을 고구려의 후손답게 힘차게 달리며 몽고족에게 대들어 본 일이 있는가? 그러하지 못하였다. 
 
현해탄의 거친 파고를 넘어 일본에 대적한 일이 있었는가? 슬프게도 그러하지 못하였다. 요동반도를 넘어 중국의 대평원에서 한족과 자웅을 겨루어 본 역사가 있었는가? 아쉽게도 고구려 이후에는 그런 일이 없었다. 우리는 우리 조상이 개척해준 저 드넓은 만주벌을 지켜내지 못하였다.
 
우리 선조들이 수많은 외적으로부터 보호해준 우리 터전 한반도마저 수호하지 못하고 왜인에게 국권을 빼앗겼지 않았는가?
 
우리 역사에는 행동이 적었고, 투쟁이 없었다. 우리 국민에게는 용사가 부족했다. 그 험로를 지나 각고의 노력 끝에 이제 허리 펴고 살만한 나라가 되었다. 그것도 잠시 우리는 나날이 늘어나는 실업자에 미래의 먹거리 산업마저 후발국에 추월당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무상으로 이걸 해 주겠다. 저걸 해주겠다는 공약이 넘쳐나고 있다. 이러고도 나라가 골병이 안 들겠는가? 이러다가 베네수엘라 꼴이 안 되란 법이 있겠는가?
 
자원 부국 베네수엘라는 마두로 대통령이 경제를 구렁으로 떨어뜨려 식량 부족 사태까지 빚고 있다. 국민 몸무게가 평균 11㎏이나 줄어들었다고 한다. 미래의 주인공인 어린이마저 만성적인 영양 결핍상태에 있다.
 
이 나라가 이 지경이 된 것은 1999년 집권한 대통령 차베스와 좌파 포퓰리즘과 그 뒤를 이은 마두로 정부의 정책실패 때문이라지 않는가! 차베스는 석유를 비롯한 주요 산업을 국유화하고, 무상 교육, 무상 의료 같은 공짜 복지를 확대했다. 우리 역시 지난 세기 벌고 축적한 부를 하루하루 축내며 현실에 안주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야당 원내대표의 말처럼 “한강의 기적이라는 역사가 기적처럼 몰락하고 있다”는 말이 가슴에 와닿는다. 이런 정책으로는 우리의 곳간이 비지 않을 수가 없다.
 
이제 우리는 현실에 안주할 것이 아니라 롱펠로우의 시 “인생찬가”처럼 행동과 투쟁과 용기를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우리 젊은이들은 현실에 낙담하고 실망한 나머지 헬 조선이나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을 들먹이고 있다. 누가 머리 좋고 부지런한 대한의 청년과 중장년을 이런 나약한 국민으로 만들었는가?
 
지도자들이여! 각성하고 또 각성하라. 우리 국민이 행동하고 더 높은 내일을 위해 드넓은 세계로 나가는 용사가 될 수 있도록 온갖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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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3/12 [23:23]  최종편집: ⓒ gg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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