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오피니언 > 경기데일리 칼럼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김성윤 칼럼] 전교조의 좌 편향교육이 인헌고 뿐이겠는가?
자유민주주의와 교육자의 사명
 
김성윤 논설위원 기사입력  2019/10/30 [21:22]
▲ 김성윤 논설위원, 단국대 전 법정대학장    

칼 세이건(Carl Edward Sagan)의 저서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이라는 책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나온다. 이글은 1990년 2월 14일, 우주 탐사선 보이저 1호가 태양계를 벗어나기 직전 남은 전력 모두를 모아 지구에서 64억km나 멀리 떨어진 위치에서 지구를 촬영한 사진을 인류에게 전송하고 태양계를 벗어났다.

 

그 사진을 보고 쓴 책 속에 나온 글이다. “ ..여기 있다. 여기가 우리의 고향이다. 이곳이 우리다.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 당신이 들어 봤을 모든 사람들, 예전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이 이곳에서 삶을 누렸다.

 

우리의 모든 즐거움과 고통들, 확신에 찬 수많은 종교, 이데올로기들, 경제 독트린들, 모든 사냥꾼과 약탈자, 모든 영웅과 비겁자, 문명의 창조자와 파괴자, 왕과 농부, 사랑에 빠진 젊은 연인들, 모든 아버지와 어머니들, 희망에 찬 아이들, 발명가와 탐험가, 모든 도덕 교사들, 모든 타락한 정치인들, 모든 슈퍼스타, 모든 최고 지도자들, 인간 역사 속의 모든 성인과 죄인들이 여기 태양 빛 속에 부유하는 먼지의 티끌 위에서 살았던 것이다.

 

 지구는 우주라는 광활한 곳에 있는 너무나 작은 무대이다. 승리와 영광이란 이름 아래, 이 작은 점의 극히 일부를 차지하려고 했던 역사 속의 수많은 정복자들이 보여준 피의 역사를 생각해 보라. 이 작은 점의 한 모서리에 살던 사람들이 거의 구분할 수 없는 다른 모서리에 살던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던 잔혹함을 생각해 보라. 서로를 얼마나 자주 오해했는지, 서로를 죽이려고 얼마나 애를 써왔는지, 그 증오는 얼마나 깊었는지 모두 생각해 보라.

 

이 작은 점을 본다면 우리가 우주의 선택된 곳에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사는 이곳은 암흑 속 외로운 얼룩일 뿐이다. 이 광활한 어둠 속의 다른 어딘 가에 우리를 구해줄 무언가가 과연 있을까. 사진을 보고도 그런 생각이 들까?

 

▲ 60억 km떨어진 곳에서 보이저 1호가 잡은 지구. 지구의 모습은 그야말로 먼지 한 톨에 지나지 않는다.    ©경기데일리

 

우리의 작은 세계를 찍은 이 사진보다, 우리의 오만함을 쉽게 보여주는 것이 존재할까? 이 창백한 푸른 점보다, 우리가 아는 유일한 고향을 소중하게 다루고, 서로를 따뜻하게 대해야 한다는 책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있을까? 이런 글을 읽고 사진을 보면서도 좌 편향된 교육을 할 수 있을지 묻고 싶다.

 

조선일보 김은중 기자의 '인헌고 학생의 눈물'이라는 제목의 기사 중 ...인헌고 학생들에 따르면, 교사가 "민주주의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제자가 "제가 노력한 만큼 되돌아오는 사회인 것 같습니다"라고 답했다.


교사의 대답은 "속아 넘어가지 마라. 너는 아주 쓰레기 같은 답을 한 것이다"라는 것이었다. 토론은 없었다.

 

또 다른 증언이다. 한 학생이 "석탄 사용이 줄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자 교사가 "너는 가짜 뉴스에 속고 있다.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건 원전 마피아들 편들어주는 것"이라고 했다. 그걸로도 부족했는지 "마피아는 우리나라 조폭 같은 것"이라는 친절한 설명까지 곁들였다고 한다.

 

 "우리는 자라서 진보도 보수도 될 수 있다"는 학생들에게, '좌는 착하고 우는 나쁘다'는 선입견을 주입한 것이다. 싫다는 학생들에게도 억지로 반일(反日) 구호가 적힌 어깨띠를 두르게 했다.

 

오죽했으면 학생들이 "우리는 정치 교사들의 정치적 시체로 전락했다"고 했을까... 이 같은 교육은 청소년의 영혼을 파괴하고 청소년의 미래를 좀먹는 교육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10월 29일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이날 오후 2시 기준 '인헌고 정치적 이념 선동한 교사와 교장을 징계해 주십시오'라는 청원의 동의자 수가 1만132명을 기록했다고 한다. 이제 서울시교육청의 공식 답변을 들을 수 있기에 기다리고 있다.

 

세계는 전인교육이 대세이지 않는가?  완전한 인간을 목표로 하는 것이 전인교육이다. 우리는 완전한 인간 건전한 인격교육을 전인이라고 한다.

 

전인교육의 반대가 부분교육이다. 부분교육을 받은 인간은 부분적인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인간은 말 그대로  불구적 인간이다.

 

우리에게 널 알려진 스위스의 교육자 페스탈로치는 "교육의 목적은 인간성의 조화적 발달에 있다"고 하였다. 인간의 여러 가지 능력이 균형적이고, 조화적 발달을 이룰 때 비로소 전인이 형성될 수 있다.

 

사상적으로 편향된 인간, 손과 기술만 발달한 인간은 전인적인 인간이 아니다. 그것이야 말로 부분적 인간이요, 신체와 정신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 인간이다.

 

머리는 지식이요, 학문이다. 그 머리가 편향된 사고로 채워진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우선 생각하는 힘이 불구가 되고, 분석하는 힘이 모자라게 된다. 판단하는 능력이 빗나갈 수 있다. 상상하는 힘이 어느 한쪽에 갇혀버릴 수 있다. 양심과 도덕이 경련을 일으킬 수 있다. 머리에 녹이 끼고, 때가 끼고, 먼지가 앉을 수 있다.

 

칼은 의사에게 쥐여주면 사람을 살리는 활인도가 된다. 이와는 달리 도적에게 쥐여주면 흉기가 되고 살인도가 될 수 있다. 칼이 살인도가 되느냐? 활인도가 되느냐는 어떤 정신의 소유자에게 쥐여 주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지성은 마치 칼과 같다. 그렇기에 학교 교육은 온전한 지성을 연마 시켜야 한다. 왜냐하면 양심이 없는 지성이나, 덕성이 없는 재능은 고등 지능범이 되기 쉽기 때문이고 악마의 지혜가 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학교 교육은 전인 교육, 인격교육이 매우 중요하다. 교육은 단순한 지식이나 기술의 전달이 아니다.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의 혼과 혼, 마음과 마음, 얼과 얼, 인격과 인격이 서로 만나고 부딪치고 대화하여야  전인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다.

 

언론에 비친 인헌고 교사에게서는 이 같은 만남을 기대할 수가 없다. 인격과 인격, 정신과 정신의 만남을 기대할 수가 없다. 스승과 제자 사이에 깊은 신뢰와 존경이 이미 사라졌다.

 

따라서 진정한 교육을 기대할 수 없다. 좌 편향교육이 어디 인헌고 뿐이겠는가? 차제에 전교조 교사들의 사상 강요를 제도적으로 막고, 자유민주주의 입각한 건강한 교육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할 것이다.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밴드
기사입력: 2019/10/30 [21:22]  최종편집: ⓒ ggdaily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 용
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