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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익희의 실크로드 답사기 5] 만리장성 가욕관과 사막의 오아시스 명사산 월아천
 
박익희 기자 기사입력  2019/12/08 [20:00]
▲ D5 실크로드 일정     © 박익희 기자

벌써 중국여행 5일째를 맞았다. 오늘 일정도 만만치 않은 스케줄 이다. 아침은 호텔식 이후 가욕관을 거쳐서 장성박물관을 방문하고 고비사막을 5시간 30분 가량 버스를 타고 횡단하여  둔황의 명사산 월아천과 사주야시장을 탐방하는  코스이다.


얼마나 가보고 싶었던 사막의 오아시스 월아천 천하제일샘인가? EBS 세계테마기행을 보면서 돈황의 막고글과 월아천은 내 생애 꼭 가보고 싶었다. 

 

깜깜한 밤에 창밖을 스치며 본 가욕관의 거대한 LED잉어조형물이 어디쯤일까 살펴보니 찾을 수도 없다.

 

호텔에서 가욕관 만리장성은 버스로 약 15분 거리에 있었다. 가욕관 주차장에는 아침부터 버스와 관광객들이 북새통을 이루고 있어 나를 놀라게 했다.

 

가욕관은 명나라의 국경으로 여기까지가 중국의 국경으로 만년설이 덮힌 기련산과 가욕산의 협곡 13km가 가장 좁은 곳이다. 이곳에도 중국의 3대 불가사이 건축물이라는 만리장성을 쌓아 티무르의 침입에 대비했다.

 

인터넷에는 가욕관은 가욕관시의 남서 6km에 위치하는 하서회랑의 서쪽 가장 좁은 땅에 있다. 그곳에 두 개의 언덕 사이의 땅을 가욕산이라고 한다. 성벽의 일부는 고비사막을 횡단하고 있어 험준한 지형에 요새의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 만리장성 가욕관의 이모저모     © 박익희 기자

 

명조 초기 1372년(홍무 5년)에 구축된 후, 티무르군에 대비하기 위해, 관의 방비는 강화되어 요새를 견고히 하고 있었다. 그러나 티무르는 동진을 진행시키기 전에 전복되었다고 한다.

 

가욕관은 둘레 733m, 높이 11m의 성벽에 둘러싸여 성 내부 지역은 3만3,500㎡ 이상이다. 황토를 판축으로 하여 굳힌 성벽이며, 서쪽은 벽돌을 겹쳐 쌓아져 있었다.

 

동서로 각각 누각(문루)과 옹성을 가지는 성문을 갖추어,  상서로운 기운이 동쪽으로부터 솟아오른다는 의미로 광화문(光化門), 서쪽 성문은 부드러움이 서쪽까지 이르러 평안해지기를 바라는 의미인 유원문(柔遠門)이라고 한다.

 

서문에는 가욕관(關)아라 쓴 편액이 걸려 있다. 관의 남북은 만리장성과 연결되어 있다. 2개의 문의 북측에는 관의 최상부에 오를 수 있는 통로가 있었다. 우리는 문루 위를 올라서 가련산의 만년설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끝없이 이어진 만리장성을 보면서 노역에 얼마나 많은 백성이 고생을 했을까 생각했다. 예나 지금이나 국방을 튼튼히 하는 것은 나라의 기본 중의 기본이다.

 

▲ 가욕관 이모저모    © 박익희 기자

 

 만리장성으로 연결되는 관 중에서 유일하게 건설 당시 그대로 남아있는 건축물이다. 최동단에 있는 산해관은 ‘천하제일관(天下第一关)’이라고 칭하며, 가욕관은 ‘천하제일웅관(天下第一雄关)’이라고 한다.

 

벽은 대부분 흙을 다져 만들었고 서쪽에는 벽돌을 사용해 웅장하고 튼튼하다. 이 지역은 척박하고 황량한 사막이라 연간 강수량이 80mm라고 했다. 그러니 흙을 다져 성벽을 쌓아도 무너질 염려가 없다.

 

동서 실크로드의 관문으로 주위에는 둔황 막고굴과 같이 유명한 유적이 존재하며, 많은 벽화가 발견되었다.

