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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천 'DMZ관광' 탐방기…제1땅굴 상승OP, 경순왕릉, 호로고루성 등
호로고루성에 웬 광개토대왕비가 있나요?
 
박익희 기자 기사입력  2019/06/21 [02:17]

 지난 15일 아침 일찍 DMZ 연천투어를 위해 길을 나섰다. 공덕역 3번출구에 30분 전에 도착했다. 지하철에서 공덕역 지하 1층 의자에서 가져간 조간신문을 보았다. 여전히 답답한 기사뿐이다.


DMZ연천 시티투어 차량에는 약 30명이 탔다. DMZ관광 장승재 사장과 오랜만에 만나 인사를 나누고 건빵을 지급받았다. 우리를 태운 차량은 자유로를 따라서 파주출판단지휴게소에서 잠시 쉬었다가  파주 오두산 통일전망대 ~ 적군묘지를 스쳐지난다. 
 

▲ 휴전선과 땅굴 위치도 DMZ관광 홈페이지(http://www.dmztourkorea.com/)에서     © 박익희 기자

 

임진강 변에는 철책이 끝없이 이어졌지만 긴장감은 없었다. 드디어 제1땅굴이 있는 상승전망대에 올라 북녘땅을 바라보았다.  


이 나라는 6.25전쟁으로 한반도의 허리를 248km(155마일) 휴전협정에 따라 휴전선이 그어졌고 남과 북은 4km의 비무장지대(DMZ, demilitarized zone)을 설정하여 총부리를 겨누고 철조망을 치고 경계를 하고 있다.
 
한국관광공사 출신인 장승재 사장은 DMZ의 가치를 일찍이 내다보고 이와 관련한 일을 열심히 하며 지내는 분이다. 1997년말 IMF로 국가부도 위기를 겪으며 신의 직장에서 나와 DMZ관광을 창업하여 오늘에 이른 분이다.

 

강원도 동해 고성에서 양구 화천 철원, 경기도 포천 연천 파주 고양 김포, 인천시 강화 백령도까지 6.25 전쟁과 휴전과정 등 한반도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알고 있는 전문가이다. 자유로, 통일로, 평화로, 호국로 등 자유와 평화, 통일을 염원하며 만든 길이다. 하지만 아직도 평화통일은 요원한 것 같다.
 

▲ 상승전망대와 5.5.5 기념비    © 박익희 기자


상승부대 25사단은  임진강과 사미천을 끼고 있는 곳으로 휴전선과 민통선을 넘어 눈앞에 바로 적의 초소가 보이는 곳으로 제1땅굴이 DMZ안에 있다. 이승만 대통령은 항상 이기라는 염원에서 군대이름을 상승(常勝)이라 지었다. 상승전망대에서 망원경으로 북한의 산천은 살펴볼 수 있지만 사진촬영은 금지되어 있다.  1968년 북한의 124군부대 김신조 일당 31명이 이 부대 관할구역을 몰래 넘어왔다.
 

▲ 김신조 일당 침투 경로     © 박익희 기자


김동주 중위의 상승전망대 설명을 들으며  天下雖安 忘戰必危(천하수안 망전필위)라는 말을 떠올랐다. 세상이 아무리 평안해도 전쟁을 잊으면 반드시 위태로워진다는 말이다.  25사단은 제1땅굴을 발견한 공로가 크다. 그 이후 2(철원), 3(파주), 4(양구)땅굴이 차례로 발견되었다. 그래서 5.5.5라는 기념석을 세워서 숨겨져 있는 5번째 땅굴을 찾아야 하겠다.  
 

▲ 상승전망대 아래 GP에 설치된 제1땅굴 모형, 땅굴은 1974년 11월15일 국군의 GP정찰병에게 발견됐다.     © 박익희 기자


상승전망대를 내려오니 안중근 의사의 유묵으로 남긴 글씨 爲國獻身軍人本分(위국헌신군인본문,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것은 군인의 본분이다)가 보였다. 북한은 겉으로 평화공세를 펴면서 뒤로는 땅굴을 파고 웃으면서 대한민국을 적화할려는 야욕을 여전히 갖고 있다. 북한은 6.25남침 이후 3,340회 이상의 대남침투와 도발을 자행했다. 그래서 우리는 유비무환(有備無患)의 자세로  살아야 한다.
 
