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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1박 2일 짧은 소풍(1)…행복한 추억이 되다
 
박익희 기자 기사입력  2019/05/23 [00:43]

강화도(江華島)는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 불릴만큼 많은 역사문화유적과 사연을 품고있는 섬인데 지금은 다리가 연결되었으니 육지나 같아 누구나 쉽게 갈 수 있는 곳이다. 이번에 초딩 동창들과 지난 5월 18일~19일간 1박 2일 일정으로 소풍을 갔다.

 

▲ 강화도에 부속된 교동도와 석모도     © 박익희 기자

 

인생살이 벌써 65세가 되었으니 초딩때의 소풍 감흥이날까 싶었지만 나이와는 상관 없이 소풍은 즐겁고 설렘은 여전했다. 상계동에서 스타렉스를 랜트해온 김동진 회장은 중간에 친구들을 태우고 용산 삼각지로 와서 3명을 태웠다. 마지막으로 인천 사는 여자 동창생를 태워서 가야한다면서 인천으로 향했다. 

 

인천 사는 여자 동창생은 계란을 삶고 커피를 끓여서 여기까지 와준 동기생들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스마트폰 T맵은 자동으로 알아서 빠른 길을 안내해주어 정말 똑똑한 여자가 숨어있는 것 같았다. T맵은 차량운전자에게는 절대적인 존재이고 이 여자 말만 들으면 어디든 쉽고 빠르게 갈 수 있는 최고의 안내자이다.

 

​ 지하 51m바다 속을 지난다는 안내 간판이 보였다. 어떤 길로 가는 줄도 모르고 목적지 강화도 평화전망대를 향해 달린다. 운전대를 잡은 친구는 운수업을 하여서 도로사정에 밝았으며 평소에도 성실한 인간미를 갖고 있는 친구이다. 운전실력이 상당하고 안정감이 돋보였다. 차안에서 이야기꽃을 피우다 보니 어느새 강화대교를 건너고 있었다.

 

3년 전인가 성하의 계절에 한국관광공사 초청 DMZ 평화누리길 투어를 나서며 대명항에서 염하강 철책을 따라서 김포의 덕포진 손돌목, 애기봉을 다녀온 기억이 새롭다.

 

▲ 교동도 다리를 지나며 차안에서 찍은 사진     © 박익희 기자

 

강화도의 교동도는 다리가 놓여있어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나는 교동도 군초소에서 나의 신분을 기록하고 통행증을 받았다.  평화전망대 주차장에는 많은 관광버스와 승용차들이 견학을 오고 있었다. 

 

우리 일행도 강화 제적봉(制赤峰) 평화전망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문화해설사의 안내 설명을 들었다. 강화도에서 가장 가까운 곳은 북한과 불과 1.8km 로 지척이다. 멀리 개성의 송악산이 보였다. 임진강과 합류한 한강은 더 큰강이 되어 북한의 예성강과 합류하여 서해로 흘러든다.

 

▲  제적봉 평화전망대에서  본 장면들   © 박익희 기자

 

▲ 아스라이 보이는 북한의 실경산수를 그려놓았다    © 박익희 기자

 

서해 강화도는 한강을 따라서 조운이 발달하고 삼남지방의 곡식과 물자를 한양으로 실어날랐고 민족의 젖줄로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 냈다.

 

삼국시대부터 한강을 서로 차지하려는 각축을 벌였고 한강을 차지하는 쪽이 한반도의 주인 행세를 하는 셈이였다. 

 

▲  망향단 옆에 그리운 금강산 노래비가 세워져있고 조수미가 부르는 그리운 금강산 노래가 흘러나왔다.   © 박익희 기자

 

고려의 대몽고 항쟁과  조선조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조선말 신미양요와 병인양요를 거치며 5진 7보 53돈대를 역사적인 유물로 남았고, 해마다 전국 체전에는 강화도 마니산 첨성단에서 7선녀가 제를 지내고  태양으로부터 채화하여 성화를 밝힌다. 북한의 땅은 지척이었지만 대부분 벌거벗은 민둥산만 보였다.

