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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윤 교수의 요동과 간도 답사기 2] 압록강에서 본 북한과 중국의 두 얼굴
 
김성윤 기자 기사입력  2019/06/19 [12:49]

유유히 흐르는 압록강 물 위로 석양이 내려앉는다. 밤하늘에 깔린 몇몇 별들과 환하게 비추는 가로등 사이사이로 어슴푸레 신의주 강가 나무와 풀밭이 눈에서 멀어만 간다.

 

▲ 석양과 함께 압록강 건너 미개발 상태인 신의주 시내가 어렴풋이 보인다.    © 김성윤 기자


이 밤에 내가 느낄 수 있는 것은 어렴풋이 스며드는 수많은 사연들... 이 순간 내 삶이 새로이 깨어나고 있었다. 조금씩 되살아나는 지난날의 이 강과 함께 했던 애환과 슬픈 기억들과 함께 압록강 물의 마음(水心)이 나를 비춘다. 우리는 압록강 물처럼 인생을 담담하고 아름답게 살아야 한다.
 
북한의 장진강을 비롯한 23개의 샛강에서 나온 물이 압록강으로 흘러든다. 중국의 혼강을 비롯한 17개의 샛강이 조선의 23개 강물과 합수되어 50개의 샛강이 하나 되어 내 앞을 흘러가고 있다. 이 물은 깊은 산속 바위틈을 헤집고 솟아 나온 맑은 샘물도 있고, 하얀 모래밭에 부서졌다 다시 모인 물도 있다. 집안과 만포시의 시내를 조용히 흘러온 물도 있다. 수풍댐에서 전기를 생산하고 힘에 겨운 물도 있다. 처마 밑에서 방울방울 떨어져 여기까지 흘러온 낙수도 있다. 높은 절벽에서 힘차게 떨어졌던 폭포수도 있다. 넓은 들판과 산골짜기를 굽이굽이 돌아온 물도 있다. 천지를 빠져나온 백산수도 있다. 그 물이 모여 압록강을 이루었다. 그 물의 빛깔은 아름답고 여유롭고 조용히 흐른다.
 
산광수성(山光水聲)이라 했던가! 산은 빛이 아름답고 물은 소리가 아름답다. 청천석상류(淸泉石上流)라! 맑은 샘물이 돌 위를 소리 없이 흘러가는 모습은 청정미의 최고란다. 물소리는 아무리 들어도 아기자기하고 바다에 힘차게 부서지는 파도는 아무리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 물빛은 깊을수록 짙다. 압록강 물의 빛깔, 압록강 물의 소리, 압록강 물의 운동은 조용하고 은근하며 깊고 신선하다.
   

▲  북한으로부터 교각 2개가 미군의 폭격으로 날아가 버렸다. 그 현장이 보존되면서 시간의 흐름과 함께 관광지가 되어 수많은 사람이 찾고 있다.   © 김성윤 기자


1592년 선조 25년에 임진왜란(壬辰倭亂)이 일어나자 혼자만 살겠다고 나라를 통째로 버리고 압록강을 넘어 명나라로 망명을 하려고 했던 선조 임금, 1388년 이성계는 요동정벌 차 군사를 이끌고 발아래 위화도까지 왔다가 개경으로 돌아가 고려왕조를 무너뜨린다.
 
그것도 자기의 상관인 최영장군을 죽이고 조선의 국부가 된다. 일생을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 매화처럼 살지는 못했을망정 대륙 요동 땅의 주인이 될 절호의 기회를 개인의 탐욕과 영달을 위하여 날려버렸다. 이를 두고 통한의 압록강이라고 한다.
 
대한제국 멸망 후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나라를 되찾기 위하여 이 강을 넘어 간도 땅으로 모여들었다. 이 시대의 압록강은 눈물의 강이었다. 38선에 가로막혔던 남북한 주민은 압록강에 오갈 수 없었다. 그런데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유엔군의 개입으로 육군 6사단 7연대 초산부대가 제일먼저 압록강에서 승리의 물을 수통에 담았다. 이때의 압록강은 환희의 강이었다.
 