연천은 역사문화유적과 한탄강과 임진강에는 지질공원으로 주상절리가 펼쳐진 특이한 지형으로 군사적인 대치상태라 미개발된 지역으로 남아있다. 연천군은 서울시보다 1.14배 큰 면적이지만 인구는 4만5000명, 재정자립도 25%가량이다.

 

▲ 연천 고랑포역사공원  사진 모음   © 박익희 기자

 

연천은 수도권이지만  전국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에 속한다. 하지만 통일이 된다면 가장 발전 가능성이 높은 지역으로 남북의 관문이고 교통의 중심지가 될 것이다. 지난 6월 19일 ‘연천 임진강 생물권보전지역’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 확정되었다는 기쁜 소식이 들려왔다.


연천에는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릉, 고려를 건국한 왕건 등의 4왕과 16공신의 위패를 모신 숭의전,  고구려의 3대성 호로고루성, 은대리성, 당포성이 모두 연천에 있다. 아울러 한반도의 역사를 새로 쓴 전곡리 선사유적지가 있다.
 

▲사진 중간 끝부분에  일행들이 망향단에서 고랑포 설명을 듣고 있는 모습, 고랑포구는 배가 없어도 쉽게 건널 수 있어 전략적인 군사 요충지이다     © 박익희 기자


현대사에 남과 북이 대치해있다면 삼국시대에는 백제와 고구려, 신라가 임진강을 사이에 두고 각축을 했던 곳이다. 철원 포천을 거처 흐르는 한탄강은 연천에서 임진강과 만나 더 큰물이 되어 다시 파주를 거쳐 고양 탄현에서 한강과 만나고 다시 북한의 예성강과 만나 서해로 흘러간다. 파주까지는 바다물이 들어와 황복이 잡힌다고 한다. 연천에는 민물고기의 왕이라는 쏘가리가 많이 잡히는 곳이다.
 
또한 북중 적군묘지가 파주시 적성면에 있고, 황희 정승이 노년을 보낸 반구정과 율곡이 말년을 보낸 화석정과 자운서원이 파주시에 있다. 248km 휴전선에는 약 11개 사단이 휴전선을 마주하며 나라를 지키고 있다. 
  
장승재 사장은 차안에서 마이크를 잡고 DMZ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을 했다. 그는 우리나라에는 4성 장군이 8명이 있다고 한다.  나는 1976년 6월 입대하여 1979년 2월에 병장으로 제대를 했다.

 

삼복더위를 논산훈련소에서 보내며 대한민국의 남자가 운명처럼 격어야 할 군대생활을 체험했고, 군인의 책무에 대해 배웠다.  군대생활의 답답한 영어(囹圄)생활과 낯설은 경험이 인생에 큰 도움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어디 내뜻대로 되는 게 아니었다. 자대에 배치되자 마자 8.18도끼 만행 사건이 일어났고 툭하면 비상에 완전군장으로 대기를 했었다. 그때 겨울은 혹독하게 추웠고, 눈이 정말 많이 왔었다. 그래도 집보다는 영양가 있는 1식 3찬의 식사로 밥은 배불리 먹을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오전 6시 기상나팔 소리에 일어나 점호가 시작되고 아침 식사 후에는 공병부대라 훈련에  공사현장에 파견되어 공사를 했다. 필자는 당시 대학생 신분이라 행정병으로 온갖 일을 다하며 밤늦게 차트를 쓰고 보초와 훈련을 병행하여 지낸 시절이다.
 
이번 DMZ연천시티투어에 제주도에서도 참가한 부부가 있었고, 오늘 방문하는 25사단에서 헌병으로 근무했다는 분이 참가하여 청춘의 경험을 얘기했다. 그는 1969년 입대하여 3년을 헌병으로 근무하며 1972년에 제대했다고 한다.  그는 “북한보다 우리가 훨씬 못살았기에 군대생활의 곤궁함에 남다른 감회가 있는지 망원경을 통해서 본 북한군이 닭다리를 먹는 모습에서 얼마나 부러웠던지 눈이 뒤짚힐 지경이었다”고 말했다. 그렇다. 배고픈 고통을 겪어보지 않는 오늘날 생각하면 정말 아찔하게 참혹한 생활상이다.
 
그는 “이 나라를 가난과 배고픔에서 해방시킨 분이 누군 줄 아느냐?”고 물으며 “박정희 대통령을 정말 존경하고 칭송한다"고 말했다. 나도 동감을 했다. 누구에게나 공과는 있다.  남북이 대치한 상태에 있는 대한민국에서 5.16쿠데타가 없이 이념논쟁으로 체제가 불안했다면 오늘날 우리가 구가하는 번영과 자유를 향유할 수 있었겠는가?
 

