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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학문 체험수기] 아베의 양심 실종과 독일인의 사죄(2)
1965년 한일협정에서도 제외된 사할린 교포의 우편저금을 배상하라!
 
데스크 기사입력  2019/09/02 [05:09]
▲ 전학문 박사    © 경기데일리

일본제국주의 시대 사할린으로 강제 동원된 노무자들의 우편저금은 현재 1만 6천여 명분으로 1억8,700만엔이나 된다. 이를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4조4506억원이나 된다고 한다. 이 액수도 일본정부가 밝히고 인정한 액수다.

 

따라서 제 3자가 객관적으로 추산하면 더 늘어날 수도 있다. 사할린으로 강제 동원된 노무자들의 노임 우편 예금은 한일청구권에서 일본이 배상했던 것과는 다르다.

 

 한일 양국 모두 1965년 일본이 한국에 배상했던 청구권 협정과는 다르다는 것도 인정하였다. 따라서 이 돈은 소멸되지 않았다. 문제는“가입자들의 통장 원본이 없다”는 이유를 내세워 일본정부가 사할린 우편저금을 지급하지 않는 데 있다. 그리고 영주 귀국한 사할린 동포들에게는 이제 한국 국적이므로 한일협정을 소급 적용하여 개인청구권은 소멸되었다는 억지 주장을 펴고 있다.

 

이 예금은 목숨을 담보로 가혹한 노동조건 아래서 일했던 노동자들의 임금일 뿐만 아니라 강제 예금이다. 이는 마땅히 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일본제국 주의를 위한 노동 혹사도 모자라 사할린으로 강제징용 당했던 노동자들에 대한 미지불 노임의 보상 문제에 대해서까지 “한일 기본협정으로 해결됐다”는 억지를 쓰고 있다.

 

▲강제징용 노동자가 일본제국주의 군인에 의하여 끌려가는 삽화      ©전학문

 

대명천지 이런 나라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신비스러울 뿐이다. 일본은 개인의 우편예금을 비롯한 개인 재산청구권은 “1965년 한일 협정체결에 따라 소멸되었다”고 주장한 것도 모자라 말도 안 되는 아주 복잡한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면서 보상은커녕 원금마저도 돌려주지 않는 야만적인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일본의 타카기 변호사를 비롯한 법률가들이 몇 번이나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지만 지금까지도 판결을 미루고 있다.  

 

더 나은 삶과 열악한 환경에서 벗어나고자 강제노역임에도 불구하고 조선의 징용 노동자들은 열심히 일했다. 한때는 일본인들도 돈을 벌기 위해 미국으로 이주한 일이 있었다. 일본 제국주의처럼 강제 동원이 아니라 자유의지를 가지고 자발적으로 미국 이주를 선택하였다. 미국으로 이주한 일본계 미국인과 일본 이민자 12만 명은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당시 격리 된 일도 있었다.

 

전시 당사국 주민이라는 미명하에 그들이 살던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사막지대나 황무지에 건립한 ‘전시전주소(戦時転住所)’라는 곳으로 이주 시켰던 것이다. 이 같은 전시전주소는 미국에 10개소나 되었다. 그 후 강제수용소로 순차적으로 이주 시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이들을 억류하였다.

 

그들은 1941년 일본이 하와이 진주만을 기습 공습하여 미 전함을 침몰 시켰을 때 “진주만 승리 만세”라고 외쳤던 적색분자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부시 대통령은 강제수용소에 억류되어 있던 일본인들에게 사과와 보상을 한 바 있다.

 

전쟁이 끝난 지 45년이나 지난 1990년에 전쟁에서 승리한 미국정부는 전쟁에서 패배한 미국 거주 일본계 생존자 약 6만 명에게 위로와 보상을 하였다.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일본계 미국 거주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사과의 편지와 함께 2만 달러나 되는 수표를 전달하였다.

