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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윤 칼럼]선배세대를 부끄러워하는 서울대 총학생회
 
김성윤 논설위원 기사입력  2019/09/17 [12:55]
▲ 김성윤 논설위원, 단국대 전 법정대학장    

"법무부 장관 자격 없다. 지금 당장 사퇴하라!" "학생들의 명령이다. 지금 당장 사퇴하라!" "고교 자녀! 논문 특혜! 지금 당장 사퇴하라!" "납득 불가 장학 수혜! 지금 당장 반환하라! '조국교수 STOP! 서울대인 촛불집회'라는 이름으로 8월 23일 오후 8시 30분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내부 광장에 서울대생들의 이 같은 외침이 울려 퍼졌다.

 

"그 후 이 목소리는 들불처럼 온 나라를 달구고 있다. 9월 16일자 중앙일보에는 서울대 총학 “선배세대 부끄러워... 조국 사퇴하라”란 제목의 기사까지 실렸다. 우리말에 파렴치한(破廉恥漢)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부끄러움을 파괴한(破) 사람을 의미한다.

 

이와 비슷한 말로 후안무치(厚顔無恥)라는 말도 있다. 그 뜻 역시 두꺼운 얼굴로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철판처럼 두꺼운 얼굴을 한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자신이 하는 행동과 자신이 했던 말을 못 보는 것이다. 이래서 우리는 부끄럼을 모르는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 개나 고양이는 부끄러움을 모른다. 그래서 동물이다.

 인간도  부끄러움을 모르면 인간 자격을 상실하여 동물과 같아진다. 인간 사회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자신의 잘못에 대한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이 많아야 한다. 그게 정상적인 사회다.

 

자기의 잘못에 대한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비정상적인 사회이다. 한자로 부끄러울 치(恥)자를 보면 귀이(耳) 더하기 마음(心)이다. 인간의 중심에는 마음이 있다. 부끄러울 치(恥)자는 귀도 마음이 있다는 의미다.

 

 귀에 마음이 있다는 것은 마음에 거슬리는 말을 듣거나 스스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말을 들을 때면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는 부끄러운 마음이 생긴다. 이것은 매우 정상적인 인간의 본능이요, 감정의 흐름이다. 잘못을 잘못으로 느끼지 못한다면 이미 인간이 이성을 잃어버린 상태에 있다.

 

인간은 누구나 잘못할 수도 있고 실수를 저지를 수도 있다.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행동을 부끄럽게 여기고 다시는 안 하면 된다. 그렇게 해야만 다시는 그런 일의 반복을 막을 수 있다. 신분이 높건 낮건 또는 빈부를 떠나 인간이 감당해야 할 몫이 있다.

 

능력이 넉넉하면 넉넉한 만큼 사회에 자기 몫에 기여해야 한다. 능력이 모자라면 모자란 만큼 사회에 기여하면 된다. 그것이 인생의 보람이다. 몰라서 못 하는 것은 탓할 수가 없다. 반대로 안다면 아는 만큼 사회에 기여하면 된다.

 

 깨달은 사람은 깨달은 만큼 사회에 베풀어야 사회가 제대로 굴러간다. 오늘날 우리 대한민국 사회에 부족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단연코 수오지심(羞惡之心)이라고 말하고 싶다. 잘못을 저지르고도 부끄러워할 줄 몰라서야 하겠는가?

 

잘못을 뉘우치고 사과할 줄 모르는 사회가 어찌 선진국이란 말인가? 국민소득 3만 달러 달성이 선진국이 아니고 잘못을 인정하고 부끄러운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 사는 곳이 선진국이요, 선진사회다.

 

옛날 중국 고사를 보면 왕광원(王光遠)이라는 출세지상주의자를 볼 수 있다. 이 사람은 출세를 위하여 자기 상관이나 권력자에 빌붙어 앞뒤 좌우를 가리지 않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아첨을 하였다고 한다.

 

어느 날 술 취한 권력자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죽도록 채찍으로 얻어맞은 일도 있었다. 그는 얻어맞으면서도 여전히 아첨했다고 한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광원의 얼굴 가죽은 두껍기가 열 겹의 철갑과 같다’고 하여 철면피라는 말이 생겨났다는 고사가 있다.

 

사람은 부끄러움을 느낄 때 두 볼이 불그레하게 변한다. 이 모습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한다. 어린이는 순수하다. 그래서 거짓말을 할 때면 다리를 후들후들 떤다. 우리는 아이들의 이런 태도를 보면 웃으며 용서해 준다.

 

그런데 요즈음 우리 대한민국에는 참 이상하고 이해 못할 광경이 반복되고 있다. 법무부 장관 조국의 말속에는 합리적인 의심이 가는 수많은 거짓이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는다.

 

불과 몇만 원이 없어서 도둑질하거나 사기를 친 잡범들은 텔레비전 카메라에 잡히는 것이 두려워 고개를 푹 숙인다. 입었던 옷을 덮어쓰거나 모자를 푹 눌러쓴다. 얼굴을 공개 못 할 부끄러움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몇십억의 돈을 꿀꺽 한 사람일수록 당당하다. 검찰청 ‘포토라인’에 서서 조사에 성실하게 응하겠다며 똑바로 선다. 어디 그것뿐인가? 입가에는 이해할 수 없는 미소까지 흐른다. 부끄러움은커녕 오만하고 방자하다. 이 얼굴이 철면피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조국 법무부 장관에 대하여 국민들은 잘못을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이 기대는 다른 나라의 이야기가 되고 있다. 이를 보다 못한 교수들이 양심선언을 하고 있으며, 종교지도자들의 시국선언으로 표출되고 있다. 학생들은 촛불을 들고 다시 광화문을 찾는다고 한다.

 

여성의원이 삭발하고 야당 대표가 청와대 앞에서 삭발하였다. 부끄러움을 되찾기 위해서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 중 한 명이 윤동주 시인이다. 그 이유는 윤동주 시인이 부끄러움을 아는 시인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는 부끄러움을 아는 정치가가 언제나 주류를 이루게 될까?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에 오직 부끄러운 생각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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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9/17 [12:55]  최종편집: ⓒ gg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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