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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익희의 실크로드 답사기 3] 중국 4대 석굴 '맥적산 불국토'의 염원
 
박익희 기자 기사입력  2019/11/24 [12:37]

지난 밤에는 천수(天水)에서 실크로드 둘째날을 보냈다. 호텔 입구에는 빼어난 목조각품이 비치되어 있었다. 간밤에 가이드는 희망자는 외출을 허락했지만 아무도 호텔밖을 나가지 않았다.

 

▲ 천수호텔 로비에 있는 아름다운 목조각상     © 박익희 기자

 

어쩌면 낯선 서안에서 직접 본 중국의 역사와 문화가 벌써 우리가 소화하기에는 용량초과 인지도 모른다. 음식으로 말하면 가난한 사람이 갑자기 기름진 산해진미를 먹고 체한 것 같은 느낌이랄까.

 

중국의 급속한 문명의 발전 속도와 변화가 우리나라의 안이함을 벌써 추격해버린 상태를 목격한 충격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오늘은 버스를 타고 감숙성 진령산맥의 끝자락을 구불구불한 산간벽지 산길과 풍광을 지나며 중국과 한국의 산하가 풍경에서부터 다르고 한국의 도로 사정과 농촌의 수준이 낫다는 안도감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맥적산 입구에서 대구고 14 산악회 실크로드 답사팀 단체사진     © 박익희 기자

 

우리 일행을 태운 버스는 한적한 산길을 벗어나 맥적산(2,170m) 아래에 우리를 토해 놓았다.

우리는 전동차를 갈아타고 맥적산을 향해 중간 기착지에 내렸다. 어디서 이렇게 많은 상점과 상인이 벌써 진을 치고 손님을 기다리는지 상인들은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약간 오르막길에는 말을 타고 오를 수 있도록 몇 필의 말을 대기한 마부도 있었고 어떤 사람은 백말을 타고 지나가며 시선을 끌고 있었다.

 

약 15분 가량 걸어서 오르니 마침내 세계문화유산인 맥적산 석굴이 보이는 지점에 도착했다.

 

네이버에 검색을 해보니 맥적산에 대하여 소개한 글은 다음과 같다. 

중국 간쑤성 천수현 현성의 동남 45km에 있는 불교 석굴군. 1952년에 발견되어 동년 11월과 이듬해 7월에 조사됨. 진령산맥 서단에 위치, 농가의 맥적(보리가마를 쌓은 듯)한 형태의 높이 142m의 석회암 단애 동서쪽 2구(區)에 194개의 굴감(窟龕)이 있다.

 

북위, 서위, 북주, 수, 당, 송, 명에 걸친 석불, 소상(塑像), 부조, 벽화가 있다. 그러니 지금으로 부터 1400여년 전부터 불교를 민간 신앙으로 받아들이고 숭배한 셈이다.

 

▲ 맥적산의 석굴에 안치된 불상들, 그아름다움에 놀라고 가파른 절벽에 풍우에 그대로 노출된 상태로 오랜 세월에 허물어지고 있는 모습에 안타깝다.     © 박익희 기자

 

석굴은 마치 맥적산을 빙둘러서 가파른 낭떠러지에 벌집을 이룬듯 중간 중간에 토굴을 뚫어서 저마다 부처님을 모셨던 것 같았다. 예나지금이나 권력은 힘을 상징하고 크기와 솜씨는 부를 상징한다. 진리는 시대를 초월하고 영원을 지향한다.

 

우리 일행은 향(香)을 구입하여 합동으로 부처님을 참배하러 가기 위해 겸손한  하심(下心)의 자세로 향불을 사르고 합장을 했다. 부처님은 우리가 온 사실을는 아는지 모르는지. 우리는 묵언으로 맥적산 천불상들을 만나러 발걸음을 옮겼다.  맥적산 전체에 새긴 불상을 보면서 인간의 위대한 업적과 솜씨에 감탄을 하고 사진을 찍었다.

 

어떤 불상과 벽화가 너무 아름답고 온화하였다. 푸근한 미소로 모든 인간의 고뇌를 다 이해하고 감싸 안는 모습에 불상을 만든 조각가의 솜씨에 찬사를 보낸다.

 

또 어떤 불상은 길고 긴 세월의 풍우를 이기지 못해 스러져가는 모습에 처연한 비애를 보는 것 같았다. 나는 충남 서산에 있는 백제의 미소로 알려진 서산마애삼존불의 모습이 이곳과 닮았음을 직감했다.