고속도로와 자동차 전용도로 주변에는 아카시꽃이​ 주렁주렁 달려있었고, 이팝나무가 폭설을 맞은듯  활짝 꽃들을 피워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지천에 5월의 꽃들이 피어서 눈길을 사로잡았다. 연산홍은 지고 있었고 다양한 매발톱과 말발도리, 수국, 찔레꽃, 함박꽃, 층층나무꽃, 작약꽃, 양귀비꽃 등이 보였다. 새들도 짝을 찾느라 목청을 높혔다. 그중에 검은등 뻐꾸기가 내는  '홀딱벗고~, 홀딱벗고~' 소리가 압권이다. ​

 

산에 수목이 많음은 아름다운 옷을 입고 있는 것 같다. 나무가 없는 산은 거대한 바위산 말고는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았다. 다시 교동도 옛재래시장으로 유명한 대륙시장에는 인파들이 북적북적 했다. 누구나 추억이 그립고 지난날을 떠올리며 현재에 감사하나 보다. 호떡과 빵집, 꽈배기집, 커피를 볶는 집도 문전성시였다.

 

나도 강화도식 강정을 맛보았고 아낙네들이 파는 채소가게와 각종 곡식을 보며 60~70년대의 정경이 떠올랐다.

 

 6.25동란은 일제 36년 압제보다 아프고 쓰라린 상처를 안겼다.  공산주의자가 이념으로 폭격을 가했으며 한민족에게 씻을 수 없는 너무도 큰 상흔을 남겼다. 이산가족이 생기고 가족이 이념으로 갈라지고 흩어졌으니 누가 그 책임을 질까. 영원한 숙제이고 아픔이다.

 

그래도 남한만이라도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이라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건국하여 세계 10위권의 부를 쌓고 이만큼 기적과도 같은 성장을 이루어냈으니 베이붐 세대인 우리는 때로는 희생을 강요 당했고 그 아픔과 번영에 동승하여 결과적으로 이렇게 잘살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싶었다.

 

▲ 교동도 재래시장 대륙시장의 이모저모     © 박익희 기자

 

재래시장 한켠에 현수막으로 순자네밴댕이집(강화군 교동면 대룡안길 54번길 58, 2호)가게가 보였다. 우리는 그곳에서 인삼막걸리와 밴댕이무침회와 밴댕이회덮밥을 맛있게 먹으며 지방초딩 20회의 우정을 강화(强化)했다.

 

김동진 회장과 이희영 총무의 노력으로 뜻밖의 강화도 소풍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나는 가끔씩 모임에 참가하는 편이 였지만 오랜 고향 동무들은 시공간의 공백을 단박에 뛰어넘는 동심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서 서로 쉽게 동화되었고, 이심전심으로 촌사람 특유의 순천자(順天者)로서의 이해심과 배려심이 묻어나는 것 같았다.

 

강화도는 우리나라에서 큰섬에 속한다. 들판이 넓어 자급자족할 수 있고 중국과 가까워 관문역할을 하고 임금의 몽진 피난처였다.  들판은 모내기 철이라 반듯반듯한 논에 이앙기로 모를 심는 모습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논에 물이 기득하고 모내기를 하고나면 강화쌀은 해풍을 맞으며 잘자라나 찰진 쌀로 유명세를 탈 것이다. 강화에 유명한 것은 강화쑥으로 전국 최고로 친다. 

 

이곳에는 고인돌과 사고(史庫)와 삼랑성(일명 정족산성) 속에 전등사가 있고 3대 관음성지인 보문사 마애불이 있는 곳이다.

