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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윤 교수의 요동과 간도 답사기 5]물이 분할되고 산을 가른 천지에 서다
한민족의 영산(靈山) 백두산 천지
 
김성윤 기자 기사입력  2019/07/11 [08:56]

통화의 크라운 호텔에서 백두산 천지로 가기위하여 2일간 머물기로 하였다. 이전에 이 호텔은 고급호텔이었으나 지금은 모든 시설이 낡고 오래되어 규모만 크지 숙박하는데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특히 늦은 저녁에 호텔에 들었는데 샤워실에 온수가 나오지 않았다. 객실 복도에서 흡연을 한 관계로 지독한 담배 연기가 실내 곳곳에 배어있어 간접흡연도 경험할 수밖에 없다. 이 모든 것은 백두산 천지를 오르기 위하여 참아야 하는 또 다른 인고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예전에는 8시간이상 버스를 타야 백두산에 오를 수 있는 산문에 갈 수 있었는데 지금은 고속도로가 잘 정비 되어 3시간 반에서 4시간사이에 장백산 서파관리위원회 주차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것도 가다가 강원휴게소에서 용변을 보고 간단한 아침 도시락을 먹고 가는데도 그 정도 시간이 걸렸다.
   

▲  첫 번째 강원 휴게소에서 아침을 도시락으로 대신 하였다.   © 김성윤 기자


도시락이라고 하여야 우유와 소시지 빵이 전부였다. 우유와 빵에는 생산연도만 표시되어 있고 유통기간 표시가 없다. 그 때문에 혹시 배탈이라도 날까봐 먹을 수가 없었다. 고속도로는 매우 한적하였다. 그 이유가 뭔지 알아보니 고속도로 이용료가 너무 비싸 일반차량은 국도로 돌아서 가지 고속도로를 이용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중국은 아직도 사회주의 국가인데 국가가 건설한 기간산업인 고속도로비가 비싸서 일반 주민들이 이용할 수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이것만 보아도 공산당 정부가 자본주의보다 더 돈에 대한 집착력이 크고 강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한마디로 늦게 배운 도둑이 밤새는 줄 모른다고나 할까? 우여곡절 끝에 장백산 서파관리위원회가 있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 서백두에서 북백두로 가는 길 © 김성윤 기자

 

예전보다 버스를 타고 가는 중간 정류소가 한군데 더 생겨 이곳에서 다시 40인승 버스를 갈아타고 울창한 백두산 숲길을 지나 백두산으로 가는 초입인 산문으로 갔다.  


산문에서 다시 두 번째 버스로 갈아타고 백두산 등산로 입구까지 가야 한다. 그 입구로부터 1442계단이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마천루(일명:옥주봉) 바로 옆의 북한과 중국의 국경인 5호 경계비 입구까지 걸어서 가야 서파쪽에서 천지를 볼 수 있다. 과거에는 이곳에 5호 경계비가 볼품없이 서 있었는데 눈 속에 묻혀 버렸는지 아무리 둘러보아도 찾을 수가 없었다, 바로 옆이 북한 땅 제운봉 이다.
    
이곳까지 셔틀버스로 올라오는 길에는 야생화 군락지가 있었는데 아직 때가 일러 피지가 않았다. 고도를 높여 올라 갈수록 초여름에서 봄으로 바뀌고 다시 겨울이었다. 아래는 초여름인데 위쪽은 하얀 눈이 덮인 한겨울이라. 이를 어떻게 설명해야 될까?
    
한 지역에서 4계절을 다 경험할 수 있는 한반도의 유일한 곳이다. 백두산 정상을 멀리서 보면 하얀 눈이 덮여있는데다 흰색의 산이기에 멀리서 보면 사시사철 희게 보인다. 그래서 장백산이라 부른단다.
    
가이드의 안내에 의하면 지난 이틀 동안은 눈 때문에 백두산 천지에 오를 수 없었다고 한다. 그 때문에 내심 많은 걱정을 하였다. 물론 나는 천지에 수차례 올랐다. 북파로도 올랐고 서파로도 올랐다. 하지만 동행한 집 사람과 늦둥이는 이번이 처음이라 혹시 천지를 못 볼까봐 가슴을 조여야만 했다. 
     

▲ 겨울의 백두산 천지 모습     © 김성윤 기자


천지를 보려면 3대가 공덕을 쌓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날씨가 중요하다. 그런데 내가 그곳에 갔던 날은 날씨가 너무 맑은데다 기온도 산에 오르기 적당한 섭씨 7내지 8도 정도였다. 그 때문에 겨울옷을 준비해간 것이 오히려 짐이 되었다. 준 겨울옷을 입고 1442계단을 오른다는 것은 힘겨운 일이었다.
    
