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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익희의 실크로드 답사기 2] 찬란한 중국의 역사 ‘산시역사박물관’과 '대안탑'
 
박익희 기자 기사입력  2019/11/24 [12:34]

중국여행 첫날 화청궁에서 관람한 장예모 감독의 장한가의 예술혼이 큰울림으로 뇌리에 남았다.


우리는 호텔에서 조식 후 짜여진 일정대로 하루를 시작한다. 오늘은 서안의 산시역사박물관과 자인사 대안탑 관람하고 서안북역에서 시속 200km로 달리는 고속열차를 타고 천수(天水)로 이동하여 천수지질빈관에서 숙박을 해야한다
  

▲ 9월 25일 일정표    © 박익희 기자

 

어제 탔던 전세버스를 타고 약 30분 가량 이동하니 산시역사박물관에 도착했다. 오늘도 날씨는 쾌청했고 우리 일행은 어제의 강행군에 피로감을 씻어내고 재충전하여 어디든지 가볼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나왔다.
 
서안은 도로는 시원하게 뚫렸고 시가지에는 하늘을 찌를 듯한 건물들이 즐비했고 고층 아파트들이 많이 보였다. 지금도 한창 건축 중이었다. 아파트는 많았지만 공실률이 많은 것 같았다. 
 

▲ 산시 역사박물관 실내에 거대한 사자상, 마치 나쁜 놈은 잡아 먹을 듯한 기세로 서있는 수호신 같다.     © 박익희 기자


박물관에는 벌써 찾은 차량과 인파로 북적인다. 이곳도 가이드가 구입한 통역기의 도움으로 개별적으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박물관의 규모는 우리나라 국립중앙박물관 규모보다 작은 편이 였지만, 내용물은 풍부하고 다양했다. 가이드를 졸졸 따르는 유치원생 마냥 착한 어린이가 된듯 우리는 가이드의 설명에 귀를 쫑긋 세우고 들었다.

 

세계 4대문명의 발상지 중국.  .은(상)., 진 춘추전국, ,,,,,청으로 이어지는 중국의 대하역사를 가이드의 지식과 역량에 따라 배우고 익히게 된다.
 

▲ 중국의 역사 왕조별 연대표     © 박익희 기자


찬찬히 보아야 할 곳에는 어김 없이 사람들이 많았다. 어떤 것은 모형이고 어떤 것은 진품이다. 우리는 그것을 알 수가 없지만 가이드는 훤히 꿰뚫어 설명을 하고 있었다. 사진 촬영은 허용되고 있어 나는 많은 사진을 찍으며 설명을 들었다.
 
수많은 진귀한 유물이 전시되어 있었다. 세계사는 구석기~신석기~청동기~철기로 이어지는 인간생활의 변화는 비슷하다. 그중에도 토기의 무늬와 강도, 칼라의 변화와 세련미는 후대를 내려오면서 화려해졌다. 어느 시대에 사용된 듯한 금으로 만든 대접은 화려하고 찬란했다.
 

▲ 황금으로 만든 대접에 문양이 화려하고 섬세하다.     © 박익희 기자

 

▲  구석기시대 인간의 모습과 출토된 유물들   © 박익희 기자


어떤 사람은 박물관은 관람은 따분하고 재미 없는 것으로 느끼지만, 필자는 박물관을 제대로 보는 것은 역사와 문화를 쉽게 알고 보고, 수집가의 안목과 집념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산시역사박물관은 시대별 장르별 전시를 잘해 놓았다는 느낌이다. 무엇보다 중국에서만 볼 수 있는 문명의 발달사를 진귀한 유물을 통하여 되새겨 볼 수 있는 귀한 기회였다.
 

▲ 계영주전자, 술을 맡바닥 구멍으로 넣고 따르도록 만든 특이한 모양의 도자기이다.     © 박익희 기자


우리 일행은 입구쪽 매장에 있는 계영배형 주전자에 시선이 끌렸다. 이곳에서 구입하면 중국 최고의 명인이 만드는 도자기일 것이라 확신하고 계영배 주전자 세트를 구입했다. 앞으로는 술은 딱 이 만큼만 마실 다짐을 하며...

 

▲  진귀한 유물들   © 박익희 기자
▲ 말과 낙타를 타고 이동을 하고  인도에서 전파된 불교를 받아들이고 멋진 비단옷을 입은 듯하다.   © 박익희 기자

 

▲ 한쪽 팔이 없는 아름다운 불상     © 박익희 기자


우리는 가이드가 정해준 시간에 밖으로 나왔으나, 어느 한 친구가 약간 늦게 나왔다. 박물관의 규모가 크고 말이 통하지 않으므로 단체행동에서 이탈하면 일행 전체가 시간을 허비하게 된다.
 
