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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윤 칼럼] 지금의 혼란스런 상황을 벗어나려면?
 
김성윤 논설위원 기사입력  2019/11/24 [15:25]
▲ 김성윤 논설위원, 단국대 전 법정대학장    

요즘 한국은 미·일·중·러란 4강의 각축장 속에서 장기판의 졸(卒) 취급을 당하고 있다. 심지어 북한 김정은에게서조차 푸대접을 받고 있다. 왜 이런 굴욕과 수모의 비극을 겪어야 하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간단하다. 국력이 약하고 국민이 분열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라가 망할 때는 반드시 망할만한 이유가 있다. 구한말 조선이 망한 이유는 국론이 분열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역사는 위대한 거울이요, 엄숙한 교훈을 준다. 그래서 역사를 모르는 민족은 역사를 되풀이한다고 아놀드 토인비는 <역사의 연구>란 책에서 말한 바 있다.

 

 나라가 망한 역사적 사실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외세의 침략으로 나라가 망한 경우보다도 내부의 분열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국제 정치에서는 힘이 있으면 살고 힘이 없으면 죽는 것이 하늘이 정한 원리원칙이다.

 

만약 우리에게 힘이 있었다면, 어찌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우리 조선을 노릴 수 있었겠는가? 도산 안창호 선생님은 "극일하려면 먼저 극일할 만한 힘을 길러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우리나라를 보면 지소미아의 존속이냐? 또는 종료냐를 놓고도 설전과 국론 분열이 있었다. 이에 대처하는 정부의 정책도 단기적이고 근시안적이었다.

 

더구나 우리는 감정이나 분노를 앞세워 일본을 넘어서려는 우까지 범하지는 않았던가? 이번 한일 경제전쟁 속에 어느 정치인은 “죽창을 들고 끝까지 싸우자”고 하였다. 참으로 우매하고 우둔한 정치인의 선동적인 발언이다. 후퇴를 모르는 동물들의 싸움이 아니라면 어찌 이런 말을 할 수 있었겠는가?

 

 결과는 한국의 수출규제 철회 요구를 일본이 받아들이지 않은 채 끝나가고 있다. 공정한 민족이 불공정한 민족에게 지는 일이 있었는가? 없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공정한가? 마이클 브린은 조선일보 투고를 통하여 “전직 대통령이 무죄라고 믿든 유죄라고 믿든, 그가 97세까지 감옥에 있어야 한다고 말한 사람은 거의 없다. 그 범죄에 그 정도 형벌이 적절치 않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다"고 하였다.

 

이어서 "아마도 박 대통령은 이번 정부 아니면 다음 정부에서는 사면을 받을 것으로 국민들은 알고 있다. 이는 정의가 정치권력의 뜻대로 실행되고 있다는 증거다. 그것은 공정한 정의가 아니다"라고 하였다.

 

배우려고 노력하는 국민이 배우지 않는 무식한 국민에게 지는 일이 있었는가? 그런 사례도 없다. 이스라엘은 아랍 국가에 비하여 아주 작은 국가다. 이스라엘 인구는 800만명밖에 안되는데도 강력한 경제력과 높은 교육 수준이 4억명 아랍 국가를 압도하고 있다.

 

질서를 안 지키는 국민이 질서를 잘 지키는 민족을 이길 수가 없다. 협동하는 국민이 사분오열 나뉘고 갈라진 국민에게 지는 일도 없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여와 야의 극한 대립으로 야당 당수가 삭발을 하고, 심지어 인헌고  김화랑군(학생수호연합)까지 정치편향교사와  조희연교육감의 사퇴를 요구하며 삭발을 하였는가 하면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단식 투쟁을 하고 있다.

 

광화문에서는 문재인 대통령 아웃(OUT)을 보수층이 외치고, 서초동에서는 진보층이 '검찰개혁'을 외치고 있다. 이보다 더한 국론 분열은 일찍이 없었다. 이래서 위기란 말이 서슴없이 나오고 있다.

 

낭비하는 국민이 낭비하지 않은 국민을 이기기는 경우도 없다. 영국에 가보면 할아버지, 할머니가 쓰던 물건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사용한다.

 

그런데 우리는 불과 60년 전의 물건도 찾기가 힘들다. 왜 그런가? 조금만 쓰기에 불편하면 버리기 때문이다. 이것이 낭비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거짓말하는 지도자가 진실을 말하는 지도자를 이길 수가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윤석열(尹錫悅)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주는 자리에서 “권력 눈치 보지 말고, 살아있는 권력에도 엄정하게 대해 달라”고 말했다.

 

그런 대통령의 말이 아직도 국민의 뇌리에 생생하다. 그런데 검찰을 겁박하는 듯한 발언을 듣고 있는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그 말이 그냥 나온 입에 발린 말이로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입에 발린 말이 아니라면 그것은 분명한 거짓말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책을 적게 읽는 국민이 책을 많이 읽은 국민을 이길 수가 없다. 일본을 이기려면 대한민국 국민의 수준이  일본을 능가해야 한다. 그러려면 독서를 하고, 문화가 달라져야 한다.

 

품위와 공정이 보상을 받고, 교활함은 공개적으로 배척당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러하지 못한 것이 우리 대한민국의 현실이지 않은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우리 대한민국 사회가 너무 혼란스럽다.

 

하지만, 희망이 있고 끝이 아니기에 1980년대 우리나라의 길거리에서 또는 라디오로 미국의 스키터 데이비스(Skeeter Davis)의 노래 '세상의 끝(The End Of The World)'의 노랫말을 보면서 위안으로 삼고자 한다.

 

왜 태양은 빛을 비추는 것을 멈추지 않나요?/왜 바다는 파도치나요?
세상이 끝났다는 것을 그들은 모르는 건가요?/당신이 나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말이에요.

 

왜 새들은 노래 부르는 것을 멈추지 않나요?/왜 별들은 위에서 빛나나요?
세상이 끝났다는 것을 그들은 모르는 건가요?/내가 당신의 사랑을 잃었던 그때 세상은 끝났죠.

나는 아침에 일어나 놀라죠?/왜 모든 것이 전과 같은지


이해할 수 없어요, 네- 전 이해할 수 없어요./어떻게 삶이 예전과 변함이 없는지.
왜 내 심장은 뛰는 것을 멈추지 않나요?/왜 내 두 눈에선 눈물이 흐르나요?

 

세상이 끝났다는 것을 그들은 모르는 건가요?/당신이 나에게 안녕이라고 말했던 그때 세상은 끝났죠./왜 내 심장은 뛰는 것을 멈추지 않나요?/왜 내 두 눈에선 눈물이 흐르나요?/세상이 끝났다는 것을 그들은 모르는 건가요?/당신이 나에게 안녕이라고 말했던 그때 세상은 끝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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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11/24 [15:25]  최종편집: ⓒ gg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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