 

▲ 강화 석모도의 보문사 진신사리탑과 500나한, 와불과 마애불 모습     © 박익희 기자

 

점심 식사후에 찾아간 곳은 보문사이다. 보문사는 석모도 낙가산 아래 거대한 바위에 마애불이 새겨져있다. 동해 낙산사 관음보살상과 남해 보리암 관음보살상과 함께 소원을 들어주는 3대 관음상으로 유명하다. 이곳에서 바라본 서해의 낙조와 보문사의 사찰은 유명했지만 삼년 전만해도 배를 타고 와야했기에 쉽게 올 수가 없었다. 외포리에서 배를 타고 건너 올때  사람들이 새우깡을 갈매기에게 던져주면 이를 받아먹는다고 장관을 연출했다.

 

이번 소풍은 지난 5월 12일(일요일)이 '부처님오신날'이라 연등이 가득 걸린 보문사를 오랜만에 찾았다.  20여년 만에 다시 온 보문사는 엄청난 불사로 진신사리를 모신 아름다운 탑과 탑주변에 모두가 다른 형상의 500나한을 모셨다. 나한은 수행으로 번뇌망상을 소멸시킨 깨달은 사람을 말한다.

 

▲ 700년 수령의 향나무와 맷돌 모습     © 박익희 기자

 

또한, 석실과 석실 앞 700년 가량된 향나무를 보았고, 낙가산 마애불을 보러 가파른 400개 돌계단 오르며 알록달록한 연등에 저마다의 소원을 적은 소박한 소원글귀를 보며 나도 저절로 개인적인 소원을 빌면서 부처님을 찾았다. 나는 나라의 안보와 태평을 기원했고, 가정의 화평과 건강을 소망했다.

부처님은 아는지 모르는지 미소를 머금고 말이 없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로 자비로운 미소로 서해를 바라보는 부처님의 모습에 대자대비함과 영원한 진리를 느끼게 했다. 1928년에 조성한 천혜의 처마바위 아래 조성한 마애불은 투박했으며 푸근해 보였다. 손에는 정병을 들고 있으며  나약하고 어리석은 중생의 어려움을 들어주며 고단한 삶을 어루만져 주는 것 같았다.

 

▲ 석실 앞의 샘물, 샘물 속에는 동전이 있었다     © 박익희 기자

 

<자연과 물& 사람들>이라는 기획물을 취재하며 언젠가 다시 와서 봐야할 곳을 이번에 초딩 친구들과 왔다. 석실 앞에는 오래된 향나무가 있었다. 석실 앞에는 나무 뚜껑을 덮어놓은 우물이 있었는데 누군가가 동전을 던져놓아 실망했다.

 

예전에 없던 대단한 규모의 와불을 모신 와불전(臥佛殿)이 있었다. 본래 이곳에 있던 바위를 깎아만든 누워있는 부처님이다.  천인대를 깎고 다듬어 와불을 만들었으니 대단한 공력이 들었다. 글씨가 누울 와(臥)자가 아니라 천(阡)자 같이 보였다. 이곳은 1천명이 앉을 정도의 큰바위가 있어 천인대라 했다고 한다.

 

사찰에서 봉사하는 보살님은 가뭄이 심하여 보문사에는 물이 귀해 절 아래에서 물을 길어서 마신다고 말했다. 아무튼 보문사의 느티나무와 아름드리 소나무는 오랜 연륜을 증명했고 많은 관광객이 찾아와 조용한 사찰이 아니라 혼잡스러웠다. 엄청난 불사로 절의 규모가 커졌고 화려했다. 특히 오백나한을 모신 진신사리를 모신 불탑의 규모가 크고 화려했다.

 

하지만 사찰의 규모가 화려하고 커질수록  인간의 마음은 외롭고 허전해지는 감이 있다.  진정한 나를 찾는 길은 무엇일까? 외적인 화려함일까? 아니면 소박한 내적인 자존감일까?