우리는 다시 652년 당나라 고종때 건립된 자은사(慈恩寺) 대안탑(大雁塔)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가이드의 표 구입과 안내에 따라 7층 벽돌로 쌓은  64m의 거대한 대안탑을 향해 접근했다.  한국에도 송림사 전탑과 여주 신륵사 전탑 등이 있다. 
 
이곳 대안탑은 서유기에 나오는 삼장법사 현장스님이 인도에서 가져온 불경과 불상을 보관한 곳으로 중국에서는 불교유적으로 신성시 되는 곳이다.

 

그래서 중국 서안의 상징으로 남아 있었지만 병마용이 발견되고는 이제는 서안의 상징은 병마용으로 대체된 것 같다.
 

▲ 서유기에 나오는 삼장법사 현장스님 조형물과 자인사 대안탑 전경   © 박익희 기자


자인사에는 인도의 구마라습 스님이 쉰여덟에 장안으로 들어와서 약 35, 삼백여 권의 중경(重經)을 번역했으며, 그 제자가 삼천 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그는 인도의 불교 사상을 체계적으로 중국에 소개한 최초의 인물로 대승 종파의 경전을 가장 먼저 소개하기도 했다.

 

또한 성실종의 창시자로서 그가 번역한 성실론은 성실종의 경전이 되었으며, 또한 삼론종(三論宗)의 창시자로 소승불교와 대승불교에도 정통한 사람이라고 전해진다.
 
필자는 자은사(慈恩寺)에서 중국 불교와 한국 불교의 차이를 알아보고자 많은 사진을 찍었다. 천수관음상과 대웅전 건물 모서리 처마에 건물을 떠바치는 모양의 조각상이 있었다. 이런 모양은 한국에서는 강화도 전등사에서만 보았다.
 

▲ 자인사의 불상들     © 박익희 기자


자은사 경내에서 스님을 보지도 못했고 불경 소리도 듣지 못했으니 당나라 불교는 이미 기억 속에서 사라졌고 옛 영화만 남아 세계에서 몰려온 관광객이 무슨 진귀한 유적이 있는지 살펴보고 있었다. 불교가 영혼이 없는 빈껍데기를 본질로 알고 숭배를 하는 종교가 된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생노병사를 고민하고, 영원한 삶을 추구했던 해탈의 본질은 무엇일까? 왜 삼장법사는 서쪽으로 그 험한 고행의 길을 떠났을까? 바야흐로 그 연장 선상에 우리 일행도 있다 
  

▲ 자인사 경내에 있는 특이한 모양의 회화나무     © 박익희 기자

 

▲ 자인사 도솔 건물 너머로 대안탑이 보인다.     © 박익희 기자

 

자인사를 나와 우리 일행이 점심을 먹으러 간 식당에는 꽤나 유명한 곳인지 입구부터 조각품들이 예사롭지 않았다. 식당 원탁 테이블에는 11명이 앉아 담소를 나누며 식사를 하기에는 딱 맞는 인원이었다.

 

이곳에서도 10개의 요리가 푸짐하게 나왔고 애주가들은 좋은 중국술에 좋은 안주로 추억을 만들었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먹다가는 살만 찌겠는데 하는 염려가 되었다.

 

▲ 점심으로 나온 음식들    © 박익희 기자

 

▲ 식당에 비치된 불교의 반야심경을 새긴  부처님 조각품   © 박익희 기자

 

▲ 중국의 상징 홍등 가로등 모습     © 박익희 기자

 

식사 후에 커피를 한잔 하자며 중국식 카페에 갔는데 기대 이하의 시설이었고, 커피 맛도 별로 였다. 다만 커피집 앞에는 홍등으로 장식된 가로등이 줄지어 있어서 이런 장면을 사진으로 담았다.
 
우리는 서안 북역으로 가기 전에  김문금 가이드와 작별을 하고 김문금 씨가 소속된 여행사 사장인 박동광 가이드를 만났다. 우리 일행은 김문금 가이드에게 석별의 아쉬움을 느꼈고 별도의 팁을 주었다. 중국 역사와 문화를 잘 아는 가이드였기에 무척 섭섭했다.

 

박동광 가이드는 흑룡강성 출신의 조선족으로 조부가 독립투사인 경상도 출신이라고 했다. 서안에서 의과대학을 나온 의사자격증을 가진 가이드로 인상부터 푸근하고 편안한 얼굴이었다

 

▲   김문금 가이드  © 박익희 기자


그가 의사라는 말에 우리는 모두 놀랐다. 의사가 얼마나 좋은 직업인데 가이드를 할까? 의아했으나 그는 진짜 의사 출신으로 수입이 더 좋은 가이드를 하며 인생의 보람을 찾고 있었다.