 

감숙성(甘肅省) 하서주랑(河西走廊)중부, 장성지대 서단에 위치하며, 주천(酒泉)지구에 속한다. 란주(蘭州)와의 거리가 754km이며, 가욕관 공항과의 거리는 10km 정도 된다. 연평균온도 7℃, 연강우량은 80mm이다.  중국 서북의 철광석의 주산지로 기계, 시멘트, 화학 등 공업이 발달했다.

 

 란신철도(란저우~신강)와 312번 국도가 통하며 시 북쪽에 있는 민항기(民航機)는 란주, 시안(西安), 우루무치(烏魯木齊), 둔황(敦煌) 등의 도시와 통한다. 문화재에 장성(長城)박물관, 흑산(黑山) 석조각, 위(魏)와 진(晉) 때의 벽화, 한(漢) 때의 묘군(墓群) 등이 있다.

 

나는 가욕관의 웅장한 규모에 압도된 채  박동광 가이드를 부지런히 따라다니며 설명도 듣고 사진도 찍었다.

 

그런데 관우장을 모신 사당을 가이드가 그냥 지나칠려는 찰라에 저 안을 가보자고 권유했다. 관우가 누군가. 삼국지에 유비와 관우, 장비가 도원의 결의를 맺은 사내 대장부가 이니던가.  관우는 한국에서도 숭앙받는 인물로 관운장은 서울에도 내 고향 경북 성주에도 관운장이 남아있다.

 

▲ 문무성신 충의천추(文武聖神 忠義千秋)의 대장부 관운장 모습     © 박익희 기자

 

관제묘에서 관우상에 경건한 묵념을 올리고 대장부라는 글씨 앞에 사진을 찍었다. 참 잘했다 싶었다. 우리의 여행 목적도 옛 유적지를 보고 먼저 살다간 선현의 업적을 기리고 법고창신하는 일이 아니던가.

 

다음은 맹자의 <대장부론>이다.

 

居天下之廣居 (거천하지광거) 세상의 넓은 곳에서 살며,

立天下之正位 (입천하지정위) 세상의 바른 곳에 서며,

行天下之大道 (행천하지대도) 세상의 큰 도를 행한다.

得志與民由之 (득지여민유지) 뜻을 얻으면 국민과 함께하고,

不得志獨行其道 (부득지독행기도) 뜻을 얻지 못하면 홀로 그 도를 행한다.

富貴不能淫 (부귀불능음) 부하고 귀하여도 도리에 어긋나지 않고,

貧賤不能移 (빈천불능이) 가난하고 낮은 위치에 있어도 지조가 변하지 않으며,

威武不能屈 (위무불능굴) 위협과 무력에도 굽히지 않을 수 있는 사람.

此之謂大丈夫 (차지위대장부) 이를 일컬어 대장부라 부른다.    

 

 맹자는 "대장부란 세상의 큰 뜻을 품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시류에 굴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뜻을 이룬 이후에도 교만하지 않고, 뜻을 이루지 못하더라도 비굴하지 않은 사람이다. 만약 뜻을 이루면 국민과 함께 가고 뜻을 이루지 못하면 혼자 그 길을 가는 사람이다.

 

 혼미한 시대에는 정말 영웅이 필요한 것 같다. 필자는 흔들리는 대한민국을 구할 참다운 영웅 출현을 기원한다. 자유민주주의를 세운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 대통령 처럼, 가난을 해결한 경제대통령 박정희 처럼 말이다. 물론 공과는 있다.

 

우린 성문을 나와 안내석 앞에서 사진을 촬영을 하고 전동차를 타고 배경이 좋은 곳에서 단체로 개인별로 기념 사진을 남겼다. 박진순 부인이 사진작가라 정말 우리는 편하게 포즈만 취했다.

 

▲ 흙으로 쌓은 만리장성  모습 © 박익희 기자

 

 가욕관 앞에는 낙타를 태워주는 시설도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황량한 만리장성 끝에서 사막을 지나서 가야하는 여정을 생각했다. 그 옛날에는 인도나 서역을 가기 위해서는 척박하고 물이 없는 사막을 지난다는 것은 목숨을 걸지 않고는 절대 함부로 넘나들 수 없는 땅으로 보였다.

