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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윤 칼럼] 누구를 위해 역사마저 왜곡하겠다는 건가?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의 역사 왜곡 문제점
 
김성윤 논설위원 기사입력  2019/12/12 [12:29]
▲ 김성윤 논설위원, 단국대 전 법정대학장    

최근 우리의 역사를 어떻게 보고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에 대한 논쟁이 뜨거워지고 있다. 역사란 크게 두 가지 의미로 쓰인다. 그 중 하나는 사건을 의미하고, 다른 하나는 사건에 대한 기술을 의미한다.

 

 여기서 말하는 사건이란 존재로서의 역사다. 역사의 객관적 사실이다. 기술로서의 역사는 이론으로서의 역사다. 즉 역사의 주관적 사실이다. 우리가 역사를 짓는다, 또는 역사를 창조 한다고 할 때의 역사는 객관적인 사실에 입각한 역사다.

 

 반면에 우리가 역사를 읽는다. 또는 역사를 쓴다고 할 때는 주관적인 역사다. 주관적인 역사는 다양한 시각을 가질 수 있다. 그렇다고 역사를 왜곡하기 위하여 법을 바꾸거나 자의적인 심판도 가능하다고? 그건 아니다.

 

역사문제는 그렇게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 법 때문에 또는 그 판결 때문에 선한 질서가 무너질 수 있다. 그리고 무너진 그 질서는 또 다른 병폐가 되어 국민들의 일상생활에 깊숙이 스며들 수 있다. 그 병폐는 국민들의 아름다운 전통과 생활 질서까지 파괴할 수 있다.

 

‘백년전쟁’은 진보 성향 역사단체요, 좌편향 단체인 민족문제연구소가 2012년 제작했다. 시민방송은 2013년 1월부터 3월까지 민족문제연구소가 제작한‘백년전쟁-두 얼굴의 이승만’과‘백년전쟁-프레이저 보고서’등 두 전직 대통령의 일대기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한편은 29회에 다른 한편은 26회에 걸쳐 방송하였다.

 

이 방송이 전파를 탄 후 논란과 사회적 파장은 매우 컸다. 그러자 방송통신위원회는 2012년 8월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중 공정성, 객관성, 명예훼손 금지 부분을 위반했다며 프로그램 관계자를 징계하고 경고했다. 나아가 이 사실을 방송으로 알리라고 명령했다.

 

이에 대하여 제작진이 부당하다고 소송을 제기하자 2014년 8월 1심 재판부와 2015년 7월 2심 재판부는 방송통신위원회 제재가 적법했다고 판결했다. 당시 재판부는 “전직 대통령에 대한 긍정적 평가 없이 부정적인 사례와 평가만으로 구성하였을 뿐만 아니라 제작 의도와 달리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은 의도적으로 배제해 사실을 왜곡했다”고 판결했다.

 

그런데 4년 만인 2019년 6월 대법원에서 사자(死者)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김지영 감독과 프로듀서 최00는 무죄가 확정됐다. 이승만ㆍ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판적으로 다룬 역사 다큐멘터리‘백년전쟁’에 대한 방송통신위원회의 제재가 부당해 취소해야 한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이 1.2심과 달리 나왔기 때문이다.

 

 지난 11월 2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방송통신위원회의 시민방송RTV ‘백년전쟁’ 법정제재 처분이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대법원판사 12명중 6명이 찬성하고 6명이 반대하자 김명수 대법원장이 찬성하여 ‘백년전쟁’을 방영한 시민방송이 방송통신위원회 상대로 낸 제재조치명령 취소 소송에서 1심과 2심을 깨고 원고 승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  백년전쟁    연합뉴스에서 캡쳐

 

대법원은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이 방송의 객관성ㆍ공정성ㆍ균형성 유지의무와 사자(死者) 명예존중 의무를 위반하였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제재를 해서는 안 된다는 판결을 하였다.

 

이에 대하여 먼 훗날 사법부의 후배들과 역사학자들은 과연 어떤 판단을 내릴까? 이 같은 판결은 역사를 보는 시각이 객관적이 아닌 주관적인 시각에 의한 판결이다. 물론 주관적인 시각이다 보니 그 보는 시각은 다양할 수 있다.

 

그렇더라도 대법원의 판결은 사실에 기초하였어야 했다. 볼 수 있다고 검은 색을 흰색이라고 주장하면 그걸 정상적인 눈을 가진 사람이 흰색이라고 인정하겠는가? 이 같은 시각은 국론을 분열시키고 국민을 네편과 내편으로 나누려는 의도가 있지 않는 한 잘못된 시각이다.

 

조선일보 한현우 논설위원은 백년전쟁과 대법원이란 논설을 통하여“좌파 단체가 만든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은 오로지 이승만과 박정희 전 대통령을 욕보이고 조롱하려고 제작한 영상물이다.”라는 정의를 내렸다.

 

정상적인 눈으로 본 정의다. “이를테면 광복 후 이승만이 맥아더에게 "미친 듯이 러브레터를 썼다"며 하트 그린 편지지 위로 이런 자막을 내보낸다. "미국이 단독으로 한국을 점령해 주세요. 전 소련이 싫어요." 이런 연출에 더해 이승만을 악질 친일파, A급 민족 반역자, 플레이보이, 하와이 깡패, 돌대가리, 썩은 대가리라고 했다.

