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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학 칼럼] 전두환은 살인마가 아니다
'위대한 결단과 살인마' 사이의 차이를 극복해야
 
정재학 칼럼니스트 기사입력  2019/11/10 [20:30]
▲  정재학 칼럼니스트

오랜 의문 하나가 있었다. 40년이 된 이 해묵은 의문은 아직도 살아있는 생물처럼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 화석(化石)이 되어 아픈 추억의 강을 건너고 있어야 할 광주에 관한 일이다.

 

필자(筆者)는 그 의문을 끄집어내어 세상에 내놓는다. 거짓과 진실의 차이를 극복하여, 해묵은 고민을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광주의 진실이 가식(假飾)을 벗는 날, 우리의 세상은 지금보다 맑게 개이리라 믿는다.

 

 하나의 도시가 총기로 무장한 시민들에 의해서 점거되어 행정부터 치안까지 국가적 통제가 사라져버렸을 때, 그걸 두고 보고만 있을 나라가 있을까. 또한 그런 사태에 대해 희생을 염려하여 수수방관만 한다면, 그게 국가일까. 만약 내가 지도자라면 어떻게 대처해야 옳았을까.

 

1980년 광주에 대한 우리의 판단은 지금도 진화되지 않고 석고처럼 굳어져 있다. 우리는 굳어진 고형(固形)의 광주를 녹여내어서 진실을 조각해야 한다. 거짓이 위대함으로 포장되는 일은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명쾌한 답변을 한 이가 있었다. 정치인 박지원이다. 그는 전두환의 5.18 조기 진압을 '위대한 결단'이라고 칭송한 바 있다. 피해를 최소화하고, 조기에 진압하여, 광주를 빠른 시간 내에 정상으로 회복했다는 뜻에서라고 하였다.

 

그러나 누군가는 전두환을 ‘국민을 죽인 살인마’라고 부른다. 정권을 잡기 위해 광주시민들을 무자비하게 죽였다는 것이다. 이 두 개의 시각은 지금까지도 국민 분열의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 비극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위대한 결단과 살인마' 사이의 차이를 극복해야 한다고 본다. 국민은 사건의 원인부터 결론까지 통일된 하나의 결론으로 판단할 수 있어야, 세상은 밝아지고 분열로 야기된 불행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筆者)는 전두환을 살인마라고 보지 않는다. 전두환을 비롯한 신군부가 계엄령을 내렸다 하여도, 총기로 무장한 시민들이 장악한 광주에 계엄 외에 무슨 방법이 있었겠는가.

 

전두환을 살인마라고 한다면, 광주와 광주시민들은 선량한 피해자였어야 한다. 그러나 무기고를 털어 수많은 시민들이 총기로 무장했다는 점은 무엇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지금도 무기고를 털어 시민들을 무장시킨 인물들이 나타나지 않고 있음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뜻있는 광주 어른들이 총기반납을 설득했어도, 이에 불복하며 끝까지 총을 손에 놓지 않은 사람들을 우리는 선량하다 표현할 수 있을까.

 

전두환이 살인마라면, 총기무장한 시민들에 의해 죽은 국군은 또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렇다면 총을 쏜 광주시민들도 살인자가 아니겠는가.

 

교도소 습격은 또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총6회에 걸친 교도소 습격. 이 습격에 참가한 대부분은 교전 끝에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교도소엔 다수의 흉악범과 인민공화국에서 전향하지 않은 비전향장기수들이 있었다. 교도소를 습격하여 이들을 해방시키고자 한 것이 과연 옳았을까. 이때 사망한 사람들을 놓고, 전두환을 살인마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은 아닐까.

 

신군부의 강경진압을 거부하고 시민들을 보호하던 경찰들이 있었다. 그 경찰들을, 버스를 탈취하여 치여 죽인 행위를 과연 민주화운동이라고 불러도 되는 것일까.

 

도청에 폭탄을 설치하고 최후의 항전을 벌이던 시민들. 그 폭탄의 뇌관을 제거하여 피해를 줄인 계엄군. 피해를 최소화시킨 이것이 과연 살인마의 행위라고 단죄할 수 있을까.

 

그 후 오래도록 광주는 비극의 문을 닫고 침묵하고 있었다. 전두환은 단임 약속을 지키고 집권 7년을 끝으로 물러갔다. 비극의 문은 현장의 통곡소리와 함께 열렸다. 국민적 동정이 쏟아지고 전두환은 국민적 요구에 의해 법정에 섰다.

 

그 와중에 광주의 추한 모습들도 덮여졌다. 그리고 그들은 이상한 유공자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북한 침공시 이에 호응하여 국가기간시설들을 파괴하고자 한, 국가 전복을 꿈꾸던 이석기 같은 이들이 유공자로 등극하였다.

 

엄청난 일시보상금과 매달 연금으로 얼마가 주어지고 있는지 모른다. 심지어 광주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이해찬, 한명숙 같은 사람들도 있었다. 이렇게 광주는 국민적 동정 속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벌이고 있었다.

 

박지원은 5.18특별법을 발의하였다. 5.18을 비판하는 자에 대한 처벌을 담은 법이었다. 한마디로 5.18성역화를 꾀하고자 한 법이었다. 신성불가침이었다. '위대한 결단'에서 전향하여 5.18에 신성불가침을 부여하고자 한 정치인 박지원.

 

그리고 가짜유공자의 존재를 알게 된 국민들. 그 국민들의 시각이 싸늘하게 변해 있음을 광주만 모르고 있는 것일까. 광주가 그 정당성에서 멀어진 오늘, 왜 그들은 5.18을 놓고 있지 않은 것일까. 전두환을 살인마라고 해야 그들의 가짜유공자들이 무사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전두환을 욕하고 비판해야 가짜유공자들은 5.18 혜택을 죽을 때까지 받게 되는 것은 아닐까.

 

가짜유공자 문제는 광주의 도덕성에 치명상을 입히고 있다. 아무리 전두환을 욕해도 광주는 도덕적 신뢰를 상실한 지 오래다.

 

필자(筆者)는 당시 광주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었다. 대학3년 때 맞은 5.18은 아직도 검은 추억 속에 있다. 내가 사랑하는 광주는 가짜유공자 문제로 인해 지금 손가락질 받는 대상으로 다가오고 있다.

 

92세 전두환의 골프를 놓고 지금 국민들 사이엔 말들이 많다. 92세 상노인이 골프로 알츠하이머병을 이기고 있다는 것인데, 그것마저 조롱이 되는 이 나라 현실이다.

 

저질 민주가 만들어 놓은 조작된 진실은 사라져야 한다. 전두환은 살인마가 아니라 박정희 사후(死後) 혼돈으로 나라가 흔들릴 때, 스스로 총대를 메고 살인마의 누명을 무릅쓰고, 국난을 극복한 불행한 시대의 위인은 아닐까.

 

2019. 11 10 전라도에서 시인 정재학


 ♦ 외부 필진 칼럼은 본보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자유논객연합 부회장, 시인, 자유지성300인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자유교원조합 중앙고문, 국가유공자, 데일리저널 편집위원, IPF국제방송 편집위원, US인사이드월드 편집위원, 전추연 공동대표
현재 한국문인협회 시분과 회원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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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11/10 [20:30]  최종편집: ⓒ gg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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