 

▲ 극락보전 부처님, 와불전 와불, 낙가산 마애불, 마애불 가는 길 연등,마애불에서 본 바다     © 박익희 기자

 

싯다르타가 죽음을 앞두고  “너희들은 마땅히 자신을 등불로 삼고(自燈明), 진리의 가르침을 등불로 삼으라(法燈明)”고 설법했다. 이것은 제자들에게 한 마지막 가르침이었다.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는 사실에서 벗어나면 아무리 등을 많이 달아도 그 등에는 생명이 없는 거품이고 헛것이다.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에 나오는 자등명법등명(自燈明法燈明), 자귀의법귀의(自歸依法歸依)의 가르침이다. 보살마하살이 대승의 대반열반경에 머무르면 일곱 가지 착한 법에 머물러야 범행(梵行)을 구족(俱足:갖추어져 꽉 차 있다는 뜻으로, 원만 (圓滿)과 같은 뜻)한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무엇이 일곱 가지인가. 첫째는 법을 알고, 둘째는 뜻을 알고, 셋째는 때를 알고, 넷째는 만족함을 알고, 다섯째는 스스로 알고, 여섯째는 대중을 알고, 일곱째는 높고 낮음을 아는 것이니라.

 

 석모도는 6년전부터 쌍전벽해로 개발붐이 일어났다고 이곳 주민이 말했다. 3년전에 석모도와 강화도를 연결한 다리가 생겼다. 또한 보문사 아래 바닷가에 석모도 미네랄온천이 생겼다.  461m 깊이에서 51℃의 온천수가 나왔다.  뜨거운 온천수에는 미네랄 성분이 풍부하다고 한다. 오전 7시~오후 9시까지 강화군청에서 직영한다.

 

▲ 극락보전과 낙가산 마애불     © 박익희 기자
▲ 강화 석모도 미네랄온천 전경,오전 6시40분 경 모습     © 박익희 기자

 

▲  석모도 미네랄 온천 특징, 천연 미네랄 성분이 많다며 비누 삼푸를 사용하지 않는다   © 박익희 기자

 

그래서 그런지 아침 7시부터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약 100m가량  줄을 서서 기다리는 수고로움을 겪어야 해수탕에 몸을 담글 수 있었다.  15개의 노천탕에서 평화로운 바다를 보며 이 나라 산천에 태어나 곳곳의 명승지에 감사를 하며 자신을 되돌아본다.

 

아마도 이번 소풍에서 가장 기억에 남을 석모도미네랄온천의 체험과 서해바다를 바라보며 이땅에 평화가 지켜지기를 염원했다.

 

모임 총무가 사전에 예약한 바다이야기(Sea Story) 펜션에 도착하여 여장을 풀고 보문사 마애불에 오르며 흘린 땀을 씻고 민머루해변으로 나와 바닷바람을 쏘이고 해변의 모래를 밟아보았다.

 

민머루해변에는 비교적 물이 깨끗했고 모래사장이 형성되어 있고 몸을 씻을 수 있는 시설과 편의점이 2개나 있었다.  넓은 주차장 근처에 여러 채의 텐트를 치고 가족들과 연인들이 휴일을 보내고 있었다. 우리 일행도 해변에서 유일한 평상을 차지하며 누워서 하늘도 보고 이야기 꽃을 피웠다. 호기심 많은 친구 3명은 주변의 둘레길을 산책하고 왔다.

 

▲ 민머루 해변에서 필자     © 박익희 기자

 

부지런한 총무는 저녁 먹을 곳을 물색하기 위해 장곶항을 찾아서 시장조사를 했다. 한참 후에 모두 거기로 오라는 연락이 왔다. 횟집 주방장이 카니발을 몰고와서 우리를 장곶항(장구너머항)에 내려놓았다. 바닷가에는 갈매기가 많이 날고 있었고 파도소리가 뒤채였다.

 

인심이 넉넉한 주인 아주머니가 어부의 큰 딸이라고 한다. 아버지가 잡아오는 물고기로 복영호 횟집(대표 박봉녀 전화: 031-932-3660, 010-5238-2668)을 신랑과 운영하니 환상적인 조합인 셈이다. 딸 아이도 사진을 잘찍는다는 귀띔에 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했다.  우리는 싱싱한 농어와 광어, 우럭을 주문하니 여러가지 해산물 (해삼, 멍게, 주꾸미, 소라, 키조개, 백합조개 등)이 서비스로 나왔다.