그래도 사력을 다하여 한 계단 한 계단 저 멀리 끝없는 산자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벗 삼아 힘겹게 정상까지 오르자 천지는 얼음위에 눈이 살포시 덮여 있었다. 바람에 깎이고 세월에 할퀸 16봉우리는 하얀 맨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봉우리를 스쳐간 바람이 이곳에 봄을 알리는 전령이다. 사람들은 고성과 감탄사를 연발한다. 그래도 천지는 그 모든 소리를 말없이 받아 준다. 
    

▲ 백두산 천지의 경계선과 봉우리 명칭   © 김성윤 기자

 

사진 왼쪽 가장 높은 산이 해발 2749m인 장군봉이다. 2000m 이상의 봉우리가 16개나 천지를 휘 감고 있다.


우리가 서 있는 북한과 중국의 경계를 알리는 5호 경계비 쪽을 비롯한 백두봉 그리고 제운봉 등 16개 봉우리는 하얀 맨살과 눈과 얼음이 조화를 이루는 비경이었다. 추우면서도 따스한 초봄의 바람이 천지에 온기를 불어 넣고 있었다. 더구나 마천루에서 백두산에서 제일 높다는 장군봉이 내 시야와 수평을 이루면서 가까이 다가왔다.

 

 나는 지금까지 여름에만 백두산에 왔다. 그런데 이번 경우는 초봄이다. 따라서 느끼는 그 감회가 남달랐다. 특히 천지의 기후가 시시각각 변한다고 하는데 우리가 머문 동안에는 파란 하늘에 1442계단을 오른 열기에 가득 찬 땀을 식혀주는 상쾌한 바람까지 불어와 기분이 아주 가뿐하였다. 
  

▲ 백두산 천지 가는 길    © 김성윤 기자


서늘한 바람이 땀에 젖은 내 얼굴을 부드럽게 스쳐간다. 16개 백두 봉우리가 나를 에워싸고 그 아래 천지가 순백의 빙판이다. 천지 둘레에 고봉의 끝자락들이 병풍처럼 휘감고 있다. 새소리 벌레소리도 들을 수 없는 고요함이 더욱 신비스럽다. 멀리서 불어오는 봄바람이 천지의 빙판을 커다란 원을 그리며 녹이고 있었다.
    
 천지 아래 백두고원에는 하얀 자작나무 사철나무들이 모진 바람에 자라지 못하여 한 그루 분재처럼 아름답게 자라고 있으며 막 봄바람을 마신듯 파릇파릇 새싹이 분재 잎처럼 돋아나고 있는 나무사이로 하늘이 빠끔히 뚫린 위를 향해 버스가 오르고 내려간다. 산 아래는 초여름이건만 여기 백두산은 여름을 모르고 있다. 2500m 고봉에 내린 눈과 천지의 빙판은 아직도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꽁꽁 얼어 있다. 
    

▲  백두산 천지 모습, 해발 2000m 근처의 백두산은 아직도 이른 초봄이다. 자작나무가 온통 흰색을 자랑할 뿐 잎이 나오지 않고 있다.     ©김성윤 기자


 잎이 나오면 봄이다. 산 아래는 녹음이 울울창창한 숲과 서늘한 바람과 꽃들로 봄과 여름을 구별 짓지 못한다. 이 아름다움을 보고도 한 가지 마음을 거슬린 것이 있었다면 중국 사람들이 가장 조망이 좋은 곳을 잡아놓고 60위안을 내고 사진을 촬영을 하지 않으면 그곳에 들어갈 수 없도록 쇠사슬로 울타리를 만들어 놓았다. 사진이 마음에 들던 아니 들던 그건 알바 아니다. 그래도 촬영하겠다는 사람이 많다. 주로 한국 관광객이다.

 

나는 이전에 방문할 때면 카메라 성능이 안 좋아 천지 전체를 촬영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성능 좋은 카메라에 어항렌즈까지 준비 하였는데 중국인들의 돈벌이에 밀려 허사가 되었다. 그래도 가능한데 까지만 이라도 촬영하기 위하여 정신없이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그리고 주어진 50여분의 시간이 지나 다시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이곳은 아니지만 이 같은 상황을 너무도 잘 표현한 고은 시인의 <그 꽃>이라는 시가 떠올랐다.
    