그러나 중공군이 이강을 넘어 한국전쟁에 개입하자 그 압록강 물위를 가로 질렀던 압록강 다리는 1950년 11월 8일 오전 9시 미군의 폭격으로 한쪽이 잘려 버렸다. 이때의 압록강은 비극의 강이었다.
 
2019년 2월 23일 미국 대통령 트럼프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하노이에서 제2차 미·북 정상회담을 위하여 북한 국무위원장이 탄 전용열차가 압록강 철교를 넘어 단동역으로 들어왔다.
   

▲ 중공군의 개입을 막기 위하여 미군폭격으로  압록강 신의주를 연결하는 두 다리 중 하나는 사람이 오가는 것이 멈추어 있다. 이를 단교라 한다.    © 김성윤 기자


이때의 압록강은 이벤트를 주는 강이었다. 이처럼 수많은 사연을 품은 압록강은 오늘도 말없이 유유히 흐른다. 그 위를 황홀과 비운의 고요가 번지고 있다. 나는 지금껏 느껴본 슬픔 중에서 이 순간에 느끼는 슬픔에 비길만한 슬픔은 없었다. 그래서 몇 번이고 강 건너 신의주를 바라보다가 발아래 단교로 눈을 돌리고 다시 중국의 단동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압록강 단교의 어제와 오늘
 
압록강 단교(鴨綠江斷橋, 중국어 간체자: 鸭绿江断桥), 구 압록강 철교(鴨綠江鐵橋)는 중화인민공화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이 압록강 국경에 일본 제국이 건설한 철교다. 1909년 일본 제국이 서울과 신의주를 연결하는 경의선에서 압록강을 건너 중국 단둥으로 연결되는 압록강 철교를 착공하였다.

 

 철교는 1911년 준공되어 한반도에서 만주를 거쳐 유럽까지 이어지는 국제 철도노선으로까지 발전시켰다. 압록강 철교는 트러스교로서, 다리 중앙부는 선박이 통행할 수 있도록 개폐교였으나, 1934년 3월에 가동을 중단하였다.
   

▲ 중국 돈 30위안 우리 돈 5000원씩 입장료를 내고 중단된 다리 맨 끝까지 갈수 있다.    © 김성윤 기자


한국 전쟁 중 미군의 폭격으로 교량의 중앙부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까지가 파괴되어 상판이 날아간 채 교각만 남아 있다. 교량은 현재까지 역사적 유산으로서 보호한 상태에서 복원하지 않고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오히려 이곳을 관광지로 개발하여 1인당 입장료를 30위안을 받고 있었다. 우리 돈으로 5000원꼴이다.
 
그런데 우리에게 관광 상품을 판 회사는 1인당 미화 20불을 내란다. 아니면 그곳으로 안내할 수 없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선택 관광을 하였지만 관광이 즐겁지가 않았다. 이 다리의 바로 옆 북동쪽에는 1943년 완공된 압록강의 두 번째 다리가 있다. 현재는 조중우의교라고 명명되어 기차와 트럭이 번갈아 오가고 있었다.
   

▲  북한의 핵실험으로 유엔의 제재를 받고 있는데도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끊임없이 기차와 트럭이 오가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 김성윤 기자


끊어진 강 건너가 신의주다. 이전에 왔다가 보고 갔던 것과 별반 달라진 것이 없었다. 북한에서는 김일성 생일(4월 15일)을 '태양절'로 정해서 최고의 명절이자 기념일이다. 신의주 쪽을 보면 한 가지 달라진 것이 있다. 태양절을 형상화한 하얀 건물이 지어지고 있다. 공사가 중단된 상태인데도 외관상 설계가 잘 된 특이한 건축물이다.
 

