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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윤 수필] 대기만성(大器晚成)형의 사람이 되려면?
 
김성윤 논설위원 기사입력  2019/04/12 [00:17]
▲ 김성윤 논설위원, 단국대 전 법정대학장    

참으로 밝은 길은 얼른 보기에 어두운 것 같고, 앞으로 나아가는 길은 얼른 보기에 뒤로 물러나는 것처럼 보이며, 펀펀한 길은 얼른 보기에 울퉁불퉁한 것처럼 보인다.


최상의 덕은 골짜기처럼 텅 비어 있는 것처럼 보이고 참으로 희고 깨끗한 것은 얼른 보기에 우중충해 보이며, 참으로 넓고 큰 덕은 얼른 보기에 부족한 것처럼 보인다.
 
확고부동한 덕은 얼른 보기에 구차스러워 보이고, 참으로 진실한 덕은 얼른 보기에 절조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엄청나게 큰 사각은 각이 없는 것처럼 보이고, 더없이 큰 그릇을 만들려면 오랜 시간이 걸린다. 다시없이 큰 소리는 도리어 그 소리가 귀에 잘 들리지 않는다. 끝없이 큰 형체를 가진 것은 도리어 그 모습이 눈에 띄지 않는다. (大方無隅, 大器晚成, 大音希聲, 大象無形: 대방무우, 대기만성, 대음희성, 대상무형) 노자 제41장에 나오는 말로 노자는 큰 그릇은 쉽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님을 강조하였다.
 
인간은 그릇이다. 인간은 성장하는 그릇이다. 본차이나의 값이 아무리 비싸도 그 그릇은 죽은 그릇이다. 달항아리가 아무리 예쁘고 소중하여도 이 또한 생명이 없는 항아리일 뿐이다.
 
그러나 사람만은 살아있는 그릇이요, 약동하는 그릇이며 성장하는 그릇이다. 그릇은 음식을 담는다. 밥그릇은 밥을 담고, 국그릇은 국을 담는 데 쓰인다. 아무리 커도 김장독은 김장독이고 장독은 장독일 뿐이다.
 
그러나 인간이란 그릇은 용도가 정해져 있지 않다. 얼마든지 키우고 다듬기만 하면 여러 용도로 쓰일 수 있다. 자기 자신이 자신의 그릇을 어떻게 키우느냐에 따라 큰 그릇도 될 수 있고 작은 그릇으로 머물 수도 있다. 회장이 될 수도 있고 사원이 될 수도 있다. 장관이 될 수도 있고 하위직 공무원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우리 모두 자신의 그릇을 키워야 한다. 우선 키워야 되는 것이 신체적 힘(power) 또는 에너지이다. 나이가 들거나 병이 들면 힘이 달린다고 하거나 기력이 떨어졌다고 한다. 기력이 떨어지면 다리에 힘이 빠져 움직이기가 힘들어진다. 모든 것이 하기 싫어진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담을 수 있는 튼튼한 그릇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힘을 길러야 한다. 힘이 떨어져서 병에 걸리면 우리의 육신도 산산이 부서진다. 이를 막으려면 건강해야 한다.
 
그 다음이 재능이다. 우리는 재능을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이 되어야 한다. 사람은 각자 타고난 재능이 있다. 우리 내부에는 위대한 능력이 잠자고 있다. 이를 깨워서 재능을 키우지 않는다면 아무 쓸모없는 사람이 되고 만다. 될 수만 있다면 다재다능한 인물이 되어야 한다.
 
그다음은 덕을 담는 그릇이 되어야 한다. 우리 자신을 덕을 담아내는 그릇으로 만들어야 한다. 덕이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도덕적 품성이다. 인간의 덕은 신의, 정직, 용기, 겸손, 협동심을 비롯한 책임감 모두가 인간의 덕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우리는 큰 덕을 담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영혼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되어야 한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아들이며, 부처의 딸이다. 인간의 내면에는 신성이 있다. 인간의 이성에는 불성이 있다. 인간은 도덕적 존재를 초월하여 신앙심을 갖는 종교적 존재이다. 그게 토템신앙이든, 예수 그리스도인이든, 불교도이든 상관없이 인간은 너나없이 영성을 가지고 있다. 그것을 담아내는 혼의 그릇 영성의 그릇이 되어야 한다.
 
인간은 신성한 그릇이다. 인간은 신이 만든 그릇이요, 신비한 그릇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신의 그릇임을 깨달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지구상에 사는 70억 인구가 하나같이 다를 수가 있겠는가?
 
여기서 하나의 의문이 생긴다. 왜 하나님은 인간을 똑 같이 만들지 않았을까? 왜 존재하는 모든 것이 하나같이 다르며 각자의 모양과 빛깔과 성질이 다를까? 그 이유는 각 사물의 개성과 가치를 표현하고 싶어서 그랬지 않았을까? 란 생각을 해본다.
 
대기만성이란 "큰 그릇을 만들려면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뜻이겠지만 우리 인간을 그릇으로 본다면  "큰 인물이 되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래서 오랜 시간 동안 학습이 필요하고 배움이 필요함을 강조하는 이유이다.
 
배우지 않는 사람은 결코 큰 그릇이 될 수 없다. 그 이유는 시야가 좁기 때문이다. 완고하고 고집이 세기 때문이다. 사고하고 판단하는데 유연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쉬지 않고 오랫동안이 자신의 학습과 배움을 게을리하지 않은 사람은 시야가 넓어지고, 식견이 깊어져서 공정하고 객관적인 사리 판단을 할 수 있는 큰 그릇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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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4/12 [00:17]  최종편집: ⓒ gg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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