 

이를 뒤이어 캐나다에서도 강제수용소에 갇혀 있었던 일본계 생존자 약 1만4천 명에게 미국과 거의 비슷한 사죄와 보상을 한 바 있다. 이것이 인류애요, 진정한 사과며 보상이 아니겠는가? 이에 대하여 일본 아베 총리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지 5년이 지난 1950년에 서독 정부는 전후 폐허가 된 나라를 복구 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쟁희생자에 대한 보상을 위한 연방원호법을 제정한 바 있다. 여기서 말하는 전쟁 피해자들에게는 군인, 민간의 신분과 국적 및 거주지와 관계없이 무조건 보상하였다.

또한 1953년에 피해자들을 위한 연방보상법도 제정하였다.

 

1951년 서독의 아데나워 수상은 “독일 민족으로서 유대인에게 대한 범죄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끝없을 정도의 범죄행위를 저질렀음을 인정하고 사과하였다. 그리고 전쟁 범죄에 대하여 도덕적, 물질적 보상을 의무화하였다”고 발표하였다.

 

1970년 12월 7일 빌리 브란트 당시 서독 총리는 폴란드를 찾아 나치 독일에 학살된 유대인 위령비 앞에서 겨울비가 오는 가운데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나치가 저지른 전쟁범죄에 깊은 사죄를 표명했다.

 

▲참된 눈물은 많은 것을 해결한다.1970년 12월 7일 아침, 독일의 빌리 브란트 총리가 폴란드 바르샤바의 유대인 위령탑 앞에서 무릎을 꿇고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당시 폴란드 국민들 가슴속에는 독일의 폴란드 침략으로 서막을 올린 2차 세계대전에 대한 앙금이 깊게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브란트 총리는 보슬보슬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를 아랑곳하지 않고 40만 명을 추모하는 전쟁희생자 위령탑 앞에 무릎을 꿇은 채 용서를 빌었다.     © 전학문

 

 브란트의 이 모습을 TV생중계로 지켜본 폴란드 국민들의 앙금은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세계는 브란트 총리의 용기에 박수를 보냈다. ‘브란트의 무릎 꿇기(Kniefall in Warschau)’로 명명되는 사건이다. 이 참회 눈물은 독일과 폴란드의 국교관계를 정상화시켰고 동서 냉전을 종식시키는 기폭제가 됐다

 

메르켈 총리 역시 2009년 폴란드에서 열린 제2차 세계대전 발발 70주년 기념식에서 거듭 무릎을 꿇고 유럽인들에게 사죄했다. 이를 통하여 독일의 반성과 사죄를 마침내 세계가 인정하는 계기를 만들었던 유명한 장면으로서 전 세계 시민의 심금을 울린 바 있다. 현재는 독일에서는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사람은 범법자가 되고 있다. 이 같은 독일 사례와 비교하여 일본의 아베 정부를 보면 적반하장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한번 사과했으면 되었지 또 하란 말이냐? 배상은 한일 청구권자금으로 이미 끝났다"고 주장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독일은 1960년 “나치 피해 포괄배상협정”을 체결한 후 추가 배상문제의 해결을 위해 1981년에 “독일, 프랑스 이해증진재단출연조약”을 체결하였는가 하면, 2000년에는 “기억·책임·미래재단”을 설립하였다. 2012년에는 아돌프 히틀러의 집권 80주년을 맞아 독일에서는 나치정권 탄생을 반성하는 각종 행사를 개최하여 대대적인 “사죄의 이벤트”를 준비하고 시행한 바 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이 행사에서 세계 홀로코스트 기념일과 아돌프 히틀러의 권력 장악 80년에 즈음하여 독일의 나치 범죄에 대한 책임과 역사적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끊임없는 자성과 노력을 촉구한 사실에 대하여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한편 2012년 11월 15일에 매년 진행되는 “유대인의 배상문제회의”에서 독일은 구(舊)공산권 국가에 거주함으로써 배상에서 제외됐던 홀로코스트 희생자 8만 명에게 배상금으로 3억 2천만 달러를 지불하기로 결정하였다. 나아가 1952년에 체결한 홀로코스트 희생자에 관한 배상 프로그램을 개정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그들 민족이 저지른 전쟁의 책임을 인정하고 주변국에 대한 부단한 사죄와 배상 노력을 해 왔다. 이러한 독일의 솔직한 반성은 주변국과의 대립은 국익에 보탬이 되지 않는다는 의식과 함께 사는 지혜를 독일 국민은 물론이고 주변국 국민들에게도 심어 주었다. 이 같은 적극적인 자세는 오늘날 독일이 유럽연합을 이끄는 중심국으로 발돋움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일본은 한반도와 중국의 침탈과정에서 명성황후시해사건이라 불리는 을미사변, 관동대학살, 만주사변, 난징(南京) 대학살, 731부대 등 천인공노할 만행을 헤아릴 수도 없이 저질렀다. 그런 과오가 있었음에도 진정성 있는 사죄를 하지 않아 왔다. 이는 역사를 왜곡시키는 일이요, 그들의 만행을 감추고 은폐하거나 숨기려는 잔꾀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것이 역사 왜곡이요, 인류에 대한 인권의 범죄가 아니고 무엇이겠는지 묻고 싶다. 이처럼 그들의 과오에 대한 반성을 모르는 일본의 오만한 태도는 피해 당사국에서 배신감과 분노만 불러일으키고 있다.