 

몽고족이 빠른 말을 타고 오기에도 힘들어 보였다. 그래서 지세를 이용하는 전쟁이 절대 유리하다. 이 산과 저 산 사이 약 13km라는 곳 가욕산에 가욕관을 세우는 것은 교통과 군사 요충지에 해당된다는 것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박 가이드는 말이 워낙 빨리 달려 마답비연 조각상이 유명하다는 설명을 해주었다.

 

아무리 좋은 곳이라도 우리는 다음 일정 소화를 위해서 얼른 떠나야만 한다. 우리는 가욕관을 뒤로 하고 만리장성박물관에 들려 이곳의 위치와 전시된 유물, 지도, 동~서 이어지는 불가사이한 만리장성 주요지점 등을 살펴보았고,  현재 우리가 어떤 곳을 경유해 왔는지, 어느 곳을 지나서 어디로 가야하는지 박동광 가이드의 설명을 들었다.

 

▲ 처마가 올라간 화려한  중국식 건물에서 박회국 사장, 그는 하나투어(053-562-1212)를 경영하고 있다  © 박익희 기자

 

사막이라도 때로는 오아시스가 있어 숲과 억새가 있었다. 그래서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박회국과 나는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추억을 만들었다. 그러다보니 일행은 아마 70m이상 앞서 간 것 같다. 유명한 관광지에는 어디를 가나 그 지역의 특산물과 먹거리를 팔고 있다. 이곳도 예외가 아니었다.

 

나는 상점에 전시된 기이한 돌과 조각품, 이상하게 생긴 과일 등을 살펴보며 앞서간 일행과 합류하기 위해 빠른 걸음을 옮겼다. 박회국 사장은 우리들을 위해서 간식 먹을거리를 사왔다.  현지 박 가이드도 여행사 경영하는 인솔자 박회국 사장이 안 오니 아무 소리도 못하고 기다릴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박회국 사장은 1등여행사를 지향하며  대구 달서구 달구벌대로 1498 하나투어(053-562-1212)를 경영하고 있다. 박회국 사장은 중국여행의 전문가이다.

 

 우린 이곳에서 대형버스에 몸을 실고 쭉 뻗은 왕복 6차선의 고비사막을 가로 질러 둔황을 행해 내달렸다. 점심은 약 2시간을 달려 딱 한곳 뿐인 적금휴게소에 식당이 있다는 설명을 했다. 고속도로를 P턴하여 점심을 먹기위해 식당에 도착했는데 여러 대의 버스가 식사를 하기 위해 이곳으로 몰리고 있었다.

 

식당에 들어가니 중간에 동상이 하나 있었다. 아마도 이곳에 식당이 필요하리라 예측하고 무척이나 고생한 선각자를 기념하는  동상이리라. 짐작한대로 였다.  왕진희 동상이다.

 

▲ 왕진희 동상     ©박익희 기자
▲  일행과 사막한가운데 휴게소에서 점심 식사를 하다.   ©박익희 기자

 

우리는 그곳에서 대충 점심을 먹었다. 다른 곳에 식당이 없으니 주는 데로 먹고 나올 수 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그렇다고 음식이 수준 이하는 아니었다. 사막에도 맥주와 마실 물은 있었다.

 

독과점 체제는 제품과 서비스의 품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결과가 확연히 달라질 수 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경쟁을 통하면 정책과 제품의 질과 서비스의 수준이 높아진다.

 

밖으로 나오니 이곳의 유명관광지를 소개하는 입간판이 보여서 나는 얼른 다가가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돌아서 버스를 향해 오는 데 원유채굴 장비가 보였다. 원유가 생산되나 보다. 박 가이드는 "이토록 황량한 사막에 원유가 매장되어 있고, 철광석이 많이 생산된다"고 말했다.

 

또한 이런 사막에도 때로는 듬성듬성 풀들이 자라고 있었고, 구릉지에는 조상의 묘를 쓴 흔적이 보였다. 누구나 선조와 부모를 잃으면 슬프고 조상의 육신을 함부로 할 수 없기에 고이 묻어 장례를 지냈다. 아마도 가문묘 또는 가족묘로 보이는 것들이 경계를 이루고 있었다.  중국에는 동북 3성에 풍장을 지내기도 했다고 들은 적이 있다. 요즘은 화장(火葬)이 대세이다.

