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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학 칼럼] 진보는 왜 박정희를 친일파라 부르는가?
너도 친일파다(3)
 
정재학 칼럼니스트 기사입력  2019/10/11 [23:52]
▲  정재학 칼럼니스트

박정희 대통령은 1917년생이다. 그러니까 나라가 망한 지 7년 후에 태어난 셈이다. 대한제국이 사라지고 난 뒤 7년. 따라서 그분의 출생은 국적부터 일본인이었다.

 

이미 그 시기는 일제가 한반도 통치를 완전히 굳힌 상태였고, 조선총독부가 각 군과 면까지 행정조직을 만들어 놓았던 시기였다. 그리고 조선인들을 일본화 시키기 위해 학교를 세워 교육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3.1운동 2년 전의 일이었다.

 

소년 박정희는 당시 2,000만 동포 대부분 그러했듯이 가난한 농부의 자식이었다. 워낙 못 먹어서 키가 자라지 않던 자그마한 소년은 무수한 역경을 이겨내고 조국근대화를 이룬 후, 진보라는 이름의 공산주의자들에 의해서 친일파가 되었다.

 

박정희 소년도 천황폐하 만세를 부르고, 신사(神社)에 절을 하며, 일제의 식민교육을 받으며 성장하였다. 그리고 교사가 되었으나, 교직을 버리고 만주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여 일본군 장교가 되었다.

 

그는 관동군에 배속되었고 일제가 패망하자, 광복군에 찾아가 광복군 지대장이 되었다. 그리고 해방된 조국에 돌아와 국방군에 입대하였다. 형 박상희의 영향으로 남로당에 가입하였고, 숙군운동(肅運動)에 휘말려 체포되었다. 이를 구해준 이가 그 유명한 백선엽 장군이었다.

 

그러나 진보는 박정희를 독립군을 쫓던 친일파라 부르고 있다. 그러나 80만 관동군에 박정희 같은 소위는 존재도 없는, 무려 2만명 장교 중의 한 사람이었다. 소대원 40명을 지휘하는 말단 장교가 독립군을 토벌하는 중책을 맡았을 까닭이 없다.

 

당시 만주는 일본이 만주국을 세워 통치하던 시절이었다. 독립군은 이미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으로 가서 스탈린에 의해 학살되는 한편 중앙아시아로 이주되었던 시절이었다. 봉오동 전투의 영웅 홍범도 장군도 그때 카자흐스탄으로 이주되었다. 이렇게 만주에 독립군이 없는데 박정희 소위가 독립군을 토벌했다는 진보의 주장을 누가 믿겠는가.

 

김일성 아니 김성주는 보천보 전투를 항일운동의 위대한 업적으로 널리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마적질의 또 다른 조작 왜곡된 역사이다. 보천보 전투는 겨울 동안 먹을 식량을 확보하기 위한 겨울 보급투쟁이었다. 보를 지키는 7~8명의 일본군이 식량을 쌓아놓았을 까닭이 없다. 김성주는 보 안에 살고 있는 동포의 겨울 식량을 빼앗아 갔을 뿐이었다.

 

그것을 진보는 김일성의 독립운동이라고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마저도 습격은 김성주가 한 것이 아님이 밝혀졌다. 이어 김성주는 소련으로 가서 소련군이 되었고, 대위 계급장을 붙이고 해방된 북한으로 소련군과 함께 돌아왔다. 그리고 민족 최대의 비극인 6.25 전쟁을 일으켰다.

 

이승만의 하와이 망명으로, 민주당이 장악한 대한민국은 장면 내각의 무능함으로 극도의 혼란에 휩싸였다. 나라를 경영하지 못하는 민주당의 무능이 한꺼번에 나타난 것이다. 더구나 미국도 원조를 줄이기 시작했다.

 

이에 혁명에 성공한 박정희는 나라 재정 상태를 보고 "마치 불난 집을 인수하였구나." 라고 말하였다. 불이 난 집 같은 아무것도 없는 집을 연상할 만큼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그런 나라였다.

 

부황이 들어서 길거리를 헤매는 거지들과 6.25 부상자들. 가난한 농촌. 1년 예산을 미국에 의존해야 하는 나라. 혁명은 국민들이 간절히 바라는 의거였다. 제발 이 가난을 벗게 해달라는 민중의 소원이 박정희의 혁명을 환호케 하였다. 5.16은 민중이 소원하는 토대에서 이루어진 무혈혁명이었다. 당시 수녀원으로 도피한 장면은 “올 것이 왔구나.”라고 말하였다.

 

김일성도 박정희의 혁명을 지지하고자 하였으나. 혁명 공약에 반공(反共)이 들어 있음을 알고 포기하였다.

 

박정희는 통치 19년을 오직 경제개발에 몰입하였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3차를 지나는 동안, 대한민국은 마침내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다. 통일벼가 들판을 누렇게 물들인 들판에서, 우리는 드디어 쌀밥을 풍족하게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이 모든 업적이 친일(親日)로 매도되는 것이라면, 그 친일은 자랑스러운 친일일 수 있다. 일본은 박정희 시대에 독도를 차마 거론하지 못했다. 박정희는 만약 일본이 독도를 거론한다면. 공군사격장으로 만들어 없애버리겠다는 뜻을 김종필로 하여금 전하게 하였다. 서슬푸른 박정희의 결심에 일본은 독도를 더이상 말하지 못하였다.

 

우리는 박정희 대통령을 구국(救國)의 영웅으로 알고 있고, 세계인들이 가장 위대한 한국인으로 평가하는 분이 박정희임을 또한 잘 알고 있다. 지금도 개발도상국에서 인력을 파견하여 새마을운동을 배워가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진보는 박정희의 유신(維新)을 들어 독재라 말하고 있다. 그러나 유신(維新)이 독재가 아님은 분명한 일이다. 박정희는 그 유신을 국민투표로 물었다.  전국이 도시와 농촌을 막론하고 국민들은 90%가 유신을 지지하였다. 이것이 어찌 독재일 것인가.

 

필자(筆者)는 왜 진보라는 이름의 공산주의자들이 이승만과 박정희를 저주하는가에 대한 답을 알고 있다.

 

그것은 지금까지의 대한민국을 부정하기 위해, 다시 새로운 사회주의 국가로 만들기 위해, 대한민국의 영광을 이룬 두 인물을 폄하하고 독재자로 몰아가고 있음이다. 그리하여 도덕적 우위를 확보하여 진보의 영역을 넓힌 뒤, 정권 쟁탈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함이다.

 

지금도 이승만과 박정희를 비난하는 것은 잡은 정권을 연장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전교조를 시켜 끝없이 학생들에게 이승만과 박정희를 독재자로 기르치고 있는 것이다. 영웅에 대한 모욕이 지속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역사의 진실을 왜곡하고, 이 왜곡을 진실로 가르치고 있는 악행(惡行)을 그들은 정의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모든 행위가 가리키고 있는 것은, 진보 역시 좌파독재의 길로 가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는 것. 이 또한 엄청난 비극을 잉태하고 있다는 것을, 진보 그들만 모르고 있을까.

 

  2019. 10. 11 전라도에서 시인 정재학


 ♦ 외부 필진 칼럼은 본보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자유논객연합 부회장, 시인, 자유지성300인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자유교원조합 중앙고문, 국가유공자, 데일리저널 편집위원, IPF국제방송 편집위원, US인사이드월드 편집위원, 전추연 공동대표
현재 한국문인협회 시분과 회원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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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10/11 [23:52]  최종편집: ⓒ gg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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