그 꽃

-고은-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올라갈 때와는 달리 내려올 때는 발아래 병풍처럼 펼쳐진 백두산 자락을 마음과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산을 내려오는 것은 올라갈 때보다도 수월해 보이나 이 또한 어려운 일이다. 더구나 오고 싶다고 쉽게 올수 있는 곳이 아니기에 아쉬움마저 간직해야 했다.

 

백두산 천지를 보고 다시 1442계단 아래로 내려오면 산상 휴게소가 있다. 여기서는 식사는 물론이고 주류도 마실 수 있었다. 한국 사람이 좋아하는 소주도 판매한다. 이곳을 등정하는 사람들이 식사를 준비해오면 먹을 수 있는 장소도 잘 마련되어 있었다. 
   

▲식사를 준비하여 온 사람들이 먹을 수 있는 장소를 따로 만들어 놓았다.  이름도 “자조찬청“이다     © 김성윤 기자


우리들의 오찬은 도시락이 준비되어 있었다. 비빔밥 도시락만으로는 아무래도 허술한 오찬이었는지 민물고기 튀김과 국을 준비하여 비빔밥과 함께 나왔다. 아침도 제대로 못 먹었기에 배가 출출한 상태에서 해발 2000m 가 넘는 곳에서의 비빔밥 오찬은 그 어떤 진수성찬과도 바꿀 수 없이 맛이 있었다.

 

특히 도시락과 함께 민물고기 튀김이 나왔는데 양도 많고 맛도 있었다. 한잔 생각이 났지만 아직도 프로그램이 남아 있어 참고 도시락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리고 용변을 본 후 다시 버스를 타고 산문으로 되돌아가야한다.

 

종전에는 산문에서 관광버스를 타거나 자기차로 제3의 장소로 이동할 수 있었는데 한 지점을 더 만들어 이곳에서 지정해준 버스만을 타고 오가게 하였다. 물론 공짜는 아니다. 백두산에 입산하기 위해서는 우리 돈으로 1만원을 내야 한다. 그런데 매일 1만 명이나 이곳을 찾는다니 그 돈도 꾀 많은 돈이다. 그게 다 중국사람 몫이다. 산문에서 백두산으로 오르는 길 반대편의 왼쪽으로 접어들면 오솔길보다는 큰 산책길이 나온다. 이 길이 금강협곡의 일부 구간이다. 
   

▲ 장백산 금강대협곡 입구다.  공기가 맑고 숲이 울창하여 힐링 장소랄까  아니면 산림욕으로 손색이 없는 곳이다.    © 김성윤 기자


그 길을 따라 아래 깊은 계곡을 따라 숲속을 거닐면 아름답고 웅장하게 펼쳐진 금강협곡이 아름다움의 극치를 자랑한다. 천년의 미인송이 자리한 금강 계곡을 왼쪽으로 끼고 벼랑길을 내려가자면 천지에서 발원한 물소리가 계곡을 뒤흔든다.

 

그 사이사이로 인간이 만들 수 없는 수많은 바위가 조각상을 이루고 있다. 그 아래 심연의 계곡이 내를 이루고 흐른다. 『이 계곡으로 떨어지면 살아날 길이 없다』 오랜 풍우가 만든 바위가 온갖 형태로 보는 이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호방한 산세를 끼고 맑고 고운 물이 굽이쳐 계곡을 돌아 흐른다. 지세가 높은 관계로 금강 계곡은 이른 오후면 벌써 서늘해진다. 오후 3시 40분인데도 저녁을 알리는 신호를 감지할 수 있다. 그 만큼 산이 높고 계곡이 깊다. 
    

▲ 금강 계곡의 수려한 자연 풍광은 화산이 만들어낸 또 다른 예술품이다.    © 김성윤 기자


그리고 그 너머 북동쪽 북한에는 굶주리고 억압당하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다.
    
의상조사(義湘祖師) 법성게(法性偈)를 보면  ‘일미진중함십방(一微塵中含十方) 일념즉시무량겁(一念卽時無量劫)’이란 말이 있다. 즉 한 티끌 가운데 온 우주를 머금었고, 찰나의 한 생각이 끝도 없는 영겁이어라는 말이다. 이와 상통한 내용이 블레이크의 시 순수의 전조에도 나온다. 
    
순수의 전조 
-윌리엄 블레이크-

  
한 알의 모래알 속에서 세계를 보고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본다.
그대의 손바닥 안에 무한이 있고
한 순간 속에 영원이 있다.
    
새장에 갇힌 한 마리 로빈새는
천국을 온통 분노케 하며
    
주인집 문 앞에 굶주림으로 쓰러진 개는
한 나라의 멸망을 예고한다.
    
