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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윤 교수의 요동과 간도 답사기 9] 한민족의 영원한 고향의 강 '압록강'
백두산에서 발원한 925.5km 압록강이 서해로 흐른다
 
김성윤 기자 기사입력  2019/08/17 [14:37]
▲ 김성윤 교수, 단국대 전 법정대학장    

고구려 두 번째 수도였던 집안에서 고구려 유적지를 돌아본 후  이번 답사의 마지막 밤을 단동에서 자야 한다. 길림성 집안시에서 단동까지의 거리는 약 240km쯤 된다.

 

예전과 달리 백두산에서 발원하여 북한과 중국을 가로지르며 흐르는 압록강 중류에서부터 하류 쪽을 따라 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었다.

 

그래도 중간중간 산골짜기를 돌고 깊은 구릉을 지나가야 한다. 더구나 버스가 낡은 데다 국도는 아직도 2차선 도로가 대부분이다. 그러다 보니 앞에 화물차나 경운기 같은 농기계 트럭이 달리고 있으면 앞지르기가 어려워진다.

 

아침 일찍 통화에서 집안으로 가서 우리 고구려 문화유적지를 답사하고 단동으로 오다 보니 시간이 많이 지연되어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강 건너 드문드문 보이는 북한 땅과 깊은 산의 계곡을 돌아 나오면서 보는 산천은 강원도의 어떤 산골짜기를 여행하는 기분이었기에 지루하지 않았다. 특히 중국에 붙어 있는 땅이 나올 때면 통일이 된다면 이곳이야말로 중국 대륙으로 가는 전진기지이자 물류 기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새로운 희망의 땅을 찾은 기분이었다.

 

▲ 빨간 원안의 표시가 북한과 중국의 국경선인데 조그만 실개천을 가로질러 국경을 표시하고 있다.    © 김성윤 기자


 압록강이 흐르는 구간은 925.5km나 된다. 그중 국경 하천으로서의 길이는  790km이다. 이 압록강을 우리가 버스를 타고 달리는 중국 쪽에서 보면 만주의 남쪽 끝이다. 반면에 한반도에서 보면 우리나라의 북부이자 대륙으로 가는 관문이다.

 

이곳의 압록강 중부지역을 중심으로 고구려가 대륙의 저 넓은 땅을 지배하였다. 더 요약하여 말한다면 고구려는 만주 남부와 한반도 북부를 흐르는 압록강 중류를 근거지로 세력을 확대했던 곳이다. 그 중심지 집안에 산재한 고구려의 문화유산이 아직도 눈앞에 아른거린다.
   

▲  집안시를 흐르는 압록강 건너 북한이 바로 눈앞에 있다. 저 건너의 산하가 우리가 그리도 가보고 싶은 북한의 만포다.   © 김성윤 기자


 그 이유는 과거를 과거로 묻어 버리지 않고, 과거는 현재와 같이 언제나 생동하며 존재하는 시제이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우리 민족은 백두산 천지와 압록강에 대한 애착과 호기심 많았다. 하긴 나는 호기심 없는 인간치고 성공한 사람을 보지 못하였다. 호기심은 향상을 위한 열쇠요, 전진하기 위한 디딤돌이다. 지적인 호기심을 잃어버릴 때 인간은 타인에 의하여 관리되는 존재로 전락하고 만다.

 

그래서 압록강이나 백두산 자체를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호기심에 넘쳐 있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 보았다. 압록강은 해발 2,500m나 되는 백두산에서 발원하여 한국 신의주시와 중국 단둥시 사이 지점을 통과하여 서해만으로 흘러가는 한반도에서 제일 긴 강이다. 대한민국에서 제일 길다는 낙동강의 525㎞이고, 한강은 514㎞밖에 안 된다.

 

유역면적은 6만3,160㎢. 북한 쪽 유역면적이 3만1,226㎢이고 나머지는 중국에 속한다. 압록강 중간에 있는 섬이 중국에 붙어버린 곳도 많이 생겨났다. 특히 압록강하구에 있는 황금평은 중국에 붙어 있다. 황금평의 면적은 11.45km²로 여의도 면적 8.48km²보다 넓은 땅이다.

 

개발 여하에 따라 국제적인 도시가 될 수도 있다. 이 같은 땅이 황금평 이외에도 비단섬을 비롯한 평안북도 의주군에도 있다. 의주군에 있는 수구도 역시 압록강의 하중도이었으나 압록강의 퇴적 작용으로 섬의 좌우 양 끝이 중국 고루자 마을에 붙어버린 마을이다.
   

▲농산물 판매 사진 그 마을에는 한국인 관광객을 위한 농산물 마트가 지어져 있다.     © 김성윤 기자

 

▲ 마트의 뒷마당이 북한과 국경을 알리는 일보과이다. 즉 한 발만 넘으면 북한이니 주의하라는 표지석이다.     © 김성윤 기자


이 같은 땅이 압록강 상에는 10여 곳이나 된다. 이들 섬이 중국 쪽에 붙어 있으면서도 북한영토가 된 것은 1962년 체결된 조중변계조약(朝中邊界條約)에 근거해서다. 조·중변계조약은 1962년 12월 10일 북한과 중국 사이의 국경선을 확정한 다음 평양에서 김일성 수상과 주은래 중국 총리 사이에 체결했다. 이어 1964년 3월 20일 베이징에서 북한 외무상 박성철과 중국 진의 외교부장이 서명하면서 발효된 북한과 중국의 국경선에 대한 조약이다.

