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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해조 문화칼럼]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를 다시 읽으며
"젊은이들이여!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큰 울림으로 남아
 
권해조 칼럼니스트 기사입력  2019/12/15 [13:39]
▲ 권해조 칼럼니스트, 한국국방외교협회 고문  

우리나라 경제에 큰 족적을 남긴 김우중(金宇中: 1936.12-2019.12) 전 대우그룹 회장이 지난 12월 9일 83세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셀러리 맨으로 출발해서 우리나라 제계2위의 그룹총수까지 되었던 신화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20세기 후반(1960-1999) 수출신화로 우리경제에 세계화를 이끈 선구자였지만 IMF 영향으로 그룹이 해체되어 해외 도피를 하는 등 파란만장한 생을 마쳤다. 

 

고인은 1967년 30대 초반 젊은 나이에 자본금 500만원, 직원5명으로 대우실업을 창업한 후, 1970년 대우실업 사장이 되고, 이어 1979년 새한자동차 회장, 대우전자, 대우자동차 등을 차례로 인수하였다.

 

1999년 해체직전까지 41개 계열사에 600여개의 해외법인으로 당시 자산총액이 76조 7,000억 원, 1998년 매출액이 91조원으로 우리나라 현대에 이어 재계 2위까지 기록했으며, 1979년 ‘20세기를 빛낸 기업인’대상을 받기까지 했다.

 

고인은 당시 「세계경영」이란 화두로 공격적인 경영을 펼쳤으나 IMF이후 김대중 정부 때 그의 신화는 몰락하였다. 1999년 회사 해체이후 중국으로 도피했다가 2005년 분식회계를 통한 사기대출혐의로 구속되어 대법원에서 징역 8년 6개월에 추징금 17조 9253억 원을 확정 받았으며, 2007년 노무현 대통령 때 특사로 사면되었다.

 

고인은 2010년부터 마지막 봉사로 동남아 인재양성사업인 ‘글로벌청년사업가(GYBM)’ 육성프로그램에 전념하면서 베트남, 미얀마, 인도네시아, 태국 등 4개국에서 1,000여명의 청년사업가를 배출시키는데 혼신을 다했다. 그 중에서도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 있는 ‘리틀 김우중’ 양성소인 「김우중 사관학교(GYBM)」가 유명하다.

 

▲ 故 김우중 회장의 빈소 영정     © 경기데일리

 

수원 아주대 병원 대강당에 마련된 빈소에는 대우가족을 비롯하여 전 현직 정관계, 기업대표들 연예인 등 각계각층의 8,000여명이 다녀갔으며, 12일 열린 영결식장에서 “대우의 사훈(社訓)인 ‘창조, 도전, 희생’ 이 세 가지에는 우리의 진정성이 담겨있습니다. 이 한결같은 마음으로 우리는 해외 진출을 처음으로 해냈습니다.”라는 그의 목소리가 담긴 생전 인터뷰 영상이 나왔다. 

 

㈜대우의 마지막 사장이었던 장병주 대우세계경영연구회 회장은 조사(弔辭)에서 “고인은 35만 대우가족과 전 국민이 기억하고 인생의 좌표로 삼기 충분했고, 고인의 성취가 국민적 자신감으로 이어졌다,”고 낭독하자 참석자들 모두가 울먹였다고 한다.

 

고인은 여러 가지로 솔선수범한 분이다. 그는 지난 1년간 노환으로 병원에서 입원을 하면서도 연명치료를 거부하고 마지막 임종까지 인공호흡기도 부착하지 않았고, 심폐소생술도 하지 않고 자연사로 생을 마쳤다고한다. 작년 2월에 시행된 「존엄사법, 웰다잉법」을 솔선 수행하였으며, 장례식도 고인의 유언에 따라 가족장으로 검소하게 치러졌다. 장지는 충남 태안군 선영이다.

 

필자는 30여 년 전에 구입해서 읽다가 책장 속에 꽂아 둔 고인의 저서 ‘내가 사랑하는 젊은이들에게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1989.8.10.)’는 책을 다시 꺼내 읽어보았다. 그가 53세 때 쓴 이 책으로 당시 베스트셀러로 1년 동안 107판 (1990.6.10.)을 발간하였으며, 당시 젊은 청년들에게는 꿈과 희망을 심어주었다.

 

 그는 책 서문에서 “마음이 아직 젊을 때 내 경험과 생각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다. 가지런히 모은 생각 중에서 평소 자라나는 다음세대에 건네주고 싶은 말의 편린(片鱗)들, 조각들을 모음으로써 씌어졌다. 젊은이들은 항상 새로움에 도전하는 기상을 가져야한다. 또한 확고한 비젼(VISION)을 가지고 미래를 맞아야 한다.”

 

그리고 본문에서 “젊은이들이여 !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지구촌이라 불릴 정도로 좁아졌지만 세상에는 아직도 가보지 않은 길이 있고, 아무도 해내지 못한 일도 많다. 그 길을 가고, 그 일을 해내는 용기 있는 개척자들에 의해 역사는 조금씩 전진해온 것 아닌가. 젊은이여 ! 우주를 생각하고 큰 뜻을 품어보라.” 하였다.

 

고인은 ‘세계경영’이 그의 평생 가치관으로 “이 좁은 땅덩어리에서 우리끼리 경쟁하며 살 것이 아니라 과감하게 밖으로 나가자”라고 하면서 청년사업가들에게는 “세계를 보되 현지의 눈으로 보라. 절실해야 끝까지 갈 수 있다.”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고인은 우리기업이 전 세계 어느 곳이나 활동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결정권자와 바로 결정하는 과단성과 담대함을 보여줌으로써 현세대 세계 경영의 신화를 만들었고, 시대를 앞서보는 선견지명(先見之明)을 가진 분이었다.

 

특히 고인은 1980년대 중반에 다른 기업이 진출을 꺼려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지인 남미, 동구, 아프리카 등 후진국에 엄청난 투자로 선점하였다.

 

필자가 1994년 아프리카 방문, 2001년 남미 방문 때에 현지에서 대우 맵시나, 스텔라 국산자동차를 보고 마음이 뿌듯하였다.

 

비록 고인은 영욕(榮辱)이 엇갈리는 짧은 삶이었지만 도처에 그의 깊은 혜안과 많은 업적과 신화를 남겼다. 특히 우리나라와 동남아 젊은 청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준 ‘세계화를 이끈 선구자’였다.

 

그는 해외 출장을 할 때에 비행기가 난기류로 흔들리거나 회항을 할 때도 “하늘이 정해준 대로 가는 거니까”라 하면서 의연했다고 한다.

 

30년 전에 읽었던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고인의 저서를 다시 꺼내 읽으면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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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12/15 [13:39]  최종편집: ⓒ gg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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