쫓기는 토끼의 울음소리는
우리의 머리를 찢는다.
    
종달새가 날개에 상처를 입으면
아기 천사는 노래를 멈추고.......
    
갇힌 새, 굶주리는 개, 쫒기는 토끼, 상처 입은 종달새..... 등을 보는 시인의 눈엔 시야에 들어오는 것이 다가 아니다. 그 내면을 보면 티끌이 단지 티끌이 아니다. 한 송이 보잘것없는 들꽃이 단지 들꽃이 아님을 노래한다. 미물을 포함한 우주의 모든 구성체 속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삼라만상의 조화가 숨어 있다. 그 보다 훨씬 뛰어나다고 생각한 인간은 무한한 능력과 조화를 갖춘 ‘소우주’라고 블레이크 시인이나 의상스님은 말했다.
    
우리는 어떤 행동을 하면서 나 하나쯤이야 라고 아무렇지 않게 행동한다. 그러나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 보면 ‘나 하나쯤이야’가 아니라 오히려 ‘나 하나만이라도’ 로 시작해야한다. 티끌 한 개, 들꽃 한 송이, 오염된 바다를 청소하는 염낭게 한 마리, 아무것에도 쓸모없다고 생각하는 불가사리 한 마리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중요하다. 그것이 공존이요, 같이 사는 길이기 때문이다. 주인집 문 앞에서 굶주림으로 쓰러진 개는 한 나라의 멸망을 예고한다. 이 구절을 좀 더 깊숙하게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논리적으로 만 본다면 엄청난 비약이다.

 

하지만 생명의 원리가 어떤 것인지를 꿰뚫어 볼 수 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어느 것 하나 소홀히 대할 수 없는 소중한 것이다. 우리가 미물이라고 부르며 하찮게 여기는 염낭게 조차 그 존재 의의는 우주만큼 클 수도 있다. 생명에 대한 폭력이나 무관심은 하늘을 슬프게 한다.

 

그런데 사람에 대한 탄압, 인권에 대한 무지막지한 침해가 천지의 절반 넘어 우리의 북쪽에서 자행되고 있다. 사람의 생명보다 더 우선시될 가치는 없다. 그 어떤 사상이나 이념을 내세워 다른 사람의 인권을 침해할 권리는 없다.

 

민주주의자이자 사회철학자인 루소는 “사회계약론”에서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지만 사회 속에서 쇠사슬에 묶여 있다" 면서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하였다.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해서 문명을 거부한 것이 아니고 자유롭고 평등하지 못한 문명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을 비판하였다.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할 수 없다. 그러나 인간사회 도처에서 인간에 의한 인간에 대한 착취와 억압이 자행되고 있다. 우리의 북쪽에 있는 북한에서의 폭력은 반문명적이고 반사회적이다. 주민을 노예처럼 부려서 쌓아 놓은 노획물로 동족을 살상할 대량살상 무기를 개발하는가 하면 김정은을 추종하는 소수의 노동당 간부들이 밤마다 잔치판을 벌이고 있다.

 

산은 동강나고 주민들은 배가 고파 고향을 등지고 있다. 김일성 가문 앞에는 굶주리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는 현실이 북한이다. 쫒기는 토끼의 울음소리는 더 커지고, 종달새는 더 이상 노래를 할 수가 없다.

 

분명 문명인의 눈으로 볼 때 그것은 자해 행위일 뿐이다. 눈앞의 이익은 달지만, 그 결과는 쓸 것이다. 이런 생각을 천지를 보고 돌아오는 셔틀버스 안에서 해보았다. 그리고 잠시 천지의 아름다움과 백두산의 웅장함을 “백두산 천지에 올라”로 스케치 해 보았다. 
    

▲ 필자 김성윤 기자,  백두산 천지에 올라서     © 김성윤 기자



백두산 천지에 올라서

 -김성윤-


파~란 하늘 아래 순백의 천지를 바라보며
내 가슴은 설렌다.
처음 보았을 때도 그랬고
두 번 보았을 때도 그랬고

세 번 보았을 때도 그랬다.


마음에 담아가기는 너무 벅차고
그냥 남겨두기엔 너무 아쉽다.
천지를 향한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
아~ 아름답고 장엄하다.


신비로운 그 모습에 한민족의 무궁함을 보고
내 가슴은 뛰었다.
천지와 이별한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렇게 설레기를 바라노니
그렇지 않다면 나 세월과 하직한 것이나 다름없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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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7/11 [08:56]  최종편집: ⓒ gg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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