 

▲세게유산인 맥적산 석굴에 안치된 다양한 불상들, 비바람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어 시급하게 훼손을 방지해야 할듯 하다.      © 박익희 기자

 

맥적산(麥積山)은 보리짚단을 쌓은 듯한 모양이란 의미일진데 그 산에 수많은 염원을 담은 굴에 저마다의 신심을 증명하기라도 하는 듯 많은 불상을 모셨다.

 

 그중에 큰 것은 약 10m의 높이로 부처님을 모신 유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진흙으로 돋을 새김한 부조(浮彫) 불상이 세상을 굽어보고 있었다. 어떤 불상이 안치된 곳에는 채색이 아름답고 화려했다. 비록 긴긴 세월이 지났지만 이런 유적이 온전히 남아있는 게 신기하고 대단했다.

 

 우리 일행은 가파른 난도를 따라서 이 위대한 작품을 감상하며 지난다. 불교가 추구하고 지향하는 본질보다는 내 사진이 더 잘나오는 데만 신경을 쓰면서 말이다.

 

▲ 금강역사상, 우람한 체격의 금강역사가 눈알을 부라리고 잘못을 하면 금방 혼내주겠다는 형상이다.      ©박익희 기자

 

‘이놈들! 어디서 경거망동이냐!’ 라며 꾸짖는 듯한 금강역사상에서 괜시리 오금이 저리고 기분이 오싹하다. 그만큼 부처님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금강력사상은 무섭고 우람찼다. 정말 수작이었다.채색과 부조의 솜씨와 조형미가 빼어났다.

 

나는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의 안위와 평화를 위해 마음을 모으고 두 손을 모았다. 그리고 가족의 평안을 기원했다.

 

일행은 저마다 궁금증으로 위대한 유산을 남긴 옛사람들의 지극 정성과 노력에 머리가 숙여졌다. 한때의 영광은 지나갔지만 역사문화 유적은 남아 옛 시대를 증거하고 증언한다.

 

이곳 맥적산 석굴(麦积山石窟)은 산시성(山西省)에 있는 운강석굴(云冈石窟)과 허난성(河南省)의 용문석굴(龙门石窟),둔황의 막고굴(莫高窟) 석굴과 함께 중국의 4대 석굴이다. 중국화폐에 나온다고 말했다. 대형 입간판 안내도에는 감숙성 맥적산 일대는 실크로드로 많은 불교유적이 산재해 있었다.

 

▲  맥적산 주변의 불교유적 안내도   © 박익희 기자

 

나는 맥적산 낭떠러지에 설치된 난도를 내려오며 자신이 몹시도 초라해짐을 느꼈다. 그래서 그런지 위대한 인간의 역사인 맥적산 유적에 자꾸만 눈길이 갔다.

 

하산 길에 잘익은 사과를 구입했는데 땟깔에 비해 맛은 싱겁고 별로 였다. 모두가 한국의 양광이나 홍로, 부사 등의 사과 맛이 최고임을 알았다.

 

일정은 빠듯했다. 난주로 이동해야 한다며 버스는 점심식사를 위해서 어느 산골에 식당에 우리 일행을 내려놓았는데 주인장은 화초를 좋아하는지 예쁜 꽃들이 우리 일행을 반겼고 음식은 소박하고 먹을 만했다.

 

식사후 난주 영정을 향해 우린 6시간이란 긴 시간을 버스에 몸을 싣고 중국의 산천을 차창을 통해 구경했다. 물론 중간에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내려 소변을 보고 편의점에서 군것질거리를 사와 나누어 먹었다. 나도 깎은 맬론을 사와서 친구들에게 건냈다. 참외는 당도도 높고 싱싱하고 맛도 좋았다.

 

▲  세계유산 맥적산의 불교유적과 난도와 계단   © 박익희 기자

 

나는 박동광 가이드 뒷좌석에 앉아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며 일대일로(一帶一路, One belt, One road) 중국 정부의 세계지배 야망을 짚어보았다.

 

일대일로란 중앙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육상 실크로드(일대一帶)와 동남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해상 실크로드(일로一路)를 뜻하는 말이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2013년 9월 중앙아시아 및 동남아시아 순방에서 처음 제시한 중국몽(中國夢)을 이루기 위한 전략이다.

 

아무튼 중국이 태평양 쪽의 미국을 피해 육상 실크로드는 서쪽, 해상 실크로드는 남쪽으로 확대하기 위하여 600년 전 명나라 정화(鄭和) 원정대가 개척한 남중국-인도양-아프리카를 잇는 바닷길을 장악하는 것이 목표이다.

