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경기데일리 수필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김성윤 수필] 정직과 성실은 삶의 나침판이다
정직과 성실이 인생의 정도(正道)요, 사회의 대도(大道)이다
 
김성윤 논설위원 기사입력  2019/03/30 [13:53]
▲ 김성윤 논설위원, 단국대 전 법정대학장    

프랭클린 플래너(FranklinPlanner)에는 "남에게 상처를 주는 어떤 속임수도 쓰지 마라. 말을 할 때에도 진정성과 공정함을 잊지 마라." 라고 적혀있다.

 

나는 행운아다. 진리 . 봉사란 교시(교육목적)를 가진 단국대학교를 나와 자유베르린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단국대학교에서 30년 동안 학생들과 함께 연구하고 가르쳤기 때문이다. 대학이 썩었다고들 하지만 사회와는 달리 진실이 통하고 남에게 상처 주는 속임수와 거짓이 적은 마지막 남은 이상사회이다.

 

거짓말과 거짓 외모에 속지 않고 자기 일만 해도 살아갈 수 있는 사회이다. 가끔 욕심을 부리다 사기 당하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정직하게 제 할 일만 하면 깨끗하게 살아갈 수 있다.

 

사회에서 품위유지하며 살 수 있을 정도의 급료도 제 날짜에 꼬박꼬박 나온다. 몇 시에 출근해서 몇 시에 퇴근하라는 규정도 없다. 알아서 나오고 지칠 때까지 연구하고 글 쓰고 가르치면 된다.

 

나처럼 빽도 없고 돈도 없는 시골 촌놈이 대학교수가 된 것은 단국대학교  중재(中齋) 장충식 이사장님이란 한국교육계의 큰 어른이 계셨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어른은 남을 수용하고 이해하고 관용을 베푸는 자세까지 모범을 보이셨다.

 

그 덕택에 상아탑에서 생활하다가 65세가 되어 대학문을 나왔다. 대학과는 너무도 다른 일반 사회는 내 속마음을 다른 사람에게 들키지 않으며 살아가야 한다. 달콤한 말로 다른 사람의 귀를 즐겁게 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만이 상대로부터 내가 원하는 바를 얻어낼 수 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내가 원하는 대로 내 이익을 최대한으로 만들 수 있느냐 없느냐가 사회적응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이 현실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더욱이 가식적이며 계산 속이 빠삭한 사람이 내 주위를 북적이고 있다. 이런 사람들은 만남에 있어서도 이해 타산적이다.

 

 어떤 제자는 교수님이 제 유일한 스승이라면서 온갖 좋은 말은 다하고 갔다. 그 후 어쩌다 공공장소에서 부딪치는 경우 내가 보고 있는데도 못 본줄 알고 보았으면서도 슬쩍 피한다. 앞에서 볼 때는 좋은 말만하고 뒤로 돌아서면 언제 그랬느냐는 식의 이중인격자들이 너무도 많다.

 

그런 사람을 외면하면서 살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다. 술만 먹으면 교수님이 어떻게 좋았다는 감언이설이다. 한번 두 번 들을 때는 그런대로 기분이 좋다. 하지만 그런 말을 반복하여 들으면 들을수록 괴롭다.

 

진실이 없는 가식적인 행동이나 말은 아무리 감추려하여도 속내가 들어나기 마련이다. 날이 갈수록 이런 사람들과 웃으며 만난다는 것은 정말 괴로운 일이다. 뭐하나 제대로 바르게 알지도 못하면서 여기서는 이게 옳다고 하고 저기 가서는 제게 옳다고 속삭인다. 만났다 헤어지면 상대의 뒤통수를 치는 일이 다반사인 사람일수록 립 서비스(lip service)를 잘하고 목소리가 크다.

 

그래서 사람 만난다는 것이 겁부터 난다. 나는 누가 뭐래도 솔직하다. 내 마음을 속으로 숨길 수 있는 이중인격자가 못된다. 거기다 직설적이며 욱하는 성질도 있다. 남들은 그걸 불같은 성질의 소유자라고 흉보지만 그래도 나는 그게 좋다. 솔직하게 나의 마음을 상대에게 털어 놓고 내가 원하는 바를 진솔히 이야기하는 것이 오히려 후련하고 좋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도 자기합리화를 위해 비굴하게 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이제껏 살면서 터득하고 경험한 바에 의하면 한번 거짓말을 하게 되면 그 다음은 그 거짓말을 감추고 덮기 위하여 또 다른 거짓말을 해야 한다.

 

영국의 격언 중 ‘정직은 최선의 대책이다(Honesty is the best policy)’란 말이 있다. 그런데도 오랜 대학생활 후에 사회에 나와 보니 이런 격언은 먼 나라 이야기로 머물러 있다.

 

물론 그 책임은 교육자요 언론인인 나에게도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다는 아니지만 원칙보다도 변칙이 난무하고 있다. 정직보다도 속임수가 남용되고 있다. 성실한 사람보다 요령꾼이 더 큰소리치고 있다. 정도보다도 권모술수가 더 애용되고 있다.

 

그러나 누가 뭐라 해도, 어떻게 행동 하여도 정직과 성실이 최고의 미덕이요, 삶의 방향제이다. 나는 이 말이 인생의 진리요, 지혜의 원칙임을 믿고 살아왔다.

 

그 이유는 여러 권모술수를 쓰는 사람치고 끝이 좋은 사람을 못 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직과 성실이 인생의 정도요, 사회의 대도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근시안과 단견으로 사회를 보고 주위를 보면 속임수와 권모술수가 정직과 성실을 이길 것 같지만 먼 역사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언제고 정직과 성실이 승리자요, 이긴 자의 영광된 자리에 있다. 인생은 하루 이틀 사는 단거리 경주가 아니다. 현재와 오늘만 사는 것이 아니라 내일이 있고, 내년이 있다.

 

인생은 적어도 1세기를 꾸준히 달려야 되는 긴 여정이다. 인생에는 내일과 미래가 오늘보다 중요하다. 우리는 지금 오늘만 보고 살아 갈 수가 없다. 현재만 보고 살아 갈 수도 없다. 내일도 보면서 여유를 가지고 긴 여정을 살아가야 한다.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나름대로 여러 가지 대책이나 방법이 있겠지만  결국은 정직과 성실보다 더 나은 대안을 찾을 수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정직과 성실이 지배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이성을 가진 인간다운 사회가 아닐까란 생각을 오늘도 해본다.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밴드
기사입력: 2019/03/30 [13:53]  최종편집: ⓒ ggdaily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 용
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