▲ 필자가 서있는 다리 건너편의 둥그런 건물이 김일성 생일(4월 15일)을 '태양절'로 정하고 이를 건축물에 상징으로 넣어 태양처럼 둥글게 설계하였다.    © 김성윤 기자


바로 옆에는 북한 세관이 보인다. 그 왼쪽 강 위의 위화도도 그대로다. 그런데 육지와 연결된 기 다란 하얀 집이 있었다. 이 집이 무엇인지를 물어본 결과 신의주 1일 관광을 위한 공연장이란다. 
  

▲ 강 건너편에 보이는 육지가 위화도이다. 그 위화도에 기다란 하얀 건축물이 중국인들의 1일 관광 때 공연도 보고 북한 음식도 먹을 수 있는 곳이다.    © 김성윤 기자


 끊어진 다리 위를 걸으며 볼 수 있는 것이라고는 흙으로 된 강둑에 낡은 집들과 검정 토사뿐이다. 일제는 1905년 한반도 수탈과 만주 침략을 위해 경의선을 개설하면서 의주 서쪽의 압록강 강변에 신의주를 건설했다. 지금은 그 도시가 북한과 중국 국경에 있는 북한의 제일 큰 도시다.
 
그 후 철교를 건설하여 만주지역의 곡물과 삼림자원을 일본으로 실어 나르는데 사용하였다. 총 길이가 944.2m인 이 철교는 연인원 50만9300명이 투입되어 완공되었다. 철교는 개폐식으로 건설되었는데 단동 쪽에서 아홉 번째 교각 다음에 스페어 교각을 세웠다. 이를 축으로 철교를 90도 회전시켜 배가 드나들 수 있도록 하였다. 그 철교가 우리가 관광으로 올라선 압록강 단교이다.

 

▲ 압록강 단교는 통행이 불가능하니 옆의 또 다른 철교는 기차와 자동차가 오고갈 수 있다.    © 김성윤 기자


이 다리를 관광 상품으로 파는 기발한 생각을 할 줄은 몰랐다.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중국은 단교를 전국 중점문물보호단위로 지정하고 입구에 새 조형물을 설치하였다.
   

▲ 위료평화 (爲了和平 ) 즉 평화를 위하여(for Peace) 란 조형물, 그러나 평화가 아니라 무장한 군인들이 위협을 가하는 기분이다.    © 김성윤 기자


조형물은 힘차게 진군하는 인민지원군이 북한 쪽을 바라보며 대오를 이루어 뛰어가는 모습의 대형 조각상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그리고 새겨둔 글자는 위료평화 (爲了和平 ) 즉 평화를 위하여(for Peace)이다. 이 단교 바로 동북쪽의 '중·조우의교'도 일제가 세운 철교다. 1931년 '만주사변' 이후 일제는 중국과 조선을 연결하는 철도 건설을 서둘렀다.
 
그 이유는 만주의 풍부한 전략물자를 실어 나르기 위함이었다. 1937년 경부선과 경의선을 복선화하면서 길이 943.3m의 압록강 철교를 추가로 건설했다. 이 교량은 가운데에 철도를 놓고 양쪽에 차도를 깔았다. 지금은 이 철교를 통해 북한과 중국의 교역량의 80%가 오가고 있다.
 
이 다리를 비롯한 청성대교와 만포대교를 통하여 펑더화이(彭德懷)는 1950년 10월 19일부터 '인민지원군' 26만 대군을 이끌고 압록강 철교를 넘어 한국전쟁에 참여하였다. 압록강근교 초산까지 진주한 우리 국군을 공격한 것도 이들 의용군이다. 한반도에서 활동하는 중공군의 배후를 차단하기 위하여 미국 공군은 B-29 폭격기 편대를 1950년 11월 8일 오전 9시 출격시켜 압록강 철교를 정밀 폭격하였다.
 
그날 이후 지금까지 압록강 철교는 '압록강 단교(斷橋)'가 되었고 지금 그 위에 내가 서 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이 단교는 한국인과 중국인에게 전혀 다른 역사의 현장으로 부각 되었다. 한국인들은 6·25전쟁에 참전하여 눈앞의 통일을 인해전술로 막은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반면에 중국인들은 대륙으로 들어오려는 침략자(미군)를 막아낸 구국 항쟁의 상징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6·25 한국전쟁을 '항미원조(抗美援朝) 보가위국(保家衛國)' 전쟁으로 정의한 데서도 그 의미가 얼마나 다른지를 실감할 수 있다.
 
