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오피니언 > 경기데일리 칼럼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정재학 칼럼] 보수도 폭력을 장착해야 하는가
 
정재학 칼럼니스트 기사입력  2019/10/08 [10:57]
▲  정재학 칼럼니스트

필자(筆者)는 대한민국 진보의 뿌리는 북한에 있다고 확신한다. 사드 문제처럼 미국과 국방문제에 관한 일이 벌어지면, 그들은 북한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었고, 북한의 의도와 지령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은 조직화된 북한의 공산 첨병들이었다.

 

그리고 진보의 외피(外皮)엔 항상 평화와 민주를 명분으로 둘러쓰고 있었다. 명분은 행동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함이었다. 예를 들면 평화를 위해 사드 배치를 반대한다는 역설과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어떤 경우에도 자유를 입에 담지 않았다. 북한에 치명적인 결함이 있기 때문이었다. 허울뿐인 명분이었다.

 

평화를 위해서, 민주를 위해서 그들은 촛불을 들었다고 하나 사실은 폭력을 들었을 뿐이었다. 그들은 헌법마저 무시하고 탄핵을 성공시켰다.

 

그리고 친북좌파 정권을 세웠다. 이제는 그 친북정권을 지키기 위해 또 새로운 폭력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여론 조작이 그것이었다.

 

폭력과 저질은 생리적인 진보의 무기였다. 그 폭력 속엔 경찰을 향해 내리찍는 쇠파이프와 죽봉이 있었고, 고소고발을 상시로 벌이는 사법폭력, 그리고 신원을 공개하고 욕설로 테러를 벌이는 사이버 폭력도 있었다.

 

지난 촛불시위 때, 필자(筆者)는 전임(前任)대통령의 얼굴을 붙인 공을 어린아이들을 시켜 차게 하고, 사진에 활을 쏘게 하는 저질을 보았다. 그 또한 폭력이었다.

 

그리하여 진보라는 이름의 집단은 내면(內面)엔 저질로 무장하고, 손으로는 무수한 폭력을 자행하며, 입으로 수시로 거짓말을 하며, 외피(外皮)엔 평화 민주를 입고있는 저질 종북주의자들이었다.

 

지금 조국 법무부장관으로 인해 일어나는 사태의 전면에 등장한 진보의 행태가 바로 그것이었다.

필자(筆者)는 이런 저질을 상대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누군가는 우리까지 저질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하지만, 그것은 구한말 나라가 망할 때 거적데기 깔아놓고 인의(仁義)만을 외치던 나약한 선비의 모습이라고 본다.

 

저질은 초저질로 맞서야 한다. 동형보복만이 법이 약화된 우리 사회의 버팀목이 될 수 있다. 우리도 저질을 이길 수 있다. 끝까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상대하는 것이다. 그들이 몽둥이를 들면 우리는 쇠창을 들어야 한다.

 

초창기 전교조가 그리하였다. 반항하는 교장에게 욕설부터 성추행 혐의까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폭력을 행사하였다. 그게 소문이 나면서 교장들이나 정치인들은 전교조와 싸우기를 포기하였다. 그래서 전교조 교사 명단 공개가 수포로 돌아간 것이다. 그렇게 전교조 교단 장악은 폭력과 저질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저질진보와의 싸움에서 혼란을 읽을 필요는 없다. 그건 대한민국 수호와 점령당한 정권을 수복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미군이 있는 한, 북한은 친북정권을 위해 군을 동원하는 꿈을 꿀 수 없다.

 

이제 보수도 낡은 품격의 위선을 버리고, 진흙탕에 뒹굴 수 있다고 말하라. 같이 멱살을 잡고 절벽에서 뛰어내릴 수 있다고 소리쳐 말하라. 물러서면 뒤에는 강물뿐이다.


 

♦ 외부 필진 칼럼은 본보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자유논객연합 부회장, 시인, 자유지성300인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자유교원조합 중앙고문, 국가유공자, 데일리저널 편집위원, IPF국제방송 편집위원, US인사이드월드 편집위원, 전추연 공동대표
현재 한국문인협회 시분과 회원이기도 합니다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밴드
기사입력: 2019/10/08 [10:57]  최종편집: ⓒ ggdaily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 용
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