 

운전기사도 피곤 한지 목덜미를 만지곤 했다. 빨래줄 처럼 쭉 뻗은 길은 속도를 내기엔 좋지만 때로는 무료하고 운전하기엔 재미가 없게 마련이다. 나는 "버스에 음악은 없느냐"고 가이드에 물었더니 있다고 했다.  우린 등려군 노래 모음을 들으며 음악이 주는 영혼의 안식에 취하며 돈황 명사산을 향해 달렸다.
https://youtu.be/sucfRWgKcdY

 

▲명사산을 배경으로 단체사진 촬영     ©박익희 기자

 

마침내 우리는 명사산에 도착했다. 명사산(1715m)은 동서로 약 40km, 남북으로 20km나 되는 고운 사막이 마치 바지에 칼줄음을 세운듯 이색적인 풍광을 뽐내고 있었다. 이곳은 사막의 오아시스로 유명한 내가 그토록 오고 싶었던 천하제일천 월아천(天下第一泉 月牙泉)이 있는 곳이다. 월아천은 약 200m에 초승달 모양을 하고 있고, 아무리 가뭄이 심해도 마르지 않는 샘으로 유명하다.

 

우린 버스 안에서 낙타를 탈 사람을 신청받았는데 곽문현과 나만 타게되었다. 이용도도 처음에는 타겠다고 신청을 했는데 부인이 손자를 봐야하는데 낙타는 샤스 위험이 있으니 못타게 만들었다. 아무리 고집있는 사람도 손자의 건강에 염려된다는 말에 뜻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친구들은 명사산 월아천으로 향하고 우린 낙타를 타러 갔다. 낙타를 탈려고 대기하는 사람이 많았다. 등자(발 걸이 쇠붙이)에 발을 끼우고 낙타를 타고 명사산 약 1000~1500m가량을 타고 돌아오는 코스였지만 쌍봉 낙타는 처음 타는 이색적인 체험이었다.

 

▲  명사산의 명물 1800마리의 낙타 모습 , 꿇어 앉은 모습이 참으로 유순한 동물이었다.  ©박익희 기자

 

▲ 쌍봉  낙타를 탄 필자   ©박익희 기자

 

5명이 기본 1조를 이루어 타게 했다. 낙타를 몰이하는 사람은 대부분은 남자였지만 우리팀의 낙부는 여자였다. 낙타는 조심스럽게 올라앉으면 앞에서부터 차례로 일어서는데 비교적 안전했다. 낙타의 발은 사막에도 잘빠지지 않을 만큼 넓적하고 성격은 온순했다.

 

이빨은 엄지손가락 굵기로 크다. 내 몸무게가 85kg이나 나가니 낙타는 얼마나 무거웠을까? 같은 값에 몸무게 55kg 나가는 곽문현 낙타는 운수대통한 날이고 내가 탄 낙타는 일진이 안좋을 것 같았다.

 

 중간에 전망 좋은 명사산 언덕에서 낙타를 세우더니 낙부가 사진기를 달래서 주었다. 그녀는 온갖 포즈로 낙타 탄 우리의 모습을 찍었다. 우리는 2명이라 다른 일행 3명과 함께 온 사람들과 탔는데 곽문현이는 4째번 낙타에  나는 다섯 번째 낙타를 탔다. 그래야만 내가 문현이 사진을 찍어 줄수 있었기 때문이다.

 

등자에 발을 빼면 위험하다며 뒤를 보며 사진을 찍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다. 낙부는 키가 작고 얼굴이 햇볕에 그을렸지만 순박해 보였다. 하루 온종일 사막에서 낙타를 몰고있으니 고단함은 크겠지만 이마저 일이 있으니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다른 남자 낙부에게 영어로 이곳에 총 낙타는 몇 마리냐고 물었더니 1,800마리라고 말했다. 1800마리 낙타에 5마리에 1명의 마부가 필요하니 360명의 일자리가 명사산에 기대어 먹고살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명사산 약 40km의 모래산을 헬기, 모터행글라이더, 4륜구동의 자동차를 타고 사막을 구경할 수 있었다. 헬기는 타는 관광객은 못봤지만 모터행글러이더를 타는 모습은 여러 번 볼 수 있었다.  아마도 전문 모터행글러이더의 등뒤에서 타서 하늘을 날며 명사산의 비경을 보는 게 제일 좋을 것 같았다.

