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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운스님의 '오늘의 법문(法門)'[131]
병환에서 공부의 힘을 얻다(以患爲利)
 
제운스님 객원칼럼니스트 기사입력  2020/01/13 [09:35]

 

▲     © 제운스님 객원칼럼니스트

 
병환에서 공부의 힘을 얻다(以患爲利) 
  
고행지토굴 苦行之土窟
시득좌선진 始得坐禪眞
막유시비탈 莫有是非脫
목전경약춘 目前境若春
 
토굴에서의 고행이
비로소 좌선의 참뜻을 알 수 있었네
있고 없고 옳고 그름 떠나니
눈 앞 경계가 마치 봄날 같구려.
 
세상 살면서 늘 아쉬워하는 대목이 있다. 이 대목은 죽을 때가 되어도 그대로 남는다. 이것이 무엇인가 하니,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는다는 사실이다. 이것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으려고 서양 철학자들이 철학이라는 개념에 경험론(經驗論)을 삽입한지도 모른다. 경험론이란 근원적 원리보다는 경험에 기반 한 것을 본질로 인식하는데서부터다.


나의 수행일지라 할까 고행일지랄까 아무튼 어렵게 행자생활을 마치고 중 된지 몇 년이 흘렀지만 처음 수행의 문에 들어설 때 원력은 다 어디로 가고 소중한 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몸에 병이 들었다. 소변이 노랗다 못해 빨갛게 나왔지만 얼른 병원에 가서 치료할 처지가 되지 못했다. 가진 것도 없는데다 출가하느라 부모 현제 친척 친구마저 멀어진 판에 내 살자고 주위의 도움을 받긴 싫었다.
 
그렇게 긍긍되던 어느 날 강원도 정선의 약수가 좋다는 말을 듣고는 곧장 그곳으로 갔었다. 동면 약수탕이다. 약수탕 위 좀 떨어진 곳에 불암사(佛巖寺)라는 산중 절이 막 창건되고 있었다. 창건자는 당시 나의 사형 서암스님이고 그 창건을 도우는 보살님 한 분과 함께 살고 있었다.

 

그런 환경에 내가 동참을 했다. 당시엔 서암스님과 공양주 이렇게 살고 있었는데 공양주보살이 200만원(1976)의 사비를 보시하였고, 동면 면사무소에서 폭약(다이너마이트)을 지원하여 토굴을 지을 수 있었다.


이렇게 특별한 환경에서의 만남에 서로에 대한 호칭이 유별났다. 나보다 10년 년 상인 사형은 상사가 되고 나는 중사이며 공양주는 하사. 사형이 나를 부를 때 어이, 중사!” 그렇게 했다.

 

그해는 매우 추웠다.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날씨라 계곡은 꽁꽁 얼어붙었고 방에 군불을 지피면 벽지사이로 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왜냐면 벽이 계곡의 돌과 진흙으로 적당히 주물러 만들었기 때문이다.
 
병든 몸으로 이곳에 와서 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당시 나이는 23살이고 승납 4년차다. 큰 병을 얻어 죽느냐 사느냐 하는 기로에선 나 자신이 지나간 시간들을 들여다보니 참 부끄러웠다. 수행을 잘 못해서 이런 병이 나에게 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그런 마음에서 자신의 수행에 고삐를 다잡았다. 12시가 되기 전에는 허리를 바닥에 눕히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러다 보니 추위를 이겨보려고 애를 쓰는 가운데 가끔 무심히 천장을 쳐다본다. 이불이 천장에 두 개의 나무로 된 선반에 걸쳐져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큰 다짐을 한 가운데 새벽 4시에 기상을 해서 가파른 절벽에 가까스로 붙어있는 법당에 예불을 하고 내려와 좌선을 하고 아침공양을 마치면 장작을 팬다. 그리고는 아래 약수탕에 내려가서 물을 떠다가 먹었다.

 

약수탕은 늘 붉게 얼룩져있었다. 철분성분 때문이다. 이렇게 삶인지 수행인지 시간은 흘렀고 어느 새 봄이 오는 소리를 계곡에서 어렴풋이 들려오는 때에 내 몸도 많이 회복되고 마음도 편안했다.
 
나의 스승(京山)너는 금생에 사람 노릇 하지 마라는 말도 여기에서 다시금 되새기다 한 날 주왕산 주왕암에 가게 되었는데 주왕암 감원스님이 나를 대하고 나서 두 가지를 제안했다. 하나는 주왕암에 함께 산다면 조실대접을 하겠다했고 하나는 통도사 경봉선사를 찾아 인가(印可)를 받아보라는 것이다.

 

인가란 법이 있는 고승에게 인정받는다는 뜻으로 사회적으로 이해하자면 평가받는 그런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주왕암 감원스님이 나를 볼 때 한 경지를 얻었다고 본 것이다. 내가 한 경지를 얻었는지 않았는지 그건 그때 환경에서의 일이다. 다만 감원스님의 두 가지 부탁에 한 가지는 실행했다. 통도사 경봉스님을 친견했다.

 

경봉스님을 처음 대하니 왜 왔니라는 말을 듣고 대답을 했다. 여기서 무슨 말을 하고 무엇을 인정받고 말고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다만 승납 4년차 세속나이 23살에 일어난 일일뿐이다.
앞서 이 시가 보이는 의미라면 어떤 일을 경험하고서야 비로소 알 수 있었고 그것이 하나의 동기부여(動機附與)가 되어 주어진 현실에서 모멘텀(momentum)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후회할 일을 만들어서도 안 되겠지만 후회를 너무 두려워하거나 죄책할 일만도 아니다. 인간은 후회하면서 살아간다. 후회하지 않는 삶은 없다. 다만 어떤 일을 경험하고 나서 그것을 계기로 다시금 몸과 마음을 재정비 하면 또 다른 삶의 모멘텀(動力)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눈물 젓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이 어찌 인생의 참맛을 알 것이요, 죽음의 문턱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 어찌 인간의 생명에 대한 가치를 알겠나? 경험은 지난 일에서만이 가능하다.

 


제운스님/시인 선화가

해인사 출가, 동화 법주 범어 통도사 등 수행
문인화가, 평론가 석도륜 선생 사사
개인전 : 서울경인미술관, 양평친환경박물관 등 4회

저서 : 너는 금생에 사람노릇 하지 마라, 달마산책, 오가밥상,
그대 안에 수미산도 다 놓아버려라, 채근담, 산사의 주련,
내 마음의 이야기, 그대 마음을 가져오라, 나를 찾아 떠나는 선시여행,
산문의 향기, 당신은 나에게 무엇입니까, 시선일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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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1/13 [09:35]  최종편집: ⓒ gg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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