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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익희의 실크로드 답사기 4]황하석림과 병령사석굴 & 뜻밖에 '노자'를 만나다
 
박익희 기자 기사입력  2019/11/24 [13:03]

지난밤 우리들이 묵은 호텔은 최고급이었다. 황하국제주점의 입지조건과 규모와 시설 등이 초호화 시설이었다. 아침에 차창을 열고 건너편을 바라보니 적벽이 아침햇살을 받아 아름다운 붉은 색을 발산하고 있었다. 나는 양 교장과 각자 사진 한컷을 찍었다.

 

▲ D4 2019 9월 27일(금) 일정     ©박익희 기자

 

복도 건너편에 숙박한 곽문현 부부를 불러 사진을 찍었고, 호텔에서 식사 후에 또 가방을 챙기고 오늘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황하의 황토물이 넘실대는 다리를 지나 약 30분 가량 산을 넘고 넘어 황하 유가협댐이 만든 거대한 담수호를 찾아갔다.  황하의 강물은 왜 황톳물인지 저절로 이해가 되었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나무는 거의 없는 황무지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니 황톳물이 될 수밖에 없었다.

 

▲ 모래산의 사태로 약 20분을 기다렸는데 다행하게도 곧 임시 복구가 되어 통행이 재개되었다.     © 박익희 기자

 

황하의 강물 3곳이 만나는 가장 좁은 곳을 막아 유가협댐을 건설한 것 같았다. 그런데 잘 달리던 버스가 갑자기 멈췄다. 무슨 일인가 싶어 나도 가이드와 함께 내렸다. 전방 약 150m 지점에 산사태가 나서 공사 중이었다. 난감했다.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공사는 거의 끝나가고 있어 곧 통행이 될 것 같았다. 우린 막간을 이용하여 바다 같이 넓은 유가협댐 병령호수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며 기다렸다.

 

마침내 통행은 재개되었다. 만약에 우리가 탄 버스가 지날때에 산사태가 일어났다면 결과는 뻔하다. 모래와 같이 보드라운 사구 같은 산이니 우리는 그속에 묻힐게 뻔하다.

 

▲ 유가협댐 보트 타고 관광하며 찍은 사진들  ©박익희 기자

 

우린 모두 구명조끼를 입고 쾌속보트를 타고 상쾌한 강바람을 맞으며 드넓은 병령호수를 질주를 했다. 날씨는 쾌청했고 바람도 거의 없었다. 우리들은 동차동주(同車同舟)의 공동운명체로 실크로드 탐사에 나섰다는 것을 실감했다.

 

쾌속 보트가 급하게 방향을 틀때면 물결이 튀어 배안으로 들어왔다. 6학년 5반인 우리들도 아직 신명과 스릴은 청년 못지 않다. 

 

한참을 달리니 기암괴석의 황하석림이 기립하여 우릴 지켜보았다. 이런 선경은 처음 본다. 마치 중국무협 소설에 나오는 무릉도원이라면 이런 곳이 아닐까? 멀리 사찰인 듯한 건물이


들어왔다. 사진작가인 양명희씨는 얼른 카메라에 담았다.

 

▲ 유가협댐 병령호수에서 바라본 풍광    © 박익희 기자

 

박동광 가이드는 그것은 도교사원이란다. 우린 신비한 풍광에 놀라서 저마다 사진을 찍고 입은 귀에 걸렸다. 세상에 이런 곳도 있구나.  역시 조물주가 빚어낸 대자연의 아름다움과 그곳에 기대어 살고 있는 수많은 동식물과 생명체는 너무나 경이롭고 신비하다.

 

우린 작은 선착장에 내려서 200여m를 걸었다. 곧 병령사 입구에 도착했다. 물과 산이 만나 얼마나 신비롭고 아름다운 풍광인지 보지 않고는 표현을 못한다. 백문이불여일견(百聞而不如一見)이란 말은 이럴 때 하는 말이다. 한 마디로 장관이었다.

 

▲  병령사 노군동의 도법자연    ©박익희 기자

 

병령사석굴(窟) 매표소에서 입장표를 구입했다. 박동광 가이드는 이곳은 실크로드 길로 댐이 생기기 전에는 이 길을 따라서 서역으로 갔던 길이란다. 산은 융기를 했는지 퇴적이 되었는지 기기묘묘한 모습으로 있었다. 그래서 산 이름이 소적석산(山)이라 불리나 보다.

 

빙링(靈)이란 티베트어의 음역(音譯)으로 '십만불(十萬佛)'의 뜻인데, 즉 천불동(千佛洞)·만불동(萬佛洞) 등과 동의어로 수많은 석굴이 있었다.