▲ 고랑포에서 바라본 임진강 모습     © 박익희 기자


무엇보다 치산치수(治山治水)로 산에는 나무를 심고, 국토개발계획을 세워 고속도로를 놓고 철강과 중화학공업을 선도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우리는 동남아의 그렇고 그런 나라에 속해있을 줄 모른다. 미래를 보는 통찰력으로 선견 선제 선점하여 오늘날 대한민국을 만든 분은 자유민주주의를 선택한 이승만 대통령과 경제를 부흥시킨 박정희 대통령이라고 나는 감히 말한다.
 
각설하고 연천에는 농특산물로는 남토북수라는 브랜드로 쌀이 유명하고 율무, 물쑥, 귀리도 있다. 또한 잔디가 연천의 한탄강변에 많이 자라고 있었다.
 
상승전망대에서 바라보니 136만평의 연천평야가 그대로 방치되고 있었다. 나는 망원경으로 푸르른 산하를 훑어보며 가벼운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유유히 날고 있는 황조롱이를 살펴보며 새보다 못한 인간의 이념이 무엇일까?

 

지천에 피어있는 망초꽃과 노란 금계국은 환상적이다. 산에는 밤꽃이 하얗게 피어나 짙은 향내를 품어 여인의 가슴을 울렁이게 한다. 예쁜 전원주택 울타리에 핀 줄장미와 백일홍이 피어있었다. 그런데 산을 깍아 산림을 훼손하는 지역도 눈에 띄었다. 지난번 강원도 산불에서 보듯 숲속에 집을 짓는 것도 위험천만한 볼쏘시게를 끌어앉고 있는 것이다.
 

▲ 백학 역사박물관     © 박익희 기자

 

▲ 고향식당 메뉴판     © 박익희 기자


상승전망대를 나와 백학면 소재지 고향식당(031-835-5963)에서 점심식사를 했는데 맛있는 백반이 6000원으로 음식은 정갈했고 맛도 괜찮았다. 그런데 연천에서만 맛볼 수 있는 율무막걸리가 없어 아쉬웠다.

 

식당 주인이 연천에는 물가에 자라는 물쑥이 유명하다는 것이다. 봄에 쑥이 많이 날때 채취하여 나물도 해먹고 튀겨서도 먹고 떡을 해먹는다고 한다. 강화도 해풍을 맞으며 자란 강화쑥이 유명하듯 연천에는 임진강 한탄강에 물쑥이 많이 나는 나오나 보다.
 
백학면 소재지에 역사박물관이 있다기에 가보았더니 6.25전쟁의 상흔을 말하는 철모, 탄약, 지뢰,의복, 그 당시 사람들의 사진 등이 아프고 슬픈 자료가 남아있었다. 
  

▲ 백학면 소재지에있는 백학 역사박물관     © 박익희 기자


 식사후 찾은 곳은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릉이다. 삼국을 통일한 신라의 국운이 다했는지 경애왕의 뒤를 이은 등극했지만 견훤의 후백제가 점점 세력을 넓혀오자 국력이 쇠락한 경순왕은 천하가 고려의 왕건에게 넘어간 것을 알고 평화적으로 신라를 고려에 넘기고 왕건의 딸과 결혼을 했다. 왕건은 서라벌을 경주로 이름을 바꾸고 신라왕으로 최고의 대우를 했다.
 

▲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릉, 개경에서 서거하자 고향인 서라벌로 가서 장례식 치루고자 했으나 고려왕은 개경 100리를 못벗어나게 막아서 부득이 이곳에 장례를 무덤을 만들었다고 한다.   © 박익희 기자

 

▲ 경순왕릉 비각에 안에 세워진 비, 착한 사람이 보면 사람의 얼굴 모습이 보인다. 비문이 마모되어 누구의 비인지는 모른다고 한다     © 박익희 기자


꾀꼴이가 합창하는 왕릉 숲에 앉아서  연천군 김태호 문화관광해설사는 연천의 지명과 역사를 재미있게 줄줄 얘기했다. 그래서 역사에서  우리는 오늘을 되돌아 보고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 한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말했다.

 

경순왕의 고뇌의 결단으로 신라인은 나라를 빼앗긴 설움과 핍박은 받지 않았다고 전한다.