 

장구너머항(장곶항)은 외길로 한가로웠고 낙조를 볼 수 있었다.  날씨도 춥지도 덥지도 않고 선선하여 안성맞춤 장소에서 우리는 웃고 떠들고 대포잔을 기울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마지막에는 해물탕에 라면사리를 넣어서 먹었다. 맛있는 회에 탕으로 배를 가득 채웠으니 나는 26일 단식이 수포로 돌아갈까 두려웠다.

 

▲ 민머리해수욕장과 장구너머항 안내표시판    © 박익희 기자

 

식사 후에 우리는 소화도 시킬겸 노래를 부르며 장구너머 언덕길을 걸어서 넘어왔는데 벌써 밤은 9시를 가르키고 있었고 보슬비가 소리없이 내리며 대지를 촉촉하게 적시고 있었다. 행락객에게는 불편을 초래하는 비이지만 이런 비는 가뭄에 내리는 단비이다. 민머루해변에는 캠핑족들이 장남감 축포를 쏘아대고 자축했다. 펜션 나무테이블에서 바라보니 다른 일행들도 나와서 시원한 밤공기를 맞으며 서로의 우정을 확인하고 추억했다.

 

우리도 성주참외를 깎아서 주인장과 나누어먹고 살아있음에 감사했다. 자연히 나라 걱정에 정치 얘기를 했는데 대부분이 TV를 안 본다고 한다.  거짓왜곡 방송을 하는 뉴스가 국민으로부터 외면을 받고 있는 현실이 끔찍했다.

 

나는 오늘은 세상사를 잊고자 했다. 그저 고향 친구를 만나 동심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강화도에는 예로부터 찬우물(冷井)이 유명하다고 전해온다. 10여년 전 고향 강화도로 돌아온 최진순 회장은  발명왕으로 유명한 분이다. 그는 2010년 전국 막걸리 품평회에서 高香 막걸리로 우수상을 받았다.  필자도 코액스 전시장에서 그분을 만난 적이 있는데 오늘 낮에 마신 인삼막걸리도 이곳 (주)찬우물 양조장에서 만든 술이라 반가웠다.

 

▲ 찬우물 팽화미로 만든 고향(高香)막걸리     © 박익희 기자

 

막걸리에 오덕(五德)이 있다. 허기를 면해주는 것이 일덕이요, 취기가 심하지 않은 것이 이덕이고, 추위를 덜어주는 것이 삼덕이며, 일하기 좋게 기운을 돋워주는 것이 사덕이고, 평소에 못하던 말을 하게 하여 의사를 소통시키는 것이 오덕이다. 막걸리는 한국적 풍토나 생활과 밀접하다. 사실 막걸리는 술밥으로 막걸리를 마시면 밥을 적게 먹는 게 좋다.

 

아무튼 술 한 잔은 기분을 좋게하는 양이 되고,  두 잔은 원숭이가 되고, 세 잔은 사자가 되고, 네 잔은 미친개가 된다는 술은 야누스의 얼굴!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술은 절제하며 마실 줄 알아야한다. 그래야 건강을 지키고 교제의 촉매제로써 대화가 술술 풀리고 가슴과 가슴이 통하게 만드는 게 술이다.

 

▲ 바다이야기(Sea Story) 펜션과 민머루해변 모습     © 박익희 기자

 

펜션 작은 방에 여성이 자고, 남자는 여섯명이 함께 잤는데 나는 귀마개를 막고 자서 누가 코를 심하게 골며 자는 줄도 모르고 푹잤다. 여행을 다니며 터득한 것인데 다른 친구가 코를 골면 잠을 설치게 마련이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다른 친구 때문에 잠을 못잤다고 불평할 게 아니라 휴지로 귀를 틀어막고 자니 숙면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때부터 나는 여행을 가면 귀마개를 꼭 챙긴다.

 

다음 회에 강화도 1박 2일 소풍(2)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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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5/23 [00:43]  최종편집: ⓒ gg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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