 

▲  이 사진에서 보는 것 처럼 1923년 간토 대지진 당시 조선인 대한 대량 학살 사건이 있었다.   © 전학문

 

일본 당국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과 연합국으로서 비슷한 범죄를 저지른 전범 국가인 독일이 브란트 총리에서 메르켈 총리에 이르기까지 전후 유럽의 진정한 역사 화해와 평화를 위해 어떻게 노력해 왔는지를 성찰할 필요가 있다. 이 일이야말로 일본을 위하고 동북아를 비롯한 전 세계의 평화를 위해서 필요한 일이다.

 

독일과 일본이 현재와 같은 극명한 대조를 이루며 발전을 한 이유를 살펴보면 독일은 전후에 제대로 전범들을 처벌하였다. 그리고 사죄하고 보상하였다. 그 결과 지금과 같은 양심이 있는 국가가 되었다. 반면에 일본은 전후 인류범죄에 대한 처리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어물쩍 넘어갔다. 보상도 시늉만 내었을 뿐만 아니라 진정한 사과도 없었다. 그 결과는 이웃 나라들과의 대립과 분쟁의 연속이다.

 

독일은 룩셈부르크에서 이스라엘과 협정을 체결하여 30억 마르크를 지불한 바 있다. 그 밖에 유대인 대독일 피해보상 청구에 4억5천만 마르크를 지불한 바 있다. 한편 서유럽 12개 국가의 나치희생자들에 대한 보상협정을 잇달아 체결하여 총 10억 마르크를 지불하였다.

 

정부의 공식적인 대응 외에도 기업체가 강제 연행된 노무자들에게 보상을 하였다. 예를 들면 1973년 화루벤회사등 5개의 대규모 회사가 희생자 1만 5000명에게 총 5000만 마르크 이상을 지불하였다. 이 돈은 오늘날의 환율로 환산하여 보면 약 470억 원이나 된다.

 

이 같은 내용은 일본에서 발간된 신문, 출판물, TV 등 대중 미디어에 의하여 일본에도 널리 알려 진 바 있다. 따라서 일본의 일반 시민들도 모를 리가 없다. 그런데도 강제 징용된 노무자들의 보상을 부정하고 있다. 심지어 사할린 거주 한인들의 예금마저 돌려주지 않기 위하여 온갖 술책을 쓰고 있다. 이래서 일본 정치인들의 양심 실종을 언론이나 시민단체들까지 고발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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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9/02 [05:09]  최종편집: ⓒ gg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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