180위안으로 신의주 여행
 
단교 옆의 중조우의교에 열차 한 대가 느리게 지나가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이틀에 한 편씩 있는 평양-단동 노선이다. 지난번 김정은이 트럼프와 하노이회담을 위한 특별열차도 여기를 통해 중국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단동역에서 잠시 머물렀다.
 
단동 역은 단교에서 북동쪽으로 500m 큰 대로를 따라가면 3거리가 나온다. 거기서 왼쪽으로 돌아 400m쯤 직진하면 거대한 모택동 동상이 서 있다. 중국의 중요한 모든 역에는 이 같은 모택동 동상이 예외 없이 서있다. 나는 숙소에 짐을 풀고 단동 역으로 나와 역 내부를 살펴보았다. 역은 도시에 비하여 큰 편이었다. 기차를 타려는 승객은 공항에서 검색대를 통과해야 되듯이 철저한 검색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 중국의 주요 역에 세워진 모택동 동상 그리고 빨간 글씨가 단동 역을 표시하고 있다.    © 김성윤 기자


열차 시간표는 대형 전광판에 빨간 글씨로 실시간 알려 주고 있었다. 이곳에 개인적으로 나오려고 할 때 가이드가 이곳은 북한의 사업자나 첩보원, 탈북자, 한국에서 온 사업가를 비롯한 여행객, 그리고 탈북자를 체포하려는 북한의 조교 등이 어울린 지역으로 위험할 수도 있으니 개인행동은 하지 말라고 하였다.
 
전 세계가 이곳에서 북한에 대한 첩보를 수집하고 있다고 한다. 나는 이전에 여러 번 온 경험이 있어서 단동 역을 비롯한 주위를 둘러보고 간식거리도 구입하였다. 직접 상가에서 물건을 구입해 보면 생각 보다 매우 저렴하다. 간식을 사서 먹으며 일행과 잡담을 하면서 호텔로 돌아가는 도중 중국의 여자 공안을 만났다.
 
그녀는 한국말로 떠드는 우리를 보고 위험하니 일찍 호텔로 돌아가라고 하였다. 그 소리를 듣고 바로 호텔로 돌아왔다. 핵실험으로 유엔 제재가 강화되자 변경무역 보다 1일 관광을 들고 나와서 그런지 호텔 곳곳에는 북한 1일 관광 안내가 붙어 있었다.
   

▲단교를 보는 것은 중국 돈 30위안 우리 돈 5000원이면 충분하다. 그런데 관광회사에서 미화 20불을 받고 한국인을 안내하고 있었다.     © 김성윤 기자


한국에 알려진 바로는 신의주 1일 관광이 50불이라고 하였다. 비자도 면제되고 중국 신분증만 제시하면 배를 타고 곧바로 갈 수 있다, 경비는 중국 돈 180위안이다. 한국 돈으로 3만6000원이다. 
  

▲  북한을 배로 1일 여행에 중국 돈 180위안 한국 돈으로 3만6000원이다. 단동의 어느 호텔이나 여행사에는 이 같은 광고나 안내 포스터가 붙어 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 김성윤 기자


 

▲ 북한을 배로 1일 여행에 중국 돈 180위안 한국 돈으로 3만6천원이다.     © 김성윤 기자


그래도 한국인만 호기심을 가질 뿐 중국인은 별로 관심이 없단다. 사람이 사는 두 곳이 어쩜 이리도 느낌이 다를까? 어쩌다 우리의 반쪽이 이웃나라에까지 이처럼 천덕꾸러기가 되었는지 안쓰럽기도 하고 답답한 마음 금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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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6/19 [12:49]  최종편집: ⓒ gg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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