 

하지만 중국이 중심이 되고 주변국으로 뻗어나가는 형태의 일대일로 전략이 중화주의(中華主義, 중국의 문화 우월주의)의 부활과 지배하려는 우려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나는 중학교에서 국어선생을 역임한 곽문현 교감과 같은 자리에 앉아 얘기를 나누며 중국 간자를 쉽게 알 수있는 앱이 있다는 것을 알고 ‘한자 필기 인식사전’을 내 스마트폰에 깔았다. 중국의 한자는 너무 어렵고 복잡하여 번자체에서 간자체로 바꾸어 통용한다. 나는 비교적 한문교육을 배운 사람에 속하지만 간자를 잘 모르는 무식자나 다름없다.

 

 곽문현이는 성품이 온순하고 조용한 스타일이고 나는 외향적인 스타일로 서로 성격은 차이가 나지만 우리는 글쓰기에 대하여 고등학교 1학때 국어선생님이 말씀하신 모파상의 일물일어(一物一語)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이번 실크로드 여행기를 곽문현에게 직접 써보라고 권하여 반응락을 받았다.

 

그가 쓴 대구고 14산악회 시산제 축문은 경건하고 엄숙한 산악인의 자세를 나타내고 그의 자연관을 잘 나타낸 명문으로 해마다 그의 제문에 무엇을 담을 지 궁금하다.  

 

▲ 근처의 선인애 석굴 모습     © 박익희 기자

 

 박동광 가이드는 계단식으로 만든 사방사업으로 나무를 심어 중국은 치산치수(治山治水)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황폐하고 황량한 산하에 나무를 심어 푸른 산하를 만들기 위해 안간힘을 기울이고 있었다. 한국의 박정희가 군사쿠데타로 집권하여 한국의 헐벗은 민둥산을 산림녹화를 이룬 것을 벤치마킹하고 있었다.

 

인간은 불굴의 의지로 대역사를 만들고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다. 그런 총력의 지난한 노력 덕분에 성공적인 치산녹화사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위에서부터 수로를 만들어 물을 뿌려준다. 그렇다. 모든 생명체에는 물이 곧 생명이고 생명수이다.

 

▲  삭막한 산에 나무를 심고 물을 주고 가꾸기 위해 중국은 안간힘을 기울인다고 한다.   ©박익희 기자

 

 땅거미가 완전히 내릴때 마침내 오늘 우리가 숙박할 난주 영정에 도착했다.  황하가 도도하게 굽이쳐  흐르는 난주 유가협댐이 있는 곳이다. 난주 황하국제주점이라는 5성급 특급호텔에 도착했다. 이 호텔의 규모가 웅장했고 시설은 화려했다. 

 

영정은 진시황의 이름이라고 한다. 아마도 우리가 묵을 숙소 중에는 이번 여행에서 가장 좋은 곳이라고 귀띔했다. 이곳은 외국의 국빈 만찬장과 회의실로 이용되는 호텔이라고 가이드는 설명했다.

 

▲황하삼협에 위치한  영정에  황하의 넘실대는 물결이 석양에 반사되어 아름답다   © 박익희 기자
▲  난주 황하국제주점 5성급 특급호텔 로비에서 대구고 14 산악회 친구들과 기념촬영    © 박익희 기자

 

 어둠이 내려서야 체크인을 하고 만찬장에서 럭셔리한 분위기에서 포식하고 하루 일정을 마치고 무사히 도착했슴에 감사했다. 나는 낮에 찍은 사진 몇장을 카톡으로 아내에게 전송하고 안부를 물었다.

 

“와우 사진이 대단하네요. 잘다녀와요”라는 답신이 왔다. “아내와 같이 왔으면 더 좋았을 텐데...”라는 그리움이 밀려왔다. 하지만 독실한 가톨릭 신앙을 가진 아내는 이곳 불교 유적보다는  이스라엘 성지를 더 가고 싶어할 것 같았다.

 

▲  황하국제주점의 별실 식당    © 박익희 기자

 

중국 실크로드의 꿈 같은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는데 대맥건설 박진순 사장이 전화로 "익희야 너희 집 주소를 알려 달라"고 부탁을 했다.

 

사진작가인 부인 양명희씨가  찍은 사진을 앨범과 사진 액자로 만들어 선물로 보내왔다. 앨범 속에는 우리가 지났던 실크로드의 지도와 일정 등을 챙겨서 넣어주었다. 이 앨범이 실크로드 답사기를 쓰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역시 세상에는 전문가의 안목과 솜씨는 보통 사람과 달랐고, 이번 여행의 기쁨을 배가시키고 추억을 영원히 남아있게 했다. 정말 고마운 선물로 나는 서재에 고이 비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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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11/24 [12:37]  최종편집: ⓒ gg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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