 

▲ 경순왕릉에서 해설을 듣고있는 DMZ투어 참가자들과 일반 관광객 모습     © 박익희 기자

 

그는 천하를 주유하며 수많은 이야기가 전해온다. 필자가 아는 아들 마의태자가 충주 대원사지 미륵불과  용문산의 은행나무, 원주시 귀래면 미륵산 마애불과 경천묘 등 숱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사기에는 당단부단 반수기란(當斷不斷 反受其亂)이란 글이 있다.  이글은 당연히 처단해야 할 것을 주저하여 처단하지 않으면, 훗날 그로 말미암아 도리어 화를 입게 된다는 뜻이다.

 

북한은 핵개발을 완성한 상태이고 미사일을 쏘아대고 있다. 우리는 대화를 구걸하는 형국이고 쌀을 주고 의약품을 지원해준다. 비겁한 평화는 더 많은 피를 요구한다. 어느 구름에 비가 올지 모른다.

 

▲ 연천 고랑포구역사공원과 하사 레클리스  말 , 이말은 전쟁 중에고 포탄과 탄약을 싣고 전장을 누볐다고 전한다.    © 박익희 기자


다음은 연천 호로고루역사공원을 찾아서 연천의 시대별 역사공부를 했다. 그중 아쉽고 바로 고쳐야 할 것은 고랑포 8경 설명에 한자와 한글이 잘못 해석되어 있었다. 6.25전쟁에서 공을 세운 말의 동상이 있었는데 계급이 하사라고 한다.
 

▲  고랑포 8경에 잘못 표기된 곳은 어디 일까요? 한문 石浦歸帆과  평사낙안 설명에 오리가 아니고 기러기이다.   © 박익희 기자


역사관을 나와서 근처의 고구려가 쌓은  호로고로성을 찾았는데 뜻밖에 실물 크기의 광개토대왕비를 그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알고보니 2002년 북한에서 제작하여 민족화해범민족연합회(민화협)에 선물로 준 것을 민화협은 연천군에 넘겨준 것이었다.연천군은 고구려성으로 유명한 호로고루성에 비를 안착시켰다. 

 

▲ 고랑포 호루고루성에서 만난 광개토대왕비 모습     © 박익희 기자

 

광개토대왕비는 아들 장수왕이 높이 6.39m에 폭과 넓이 1.35~2m 규모에 4면에 44연 1775자로 새웠다.  이 비에는 고구려의 역사와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그린 웅혼한 고구려 기상을 엿볼 수 있다.
 
필자는 호로고루성에 올라서 동영상을 찍고 너무 일찍 하늘나라로 간 고 최진연 기자가 몹시도 그리웠다. 그는 우직하리만큼 우리의 옛성과 왕릉, 다리와 흔적을 사진으로 글로 남긴 전문기자였다. 그의 영면을 기원했다.

 

▲호로고루성에 관한 사진 모음     © 박익희 기자


 임진강가에 있는 백제성에서 고구려성 신라성이 되었던 호로고루성에 올라 역사를 반추하며 이곳을 쟁탈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전쟁을 떠올리며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쟁과 앞날을 알 수 없는 남과 북, 중국과 미국 그리고 일본과 러시아 등에 휩싸인 지정학적 숙명을 생각해본다. 강물은 말없이 흐르고 세월은 쉼없이 지나간다.
  
마지막 코스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이맘때 자연이 선물한 뽕나무 열매 오디는 익어서 저절로 떨어져 땅바닥을 검정물을 들인다. 우리 일행은 입술과 손이 까맣게 물들일 만큼 오디 따먹기에 탐닉을 했다.   
 

DMZ투어비는 성인 1만5000원, 고양시민 1만2000원(업무협약)이고, 투어 제반 경비 외 중식비와 여행자보험은 불포함이다. 단체 15명 이상은 별도 문의해야 한다. 농협 302-0890-3284-81(장승재)

▲ DMZ관광의  http://www.dmztourkorea.com/  6.25 특별여행 안내   © 박익희 기자

 

투어참가자는 군 보안상 투어 2일 전까지 성명, 생년월일, 연락처 등을 hi-citytour@naver.com으로 보내야 한다. 문의사항은 DMZ관광(02-706-4851~2 www.dmztour.com)으로 하면 된다.

장승재 DMZ관광 대표는 "DMZ은 더 이상 무섭고 두려운 공간이 아닌 평화와 통일을 여는 공간"이라며 "연천시티투어로 때 묻지 않은 자연과 역사를 만나는 곳, 연천을 자랑스럽게 소개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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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6/21 [02:17]  최종편집: ⓒ gg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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