 

조약체결 당시 압록강에는 모두 205개의 하중도(河中島, 영어: river island, river archipelago)는 하천에 있는 섬을 말한다)가 있었다. 이 가운데 북한이 127개의 하중도를 소유하고, 중국이 78개를 소유하기로 합의했다. 이 조약에 따라 압록강 하구 쪽에 있는 큰 섬들은 대부분 북한의 영토가 되었다.

 

이 조약이 발효될 당시의 지도상에는 황금평과 중국 땅 사이로 좁은 물길을 따라 압록강이 흐르고 있었다. 이 물길은 시일이 지나면서 상류로부터 밀려오는 토사와 퇴적물이 쌓여 아예 물길이 사라지거나 막혀 섬 자체가 중국 쪽 대륙에 붙게 된 것이다.

 

황금평보다 더 하류 쪽에 있는 비단섬과 신도는 상류에서 내려오는 퇴적물이 쌓이면서 거대한 하나의 섬으로 붙어 버렸다. 이 비단섬의 북쪽도 중국 측의 영토에 붙어 버렸다. 이렇게 되어 한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가 아닌 대륙에 우리나라 땅이 생겨난 것인데 이번 여행길에 이 섬들을 확인하고 볼 수 있었던 것이 내 개인적으로는 가장 보람 있는 일이었다.
   

▲  ‘조진조선(朝進朝鮮)’이라는 중국 사이트에 나온 지도(사진)에 비단섬이 중국 대륙에 붙어 북한 땅이 되었다. 지도상에서 압록강과 서해가 만나는 곳에 위치한 비단섬이 중국 대륙에 붙어있고(지도 A 부분) 압록강은 그 동쪽에서 바다로 들어가기 때문에 비단섬은 헌법의 영토 조항인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에 해당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북한의 영토요, 대한민국의 영토이다. 고루자 마을이 있는 우적도 지도상의 C 부분도 중국 쪽에 붙어버린 북한 땅이자 한국의 영토이다.   © 김성윤 기자


대한민국의 헌법 제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한다.”로 되어 있다. 그렇다면 중국 쪽에 붙어버린 국토는 우리 국토가 아니란 말이 된다. 따라서 헌법을 개정하여 우리의 국토주권을 지켜야 하겠다는 각오도 다지게 되었다.
 
끝으로 이번 답사를 정리하여 보면 대련에서 요동 땅을 가로질러 단동에서 1박하고 압록강을 거슬러 올라가다 통화에서 1박한 후 백두산의 눈 덮인 천지를 둘러보았다. 이후 서파 아래쪽 금강 대협곡을 따라서 삼림욕 겸 계곡의 멋진 경치를 둘러보았다.

 

이후 버스를 타고 다시 통화로 와서 1박 한 후 졸본성과 국내성을 살펴본 후 압록강 중류에 위치한 중국의 집안과 북한의 만포시를 압록강에서 보트를 타고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그리고 다시 압록강을 따라 내려와 단동에서 또다시 1박 후 대련 공항을 거쳐 귀국하였다.

 

시대가 변한만큼 사람이 사는 환경도 변할 수는 있지만 지난 10여 년의 세월은 중국을 너무도 많이 바꾸어 놓았다.
   

▲  집안의 압록강 강변 이 같은 문명과는 달리 강 건너편 북한은 정비되지 않은 강변 그대로이다.   © 김성윤 기자


특히 압록강을 따라 중국 쪽의 변화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이 달라졌다. 그에 비하면 압록강 건너 북한은 아직도 깊은 숙면상태에 있다는 생각밖에 달리 표현할 수가 없을 정도로 달라진 것이 없었다.
 

▲ 집안시 건너편 북한은 모든 것이 오직 고요할 뿐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다.    © 김성윤 기자


애써 표현하자면 헤르만 헤세의 시 안개 속의 세상과 같다.
 
안개
-헤르만 헤세-
 
안개 속을 거니는 이상함이여,
덩굴과 돌들 모두 외롭고,
이 나무는 저 나무를 보지 못하니
모두가 다 혼자로구나!
 
나의 삶이 밝았던 때에는
세상엔 친구들로 가득했건만
이제 여기 자욱한 안개 내리니
아무도 더는 볼 수 없어라.
 
회피할 수도 없고 소리도 없는
모든 것에서 그를 갈라놓는
이 어두움을 모르는 이는
정녕 현명하다고는 볼 수 없으리.
 
안개 속을 거니는 이상함이여,
산다는 것은 외로운 것,
누구도 다른 사람 알지 못하고
모두는 다 혼자인 것을!
 
끝으로 이번 답사는 처음에는 5회에 걸쳐 경기데일리에 연재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독자들께서 더 자세하게 더 입체적으로 묘사해 달라는 요청이 쇄도하여 4회나 더 연재하게 되어서 총 9회를 연재했다.
 
연재하는 동안 많은 독자의 성원에 감사드리며, 기회가 되는대로 더 자세하게 고구려 문명 기행을 보도해 드릴 것을 약속하며, 요동과 간도의 답사기를 아쉽지만 여기서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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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8/17 [14:37]  최종편집: ⓒ gg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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