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오피니언 > 경기데일리 칼럼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김성윤 칼럼] 포퓰리즘(Populism)의 곡(哭)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우리나라가 망가지는 소리가 안 들리는가
 
김성윤 논설위원 기사입력  2019/10/13 [22:52]
▲ 김성윤 논설위원, 단국대 전 법정대학장    

대중적으로 인기가 많은 정치인이 있다. 그들이 대중들에게 인기를 얻는 비결은 무엇일까? 그 답은 대중이 원하는 정책을 내세우고 보통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주기 때문이다.

 

그들은 대중이 원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파악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원하는 것을 파악하면 신속하게 정책과정에 투입한다. 그 후 이를 대중에게 대대적으로 알린다.

 

예를 들면 서민을 위하여 대기업이나 부유층으로부터 지금보다 더 많은 세금을 걷어야 한다는 주장을 편다. 나아가 사회적 약자나 서민들을 위한 정책으로 둔갑 시켜 PR(Public Relations:대중 관계)을 잘한다.

 

외교 무대에서도 마찬가지다. 당당하게 민족과 나라를 대변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노력한다. 이를 통하여 국민들의 자긍심을 높여주면서 대중 앞에 자주 얼굴을 비추고 소통에도 앞장선다.

 

이런 정치인일수록 대중에게 인기가 아주 높다. 우리는 이런 정치인들 속에 포퓰리스트(Populist)가 많다는 것을 이미 보아 왔다. 그리고 그들의 정치 방식을 포퓰리즘(Populism)이라고 부른다.

 

포퓰리즘의 사전적 정의는 보통 사람들의 요구와 바람을 대변하려는 정치 철학이다. 그런데도 포퓰리스트나 포퓰리즘이라는 단어가 우리에게 부정적인 의미로 다가 오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그 이유는 포퓰리스트라는 단어가 깊이 없는 정책을 통하여 오로지 대중의 인기에 영합한다는 이미지 때문일 것이다.

 

이 정부 출범 후 줄곧 품어왔던 의문 중 하나가 포퓰리즘 정부인가 아닌가? 문재인 대통령이 포퓰리스트일까? 아닐까?

 

포퓰리즘 필독서로 꼽히는 <누가 포퓰리스트인가>의 저자 얀 베르너 뮐러(Jan Werner Mueller) 프린스턴대학교 교수는 포퓰리스트에 관한 몇 가지 특징을 들었다.

 

그 첫째가 편 가르기이다. 자신들의 지지자만 진정한 국민이라고 주장한다. 이 말에는 자신들만 도덕적으로 정당한 지도자이고 진정한 국민의 대표자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뿐만 아니라, 반대편의 경쟁자는 국가를 위협하는 특정한 외부 세력의 조종을 받고 있다는 암시도 동시에 포함한다.

 

요즘 집권 진영에서 뜬다는 구호가 서초동에 검찰 개혁을 원하는 “200만 명이 모였다, 내가 조국이다” 편 가르기의 정점은 사법의 차별화, 차별적 법치주의다. 거칠게 표현하면 “내 편 무죄, 네 편 유죄”다. 이 기준에서 보면 조국 장관과 그 가족은 당연히 흠결 하나 없는 ‘무죄’다.

 

 둘째, 포퓰리스트가 집권하여 비판적인 언론과 시민사회를 탄압한다. 집권하기 전에는 기존의 권력에 대항하던 이들이 정작 자신들이 집권한 후에는 사람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억누르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소위 자신들이 야당 시절 반대하던 일을 집권하고 나서는 찬성하거나 문제 삼지 않는다. 이를 두고 내로남불이 유행이다. 야당 땐 그렇게 검찰 개혁이 시급하다더니 집권 2년여 동안 적폐청산을 내세워 검찰권의 남용을 부추겼다. 내 조국만 챙기고 남의 국민에겐 인권도 남의 일이었다.

 

셋째, 주류면서 비주류처럼 행동한다. 여당이고 다수면서 마치 학대받는 소수자 행세를 한다. 그 이유는 집권에 편 가르기가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법무부 장관 조국은 “이를 악물고 출근하고 있다”라며 “제가 하루를 살아내는 게 개혁”이라고 했다.

 

권력의 핵심 중의 핵심이요, 정점에 있으면서 마치 핍박받는 약자인양 행세하여 동정심을 자극하였다. 포퓰리스트일수록 나만 진정한 국민을 대표한다고 주장한다거나, 지지자들을 향해 당신들만 진정한 국민이라고 주장할 때 민주주의 사회는 위험에 빠질 수 있다.

 

특히 국민의 정당한 대표자는 자신들뿐이므로 영구 집권을 당연하게 여긴다. 여당 대표가 50년 집권을 공공연히 말하는 이유다. 이런 포퓰리스트들은 먼 나라에 있지 않다. 우리 곁에 있다.

 

 자신과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로 종북 또는 친일로 몰아붙이는 정치인들은 지향하는 방향만 다를 뿐이지 본질적으로 같은 부류다.

 

포퓰리스트는 기득권의 물갈이를 내세운다. 촛불정부를 내세워 주류 세력 교체를 주장하였다. 그런데 막상 그들이 집권한 후 전(前) 정권이나 진배없이 부도덕한 일을 하고 있다. 다른 것이 있다면 부끄러움을 모르는 뻔뻔함 뿐이다.

 

조국 장관은 “국민이 절 꾸짖으면서도 촛불을 들었다. 깜짝 놀랐다”는 궤변(詭辯)을 서슴없이 늘어놓는다. 그들은 국가가 당신의 삶을 책임진다고 말한다. 지지받는 대가로 반대급부를 지급한다. 그게 각종 수당이나 지원금이다.

 

문재인 정부는 3년 새 국가 예산을 100조원 넘게 풀었다. 하지만 불평등은 커졌고 중산층은 줄었으며 나랏빚은 늘고 있다. 그런데도 끝없는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이처럼 포퓰리즘의 종착지는 나라를 쪼개는 것이요, 국민을 네 편 내 편으로 나누는 것이며 재정을 거덜 내는 것이다. 피와 땀으로 일구어낸 이 나라가 망가지는 소리가 모든 지표 위에 나타나고 있는 것이 그 증좌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밴드
기사입력: 2019/10/13 [22:52]  최종편집: ⓒ ggdaily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 용
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