 

의사는 아프고 고통받는 사람을 낫게 해주는 전문직이지만 정()적인 직업이다 
여행 가이드는 낯선 여행객들에게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해주며 기쁨을 주는 사람이다. 본인도 여행을 하는 동()적인 직업을 가졌으니 생각 여하에 따라 직업관은 달라질 수 있겠다 싶었다.
 

▲ 의사출신의 조선족 가이드 박동광 사장     © 박익희 기자


박동광 씨는 경상도 출신의 할아버지와 아버지 영향으로 말투가 경상도임을 단박에 느낄 수 있었다. 수더분한 인상에 겸손한 자세로 여행사를 경영하는 박회국 사장에게 깍듯하게 대했다.
 
어쩌면 여행은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을 만나며 친해지는 과정인지 모른다. 나는 그의 뒷자리에 앉아 궁금한 것은 물어보고 중국을 조금씩 알아갔다.
 
서안 북역에서 들어가는 곳에도 여권은 필요했다. 중국에는 거주이전의 자유와 여행은 제한되고 있었다. 까다롭게 여권을 살펴보고 QR코드로 얼굴을 인식하고 검색에 여행용 가방을 통과해야만 했다 
 
필자는 노트북과 밧데리와 휴대폰 보조 밧데리를 정밀하게 체크를 당했다. 몹시 기분이 상했다. 가이드는 이런 게 당연한 행위로 인식하고 이 정도는 필수 과정이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필자가 느끼기에는 이것은 상당한 불편과 불신을 불러오는 일인데... 환경의 지배가 사람의 인식까지 지배를 한다.
 
아무튼 서안 북역에서 건설업을 하는 박진순이는 이렇게 큰 건물에 기둥하나 없는 게 놀랍다.”고 말했다. 역사는 장방형의 건물에 축구장 2배 크기보다 휠씬 더 크고 2층 구조였다.
 

▲ 서안 북역과 천수역     © 박익희 기자


우리 일행은 오후 340분에 난주행 고속열차에 탑승했다. 열차의 시설은 훌륭했다. 우리나라 KTX보다 앞뒤 좌석이 넓어 편안했다. 필자의 좌석은 일행과 떨어져 혼자 창가에 앉았다.
 
잠시 후 어떤 여자가 내 옆에 앉았다. 나는 가볍게 목례를 했다. 나는 어디까지 가느냐를 물었다. 그녀는 "난주에 살고있다"고 했으며 "서안에 볼일이 있어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다. 내게 과자와 음료수를 건네주었다. 나는 고맙게 맛을 보고 마셨다.

 

그녀는 중국말로 하면 한국어로 번역되는 번역기를 내게 보여주며 이어폰을 건넸다. 그 앱 덕분에 잠시나마 대화를 할 수 있었다. 이제는 과학의 발달로 참편한 세상이 되었다.
 
말이 통하면 언어의 장벽도 극복하고 서로 공감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예전에는 고급호텔 만찬장에서 볼 수 있는 언어통역사가 전해주는 말을 듣고 이해하는 것이 바로 통역이 되는 시대가 되었슴을 실감했다.
 

▲  고속열차 내부, 좌석은 1열에 3석 2석으로 배치되었고 승무원과 간식과 음료를 파는 아가씨가 있었다.    © 박익희 기자


내가 천수에서 내릴 때 그녀는 내일에는 내가 사는 난주에 오시겠군요. 이번 중국 여행이 즐겁고 행복하시길~~~”이라고 말했다. 인사 한 마디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단초가 되고 좋은 이미지를 심는 기본이 된다. 인사를 잘하면 모든 일의 마법처럼 술술 풀린다.
 
천수는 인구 50만명 정도 되는 작은 도시이지만, 우리가 도착한 천수지질빈관은 준 4성급 호텔로 불편함은 없었다. 나는 인터넷만 잘되면 OK로 좋았다.
 
인터넷은 대한민국이 최고임을 이날 밤에도 느꼈다. 우리는 자랑스런 한국인이다. 이제 정신까지도 품격있는 한국인이 되어야 한다.

 

나는 다른 기자가 올린 몇 꼭지의 글을 포털로 송고하고 하루를 마감했다. 친구의 안면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서둘러 노트북을 끄고 천수(天水)에서 천수 물맛은 어떨까 생각하며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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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11/24 [12:34]  최종편집: ⓒ gg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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