 

키스바위상, 자매바위, 보초바위 등등의 거대한 숲의 모습으로 우리 눈앞에 서있어 황하석림(黃河石林)이라 부른다. 우리나라 백령도의 두무진(頭武津)처럼 기이한 촛대바위들이 도열하여 있어 나도 모르게 저절로 탄성을 질렀다. 

 

▲ 유가협 황하석림     © 박익희 기자

 

그 계곡을 따라 들어가니 지금은 반은 수면 아래 잠기고 수면 위에 천불상들이 황량한 산속에 저마다의 부처를 모시고 기도를 했을 인간의 해원(解冤)은 과연 무엇일까?

 

신라의 혜초스님도 이 길을 지났을 생각을 하니 구법을 위한 험난한 여정에 경외심이 들었다.

 인간은 필연적으로 여덟 가지 괴로움(八苦)을 피할 수 없다. 생고(生苦)•노고(老苦)•병고(病苦)•사고(死苦)•애별리고(愛別離苦)•원증회고(怨憎會苦)•구부득고(求不得苦)•오음성고(五陰盛苦)를 가리킨다. 그러나 여기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는가?


 불교에서 사성제란 무엇인가? 고(苦)·집(集)·멸(滅)·도(道)를 벗어나 참자아를 깨닫고 정관자득(靜觀自得)으로 깨달음을 얻은 부처의 경지는 어떻게 도달할 수 있는가?

 

인간의 고통 원인을 탐진치(貪瞋癡, 탐하고 분노하고 부끄러움)의 삼독(三毒)에서 불교는 어떻게  벗어나 해탈을 할까?

 

그 방법으로 팔정도(八正道)가 있다. 팔정도는 바르게 보고(正見), 바르게 생각하고(正思惟), 바르게 말하고(正語), 바르게 행동하고(正業), 바른 수단으로 목숨을 유지하고(正命), 바르게 노력하고(正精進), 바른 신념을 가지며(正念), 바르게 마음을 안정시키는(正定)하라는 수행법이다.

 

계율(戒律)에 의하여 마음과 몸이 청정해진 사람이 선정(禪定)에 의하여 이르는 최고의 해탈(解脫)경지가 바로 지혜(智慧)라고 한다.

 

▲병령사 석굴과 천불동     © 박익희 기자

 

현대사회는 너무나 큰 물질의 혜택과 풍요 속에 살지만, 만족을 모르고 정신적 빈곤을 느끼고 산다.  물질만능에 젖어 살지만 결코 옛날보다 행복하지 않다. 상대적 빈곤감에에 빠져 더 많은 물욕과 허기에 빠져 사는 게 아닐까? 어쩌면 자기가 보고 싶어하는 환상에 사는 게 아닐까? 

 

안분지족(安分知足)할 줄 모르는 것이 현대인의 비극이고 불행인 것이다.

 세상사 도리와 상식으로 사회적 통념에 따라 사는 게 순리가 아니던가?

그런데 요즘은 민주주의가 왜곡되고 유권무죄(有權無罪),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가 횡횡하지 않던가? 모든 게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 아니던가?

 

오죽하면 한국에는 잘 생기고 정의의 화신으로 행세한 한 엘리트의 위선적 형태가 알려지자 '내로남불은 급기야 '조로남불(조국이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났다. 그는 부정과 탈법, 특권을 누리면서 말로만 공정과 정의를 내세우며 온갖 특권과 반칙을 자행하는 희대의 후안무치(厚顔無恥)한 거짓말장이로 비쳐졌다. 그래서 국민이 나라를 걱정하고 정치인의 위선을 꿰뚫어 보고있다.

 

▲  현암동굴과 난도  © 박익희 기자

 

우리는 병령사 절벽 아래 무수한 석굴에 안치된 부처상을 바라보며 저마다 간구하고 기원했던 역사문화 유적에 묵상하며 경건한 마음으로 석굴 앞을 지나며 현암 미륵불 앞에 두손을 모았다.

 

부처님이 꿈꾸는 세상은 고통이 없고 평화로운 세상이 아닙니까? 생노병사의 고통에도,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도, 미워하는 사람과의 다시 만남도, 이 모든 인연들도 부처님의 염원으로 고통 없는 세상, 한반도에 핵위협 없는 진정한 평화가 오기를 나는 기원했다.

 

우리는 이곳 병령사 현암대불에서 평화를 기원하며 단체사진을 찍었다. 나는 박동광 가이드가 설명하는 병령사 석불을 증거하는 동영상을 찍었다. 우리는 미륵대불  건너편에 안치된 와불(臥佛)을 친견을 했다.