 

우린 다른 곳으로 돌아나와 낙타 여인과 인사를 하고, 팁을 1인당 20위안씩 40위안을 주었더니 감사하다고 인사를 건네며 월아천은 저쪽으로 가면 된다고 친절하게 가르켜 주었다.

 

 나는 서둘러 월아천을 향해 다가갔다. 많은 사람들이 있어 대충 사진을 찍었다. 저멀리 끝까지 가서 사진을 찍어야 제대로 구도가 나올 것 같았지만 나는 먼저간 일행이 기다리므로 포기하고 대신 사막의 오아시스에 목을 추기고 손을 씻었다.

 

▲ 사막의 오아시스 월아천 천하제일의 샘, 길이 약 200m 폭 30m가량의 초승달 모양의 마르지 않는 샘이다     © 인터넷에서 퍼옴

 

▲  월아천의 야경   © 경기데일리 이동석 기자

 

▲ 아름다운 월아천 5층 팔각 건물 모습과 야간 연꽃 속의 비천무희상    ©박익희 기자

 

5층의 8각 건물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현판에 멋진 글씨가 새겨져있었다. 8각 탑모양의 5층 건물은 처마를 쳐들고 화려함을 뽐내는 듯했고, 부처님을 모신 천수관음전이 초생달 모양의 연못에 투영된 모습은 선경인지 비경인지 별빛 쏟아지는 밤이면 시인묵객이면 저절로 시가 한편 나올만한 곳이다.

 

친구들이 기다리는 곳에서 우린 합류하여 아이스크림을 먹고 전동차에 올라 버스로 돌아왔다.

버스로 돌아오는 길에 늘어선 상가에는 명사산과 월아천을 상징하는 기념품이 많았지만 나는 냉장고에 붙이는 좌석 기념품은 찾지 못했다. 아내는 해외여행을 갔다오면 기념품으로 하나씩 사와서 모았다. 어쩌면 자석칠판에 빼곡하게 걸린 기념품을 보며 다녀온 여행지의 추억을 반추하며 행복해 하는 것 같았다.

 

호텔로 돌아와 저녁식사 후에 우린 야간풍물 시장을 보러갔다. 야간이 되면 중국에는 전기가 풍부한지 불야성을 이룬다. 둔황 막고굴이 있고 명사산 월아천이 있는 곳이라 둔황시도 관광객이 많았다. 박 가이드는 우리 일행은 야시장 입구에 내려주고 버스는 반대편에 대기하고 있겠다고 했다.

 

나와 박순순 부부는 로타리에 세워진 조명에 화려한 비천무희상 조각상을 사진으로 담기위해 일행과 헤어졌다. 우린 멋진 조명과  연꽃 속에  춤추는 무희상의 아름다운 모습 사진에 담고 얼른 내려와 야시장의  진귀한 상품과 화려함과 풍성함에 놀라며 사진으로 담고 물건을 구입했다.

 

▲박진순 양명희 잉꼬 부부     ©박익희 기자

 

▲ 멋진 솜씨의 조각품과 작은 보석돌    ©박익희 기자

 

특히  명사산 낙타 기념품과 명사산과 월아천을 나무에 그린 기념품을 구입했고, 보석처럼 빛나는투명한 광물에 아로새겨진 작을 보석같은 돌을 구입했다.  양명희 사진작가는 “익희씨! 이거 너무 예쁘다.” 이걸 사라고 권하여 구입했다. 내 아내는 어딜가면 절대로 함부러 물건을 덥썩 사지 않는다.

 

시간이 허락하면 친구들과 노천의자에 앉아 맥주라도 한잔 하고 싶은 생각이 꿀떡 같았지만 벌써 밤은 10시가 넘었고 장시간 버스를 탄 고단함으로 호텔로 돌아가서 씻고 자자는 의견이 우세하여 따라야만 했다. 고생한 만큼 추억은 많이 남는데...언제 다시 이곳에 올 수 있겠나 생각하니 무척이나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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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12/08 [20:00]  최종편집: ⓒ gg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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