 

이런 다큐를 두고 대법원은 "역사에 의문을 제기한 정도"라고 했다. 이쯤 되면 사물에 대한 바른 시각이 아니라 사시(斜視)다. 사시란 사팔 눈이다. 양쪽 눈이 제대로 정렬되지 않아 한쪽 눈은 정면을 바라보지만 다른 쪽은 위, 아래, 왼쪽 또는 오른쪽을 바라보는 눈이다. 눈 주변의 여섯 개 근육인 근육 기능 장애, 원시, 뇌질환, 안면 타박상 등 눈 주변부의 외상 감염이 완벽히 조화되어 기능하지 못할 때 발생한다. 이번 판결은 지식인의 사시다.

 

지식 없이 열정만 앞세우는 자는 대개 무모하다. 반면에 열정을 갖추지 못한 지식과 지식인은 무미건조하다. 지식을 과장하는 자는 십중팔구 허황된 생각에 빠지게 된다. 그런가 하면 거짓된 지식을 파는 자 또한 사악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분별없는 지식과 지식인은 위험하다. 이것뿐만 아니다. '백년전쟁'은 조작과 오역투성이다. 미국 CIA 보고서에 "이승만은 한국 독립을 위해 평생을 바쳤는데, 궁극적으로 그 나라를 통치하겠다는 목적도 포함돼 있었다."고 적힌 부분을 "이승만은 사적인 권력욕을 채우려고 독립운동을 했다"고 둔갑시켰다” 고 지적 하였다.

 

나아가 이승만이 "하와이 한인 학교는 일본인에 대한 증오를 일절 가르치지 않는다. 우리 선생님들은 특정 민족에 대한 증오를 가르치기엔 너무나 세계 시민적인 사람들"이라고 한 것을 "우리 학교에서는 일본을 비판하라고 가르치지 않는다."로 바꿔 놨다.

 

그런데 대법원은  "사실 확인을 위해 상당히 노력하고 그 내용도 사료에 기초했다"고 했다.”정말 앙천-대소(仰天大笑) 즉 삶은 소대가리가 웃을 일이다.“ 이번 판결을 두고 대법원은 "향후 유사한 사안에서 해석의 지침이 될 것"이라고 했다.

 

대법원의 시각대로라면 앞으로 누구나 특정 인물을 '플레이보이' '깡패' '돌대가리' '썩은 대가리'라고 매도하는 영상을 '역사 다큐'라고 방영해도 된다는 건가. 이것은 역사 논쟁이 아니라 역사에 오물을 끼얹는 행위다.”라고 조선일보 한현우 논설위원은 명백하게 지적하였다.

 

국제 문제도 그렇다. 죽창가를 부르자는 엉뚱한 사고가 한일관계를 뒤틀어 놓았다."독재 대 민주, 보수 대 진보, 외세 대 민족자주, 친일 대 반일 등으로 나누어 독재나 보수 외세 친일 공존이 아니라 척결돼야 할 대상이요.

 

 민주, 진보, 반일은  정당성이자 도덕성을 대표하는 것으로 보는데 문제가 있다. 이런 사시의 눈으로 본 문제의식에서 벗어나 한·일 과거사 문제는 죽창가가 아닌 건설적인 미래 창출로 해결해야 한다. 우리 정부와 아베 정권은 과거 100년 때문에 미래를 파괴하는 과오를 범해서는 안 된다.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How Democracies Die·2018)라는 책은 하버드대 교수인 스티븐 레비츠키, 대니얼 지블랫 두 사람의 공동저서다. 이 두 저자는 전 세계 역사를 고찰해 보면 민주주의가 어떤 과정을 거쳐 붕괴 되어왔고 현재 붕괴되고 있는가? 를 살펴보면서 민주주의 붕괴 패턴이 있음을 발견하였다.

 

 두 저자는 첫째 후보를 가려내는 역할을 내던진 정당 즉 사시 정당, 둘째 정치적 경쟁자를 동반자가 아닌 적으로 간주하는 정치인 즉 사시 정치인, 셋째 언론을 공격하는 선출된 지도자, 즉 사시 지도자 등이 있었거나 있는 정치현실에 대하여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명백한 징후로 보았다.

 

이 같은 현상은 결코 강 건너 불이 아닌 우리 문제로 다가서고 있다. 역사에 가정이란 없다고 하지만, 아사 상태의 북한에 대한 현금지원만 하지 않았더라도 지금처럼 미사일을 쏘고 핵실험을 반복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역사는 인간의지나 희망만으로는 움직이지 않는 모양이다. 하지만 매 순간순간의 선택이 끝내는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내고, 그 흐름이 역사의 거대한 수레바퀴를 돌리는 것 또한 틀림없다.

 

정치가 친구와 적으로 양분되면 도덕적 판단을 하기가 어렵다. 불편부당성, 정의, 공정성 같은 구분은 무의미해지거나 애매해질 수밖에 없다. 진정으로 나라와 민족을 위한다면 있는 그대로 사실에 기초하여 문제점과 개선점을 제시하고 찾아야 된다.

 

그렇기에 사실과 사실에 대한 관찰로부터 발견되는 법칙에 의한 역사 기술이 중요하다. 따라서 더 이상 ‘백년전쟁-두 얼굴의 이승만’과 ‘백년전쟁-프레이저 보고서’처럼 역사를 왜곡하고 폄훼하고 이용하는 불행이 나오거나 지속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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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12/12 [12:29]  최종편집: ⓒ gg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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