 

▲노자를 모신 사당     © 박익희 기자

 

어느새 병령사를 빠져나왔는데 노자를 모신곳이 있다는 노군동(老君洞) 안내판이 보였다. 나는 노자의 도덕경 중 지족불욕 지지불태(知足不辱 知止不殆)라는 명언을 좋아한다. '만족할 줄 알면 욕되지 않고, 멈출 줄 알면 위태하지 않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나는 단숨에 도법자연(道法自然)이라 쓴 그곳에 올라 20위안을 놓고 경건하게 향을 사르고 삼배를 올렸다. 노자를 모신 사당은 오래 되었고 채색이 되어있었다. 도법자연이란 노자 25장 마지막 구절인데 인법지 지법천 천법도 도법자연(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을 풀이하면 '사람은 땅을 따르고, 땅은 하늘을 따르고, 하늘을 도를 따르고, 도는 스스로 그러한 자연을 따른다'는 말이다.

 

이곳을 관리하는 할머니 한 분이 내가 올리는 의식을 지켜보고 고맙다는 듯이 환한 미소를 보냈다. 나는 그곳을 내려오면서 이름 모를 꽃씨를 채취하여 곽문현 부인에게 선물로 주었다. 내년에 이 꽃씨를 심어 꽃이 피면 내게 사진을 보내달라고 부탁을 했다.

 

내려오니 코스모스가 탐스럽게 피었고 백일홍도 보였다. 우리는 병령사 황하석림을 뒤로하고 타고온 보트에 몸을 싣고 바다 같은 호수를 미끄러지듯 달리며 주변의 경관을 살펴보았다.

 

건너편에는 여러 필의 말도 보였고 양들도 있었다. 우리는 이제 가욕관으로 가기 위해서 인구 500만명이 살고있는 난주시내를 경유하여 난주역으로 갔다.

 

▲황하 지류와 노군동  안내판과 사진 이모저모  © 박익희 기자

 

박 가이드는 난주역에서 몸 컨디션이 안 좋은 양 교장에게 우황청심환을 하나 꺼내 주었다.  난주역사의 규모도 엄청나게 컸다. 축구장의 약 2배 크기로 2층에는 쇼핑상가와 식당가와 매점 등이 있었다.

 

매점에서 양 교장은  커피를 사와 가이드에게 주었다. 가이드는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10월 1일이 중화민주주주의 인민공화국 창립 70주년이라고 붙어있었다.  저런 문구를 중국 공산당원은 반드시 숙지를 하고 있어야 한다고 일러주었다. 이런 캠페인은 사회공동체를 단결시키고 계몽시키는 역할을 한다.

 

 

▲ 사회주의 핵심가치관---부강 민주, 문명 화해, 자유 평등, 공정 법치, 애국 경업, 성신 우선     © 박익희 기자

 

 

우리는 난주역에서 가욕관까지 1000km를 약 6시간을 고속열차를 타고 가야만 한다. 중국의 고속열차도 이용객이 많았으며 간단한 음료와 과자를 팔고 있었다.


기차 차창밖에는 중국의 속살이 그대로 드러났다. 때로는 황하를 지나고 때로는 들판을 지나며 이국의 낯선 풍광을 주차간산(走車看山)식으로 살피며 나는 가이드와 함께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중국을 보고 배울려고 노력했다.

 

가이드는 나의 관심에 본인도 여행을 좋아하니 "박 사장님! 언제 다시 한 번 중국에 오면 내차로 여행을 하자"고 제안했다. 정말 시간과 여건이 허락하면 다시 오고 싶다.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이 말했듯이 ‘세상을 넓고 할 일은 많다’처럼 우리에게도 여전히 할 일이 있다. 나는 세상을 두루 다니며 나만의 여행기를 남기고 싶다.

 

▲ 노자상을 모신 노군동 및 실크로드 탐방 사진    © 박익희 기자

 

해발 2000m 이상을 지난다며 이용도 교장은 고도계를 통해 이야기 해주었고, 우리는 기차에서 도시락으로 저녁을 먹었고, 어둠 속을 뚫고 가욕관역에 도착했다. 우리는 박동광 가이드가 소속된  회사의 고급 대형버스를 타고 깜깜한 밤길을 달려 가욕광장가일호텔에 밤늦게 도착했다.

 

 깜깜한 밤에 거대한 잉어조형물이 보였지만 아쉽게도 사진은 찍지 못했다. 밤하늘에 별들이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이날 밤은 장거리 이동에 너무 피곤하여 꿀잠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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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11/24 [13:03]  최종편집: ⓒ gg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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